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대학은 2002년부터 인문광역생을 모집하고 있다. 서울대학교 15개 단과대 중 광역모집제도를 유지하고 있는 곳은 공과대학과 인문대학만 단 두 곳뿐이다. 하지만 소속학과와 반이 일치하지 않을 수 있는 과반체제로 인해 학생들이 교내 생활과 학생 자치의 혼란을 호소하고 있는 곳은 인문대가 유일하다. 인문대학 인문광역생 모집의 역사와 인문대생들의 현주소를 짚어봤다.
인문광역생 모집의 변천사
현재 인문대학 신입생은 전공예약생과 인문광역생 두 계열로 모집된다. 전공예약생은 학과제*의 적용을 받아, 학과모집을 통해 주전공을 확정하고 입학한다. 반면 인문광역생은 학부제**를 따라 주전공을 정하지 않고 입학한다. 인문광역생은 학부제의 적용을 받아, 입학 후 주전공 탐색 시간을 가진 뒤 2~3학기 내 인문대학 내에서 주전공 학과를 선택해 전공에 진입한다. 전공 진입은 진입 시기에 따라 2학기 수강 후 배정되는 전기 학과 배정과 3학기 수강 후 배정되는 후기 학과 배정으로 구분되며, 각 학과배정은 학기 중 모집이 진행되는 1차 모집과 방학 중 진행되는 2차 모집으로 다시 나뉜다. 차수마다 3지망의 학과를 지원할 수 있기에 총 12번의 학과 배정 신청기회가 있다. 3학기 이수 후에도 전공 진입을 신청하지 않은 인문광역생은 미충원 학과로 임의 배정된다.
*학과제: 입학부터 전공학과를 선택하고 입학하는 모집 제도
**학부제 : 단과대학 내에서 비슷한 계통의 전공학과를 통합한 학부로 신입생을 모집하는 제도. 학부 신입생은 학부 생활을 한 뒤 적성에 맞는 전공을 선택한다.
이렇게 복잡한 인문대학 신입생 모집제도는 2000년대 학부제의 도입과 함께 수차례 바뀌어 왔다. 2000학년도까지 인문대학은 모든 학과, 모든 전형에서 전공예약생 모집 제도를 유지했다. 변화가 시작된 것은 2001년도부터다. 2001학년도 학부제를 도입한 인문대학은 수시 고등학교장 추천입학전형과 정시전형에서 7개 학과(국사, 동양사, 서양사, 철학, 종교, 미학, 고고미술사)를 인문계 학과군으로 통합해 인문광역생 모집을 시작했다.
2002~2003학년도에는 수시와 정시 전형에서 전체 학과 모두 인문광역생을 모집했고, 5개 학과(불어불문, 독어독문, 노어노문, 서어서문, 언어)에서 전공예약생을 모집했다. 2004~2012학년도에는 인문광역생을 ’인문계열 1, 2‘ 두 전형으로 나눠 모집했다. 인문계열 1은 언어, 국어국문, 중어중문, 영어영문, 불어불문, 독어독문, 노어노문, 서어서문의 언어계열 8개 학과, 인문계열 2는 국사, 동양사, 서양사, 철학, 종교, 미학, 고고미술사의 철학 계열 7개 학과로 분류됐다. 이에 따라 인문광역생은 각 계열 내에서 전공 진입을 통해 학과를 배정받았다. 한편 6개 학과(불어불문, 독어독문, 노어노문, 서어서문, 언어, 종교)는 전공예약생도 별도로 모집했다. 2013학년도에는 아시아언어문명학부가 신설돼 전체 16개 학과가 수시에서는 전공예약생을, 정시에서는 인문광역생을 모집했다. 현행 모집체제는 2014년부터 시작됐다. 정시 전형에서는 모두 인문광역생을 선발하고, 수시 일반전형에서는 전공예약생을, 나머지 전형에서는 인문광역생을 모집한다.

인문대학 과반체제, 그 틈새의 문제
서울대학교 각 학부·학과는 학생의 소속과 자치체제를 나타내는 과반체제를 운영한다. 각 단과대학별로 과반체제가 운영되는 방식은 다르지만, 학생을 일정 인원수로 분류해 학생자치의 효율성을 높인다는 목적은 같다. 대부분의 단과대학은 학과와 반이 일대일 대응하는 과반체제를 운영하고 있다. 사회과학대 언론정보학과-꼼반, 사회복지학과-한길반 등이 그 예다. 학부·학과 내 학생 수가 많은 경우 한 학과에 여러 반을 두는 경우도 있다. 경영대학 경영학과의 경우 패기반, 길벗반, 한빛반, 백두반 총 4반이 있다.
하지만 인문대학의 과반체제는 타 단과대학에 비해 복잡하다. 한 반에 여러 학과생이 함께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모든 신입생은 입학과 동시에 특정 반에 소속되지만, 인문광역생은 2학기 이상 재학한 후에야 전공이 결정된다. 그렇기에 인문광역생의 전공 진입 결과에 따라 같은 반 학생들이더라도 학과는 서로 다른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예컨대 독어독문학과-아우토반의 경우 9명의 전공예약생은 독어독문을 전공하지만 나머지 9명의 인문광역생의 경우 진입하는 전공에 따라 각기 다른 학과에 소속될 수 있다.

소속 학과와 반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존재하는 인문대학의 과반체제에서 인문광역생에 대한 관리는 소홀하다. 현재 인문대학 반 배정은 인문대학 학생회(현 연석회의) 새내기 기획단(새기단)에서 주관하며, 각 반 전공예약생의 성비만 고려해 무작위 배정하고 있다. 인문대학 연석회의 김지우 부집행위원장(서양사 21)은 “새기단은 새내기를 맞이하고 반 배정에만 관여하는 임시조직”이라며 “학과가 확실한 전공예약생 외에는 별도로 반 명단을 관리하는 시스템이 없다”고 밝혔다.
김지우 부집행위원장에 따르면 “인문대학 교무행정실에서 인문광역생들의 명단을 관리하고 학과 배정 이후 해당 학과로 명단을 이전”하고 있지만, “소속 반까지는 관리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김 집행위원장은는 “학과를 배정받지 못한 인문광역생은 학과 차원에서도, 반 학생회 차원에서도 공식적으로 관리되지 못한다”고 말했다.
인문광역생은 입학 후 2학기 이상 인문대학 내 다양한 학과 전공을 탐험한 뒤 원하는 전공을 선택할 수 있다. 하지만 그동안 소속된 공동체가 모호해 소외감을 느끼는 학생도 존재한다. 인문광역생 22학번 A씨는 인문광역생 모집제도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소속감을 꼽았다. A씨는 “생각하지 못했던 학과의 반에 소속돼 1년을 보내고, 전공예약생보다 1년 늦게 전공의 학과 생활을 하며 반과 학과 사이 정체성의 혼란이 생겼다”고 밝혔다.
인문광역생은 전공선택 과정에서도 혼란과 소외감을 겪는다. 스스로 학과를 선택할 수 있지만, 전공 진입 시 선배, 다른 학우들과 연결되지 못해 정보부족을 느끼는 경우가 있었다. 장준혁(인문 22) 씨는 “진입을 원하는 학과와 속한 반의 학과가 다를 경우 희망하는 학과의 정보를 얻기 힘들다”며 아쉬움을 표했다. A씨 역시 “학과 선택, 혹은 학교생활 시 질문을 1학년 지도교수님께 말하라고 하지만, 인문광역생의 경우 반을 기준으로 지도교수님을 배정받아 진입을 원하는 전공이 반과 일치하지 않을 경우 전공 진입 관련 상담과 지도를 받기 쉽지 않다”며 어려움을 호소했다.
인문광역생들은 학생 간의 실질적 교류와 정보 전달을 요구하고 있다. 인문광역생 C씨는 “인문광역생이 전공 진입을 희망하는 학과의 학생과 교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아직 부족하고, 인문광역생 간의 교류 프로그램을 통해 서로의 고민을 나누는 시간도 있으면 좋겠다”고 의견을 밝혔다.
인문대학의 사정
인문대학이라고 인문광역생을 선발하는 학부제의 문제를 모르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대학 차원에서 과반체제 이상의 문제점들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있었다. 강창우 학장은 “학부제는 학생의 소속감 결여, 부실한 전공교육 등 여러 문제점을 보이는 동시에, 학과제가 가진 문제점을 해소하지도 못해서 대부분 대학이 다시 학과제를 통해 신입생을 모집한다”고 말했다. 앞서 언급된 바와 같이 많은 단과대 학부제 모집을 시도했다 폐지했으며, 학부제를 유지하는 것은 인문대학과 공과대학뿐이다.
학부제는 학생들의 대학원 진학률을 낮추기도 했다. 강창우 학장은 “인문대학은 학부제 피해를 가장 크게 입은 대학”이라며 “학부제로 인해 학부에서 충분한 전공교육을 받지 못한 학생이 대학원에 대한 흥미가 떨어졌다”고 밝혔다.
하지만 많은 단점에도 불구하고 인문대학이 선뜻 학부제를 폐지하지 못하는 이유가 있다. 강창우 학장은 인문대학의 특성상 쉽게 제도를 바꾸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강 학장은 “하나의 제도가 실시됐을 때 이를 시류에 따라 바꾸는 것은 인문학의 기본적인 속성과는 거리가 있다”고 말했다. 학제간 연구를 강조하는 인문학의 특성 역시 인문대학이 학부제를 버릴 수 없는 이유다. 강 학장은 “학생이 여러 전공 분야를 접하고 스스로 전공을 선택할 수 있게 해 학과 간 장벽과 이기주의 등을 해소하자는 학부제가 가진 취지는 무시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학부제와 학과제를 병행하는 이유도 있다. 강창우 학장은 “인문광역생만 모집할 경우 학생이 소위 인기 학과나 전공에 쏠려 학생 수가 급감하는 학과가 발생할 가능성 때문에 학과를 고정해 학생을 선발하는 전공예약제를 유지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현재 인문대학 신입생 모집 전형이 인문학의 현실, 존속을 고려한 조치이기도 한 셈이다.

혼란의 인문대, 광역선발생 살리기
인문대학 본부 측과 학생회는 복잡한 신입생 모집제도와 과반제도의 불명확성으로 인한 문제를 인지하고 해결하기 위한 노력이 이뤄지고 있다. 학생들 사이에선 학과와 반의 완전한 분리를 요구하는 의견이 제시되고 있다. 인문대학 연석회의 김철진 집행위원(서양사 21)은 “지난 10월 이뤄진 인문대학 수업·학사운영 만족도 조사에서 과반체제가 불합리하다는 의견이 많았던 만큼 연석회의 차원에서도 이를 해결하려 한다”고 밝혔다. 김 집행위원은 “과와 반을 분리해 학술적 교류는 과 내부에서, 다른 과 학생들 사이 교류의 장은 반 차원에서 만드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라며, “각 학과가 연관된 문제인 만큼 급진적인 변화는 어렵더라도 인문대학 본부에 학생의 의견을 전달하겠다”고 밝혔다.
학생회 차원에서 인문광역생의 정보부족 문제를 개선하려는 시도도 있다. 인문대학 연석회의는 각 전공의 전공 진입 및 졸업 요건 등을 정리한 전공백서를 발간해 전공 진입 관련 정보를 전달하고 있다. 김철진 집행위원에 따르면 인문대학생 교류사업인 ’인문대학 네트워킹 사업‘을 통해 전공예약생과 인문광역생 간의 교류의 장을 마련하려는 시도도 추진 중이다. 김 집행위원은 “인문대학생의 교류를 위해 코로나 이후 많은 부분 중단·축소된 네트워킹 사업을 재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인문대학생 간 교류를 활성화해 교류 부재로 인한 어려움을 해소하겠다는 계획이다.
단과대 차원에서도 인문광역생의 어려움을 파악하고 지원 중이다. 강창우 학장은 과반체제에 관련해선 “반 대표의 요구사항 및 반 배정 방식 관련 소통이 필요할 경우 행정적 지원을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강 학장은 인문광역생 지원 사업에 대해선 “인문광역학생이 반을 통해 학교생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여러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며 “1학년 학생 전체를 대상으로 시행되는 ‘삶과 인문학 강의를 통해 학과 정보를 얻고, 인문대학 학생부학장을 주축으로 반대표 간담회나 인문계열 학생간담회를 주최한다“고 언급했다.
인문대학은 광역모집제도를 약 20년간 유지중이다. 그러나 인문광역생 관리 주체의 부재, 인문광역생이 학과진입 시 느끼는 소외감 등 해결해야 할 문제가 높이 쌓여있다. 인문대학의 사정과 학생들의 불편함 사이에 균형을 잡을 수 있는 제도 개편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