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주춤했던 대학이 대면 수업 정상화와 함께 다시 활기를 띠고 있다. 그간의 답답함을 해소하기 위해서인지 올해 대학 축제 역시 유독 화려한 모습을 보였다. 국공립과 사립 대학, 수도권과 지방 대학을 가리지 않고 유명 초대가수 여럿이 등장해 큰 이목을 끈 것이다. 초대가수를 보러 온 재학생과 외부인의 함성은 캠퍼스를 빼곡히 메웠다.
초대가수를 중심으로 한 대학 축제 구성은 비단 올해만의 일이 아니다. 일각에서는 초대가수 중심의 대학 축제가 학생을 축제의 주체가 아닌 ‘관객’으로 전락시킨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학생은 대학 축제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을까. 대학 축제의 자취를 살펴보고, 대학 축제에 대한 앞으로의 궤적을 그려봤다.
사회와 함께 움직여 온 대학 축제

한국의 대학 축제는 1956년, 신흥대학교(현 경희대학교)의 제1회 대학제를 기점으로 시작됐다. 당시 대학생 인구는 10만 명 정도로 250만 명인 현재와 3,020배 이상 차이가 난다. 이로 인해 당시 대학 축제는 ‘축제’보다 더 소규모의 행사를 뜻하는 ‘축전’이란 용어를 사용했다. 한편 서구 문화가 본격적으로 수용되기 시작함에 따라 대학 축제에서도 포크댄스를 추는 등 서구 문화를 반영하는 양상이 나타났다.
이후 대학생 인구가 늘어나며 대학 축제 규모 역시 차츰 커졌다. 70년대 중반에는 대학생 인구가 30만 명을 넘어섰다. 60년대 중반의 2배 이상이다. 대학생 인구 증가와 함께 대학 축제 내에서 진행하는 행사의 종류도 더 다양해졌다.
대학 축제는 점차 정치성을 띠기 시작했다. 마당극 등 민속놀이에서 시국 비판을 하거나, ‘고고춤’ 등 반항적·퇴폐적이라 지적받던 청년 문화가 축제에 도입됐다. 부산여대 김해성 교수(유아체육무용학과)는 70년대 축제에 대한 연구에서 이런 경향이 ‘서구 문화의 무비판적 수용을 비판하는 사회 풍조’와 ‘유신 체제의 억압적 분위기에 대한 반감’ 때문이라 설명했다.

80년대에는 대학 축제의 오락성이 옅어지고 정치성이 한층 강해졌다. 민족과 공동체 의식을 강조하기 위한 탈춤이나 마당극 등이 축제의 중심을 차지했다. 이는 민주화 운동 국면에서 학생이 사회에 목소리를 내는 수단으로 이용됐다. 축제와 학생운동이 연결되자 학교 내 보안대가 대학 축제를 검열하는 일도 벌어졌다. 1986년 5월에는 정부 차원에서 축제 중지를 촉구하고 좌경화 성격을 띠는 행사에 경찰을 자동 투입하겠다는 방침을 내놓기도 했다.
문민정부가 들어선 90년대부터 대학 축제의 정치적 성격은 차츰 옅어졌다. 대중문화의 발전과 함께 학내 밴드 공연, 주점 운영이 활발히 이뤄졌다. 초대가수 공연을 본격적으로 도입한 것도 이때부터다. 이러한 분위기를 이어받아 2000년대의 축제의 기조가 형성됐다.
대학 축제는 시대에 따라 변화했지만, 학생이 주체로서 대학 공동체 내 의견을 공유하는 ‘광장’의 역할만은 지속해왔다. 대학 축제의 효능과 방향성을 연구한 신라대 양승훈 교수(국제관광경영학과)는 “축제는 학생들이 대면으로 모여 ‘대학 문화’를 공유할 수 있는 장으로서 의의가 있다”며 대학 축제의 본질을 설명했다. 대학 축제는 언제나 한 세대의 문화를 형성하는 기능을 해왔다.
오락, 정치, 그리고 이제는 상업?

2000년대의 대학 축제는 어떤 모습일까. 최근 대학 축제는 캠퍼스 곳곳에서 학생 부스와 주점을 열고, 중심 공간에서 학생 공연과 초대가수 공연을 진행하는 것으로 구성되는 게 일반적이다. 2000년대 대학 축제의 핵심은 초대가수 공연이다. 재학생들뿐만 아니라 대중문화 팬들과 외부인들까지도 초대가수 명단에 관심을 두고 있다. 이는 케이팝(K-POP)을 비롯한 대중문화의 영향력이 확장된 결과다.
문제는 대중문화의 상업성이 대학 축제에 전이됐다는 것이다. 일부 대학은 축제 관람 인원수 조절 등을 이유로 재학생에게도 축제의 공연 입장표를 판매한다. 재학생이라도 표를 구매하지 못하면 축제 공연을 관람할 수 없다. 축제 규모가 큰 연세대 ‘아카라카’가 공연 입장표 판매의 대표적인 사례다.
비공식적으로 입장표를 거래하는 ‘암표 거래’ 게시글 역시 축제철 인터넷 커뮤니티의 단골 주제다. 아카라카의 경우 추첨 혹은 선착순으로 표를 판매하는데, 이 과정에서 표를 구하지 못한 학생을 상대로 정가보다 비싼 가격에 암표 거래가 이뤄지기도 했다. 특히 과거에 비해 올해 축제에서 암표의 값이 크게 올랐다. 코로나19 이후 맞이한 첫 대면 축제인 만큼 초대가수 명단이 여느 때보다 화려해졌기 때문이다.
한국 대중문화 산업의 성장과 대학생의 개인주의화는 대학 축제의 상업화를 야기했다. 양승훈 교수는 대학 축제의 상업화를 ‘엔터테인먼트화’로 칭했다. 양 교수는 “20대 내에서 대중문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소비하는 폭이 넓어졌고, 대학 축제가 이러한 영향을 받았다”며 대중문화 산업의 성장과 축제의 상업화가 유관함을 밝혔다. 그는 “코로나19 이후 대학 캠퍼스가 공간적 의미를 상실하”면서 대학생의 개인주의화를 심화한 것 역시 상업화의 원인이라 꼬집었다. 축제에서 대학 정체성보다는 대중문화 즐기기에 열중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대학 축제의 상업화는 긍정적 효과를 가져오기도 했다. 상업화는 축제에 대한 대학생의 관심도와 참여율을 높였다. 서울대학교의 전체 축제를 준비하는 ‘축하하는 사람들(축하사)’에 따르면, 2022년 서울대 가을 축제에서도 초대가수가 오는 폐막제 날 압도적으로 참여 인원이 많았다. 양승훈 교수 역시 초대가수가 학생의 축제 참여율을 높이고 재미와 흥을 배가한다는 점에서 “대학 축제의 엔터테인먼트화와 상업화 자체를 부정적인 시각에서만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덧붙였다.
긍정적인 효과에도 불구하고 축제의 상업화에 따른 우려는 계속해서 제기되고 있다. 양승훈 교수는 축제의 상업화 과정에서 학생들이 관객으로만 전락하는 경향에 우려를 표했다. 최근 들어 학생이 직접 축제를 운영하고 즐기기보다는 수동적으로 연예인 공연을 관람하는 데 집중하는 경향이 짙어졌다는 것이다.
축제가 획일화되며 대학 문화의 정체성이 약화될 수도 있다. 과거 대학 축제는 각 대학의 역사, 정체성, 또는 공동체 의식을 보여주는 창구였다. 60, 70년대 성균관대는 ‘가장행렬대회’나 ‘가로등의 제전’ 등 자대 고유의 행사를 진행하는 ‘문행 축전’을 열었다. 80년대 고려대는 독재정권에 희생된 자대 학생을 기리는 ‘위령제’를 지냈다. 이에 비해 현재 대학 축제는 각 학교의 역사성이나 정체성이 희미하다는 우려가 제기되곤 한다. 가톨릭관동대학교 이제영 교수(미디어콘텐츠학부)는 지역 대학 축제의 개선 방향에 대한 연구에서 축제를 비롯한 대학 문화가 ‘상업주의와 대중문화를 일방적으로 흡수하고 있는 실정’이라며 현 상황을 설명했다.
요즘 애들, 정말 그래요?
대학 축제에 대한 비판은 시대를 불문하고 제기돼왔다. 1984년 <경향신문>은 ‘일부 대학의 극소수 학생들은 축제를 구태의연한 흥미 본위의 ‘놀이’로만 착각한 경우도 없지 않았다’며 학생의 오락성을 비판했다. 1991년 <동아일보>는 ‘대학생들 사이에 날로 심화되고 있는 개인주의 및 냉소주의의 팽배가 축제에 대한 호응 저하를 부채질’한다는 지적을 보도했다. 2000년대 이후 축제에 대한 비판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견해다.
그러나 최근 대학 축제의 양상이 표면상 ‘학생 부스-학내 구성원 공연-초대가수 공연’의 구조로 보일지라도, 분명 다양한 움직임과 노력으로 새로운 축제 문화가 그 안에서 형성되고 있다. 서울대학교 전체 축제는 축하사가 진행을 준비한다. 축하사는 2022년 봄 축제에서 학우의 관심을 끌기 위해 ‘모험증’을 고안했다. 모험증은 학생증처럼 앞면을 꾸미고 뒷면에는 장터, 부스별 스탬프를 받아 이후 경품 행사에 응모할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이었다. 모험증은 그 자체로 하나의 부가 행사로 작용해 축제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축하사 김서현(사회 21) 회장은 “모험증 시스템과 1등 상품이 참여 인원 유입에 기여했다”며 “실제 학생들이 1등 상품을 위해 왔다고 말하거나 부스에 더 열성적으로 참여하는 모습을 현장에서 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올해는 전체 축제뿐만 아니라 단과대 축제 역시 활발히 진행되는 모습을 보였다. 공과대 봄 축제 ‘꽁림픽’은 과별 점수를 산정해 순위를 매기는 방식을 도입했고, 가을 축제 ‘We are at 공’은 ‘망한 과제전’과 단과대 마스코트 투표를 진행했다. 2년 만에 개최된 자연대 축제 ‘Wls(We Love Science)’는 학과별 정체성을 살린 부스를 운영하는 데에 방점을 뒀다. 개성 넘치는 부스들이 이목을 끌었는데, 그중 생명과학부 부스 ‘초파리’s 바게뜨’는 실험에 자주 쓰이는 초파리나 생물 기초 지식을 메뉴 이름으로 내걸어 각종 간식을 판매했다.

단과대 간 연합축제도 개최됐다. 지난 5월 열린 사범대·미대·인문대·음대 4개 단과대의 연합축제 ‘사미인곡’이 그 예다. ‘사미인곡’은 각 단과대의 특성에 맞춰 디자인한 4개의 캐릭터를 내보이고 단과대별 부스를 꾸리는 한편, 공연은 합쳐서 진행해 참여 인원 확대를 시도했다.
학생 참여율을 높이려는 시도들도 이어졌다. 학내 구성원의 접근성이 높은 자하연 근처에 부스가 설치되고, 부스마다 추첨 행사를 진행되기도 했다. 사미인곡 이준서(경제 21) 축제준비위원회장(축준위장)은 축제 기획 과정에서 “연예인 초청 없이 학생이 축제를 즐기는 주체가 될 수 있도록 (축제 공간에서의) 체류 시간을 늘릴 방안 모색에 힘썼다”고 밝혔다.
대학 축제는 각 학교와 학생이 자신의 개성을 선보이는 기회의 장으로 역할하기도 한다. 모든 대학 축제의 공통 행사인 학내 구성원의 공연을 통해서다. 지난 9월 축하사가 주관한 ‘SNUFESTIVAL: 버들골’에서는 ‘버스킹킹킹’과 ‘버들콘’이라는 두 개의 학내 구성원 공연 프로그램이 개최됐다. 공연자로 참여한 학생들은 “대학 축제만이 가지는 의미가 있다”고 입을 모았다.
대학 축제는 학생들의 창작활동을 돕는 문화적 공간으로서도 기능한다. 학생들은 축제를 통해 자신의 창작 랩, 악기 연주, 춤 등을 선보일 기회를 얻는다. 자연대 축제 Wls에서 열린 버스킹 프로그램에 참여한 조현준(생명과학 21) 씨는 “개인 공연의 경우 장비 대여 등 경제적 부담이 존재하는데 대학 축제는 그런 부담이 없는 게 장점”이라고 말했다.
앞으로 발걸음을 내딛은 축제

‘함께 크게 어울린다’는 의미의 ‘대동제’, 대학 축제의 별칭이다. 공동체로서의 ‘대학’을 만들기 위해 화합과 조화를 추구해야 한다는 뜻이다. 대학 축제는 지속적인 우려 속에서도 현재까지 이어져 왔다. 사미인곡 이준서 축준위장과 축하사 김서현 회장은 “대학 축제의 본질은 즐거움이지만, ‘대학’에 초점을 맞추는 것도 중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대학 축제가 지니는 학내 구성원 간의 소통과 연대의 의미가 여전히 강조되는 것이다.
‘응원 문화’는 대학 축제가 가진 흥과 공동체 의식을 보전한다. 대표적으로 학교 응원가에 맞춰 치어리딩을 하는 응원단은 서울대뿐 아니라 타 대학에도 여전히 존재하는 대학 축제의 상징이다. 응원단 공연은 대학의 공동체성을 강조하며 건재하게 이어지고 있다. 각 대학의 응원가를 부르고 학생들의 호응을 유도하는 응원 문화는 대학 공동체의 결속력과 정체성을 형성해왔다.
대학 축제는 계속해서 변화의 전철을 밟고 있다. 본연의 정체성 확보나 진행장소, 방식 등 다양한 방면에서 발전을 이뤄냈다. 코로나19로 인해 대학 행사가 전면 비대면으로 진행되자 축제의 무대를 온라인으로 옮긴 사례도 있었다. 축하사 또한 2021년 축제를 온라인 홈페이지를 통해 운영하며 비대면 시기에도 대학 문화가 공유될 수 있는 장을 마련했다. 전용 홈페이지나 SNS 이벤트 등 기술 요소를 부스 운영이나 홍보에 이용한 것도 최근 대학 축제의 변화 중 하나다. 접근성이 높은 인터넷 기술을 적극 활용해 참여도를 높이고 학생에게 실질적인 체험 기회를 쉽게 제공할 수 있게 한 것이다.
대학 축제가 학생을 축제의 ‘관객’으로 전락시킨다는 지적은 여전히 유효할까. 신라대 양승훈 교수는 “대학 축제의 후반전은 학생들이 만드는 공동체 프로그램, 즉 대학 문화를 공유하고 대학에 대한 소속감을 느낄 기회로 만들어 가야 한다”고 강조한다. <서울대저널>이 살펴본 대학 축제에서 학생들은 여전히 스스로 대학 문화를 공유하고 공동체성을 형성하고 있었다. 대학 축제의 주체는 여전히 ‘학생’이다. 수많은 우려와 비판 속에서도 대학 축제가 언제나 기대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