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글, 그리고 책임

176호 커버스토리에서 책임이란 단어를 수없이 썼습니다.176호를 줄이는 마지막 글에서도 그 단어를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말이란 그 뜻도 소리도 많아서 조합 방식도 무궁무진합니다.언어를 가진 사람이 그를 어찌 활용하느냐에 따라 말이 가진 뜻도 달라지지요.176호 커버스토리 ‘슬픔이 잊히는 것을 지켜만 볼 수 없어서’는 ‘문책’을 위한 기획입니다.문책(問責), 물을 문에 꾸짖을 책, 책임을 묻다.

  176호 커버스토리에서 책임이란 단어를 수없이 썼습니다. 176호를 줄이는 마지막 글에서도 그 단어를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말이란 그 뜻도 소리도 많아서 조합 방식도 무궁무진합니다. 언어를 가진 사람이 그를 어찌 활용하느냐에 따라 말이 가진 뜻도 달라지지요. 

  176호 커버스토리 ‘슬픔이 잊히는 것을 지켜만 볼 수 없어서’는 ‘문책’을 위한 기획입니다. 문책(問責), 물을 문에 꾸짖을 책, 책임을 묻다. 두 글자를 곱씹다보니 자연히 떠오르는 조합이 있었습니다. 

  문책(聞責), 들을 문에 꾸짖을 책. 책임을 듣다. 글의 목적은 묻기만 하는 데 있지 않고, 듣게 함에도 있습니다. 커버스토리를 쓰는 내내 제발 들으라, 들으라는 절절한 마음이었습니다. 국가에 어찌 책임을 지라고, 너무나도 허술히 져온 책임을 더 잘 질 수 있는 법이 있다고. 물어지는 그 수많은 말들을 들어야만 책임이 져집니다. 부디, 문책(聞責)하십시오.

  저도 알지 못했습니다만, 문책(文責)이란 조합도 있습니다. 글월 문에 꾸짖을 책. ‘자신의 글에 대한 책임’이란 뜻입니다. 저는 지면이란 자리에 말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은 사람입니다. 글을 쓸 자리를 받은 사람으로, ‘이태원 참사’를 다루는 일은 제가 글이란 것에 책임을 지는 방법이었습니다. 글(文)로써 책(責)해야 했습니다.

  참사 후 일주일, 오직 이태원 참사를 다루는 생각뿐이었습니다. 말하고 싶었고, 쓸 것이 너무나도 많은데, 섬세하지 못한 언어로 상처를 덧내는 일이 될까 걱정됐습니다. 기획회의에서 커버팀이 이태원 참사를 다뤄도 될 지 물었을 때, <서울대저널> 기자, PD 모두가 “다뤄야만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것이 저희가 대학생 자치언론으로서 질 수 있는 글의 책임, 문책(文責)이었습니다.

  말, 글, 그리고 책임에 대해 논했습니다. 부족한 글에 많이 물어주십시오, 듣겠습니다. 그것이 책임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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