
지난 9월 14일 밤, 신당역 역무원이 당직근무 중 여자 화장실에서 스토커에게 살해당했다. 피해자는 3년간 350통 이상의 전화와 문자 스토킹을 당했으며, 가해자를 두 차례 스토킹 혐의로 고소했다. 첫 고소 때는 구속영장이 기각됐으나 2차 고소 때는 가해자의 혐의가 인정돼 검찰이 징역 9년 을 구형했다. 사건이 발생한 날은 선고 재판이 열리기 하루 전이었다.
사건의 근간에는 스토킹 범죄를 바라보는 정치권의 미성숙한 시각이 존재한다. 피해자의 권리를 보장하지 못하는 ‘스토킹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스토킹처벌법)’의 미흡한 조항이 그 사례다. 피해자가 처벌을 원치 않을 시 가해자에 처벌을 면해주는 ‘반의사불벌 조항’은 당사자 간 합의의 가능성을 열어둬 수사기관의 초기 개입을 어렵게 하며, 합의를 노린 가해자의 2차 가해 가능성을 높인다. 한국여성의전화는 “스토킹 범죄는 가해자와 피해자가 서로 잘 아는 관계에서 발생하는데, 피해자는 가해자의 보복이 두려워 명확한 처벌 의사를 밝히기 어렵다”며 스토킹 범죄의 본질에 대한 입법자의 이해 부족을 비판했다.
피해자에게 책임의 화살을 돌린 정치인도 있었다. 이번 사건이 2016년 강남역 살인사건을 상기시켜 젠더 논란에 다시 불을 붙일까 우려한 것이다. 여성가족부 김현숙 장관은 신당역 사건이 “여성 혐오 범죄가 아니다”라며 “피해자가 충분한 상담을 받았더라면 보호조치를 강화해서 비극을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라고 발언해 논란을 일으켰다.
신당역 여자 화장실 앞은 피해자를 추모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과 그들이 붙인 추모 메시지로 가득 차 있었다. 많은 시민이 피해자의 죽음에 안타까움을 표하며 국가에 실질적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반면 “피해자와 가해자가 모두 불쌍하다”며 이번 사건의 사실관계에 대해 왜곡된 인식을 드러 낸 일부 시민도 존재했다.
스토킹 범죄를 개인 간 합의로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한 입법자들, 범죄의 책임을 피해자에게 부과한 정치인들, 살인 사건을 이뤄지지 못한 사랑의 비극 정도로 이해하는 일부 시민들까지. 신당역 살인사건은 스토킹을 ‘개인의 문제’로 환원하는 시각이 아직 만연함을 보여줬다. 엄연한 범죄를 치정극으로 여기는 인식이 바뀌지 않는 한, 안전한 사회를 위한 변화를 기대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