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호 커버는 ‘이태원 참사’를 다룹니다. 참 무거운 주제입니다. 취재를 시작하기 전까지는 ‘참사로 슬퍼하는 사람들에게 글을 통해 도움을 주고 싶다!’며 단순하게 생각했습니다. 꽤 열정적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취재를 시작하고, 글을 쓰기 시작하니 열정은 어디 갔는지 금방 지치더라고요. 남의 이야기를 듣고, 가다듬고, 다시 남에게 보여주는 일이 점점 더 어렵게 느껴집니다. 특히 이번 호 커버처럼 주제가 무거울수록 더 어렵습니다.

  처음으로 글쓰기를 시작했을 때 제 글은 죄다 일기였습니다. 제 경험과 느낌만을 그대로 썼습니다. 누구한테 보여줄 필요도 없으니 오직 저 자신에게만 집중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한계가 찾아왔습니다. 남의 이야기를 담은 글을 쓸 때가 온 거죠. 

  남의 이야기를 쓰려면 공감이 필수지만, 타인의 감정에 공감하는 일은 쉽지 않아 과장된 공감을 하게 됩니다. 인터뷰이를 따라 심하게 아파하고, 슬퍼하고, 분노하다 보면 아주 조금이라도 그 사람의 감정을 느낄 수 있으니까요. 어렵게 이야기를 공유해준 인터뷰이에게 뭐라도 되돌려 주고 싶은 맘이 커지며 글에 힘이 들어가기도 합니다. 그래서 기사를 쓰면 항상 미안하고 힘듭니다. 애써서 내놓은 제 결과물이 형편없을 땐 더 그렇습니다.

  점점 억울했습니다. 왜 기자는 자꾸 되돌려 줘야 하고, 기억해줘야 하는지. ‘애초에 그런 직업’이란 말은 듣기 섭섭합니다. 그래서 다시 일기를 쓰듯이 이야기를 풀어냈습니다. 간접적으로라도 제 이야기를 담은 주제를 찾고, 제 이야기에 공감해줄 수 있는 인터뷰이를 찾았습니다. 타인의 무겁고 어려운 이야기를 쉽고 재밌게 풀어내는 기자들을 보면 부럽고, 나는 너무 내 생각에만 갇혀 있나 싶어서 한숨도 나옵니다. 그래도 어쩔 수 없습니다. 너무 좋은 글을 쓰려 아등바등하다가 지쳐버리면 정말 아무것도 되돌려 주지 못할 테니까요. 그건 최악입니다.

  그러니 다른 기자분들도 누군가에게 뭔갈 되돌려 주겠단 거창한 마음을 굳이 가지진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생각보다 나랑 똑같은 걸 고민하고, 똑같은 걸 좋아하는 사람은 많으니까요. 마찬가지로 독자분들도 너무 실망하진 않으시면 좋겠습니다. 이번 겨울 저널러들은 무언가를 전해주고 싶다는 일념만으로 글을 작성했습니다. 참사로 고통받는 우리 사회를 위한 ‘커버스토리’, 노동자의 더 나은 삶을 위한 ‘묻다’, 졸업하는 사람들을 위한 ‘캠퍼스라이프’ 기사가 그렇습니다. 

  이번 호의 기사가 마음에 드실지, 아닐지와는 별개로 이 기사들이 전해져야 하는 이유는 분명 존재합니다. 마음에 드는 주제가 다뤄지지 않았다면 분명 다음 호엔 더 마음에 드는 멋진 주제로 되돌려 받으실 수 있을 겁니다. 제가 본 저널러들은 되돌려 받을 생각조차 못 한 채 늘 되돌려 줄 생각만 하고 있으니까요. 

  커버 제목은 최고의 가수 김동률 님의 ‘동행’이란 노래의 가사에서 따왔습니다. 가사 전체를 제목으로 삼고 싶었을 만큼 따뜻하고 아름다운 가사를 주신 김동률 님께 감사드립니다.

댓글 댓글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

Previous Post

말, 글, 그리고 책임

Next Post

학생회 동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