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을 둘러싼 공동체의 언어

이태원 참사를 어떻게 말하고, 애도하며, 기억할 것인가

  10월 29일로부터 지금까지, 믿기 어려운 참사를 겪은 우리는 이 참사를 어떻게 말해왔을까. 사람들이 택한 언어는 적절했을까. 거대한 상실은 남은 이들의 삶이 계속되는 공동체의 한가운데를 파고들었다. 공동체로서 우리 사회는 앞으로 무슨 이야기를 어떻게 해야 할까. 참사에 관한 말하기를 돌아보고, 상실을 애도하고 기억하는 공동체의 내일을 그려봤다.

그렇게 말해선 안 됐다

  사회적 참사는 결코 개인에게 그 원인을 물을 수 없다. 그러나 이태원 참사에서도 어김없이 개인에게 화살이 향했다. ‘왜 그날 이태원에 갔냐’며 피해자 탓을 하거나, ‘누군가가 사람들을 밀어서 발생한 사고가 아니냐’며 개인에게 책임을 묻는 말들이 쏟아졌다. 연세대 김용찬 교수(언론홍보영상학부)는 이러한 말들이 “재난 이후 사회의 여론 및 담론 형성 과정에서 나타나는 일종의 거리두기 전략”이라고 설명했다. 재난의 원인을 개인의 부주의나 일탈에서 찾으며 재난과 자신 사이에 철저한 거리를 둔다는 의미다. 김용찬 교수는 “거리두기 전략은 재난이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었던 일이라고 생각하길 거부해 위험과 불안을 회피하려는 심리 현상인 ‘방어적 귀인’ 때문에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재난과의 거리두기 전략은 피해자에게 2차 피해로 작용할 수 있다. 김 교수는 재난과 거리두기 전략은 “공동체의 참사에 자신도 분명히 연결돼있다는 감각 없이 재난의 구조적인 원인을 외면하게 해 피해자를 고립시킨다”고 말했다.

  재난과의 거리두기 전략은 공적 영역이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고 은폐하기 위해서도 사용된다. 박희영 용산구청장은 참사 직후 “핼로윈을 앞두고 구청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은 다 했다”며 책임 회피성 발언을 했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역시 “참사는 경찰이나 소방 인력을 미리 배치함으로써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며 책임을 회피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참사가 막연하게 정부 책임이라고 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언급했다. 

  공적 영역이 재난과 거리를 둘 경우, 그 책임은 모두 개인에게 전가된다. 김용찬 교수는 “일반 시민 수준을 넘어 정치 지도자나 행정 담당자들의 거리두기 전략은 명백한 책임 회피”라며, “사고 수습과 회복의 역할을 다하지 않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김 교수는 “재난을 공동체의 것으로 말하지 않으면 피해가 개인이나 가족 단위에서 해결해야 하는 문제로 여겨지게 된다”고 말했다. 결국 정치 지도자와 행정 담당자의 재난과의 거리두기 전략은 사고 수습과 회복에 크게 지장을 준다.

언론은 어떻게 말해야 했나

  참사에 대한 말들을 살펴보기 전, 사회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정확하게 알려줘야 할 언론이 참사를 잘 전달했는지도 돌아보자. 4.16 재단의 「피해자 중심 재난 보도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재난 발생 시 언론은 방관자나 관찰자가 아니라 재난 구조의 ‘당사자’다. 따라서 언론의 재난 보도는 피해 상황을 정확히 전달해 복구 활동에 실질적 도움을 줘야 한다. 이태원 참사에서 언론은 그 역할을 다했을까.

  참사 직후 언론 보도에는 SNS상에 여과 없이 공유되던 현장 사진이 그대로 등장했다. 유족의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지나친 인터뷰 요청으로 유족이 고통을 호소하기도 했다. 김용찬 교수는 “참사에 대한 보도는 속보와 특종을 추구하는 기존 기사 쓰기의 관행을 그대로 적용해선 안 되는 영역”이라며 언론이 재난 시 보도윤리를 엄격히 준수해야 함을 강조했다. 

  재난 보도는 정확한 상황 전달을 핵심으로 하며, 불필요한 공포심이나 불안감을 유발할 수 있는 자료는 사용해선 안 된다. 트라우마 저널리즘 관련 전문가인 이정애 기자는 “적절한 재난 보도는 무엇을 할지보다, 무엇을 하지 않을지를 제대로 결정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당시 보도본부의 원칙은 다음과 같았다. 밀집된 골목의 영상은 최대한 사용하지 않고, 만약 사용해야 하는 경우 현장 음성을 제거해 사용할 것 현장에서 심폐소생술(CPR)이 시행되는 모습은 영상이 아닌 정지화면으로 사용할 것 현장 상황을 자세히 묘사하지 않을 것 현장의 인터뷰이를 포함한 누구의 실명도 쓰지 않을 것 확보한 현장 인터뷰가 아무리 생생하더라도 내용이 자극적이라면 사용하지 않을 것 등.

  현장 보도 이후의 보도에서도 지속적으로 보도윤리를 점검해야 할 필요성이 제기됐다. 지난 11월 14일 한 인터넷매체가 유족 동의 없이 희생자 158명 중 155명의 명단을 공개해 보도윤리를 준수하지 않았다는 비판이 일었다. 이정애 기자는 해당 보도가 “희생자와 유족들을 또다시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흘러가는 상황에 처하게 했다”며 “언론은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발생한 재난에 자기 통제력을 잃고 무기력해하는 피해자들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용찬 교수 역시 “언론이 유족들의 의견을 모을 수 있는 협의체나 네트워크가 없는 상황을 비판해야 했던 것은 맞지만, 재난 시의 보도윤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피해자 중심주의’이며 언론은 이후 보도에서도 이를 꾸준히 점검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사진 설명 시작. 검은색 테두리로 된 흰 배경의 사각형 칸 안에 한국기자협회의 재난보도준칙 일부가 글로 쓰여있다. 재난보도준칙 (한국기자협회) 제14조(단편적인 정보의 보도) 사건 사고의 전체상이 파악되지 않은 상황에서 불가피하게 단편적이고 단락적인 정보를 보도할 때는 부족하거나 더 확인돼야 할 사실이 무엇인지를 함께 언급함으로써 독자나 시청자가 정보의 한계를 인식할 수 있도록 노력한다. 제15조(선정적 보도 지양) 피해자 가족의 오열 등 과도한 감정 표현, 부적절한 신체 노출, 재난 상황의 본질과 관련이 없는 흥미 위주의 보도 등은 하지 않는다. 자극적인 장면의 단순 반복 보도는 지양한다. 불필요한 반발이나 불쾌감을 유발할 수 있는 지나친 근접 취재도 자제한다. 제16조(감정적 표현 자제) 개인적인 감정이 들어간 즉흥적인 보도나 논평은 하지 않으며 냉정하고 침착한 보도 태도를 유지한다. 자극적이거나 선정적인 용어, 공포심이나 불쾌감을 줄 수 있는 용어는 사용하지 않는다. 제18조(피해자 보호) 취재 보도 과정에서 사망자와 부상자 등 피해자와 그 가족, 주변사람들의 의견이나 희망사항을 존중하고, 그들의 명예나 사생활, 심리적 안정 등을 침해해서는 안 된다. 사진 설명 끝.

한국기자협회 재난보도준칙 일부 Ⓒ강다겸

  참사의 명명에 ‘이태원’이라는 장소를 명시하는 것을 두고도 많은 논의가 오고갔다. ‘이태원 참사’라는 지칭엔 다음과 같은 취지가 담길 수 있었다. 이정애 기자는 “이태원으로 지원 인력을 모으는 현장 관리 목적과 앞으로 회복해야 할 문제를 직면하는 차원”이라 말했고, 김용찬 교수는 “이태원이라는 지역을 강조하는 것이 이 참사가 일종의 도시재난이라는 특수성을 인식하게 한다”고 말했다.

  허나 이태원 참사라는 명명이 앞으로 이태원이라는 지역을 참사 현장으로만 떠올리게 하는 낙인이 될 수 있음을 우려하는 주장도 있었다. 이에 참사 발생 날짜를 붙인 ‘10.29 참사’라는 명칭이 대안으로 제시되기도 했다. 가 이를 수용해 10.29 참사로 표기하고 있고, 김동연 경기도지사가 ‘경기도민안전대책’ 발표에서 10.29 참사라는 명명의 필요성을 언급한 이후 경기도에서도 지자체 차원에서 10.29 참사로 명칭을 통일해 사용하고 있다.

  참사를 명명하는 논의의 의의는 이름을 결정하기보다, 참사 대응 과정에서 참사의 어떤 점을 중요하게 여기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데 있다. 이정애 기자는 “참사의 명명을 비롯한 언론의 단어 선택이 중요한 것은 공동체 구성원들이 이 사건을 어떻게 기억하게 되는지와 큰 관련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 기자는 “이미 겪은 상실을 되돌릴 수는 없지만, 공동체의 회복 차원에서 참사를 말하는 언어를 신중하게 다듬을 필요가 있고 언론도 그 역할을 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민 없던 SNS의 말하기

  참사는 언론을 통해서만 전해지지 않았다. 가장 먼저 참사 소식을 알린 것은 SNS였다. SNS에서는 참사 당시 현장 상황이 무분별하게 사진과 영상으로 공유됐다. 지나치게 적나라하게 현장을 묘사하는 이미지가 아무런 조치 없이 공유될 경우 피해자의 인권도 심각하게 침해돼 재난에 관한 담론을 훼손할 수 있다. 재난 상황의 SNS에서는 검증되지 않은 잘못된 정보가 쉽고 빠르게 퍼지기도 한다. ‘당시 사람들을 밀었던 사람이 있고, 그를 색출해야 한다’는 식의 반응이 급물살을 탄 것도 SNS에서였다.

  발화 환경이 성찰될 수 있다면 SNS는 재난을 말하기에 더 적합한 장이 될 수도 있다. 김용찬 교수에 따르면 SNS는 주류 언론이 없는 곳에서 사건이 벌어지는 현장의 이야기를 전해주는 기능은 물론이고, 재난 현장의 문제 해결과 복구를 위한 인적·물적 자원을 연결해주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문제는 SNS는 언론과 달리 보도를 지시하고 관리하는 데스크가 없다는 것이다. 개인이 SNS에 게재하는 재난 현장 게시물이 점검될 기회가 없단 의미다. 김용찬 교수는 “SNS는 기본적으로 네트워크기 때문에, 재난 상황 때마다 무분별하게 재난 현장이 전달되는 등의 부적절한 현상이 특정 이용자들만의 문제는 아니”라며 “이 같은 현상을 바로잡는 일은 SNS 이용자 모두가 공동으로 져야 하는 책임”이라고 설명했다. 

  언론의 보도윤리뿐만 아니라 개개인의 미디어 활동의 윤리에 대한 논의 역시 필요하다. 김용찬 교수는 “개인이 거대 매스미디어만큼의 파급력이 있는 보도를 할 수도 있는 환경임을 자각하고, 자신의 생각이나 경험을 SNS에서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에 대해 윤리적으로 고민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SNS 이용자들은 부적절한 게시물에 대해 삭제를 요구하거나 게시물이 더 이상 퍼지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이는 등의 노력을 할 수 있다. 이정애 기자는 “SNS나 포털 차원에서도 무분별하게 공유되는 재난 현장의 사진이나 영상들에 대해 ‘심리적 트라우마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내용’이라 명시하는 등의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제 해야 하는 말들

  앞으로는 어떤 이야기를 시작해야 할까. 이정애 기자는 “공동체의 ‘외상 후 성장’을 위한 담론이 중요한 축으로 자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외상 후 성장’이란 공동체에 발생한 외상이 상처와 슬픔으로만 남지 않고 긍정적인 변화의 결과로 이어지는 것을 말한다. 참사 이전보다 더 나은 방향으로 공동체를 재건하기 위한 지속적인 담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외상 후 성장’을 위해선 피해자, 유족과 사회 구성원이 하나의 공동체 차원에서 회복을 이야기해야 한다. 김용찬 교수는 “진상 규명이나 책임자의 사고 수습 과정을 감시하고 견제할 뿐 아니라 피해자와 유족들이 법적 권리를 제대로 보장받고 있는지 등 당사자의 삶에 지속적인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삼풍백화점 참사 생존자이자 『저는 삼풍 생존자입니다』의 저자 이선민 씨는 “앞으로 참사를 대응해나가는 일에 있어 도움이 되기 위해 함께 노력하겠다는 메시지를 피해자와 유족들과 다른 사회 구성원들이 공유하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는 의견을 전했다. 이를 위해서는 이태원 참사를 한국사회의 모두가 함께 겪어내는 문제로 접근하는 태도가 특히 필요하다. 김용찬 교수 역시 “지금은 이태원 참사가 나와 연결된 나의 문제이자 우리 공동체의 문제라고 여기고 말할 수 있는 여건을 갖추고 있는지를 점검해야 할 때기도 하다”고 말했다. 

  좁은 단위의 공동체를 통한 재난 말하기도 필요하다. 김용찬 교수는 “포항 지진 당시 중앙 언론의 보도와 정부 차원의 논의가 시들자 포항 지역에 일종의 ‘공동화’ 현상이 발생했다”며, “한국은 자신이 경험한 재난을 함께 겪은 사람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중간 단위의 장이 구비되지 않은 상태”라고 진단했다. 

  현재 재난에 대한 담론은 국가 차원 같이 아주 큰 단위에서 다뤄지거나, 개인 수준의 아주 작은 단위에서 다뤄지는 양극단뿐이다. 따라서 적절한 논의가 이뤄지기 어렵다. 김용찬 교수는 “재난을 겪은 피해자들, 비슷한 고민을 가진 사람들이 연결돼 감정과 경험을 공유할 수 있는 중간 지대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를 위해선 이전부터 쌓여온 지역 네트워크가 어떻게 활용될지에도 주목해야 한다. 4.16 재단 박성현 나눔사업팀장은 4.16 재단이 “이태원 지역사회 구성원이 말하는 참사 전후의 경험을 기록하는 작업을 기획 중”이라고 밝혔다. 참사 당사자들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지역 사회의 회복을 도모하는 기획이다. 박 팀장은 “공동체성이란 재난을 함께 겪은 이들이 다시 일어서 회복해가는 사회적 근력이라고 본다”며, “공동체성을 잃지 않고 서로 격려하는 과정이 장기적으로 섬세하게 진행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사진 설명 시작. 이태원 참사 현장 골목 벽면의 모습이다. 붉은 벽면에는 추모 메시지가 쓰인 다수의 포스트잇이 붙어있다. 벽 아래에는 많은 꽃다발과 인형들이 놓여있다. 사진 설명 끝.

이태원 추모 공간 모습 Ⓒ김송현 사진기자

추모하고, 애도하며, 기억하는 공동체

  참사에 대한 언어를 살펴야 하는 이유 중 하나는 공동체가 겪은 상실을 잘 애도하고 기억하기 위함이다. 이번 참사 직후에는 국가애도기간 지정에 관해 많은 논란이 일었다. 정부 차원의 문화 예술 행사 취소 및 연기 권고에 여러 반발이 있었던 것이다.

  이는 국가가 권위적으로 애도의 시간과 방법을 정했다는 점에서 비판받았다. 삼풍백화점 참사 생존자 이선민 씨는 “국가가 해야 할 애도는 진상 조사와 책임자 처벌, 시스템의 철저한 재정비”라고 말했다. 이 씨는 “근본적 원인 해결을 통해 공동체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며, 국가는 “여러 사람이 모여도 별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안심과 이곳이 안전하다는 감각을 살려내야 한다”고 말했다.

  국가의 애도는 애도하고자 하는 모든 이들을 돌보는 것도 포함한다. 참사를 직접적으로 경험하지 않았더라도, 평범하고 일상적인 공간에서 일어난 이태원 참사는 많은 이들을 심리적으로 취약하게 했다. 이에 한국 사회 전체의 트라우마를 관리할 필요성이 제기됐다. 한국트라우마스트레스학회에 따르면 재난 충격의 범위는 피해자에서 시작해 일반 시민과 사회 전반까지다. 이태원 참사 이후 국가트라우마센터의 심리 지원 서비스가 실시된 것과 같이, 국가 차원의 트라우마 관리는 꾸준히 이어져야 한다.

사진 설명 시작. 검은색 테두리로 된 초록 배경의 사각형 칸 안에 재난 관련 심리상담 지원 기관의 정보와 전화번호가 적혀 있다. 국가트라우마센터 1577-0199, 한국상담심리학회 1600-8983, 한국심리학회 1670-5724, 재난심리회복지원센터 1670-9512. 사진 설명 끝.

만약 이태원 참사 이후 심리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 위의 기관들로부터 도움받을 수 있다. Ⓒ강다겸

  개인은 이태원 참사를 어떻게 애도하는 게 좋을까. 이선민 씨는 “애도의 방법을 깊이 고민하는 이들은 이미 애도를 시작한 것”이라고 답했다. 애도의 공간은 참사의 구조적 원인과 참사가 갖는 사회적 의미를 토론하는 곳이 될 수도, 조용히 슬퍼하며 서로 사려 깊은 위안을 나누는 곳이 될 수도, 참사로 얻게 된 심리적 어려움으로부터 일상을 회복하는 곳이 될 수도 있다. 어떤 곳이든 공동체가 앞으로도 오래도록 가꿔나가야 할 공간임은 명백하다.

  참사를 받아들이는 방식은 다양하다. 서울 마포구의 문화공간 ‘제비다방’에서는 참사 이후 매주 수요일마다 「공연음악이라는 애도의 형태」라는 제목의 공연이 진행된다. 공연을 기획한 밴드 ‘빌리카터’의 멤버 김고양 씨는 “국가애도기간 동안 공연·예술 행사가 취소된 것은 애도의 방식이 강제됐던 행위”라며 이에 문제의식을 느껴 공연을 기획했다고 밝혔다. 김 씨는 “음악은 지금껏 공동체 구성원들의 정서를 대변하며 공동체의 연결감에 기여해왔고, 강력한 위로와 애도의 힘을 갖고 있다”며 “누군가에게 위안이 될 수 있다면 어떤 형태로든 애도가 가능하다”는 의견을 전했다. 김고양 씨처럼, 국가의 애도는 시민이 참사를 받아들이고 저마다의 애도를 충분히 실천할 수 있는 환경의 조성을 돕는 형태를 띨 수도 있지 않았을까.

사진 설명 시작. 어두운 조명의 무대에서 밴드 빌리카터의 멤버 네 명이 공연하고 있다. 왼쪽부터 베이스 연주자, 보컬, 드럼 연주자, 기타 연주자가 공연 중이다. 사진 아래에는 관람 중인 관객들이 앉아있다. 사진 설명 끝.

<공연음악이라는 애도의 형태> 공연 모습 Ⓒ밴드 빌리카터

  소중한 동료 시민인 서로의 안전을 살피고 돌보는 공동체, 무엇도 쉽게 지나치지 않고 진실을 찾아나서는 공동체, 함께 겪은 상실을 충실히 애도하는 공동체, 모든 것을 최선을 다해 기억하는 공동체. 우리가 만들어나가야 할 공동체의 모습들이다. 지금껏 공동체가 이번 참사를 어떻게 듣고 말해왔는지에 대해 성찰할 때, 우리가 원하는 공동체의 내일로 나아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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