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좀 살아보겠다는 다짐을 입에 달고 사는 청년들. 해야 할 일은 부담스러운데 허덕이는 자신은 미련해 보인다. 지치지 않고 주체적으로 일상을 끌고 가는 멋진 사람이 될 순 없을까? 신조어 ‘갓생’이 담고 있는 함의다. 갓생이라 평가되는 생활을 영위하면 정말 멋진 사람이 될 수 있을까? 갓생 속으로, 기자가 3주 동안 뛰어들었다.
대망의 준비과정
“갓생 좀 살아보자.” 대체 어찌 살면 갓생일까. 개인적인 경험에 따르면 마감일이 다가오는데 해놓은 것이 없어 울적한 맘으로 휴대전화만 바라봤을 때 ‘갓생 좀 살아보자’며 다짐하곤 했다. 그렇게 보니 기자가 가장 부러워하던 삶의 방식이란 ‘할 일을 미루지 않고 미리미리 하는 삶’이었다. 미루지 않기를 갓생살이의 기조로 삼는다.
다른 사람의 경험을 참조하고자 유튜브에 ‘갓생’을 검색해보니 이미 무수히 많은 브이로그(V-log)가 게시돼 있었다. 몇 개의 영상을 섭렵한 결과 갓생은 공통적으로 아침 일찍 일어나기, 아침 운동하기, 하루 계획 세우기, 매일 일기 쓰기, (아침 운동과 별개로) 운동하기, 책 읽기 등의 일과를 포함했다. 누군가에게는 특별할 것 없겠지만, 침대 붙박이에 즉흥성 100%인 기자가 실천하기엔 너무 어려워 보였다.
아침 일찍 일어나기와 운동이 가장 큰 걱정이었다. 이른 기상은 새벽 4시경에 하루를 시작하는 ‘미라클 모닝(Miracle Morning)’의 용어가 있을 정도로 갓생의 필수 요소다. 한평생 하루 평균 수면시간 7시간 이상을 유지한 기자에게 4시 기상은 불가능하다는 생각에, 7시 기상을 목표로 정했다. 아침 운동으로는 1년 정도 배웠던 기억을 더듬어 30분 동안 발레 동작에 스트레칭, 근력운동을 병행하기로 했다. 일기장은 사진과 영상을 올릴 수 있는 ‘네이버 블로그’를 이용하기로 했다.
기왕 열심히 살아볼 거 몇 가지 일과들을 추가했다. 매일 글쓰기, 하루가 가기 전에 청소와 설거지를 비롯한 집안일 하기, 강의 예·복습과 과제 미리 하기, 가능하면 외국어 공부까지?
목표를 써보니 실천해서 나쁠 게 하나도 없었다. 일찍 일어나 여러 번 운동하면 체력도 길러지고, 일기를 매일 쓰면 자신을 되돌아보는 기록 습관도 자리 잡지 않을까. 미뤄둔 시험공부와 과제를 하루 만에 해치우느라 자괴감에 빠지는 날도 없을 것이다. 갓생, 너무 잘 살아버리면 어떡하려나? 시작은 늘 창대하고 긍정적이다.
* 위 내용에 따라 기자는 3주간 다음의 내용을 실천하기로 했다.
▲7시 기상 ▲저녁 30분 운동 ▲아침 30분 운동 ▲틈틈이 책 읽기 ▲하루 계획 세우기 ▲일기쓰기
week 1. 시작은 창대하게, 그러나 피곤하게
“언제부터 시작하실 거예요?”, “내일부터요.” “헉-.” 편집실에 울려 퍼진 탄성 혹은 탄식을 등에 업고 175호 1차 기획회의 바로 다음 날, 2022년 9월 28일 수요일부터 갓생에 전격 돌입했다. 준비과정에서의 자신감이 무색하게 1주 차는 좌절의 연속이었다.

일어나서 제일 먼저 하는 일과인 아침 운동을 제외하곤 글쓰기, 독서, 공부 모두를 해내는 날이 손에 꼽혔다. 평소 일상에 일과를 많이 추가한 것도 아닌데, 상당히 피로했다. 새벽 1시 정도였던 취침 시간이 밤 11시 무렵으로 바짝 당겨졌다. 도무지 일정을 수행할 수 없어 계획에 없던 낮잠을 자는 날도 있었다. 미루지 않고 건강하며 생산성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갓생을 시작했는데, 오히려 하루의 생산성이 떨어졌다.
계획적인 생활방식과 본성이 충돌하는 적도 많았다. 매일 글쓰기와 독서를 실천하기로 했지만, 딱히 하고 싶지 않을 때 하자니 쓸 것도 없고 읽고서 머리에 남는 것도 없었다. 꼭 특정한 일을 매일매일 하며 계획한 것을 모두 준수해야만 갓생일까. 그렇지 않고 마음대로 살아가는 삶은 정말 나쁜 걸까.
몸이 지치니 마음도 영향을 쉬이 받았다. 은연중에 타인과 자신을 비교하고 울적해지고 생각이 복잡해지는 날이 늘었다. 분명 꾸준히 실천해서 나쁠 습관들은 없었다. 겨우 이 정도에 피곤하다니, 너무 나약한 건 아닐까. 아니면 한두 가지를 더 실천하더라도 피곤할 수밖에 없는 이미 바쁜 삶을 살고 있던 건 아닐까. 갓생 체험기를 시작하기 전부터 기자의 일상은 이미 바빴다. 그렇다면 왜 기존의 삶을 갓생이라 생각하지 않고 있을까? 의문의 연속이었다.

그렇다고 마냥 힘들고 지치지만은 않았다. 알람을 듣지 않고도 제시간보다 일찍 일어났고, 아침 운동도 즐겁고 꾸준히 했다. 기분이 좋지 않을 때 이불 속에 파묻히는 것보다 몸을 움직이다 보면 울적함이 덜어진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일기를 쓰는 재미도 발견했다. 블로그로 일기를 작성하며 하루의 느낌과 스쳐 지나갔던 생각을 글로 남겨놓을 수 있었고, 블로그 이웃의 댓글을 읽으며 느끼는 연결감도 행복했다. 전공 서적을 읽어보긴커녕 사지도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었는데, 시험 공부를 이렇게까지 열심히 해본 것은 처음이었다. 심지어 재미도 있었다. 미루지 않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신속하게 취재를 하기도 했다.
좋은 것 같기도 하고 나쁜 것 같기도 하고. 더 오래 실천하다보면 나름의 판단이 설 것이라며 1주 차를 마쳤다.
week 2. 반골 혹은 약골 기질 발동
1주 차, 아침 일찍 일어나기만 했지 갓생을 제대로 살지 못했다고 느낀 기자는 자기 제어와 기사의 성공을 위해 2주 차부터 영상 기록을 병행할 것을 선언했다. 갓생 체험기 중 내린 선택 중에 최고의 선택이었다. 갓생 2주 차, 전주보다 더한 피로에 빠진 기자는 일기를 하나도 남기지 않는 희대의 만행을 질렀기 때문이다.
피로의 정점은 9일, 10일 차였다. 9일 차, 기자는 전날의 피로에도 계획했던 오전 일과를 모두 해냈지만, 오후부터 몸 상태가 급격히 나빠졌다. 저녁 운동은 포기했지만, 갓생을 위한 인내력으로 두 차례의 인터뷰는 완료해냈다. 30분 정도의 독서와 일기 작성만 마치면 그래도 성공적인 갓생의 하루를 완료할 수 있었다.
밤 12시 30분경 책을 읽던 것이 그날의 마지막 기억이었다. 기자는 다음 날 아침인 7일, 밤새 켜져 있던 형광등과 두 눈을 마주치며 깨어났다. 의식을 찾은 순간 기자의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대체 왜 이런 방식으로 살아야 하냐’는 분노에 가까운 의문이었다. 단지 생산적이기 위해 충분히 쉴 수 있는 시간을 휴식 외의 활동으로 채우고, 견디기 힘든 피로까지 느껴야 한다는 사실에 불만이 최고조에 달했다.
피로를 견디며 소화해야 하는 일정도 만만치 않았다. 온전히 쉴 수 있는 날이 단 하루도 없단 걸 실감하니 “이미 이렇게 바쁜데 대체 얼마나 더 바쁘게 살아야 하냐, 하루하루 갓생인지 아닌지도 평가까지 해야 하냐”라는 혼잣말이 절로 나왔다. 이날 기자의 상태는 갓생 체험기를 통틀어 최악이었다. 수업에 전혀 집중하지 못한 것은 물론 그날 밤 있었던 인터뷰 일정을 모두 미뤘다.
진짜 ‘갓생’이라면 행복하기까지 해야 하지 않을까. 기자가 갓생 시작 이후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부모님 댁에서 깨어난 11일 차 아침이었다. 생체리듬이 갓생에 맞춰져 7시 무렵에 일어났는데도 조금도 피곤하지 않았다. 일과 체력 문제로 하루하루가 버겁던 사람에게 경제적인 걱정과 자기 돌봄을 수행하지 않아도 되는 공간이 주는 안정감은 대단했다. 일어나자마자 운동을 하지도, 하루 계획을 세우지도 않았다. 연휴 동안 해치워야 일들이 쌓여있었지만 하고 싶지 않았고, 하지 않기로 했다. 삶이 비생산적이란 생각이 들긴커녕 행복했다. 기자의 삶을 가장 풍족하게 하는 조건은 ‘휴식’임을 깨달았다.


모든 사람에게는 자신에게 잘 맞는 생활, 과업 방식이 있다. 갓생 도식은 기자에게 분명 맞지 않았으니, 단호하게 ‘노갓생(NO-갓생)’ 선언을 했다. 부지런히 원하는 것을 좇는 마음가짐에는 문제가 없지만, ‘특정 생활방식만 옳다는 관념이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찍 일어나고, 매일 뭔가 쓰고 읽고, 휴식보단 일과를 완수하는 게 우선인 정형적인 갓생 도식이 오히려 기자의 삶의 질을 떨어뜨렸다. 지금의 갓생 담론이 ‘본인에게 가장 잘 맞는 방식을 찾아야 한다’는 가장 중요한 말을 빼놓은 채, ‘인생이 달라지는 습관’이라는 미사여구로 획일적인 생활방식을 강제하고 있다는 문제의식이 생겼다.
하지만 노갓생 선언이 무색하게 갓생에 절대적으로 반대할 수는 없었다. 갓생을 살지 않고 내 맘대로 하겠다고 선언한 1일 차, 부모님과 외출 후 예상보다 일찍 귀가하면서 시간이 붕 떠 버렸다. 그 순간에는 갓생을 체험하며 들인 하루 계획 짜기 습관이 큰 도움이 됐다. 어떻게 시간을 보내야 할지 곤란해하지 않고, 하루 동안 할 수 있는 일을 시각화하며 공허함을 해소할 수 있었다. 유연한 태도로 필요할 때만 적용한다면 갓생 도식이 꼭 나쁘지만은 않을지도. 갓생의 방식을 따랐을 때의 장단점을 모두 경험하며 마지막 주를 보낼 방향을 고민하는 2주 차였다.
week 3. 갓생을 살 수 있는 시기도 정해져 있다
개인적으로는 갓생을 살지 않겠다고 선언했다만, 기자로서의 갓생 체험기는 계속돼야 했다. ‘갓생은 나에게 맞지 않으니 살지 않겠다’는 다짐이 황급한 결단일 수도 있으니 한 주 더 살아보며 확인해보고 싶기도 했다.
3주 차에 느낀 갓생 체험기의 최대 복병은 예상치도 못한, ‘일상을 통제할 수 없는 바쁨’이었다. 3주 차에 기자는 인터뷰, 시험, 기사 작성이라는 굵직한 일들을 한꺼번에 수행해야 했다. 운동하고 청소하는 시간에 공부하고 글을 쓰는 것이 먼저였다. 지난 2주 동안도 집안일을 하겠다는 목표를 성실히 완수하진 않았지만, 3주 차만큼 집안이 쑥대밭이었던 적은 없었다. 어찌나 피곤하고 할 일이 많은지, 쉬자고 눈을 감으면 뇌가 완전히 방전돼 아무 기능도 수행하지 않는 듯한 감각을 느꼈다. 성실하고 깔끔하게, 열정적으로 일상을 돌봐야 한다는 다짐보다 닥친 일을 처리하는 게 우선이었다.

‘제발 갓생 좀 살고 싶다.’ 갓생의 생활습관이 본인과 맞지 않는다고 해놓고서, 이렇게까지 간절히 갓생을 살고 싶다고 생각한 것은 처음이었다. 삶에 대한 불안 때문이 아니라 손 쓸 틈도 없이 일상이 정돈되지 않아서였다. 쌓여서 탑을 이룬 설거짓감, 어지럽게 널브러진 방바닥, 오랜 시간 앉아있어 여기저기 쑤시는 몸 대신, 꾸준한 운동에 따른 체력과 정돈된 집안 등 삶의 어느 한구석도 흐트러지지 않는 갓생을 너무나도 살고 싶었다. 머리로는 갓생을 원하는데 몸도 시간도 도무지 도와주질 않았다.
결국 3주 차에는 아주 엉뚱하지만, 어찌 보면 합당한 결론이 나버렸다. 갓생도 살 수 있는 시기가 정해져 있다는 것이다. 굵직한 과업을 한꺼번에 몰아서 소화해야 하는 시기에 똑같은 일과를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단언컨대 절대로 없다. 그럴 사람이 있더라도 절대 많지 않을 것이다. 운동, 독서, 기록, 어쩌면 외모 관리와 여가에 이르기까지, 갓생의 일과는 해낼 수 있는 틈이 있어야만 가능했다. 일정과 일과는 변하고, 그때마다 살 수 있는 갓생의 모습도 다르지 않을까.
갓생에 뛰어든 3주 동안 갓생의 너무나도 다양한 단면을 마주했다. 갓생은 기자를 뿌듯하게도 혹은 초라하게도 했고, 두 번 다시 경험하고 싶지 않다가도 안 하자니 허전함을 느끼게도 했다. 너무 바쁜 사람에게는 생각해볼 틈도 없는 무력한 것이기도, 여유 있을 때나 따져볼 수 있는 실체 없는 것이기도 했다.
21일의 체험 끝에 기자는 ‘갓생 사세요’, ‘갓생 살지 마세요’와 같은 간단한 결론을 내릴 수 없었다. 시기와 몸에 맞는 다양한 삶의 방식이 있다. 삶의 한 방식을 선택할 수 있을 때도 있지만, 결정권 없이 상황에 맞춰가야 하는 순간도 있다. 나 자신을 강력히 끌고 가는 게 적합할 때는 그렇게 해야 하고, 쉬어야 할 때는 미련 없이 쉬어야 한다. 끌려갈 수밖에 없는 시기에는 끌려갈 수밖에 없다.
갓생은 살 수 있다면 사는 것이다. 누구든지 갓생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면 갓생을 살 수 있을 때만 사시고, 원치 않게 갓생을 사는 시기를 맞더라도 무사히 휴식이 있는 일상으로 돌아오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