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학생회, 그럼에도!

변화한 서울대 학생사회의 모습

  2022년 11월, 제63대 총학생회 선거가 치러졌다. 26일 정오 선거운동본부(선본)의 당선으로 마무리된 이번 선거는 변화한 학생사회의 모습을 다시금 드러낸 선거이기도 했다. 제63대 총학생회 선거에는 정오와 공명 두 선본이 출마했다. 2018년 제61대 총학생회 선거 이후 4년 만의 경선이었다. 현재 재학생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19학번 이후 학생들에게는 이번 선거가 첫 경선이었던 것이다. 2019년 이후 총학생회 선거는 하나의 선본만 출마하거나 아예 후보가 없어 무산되는 등 원만히 이뤄진 적이 없었다.

  그러나 투표율은 저조했다. 4년 만의 경선이었지만, 5일간 진행된 본투표에서 투표율이 39.05%에 그쳤다. 제61대 총학생회 선거가 본투표 기간 내 투표율 57.5%를 달성한 것과는 다른 행보다. 연장투표를 진행한 결과, 최종 투표율 50.96%로 반수를 근소하게 넘기며 선거가 성사됐다.

사진 설명 시작. 야외에 총학생회 선거를 위한 기표소가 설치되어 있다. 기표소 입구에
▲제63대 총학생회 선거 기간 설치된 기표소 ©서울대저널

학생사회의 침체, 원인은 코로나?

  총학생회 선거의 낮은 투표율과 적은 후보 수는 이번 선거가 처음이 아니다. 2000년대 이후 투표율 미달로 총학생회 선거가 무산되는 일이 여러 차례 발생했다. 이제는 ‘선거에서 누가 당선되느냐’보다 선거 성사 여부 자체가 더 중요해졌고, 경선보다 한 선본의 단독 출마가 잦아졌다. 단과대별 학생회 선거의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11월에 진행된 단과대별 학생회 선거는 두 선본의 경선으로 치러진 공과대학을 제외한 모든 단과대에서 단독 후보로 치러지거나 아예 후보가 등록하지 않아 무산됐다.

  이는 학생회를 향한 학생들의 관심이 전보다 줄었기 때문이다. 김지은 전 총학생회장(조선해양공학 18)은 “입학했을 때(2018년)만 해도 학생들 사이에서 학생회 얘기가 많이 나왔다”며 “지금은 공동체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한 관심도가 조금씩 낮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김 전 총학생회장이 입학한 2018년은 제63대 총학생회 선거 이전 마지막 경선이었던 제61대 선거가 있었던 해다. 당시 NOW 선본의 정후보로 출마했던 윤민정(정치외교학부 졸업) 씨는 “16년, 17년, 18년에도 늘 (학생회에 대한) 관심이 적어졌다는 얘기가 있었다”고 말하면서도 “그래도 그때는 전체학생총회도 성사됐고, 시흥 캠퍼스 문제나 총학생회 선거 등 학생사회 안에서 의견이 다른 부분에 대한 논쟁도 많았다”고 회상했다.

사진 설명 시작. 중앙도서관 앞 아크로폴리스에 학생들이 가득차 있다. 학생들은 다양한 단체의 깃발을 들고 있다. 사진 설명 끝.
▲2019년 5월 성사된 전체학생총회의 모습 ©서울대저널

  4년이라는 시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학생들이 학생회로부터 멀어진 가장 큰 원인은 코로나19 유행이다. 코로나19 유행은 학생사회에도 예외 없이 찾아왔다. 2020년 전국 대학교가 전면 비대면 수업으로 전환하면서, 일부 대면 행사가 재개된 2021년 가을학기 전까지 학생들 간의 상호작용은 크게 제한됐다. 학생회뿐만 아니라 학과, 동아리 등의 학생 단체에서 선후배 간 단절이 일어났다. 그 결과 많은 단체가 재생산에 어려움을 겪었다. 군사정권 하에서의 휴교령이 전염병의 모습으로 돌아온 것과 다름없었다.

  서울대에서 학생회가 침체를 겪기 시작한 시기도 코로나19의 유행과 일치한다. 김지은 전 총학생회장은 “2019년까지만 해도 전체학생총회나 조국 집회 등을 생각했을 때 학생들의 참여도가 굉장히 높았다”며 “코로나 19 때문에 학생들이 학교에 오지 않으면서 자연스럽게 학교 내의 일에 대한 관심도가 떨어졌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윤민정 씨도 “코로나 19가 유행할 때 물리적으로 캠퍼스에서 서로 만나지 않게 되면서 학생사회의 존재감이 없어지는 것을 느꼈다”며 학생사회 침체의 원인으로 코로나 19를 지목했다.

사진 설명 시작. 큰 강의실에 학생들이 앉아 있다. 일부 학생들은 서로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진 설명 끝.
▲전체학생대표자회의의 모습 ©서울대저널

학생회의 불모지가 된 인문대학

  코로나 19를 겪으면서 단과대 단위에서도 학생사회의 침체가 나타났지만, 인문대학은 그중에서도 유독 심한 침체를 겪고 있다. 올해 후보 미등록으로 단과대학 학생회 선거가 투표 없이 무산된 세 개의 단과대학 중 하나인 인문대학은 2020년 이후 2년째 학생회가 공석 상태다. 인문대학 연석회의 집행위원회 김지우 부집행위원장(서양사 21)은 학생들이 학생사회에 관심을 갖지 않는다며 “(이번에 반 학생회장이 선출된 반이) 16개 반 중 4~5개밖에 안 될 뿐더러, 연석회의를 꾸려가는 것 자체가 부담스러워서 다들 연석회의 의장을 꺼린다”고 말했다.

  사업의 실행만을 담당해야 할 연석회의 산하 집행위원회는 연석회의 업무 전반을 대행하고 있다. 인문대학 연석회의의 추진력이 부족하다는 이유에서다. 김 부집행위원장은 “(연석회의가) 회계를 제외한 사업의 계획 및 실행 모든 사업 처리 권한을 집행위원회에 넘겼다”고 설명했다.

  타 단과대학 대비 인문대학에서 학생회 구성이 더 어려워진 것은 인문대학의 특수한 신입생 모집 방식에 기인한다. 인문대학은 모집단위 광역화를 도입해 일정한 수의 학생들을 특정 학과에 소속되지 않는 ‘인문계열’로 선발한다. 과거 사회과학대학, 자연과학대학 등 타 단과대학에서도 모집단위 광역화를 도입했었지만, 이들이 다시 학과별 모집으로 돌아가면서 현재 모집단위 광역화를 시행 중인 단과대학은 인문대학이 유일하다 (2023학년도부터 공과대학 5개 학과에 한해 제한적인 모집단위 광역화 도입 예정). 인문계열로 선발된 인문광역생은 무작위로 16개 반 중 한 곳에 배정된다. 인문광역생은 1학년을 마친 다음 전공할 학과를 결정하는데, 전공 진입을 하더라도 입학할 때 배정된 반은 변하지 않는다.

  이러한 모집단위 광역화는 인문계열로 입학한 학생들이 자신의 반에 소속감을 잘 느끼지 못하게 만든다. 전공 진입 이후 인문광역생이 새로운 ‘전공 학과’와 기존 ‘반’이라는 서로 다른 두 집단에 이중으로 소속되기 때문이다. 인문대학 연석회의 집행위원회 김철진 교육인권국장(국사 21)은 인문대에서 학생사회에 대한 참여도가 저조한 원인에 대해 “(인문계열 학생들은) 2학년 이후로는 다 흩어진다. 반 활동을 열심히 할 수도 있겠지만 그러면 그만큼 과 활동을 못하게 된다”고 말했다. 김 교육인권국장은 “(인문계열 학생들의) 소속감에 문제가 생기고, 그러다 보니 각자도생이 심해졌다고 생각한다”고 현 상황을 진단했다.

‘복지 위주’ 학생회의 명과 암

  인문대학 연석회의 집행위원회 김지우 부집행위원장은 학생회에 대한 관심이 감소한 또 다른 원인으로 학생회의 성격 변화도 지적했다. “(과거에) 인문대는 사회적 이슈에 목소리를 많이 내기로 알려진 단과대였는데, 지금은 학생회가 학생 복지 위주로 넘어가면서 관심이 약해진 것 같다”는 것이다.

  정치적 목적 달성을 위한 학생회에서 복지 중심 학생회로의 전환은 2000년대 기존의 운동권에 반대하는 이른바 ‘비권’ 또는 ‘반권’ 학생회들이 등장한 이후 현재까지 이어지는 경향이다. 이번 제63대 총학생회 선거에서도, 양 선본 모두 정치성 표방을 경계하며 복지 관련 공약을 강조했다. 공명 선본은 정책자료집에서 기존의 학생회를 ‘정계 진출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고 규정하며 탈정치성을 강조했고, 정오 선본의 조재현 정후보(자유전공 20)도 후보자토론회에서 “외부 정치 문제에 대해 목소리를 내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4년 전 제61대 총학생회 선거에서 총학생회의 정치적 역할을 강조한 NOW 선본과 비권을 표방한 내일 선본이 경쟁했던 것과 비교하면, 지난 4년 동안 학생회의 성격이 학생 복지와 탈정치성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이동했다고 볼 수 있다.

사진 설명 시작. 서울대입구역 주변 거리를 학생들이 행진하고 있다. 학생들이 들고 있는 깃발에는
▲2019년, 학생회 깃발을 들고 행진하는 학생들 ©서울대저널

  학생회의 성격이 달라진 원인은 무엇일까? 김지은 전 총학생회장은 2018년 이후 학생회가 신뢰를 잃으면서 학생사회에 필요한 의제를 제시하기 어려워졌다고 분석했다. 2019년 내일 2기 선본은 내일 1기 총학생회에서 서강대학교 총학생회와의 저작권 논쟁 중 거짓 해명을 한 것이 드러나 사퇴했고, 2020년 파랑 선본은 선거운동본부원의 성추행 가해 사실이 드러나면서 사퇴한 바 있다. 김 전 총학생회장은 “(2019년) 내일 2기 선본도 문제로 인해 사퇴했고 그 직후에 나왔던 파랑 선본도 학생들이 큰 문제라고 느낄 만한 사건으로 사퇴했다”며 “신뢰가 무너진 상황에서 학생회가 기존과 동일하게 의제를 던지다 보니 피로감이 생긴 것 같다”고 말했다. 총학생회의 효용을 학생들에게 설득하기 위해서 삶에 밀접하게 관련된 복지에 초점을 맞추게 됐다는 것이다.

  복지에 집중하는 학생회론이 학생들의 지지를 받은 것은 사실이다. 복지 위주의 공약을 내세웠던 ‘자정’ 선본과 ‘정오’ 선본이 연이어 당선된 사실이 그 근거다. 김지우 부집행위원장 또한 “정말로 학생들이 필요로 하는 것들을 해결하고 학교와 교섭하는 것은 긍정적인 것 같다”며 복지 중심 학생회의 긍정적 측면을 설명했다.

  하지만 복지 의제 자체가 한정적이라는 점에서 복지 위주의 학생회는 필연적으로 한계를 수반한다. 김지은 전 총학생회장은 “학생회가 단순히 복지 사업만을 위해 존재하는 단체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갈수록 복지 의제를 선점하려면 점점 세부적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다”며 “학생사회의 의제를 발굴하는 것도 학생회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2022년에 학생회 하기

  학생사회의 침체 속에서 학생회 활동을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인문대학 연석회의 집행위원회 김지우 부집행위원장은 학생회 활동의 가장 큰 어려움으로 “사업을 벌여도 참여율이 너무 적다는 점”과 “인수인계가 이뤄지지 않는 점”을 꼽았다. 실제로 인문대학 집행위원회는 동아리 사업에 신청한 동아리가 없어 동아리마다 직접 연락해서 참여를 권유해야 했고, 남아있는 인수인계 자료가 없어 졸업한 선배에게 연락해 당시 회의록을 구하기도 했다.

  학생회에 대한 관심 자체가 부족한 상황에서도, 대표자들은 학생사회의 기나긴 침체를 깨고자 노력하고 있다. 학생회 사업을 통해 학생회의 쓸모를 알리는 것이 그 일환이다. 김지은 전 총학생회장은 “본인의 삶에서 직접적인 변화가 생기는 것만큼 학생들이 총학생회의 효용을 체감하기에 좋은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며 “학생회에 대한 낮은 관심을 극복하기 위해 개개인이 체감할 수 있는 성과를 내는 데 집중했다”고 밝혔다. 김지우 부집행위원장 또한 “학생회가 있고, 사업을 하면 학생들에게 도움이 된다는 걸 어떻게든 알리려고 (사업을) 무리해서라도 추진했다”고 말했다. 학생들이 학생회를 경험하고 나면 학생회의 필요성을 인식할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학생사회라는 것을 만들어가고 싶었다.” “(다른 단과대와 달리) 학생회가 없는 것이 안타까웠다.” 윤민정 씨와 김지우 부집행위원장이 밝힌 학생회 활동을 시작하게 된 계기다. 전염병이 유행하고 학생사회가 변화를 겪는 동안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그럼에도 학생회가 필요하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2022년은 학생들이 학교로 돌아온 첫해였다. 2023년에는 학생사회도 다시 활기를 찾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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