갓생, 자기애와 불안 사이에서

결국에는 행복하고 싶다는 마음

  3주간의 폭풍 같은 경험으로 갓생에 대한 생각이 수만 번 바뀌었다. 한국 청년들은 갓생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갓생 열풍은 과연 건강하며, 이는 한국 청년과 사회에 대해 무엇을 말해주는가? 개인적인 체험담을 넘어 갓생의 여러 단면을 풀어봤다.

갓생, #가보자고 #왜하냐고 #괜찮냐고

사진 설명 시작. 일러스트레이터
▲청년들 사이에선 갓생에 관한 다양한 밈(Meme)이 공유된다. ©누누씨

  다섯 명의 청년을 만나 갓생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우선 태생부터 갓생을 살고, 갓생이 행복한 사람들이 있었다.

  직장인 A씨는 본인을 “MBTI 유형 중 극 J형”이라고 소개했다. 두세 달 후의 일정을 미리 계획할 정도로 꼼꼼한 그는 정해둔 공부, 운동, 외모 관리의 일과를 한 번도 어겨본 적이 없다. A씨는 “계획을 짜고 성취하는 게 행복하고, 실천해야 마음이 편하다”고 자신의 생활 방식을 설명했다. 대학원 진학을 준비 중인 B씨는 다른 이들보다 풍부한 경험을 했다는 자부심을 느낀다. ‘경험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다’는 신조를 지닌 그는 학원 강의와 교재 집필, 대학 병원과 연구원 근무는 물론 각종 대외활동까지 소화했다. B씨에게 갓생은 “많은 경험을 기반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조언해줄 수 있는 사람 되기”라는 그의 삶의 신조에 부합했다.

  허나 이들도 한편에서 불안함을 느꼈다. B씨는 많은 일을 소화하지만, 이러다 한곳에 정착하지 못할까 우려했다. 한 가지 일에 깊이 집중하며 갓생을 사는 이들보다 자신이 부족하다고 느껴질 때면 본인이 정말 갓생을 사는 게 맞는지 혼란을 느꼈다. 본래 다양한 경험을 통해 성장하는 것을 좋아하는 대학생 C씨는 “갓생이란 단어를 알게 된 후, 부담도 되고 의식적으로 열심히 살게 됐다”고 말했다. 평소라면 쉬었을 시간에 일을 찾아서 하고, 지쳐서 핸드폰을 하며 시간을 보낼 때면 뭐든지 잘 해내는 다른 이들과 자신을 비교해 채찍질하게 될 때도 있었다. C씨는 “모두에게 평등하게 주어진 삶에도 등급을 매기는 게 정당한가”라는 의문을 품게 됐다고 말했다.

  대학생 D씨는 갓생을 살다 건강이 악화돼 쉬고 있었다. D씨는 신입생 시절 관련 스펙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각종 활동에 불합격했다. 그 충격으로 인해 D씨는 약 3년 정도 3~4개의 동아리 활동, 수업 수강과 대외활동을 병행했다. D씨는 “내가 이렇게 열심히 산다는 자부심으로 버텼지만, 한 명이라도 “너 그러다 큰일난다”고 말해주는 사람이 있었다면 몸이 상하진 않았을 것”이라 말했다. D씨는 갓생 열풍의 이유로 “열심히 살지 않으면 기회조차 얻을 수 없는 구조”를 꼽았다. 건강 때문에 갓생을 그만뒀지만, 불확실한 미래로 인해 무리하지 않는 삶을 살 수 있을지 본인도 확신할 수 없었다.

  갓생이 단일한 생활방식을 요구한다고 비판하는 청년도 존재했다. 대학생 E씨는 “많은 일을 규칙적으로 실천하고, 계획하고, 자기계발에 투자하는 것”이 갓생으로 여겨진다고 봤다. E씨는 “삶에서 돌발적으로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르는데 꼭 기록하고 계획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지금 일상을 수행하는 것으로도 충분히 바쁜데 무언가를 더 해내야 하는지 의문이 든다” 말했다. 그는 “순간의 여유를 추구하고 당장 닥친 일을 잘 해내는 것이 더 낫다”고 느꼈다.

행복은 공유하면 두 배? 혹은 반절?

사진 설명 시작. 유튜브와 플레이스토어
▲유튜브와 구글 플레이 스토어의 갓생 검색 결과

  인터뷰에 참여한 청년들은 공통적으로, SNS를 통해 노출되는 갓생이 과연 진실성 있는지에 의문을 제기했다. D씨는 “유튜브에 갓생을 검색해서 나오는 영상을 보면 ‘돈이 많아서 이만큼 누리고, 이만큼 열심히 공부하고 살을 뺐고, 주변에는 나를 사랑하는 사람뿐이다’ 등 남들이 선망할 만한 이미지를 구축하는 데 집중하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D씨는 “그런 영상들이 건강한 삶이 아닌, 남들보다 우월한 삶이 좋은 삶이라고 전시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걱정을 표했다. E씨는 “갓생을 인증하는 문화가 건강한 삶을 살고 있는지보다, 찍어서 보여줄 수 있는 부분에만 치우쳐 의미가 퇴색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예를 들어 이른 시간에 일어나는 것은 보여주더라도 맑고 건강한 정신으로 일어났는지는 절대 보여줄 수 없지 않냐”며, “SNS에는 나쁘고 힘든 일은 올라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청년들은 SNS를 통해 전시되는 삶에 피로를 느끼고 있었다. B씨는 “바쁘게 사는 모습을 보여주는 친구의 게시물을 보면 처음엔 대단하고 멋있기만 했는데, 점차 무의식적으로 나와 비교하게 됐다”고 말했다. B씨는 “심지어 ‘이런 것까지 내가 알아야 하나?’란 생각이 든 적도 있다”며 덧붙였다. A씨는 “사회초년생이나 대학생의 인스타그램 계정에도 호캉스, 오마카세, 명품 등 거금이 드는 소비를 한 모습이 자주 올라온다”며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는 청년이 많은 현실과 괴리된다”는 의견을 표했다. A씨는 “SNS로 그러한 소비의 단면들을 너무 많이 목격하면 자신의 삶만 힘든 것 같다는 기분에 우울해하는 청년들이 많을 것 같다”고 우려했다. 서이종 교수(사회학과) 역시 “SNS의 수익 모델이 다양한 삶을 전시하기보다 사람들이 선망할 만한 삶을 광고해 청년들이 박탈감과 혼란을 겪는 데 큰 책임이 있다”고 평했다.

갓생을 살도록 압박하는 사회

  좋은 삶의 기준을 정해 따르도록 압박하는 사회에 부정적인 견해 또한 공유됐다. 청년들은 한국 사회가 특히 나이와 시기를 기준으로 정상적인 삶을 규정한다고 비판했다. B씨는 “또래와 비교해서 이 나이에 이 일을 하고 있는 것이 늦지 않았는지, 이 정도의 사회적 위치가 맞는지”를 고민하고 있었다. 그는 “사회적으로도 20대 후반에 직업을 정해서 경제활동을 하고, 결혼을 하는 등 나이에 걸맞은 직업과 경제력이 존재한다는 생각이 고정된 것 같다”고 말했다. E씨는 주변 사람들이 자꾸만 어떤 일을 시작하기엔 늦었냐고 질문하는 현실에 안타까움을 느끼고 있었다. E씨는 “대학 진학과 취업은 물론 배낭여행이나 교환학생도 제때가 있다는 정서가 의아하다”며 “나름의 이유가 있겠지만, 그 기준이 반드시 따라야 할 규칙처럼 작동하고 있는 상황은 잘못됐다”고 말했다.

  실제로 한국 사회에는 청년층이 견뎌야 할 압력이 상당하다. 2022년 현재 한국은 ‘OECD 더 나은 삶 지수’ 통계상 노동 시간 측면에서 41개 국가 중 37위, 개인 여가 및 휴식은 25위를 기록했다. 진미정 교수(아동가족학과)에 따르면 한국은 “개인, 가족 성원, 사회적 존재로서의 욕구가 균형 있게 충족되는 ‘일-생활균형’ 상태를 누리기 어려운 사회”다.

사진 설명 시작. 서이종 교수(사회학과)가 2050년까지의 대한민국 인구 변화 전망 그래프를 손에 들고 설명하고 있다. 고령 인구는 많은 데 비해 청년층 인구가 적어 격차가 심할 것으로 예측된다. 사진 설명 끝.
▲인구 고령화로 인한 청년층 부담 증가를 설명하는 서이종 교수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과 사회 부양에 대한 부담도 크다. 서이종 교수는 지금의 한국 사회가 “더이상 임금소득과 노력만으로는 계층 상승을 기대할 수 없는 자본주의의 한계, 기성세대 중심의 정치로 청년층에게 상당히 불리한 구조”라고 분석한다. 서이종 교수는 “한국 사회가 ‘초초고령화사회’로 돌입하며 인구 구조를 부양해야 하는 청년들의 부담도 커질 것”이라 말했다. 인터뷰에 참여한 C씨도 같은 이유로 “청년 예산이 삭감됐다는 소식을 듣고 착잡했다”며 “행복하려면 돈부터 필요하단 생각을 할 정도로, 청년을 위한 경제 지원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말했다.

  사회적으로 요구되는 삶의 기준은 너무나도 높은데, 청년들이 성취하기는 너무 버겁다. 서 교수에 따르면 사실 갓생은 특별한 현상은 아니다. 청년들은 갓생 외에도 개인의 힘으로 돌파하기 어려운 사회를 살아가기 위한 담론을 형성해왔다. 서 교수는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는 자조적인 삶의 자세, 주식과 부동산 투자로 임금소득의 한계를 극복하는 방안 등”이 갓생 이전에 유행했던 사실을 짚었다. 갓생은 청년들이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 찾은 돌파구 중 하나로, “기성세대처럼 전통적으로 우직하게 노력해 삶의 어려움을 감내하려는 방식”인 것이다. 허나 사회적으로 장기적인 불황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갓생이 실질적 대안이 될 수 있을까. 수없이 많은 방법을 생각하고 또 철회하는 청년층의 눈물겨운 발버둥으로 끝나진 않을까.

갓생을 토론해보자

  갓생은 새로운 현상이 아니다. 잘 살고 싶은 심리도 마찬가지다. 서이종 교수는 청년층의 갓생 열풍이 “남에게 내 목표나 스타일, 성취한 것에 대해 인정받고 격려받고 싶어하는 모습이 모바일 환경과 SNS라는 도구를 통해 용이해졌을 뿐”이라고 말한다. 단국대 임명호 교수(심리학과)는 갓생에 기저한 심리에 대해, “인간은 본능적으로 타인 단위에서 비교하는 비교우월감은 물론, 더 우월한 집단에 속하고 싶은 동조 심리도 갖추고 있다”며 “이전에도 있었고 앞으로도 있어야 할 욕망”이라고 해설했다.

  갓생에 대한 욕망은 인류에게 유구히 존재했지만, 청년층은 전에 비교할 수 없이 타인과 소통할 수 있는 환경에 놓였다는 점에서 특수하다. 임명호 교수는 청년층의 이러한 특성을 기반으로 갓생과 그 미래를 낙관적으로 바라봤다. 임 교수는 SNS를 통해 전시되는 갓생이 “자기 투자의 가치를 높이 사고 효과적으로 소통할 줄 아는 청년층의 특성이 반영된 것”으로 해석한다. 임 교수는 “SNS를 통해 삶의 기준에 대한 사회적인 압박을 받을지라도, 소통의 환경 속에서 그 방법을 알고 있는 청년들이 좋은 삶에 대한 담론도 바꿔나갈 수 있다”고 말했다. “정신 건강의 가치도 추구할 줄 아는 세대”인 청년이 소통을 통해서 삶의 절대적 기준을 중화하고, 불안과 압박을 완화할 수 있다는 의미다.

  청년층에게 가장 필요한 건, 삶의 보여지는 단편들보단 깊숙한 내면의 공유일지도 모른다. 갓생에 대해 교차하는 수많은 생각들을 교환하는 것을 시작으로 각기 자유롭고 다양한 삶을 추구해볼 수 있지 않을까.

  당신, 지금 행복하신지. 알 수 없는 미래를 위해 비오듯 땀을 흘리며 살아가는 이도 있고, 쉼없이 달리는 다른 이들을 보며 불안해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지금 어떻게 살고 있건, 어떤 감정이건 결국 바라는 것은 행복한 삶 한 가지다. 거대한 사회의 힘을 홀로는 이겨낼 수 없더라도, 내 삶에 누군가 자꾸 말을 얹더라도, 견뎌낼 수 있을 만큼만 힘드시기를. 할 수 있다면 함께 바꿔나가고 이야기할 수 있기를. 결국엔 행복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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