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면화는 곧 정상화일까

코로나 이후 학생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진단하다

  관계 형성은 교육과 함께 대학 생활을 구성하는 또 하나의 큰 축이다. 대학의 비대면화는 학생들의 관계 맺음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오세정 총장은 지난해 9월 총장 담화문에서 ‘대학은 새로운 만남과 교류, 토론이 이뤄지는 공간이어야 한다’며 ‘코로나 사태를 극복하고 대학의 정상화를 이뤄야 한다’고 말했다. ‘대학의 정상화’란 과연 무엇일까. 캠퍼스의 대면화가 곧 대학의 정상화일까. 다양한 학내 구성원들과 학생 대표자들과의 이야기를 통해 그 해답을 물색했다.

코로나 속에서 관계 맺기

  

  〈서울대저널〉이 주최한 집담회 참여자들은 대학생활에서 맺는 관계의 특별함이 ‘다양한 구성원과의 교류’에 있다고 입을 모았다. 하지만 이러한 장점은 코로나19로 인해 퇴색됐다. 임현정(가명, 사범대 18) 씨는 “비대면 상황에선 생각이 비슷한 사람들만 만나게 돼 내 생각이 항상 옳다고 여기는 경향이 커졌다”고 말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날 기회가 없어 기존에 알고 지내던 사람과의 교류만 계속되기 때문이다.

  조민우(가명, 20) 씨는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사람들 위주로 커뮤니티가 형성되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사람을 만나기 힘들어졌다”고 털어놨다. 동아리, 학생회 등 학내활동에 참여하지 않는 학생은 관계를 맺을 기회가 없다는 것이다. 자연스러운 사적 만남의 계기가 사라져 아쉽다는 얘기도 나왔다. 최은영(가명, 사회대 19) 씨는 “일로 만나는 사람들 외에 새롭게 누군가를 만나지 못한다”고 토로했다.

대면화를 통한 정상화를 꾀하는 학생 대표자들

  캠퍼스의 비대면화는 개인의 관계 단절을 넘어 학생 사회 전반의 침체를 가져왔다. 지난해 단과대학생회장연석회의(연석회의)에서 기획국장을 맡았던 김정우(정치외교 20) 씨는 “코로나19로 인해 학생 사회에 대한 학생들의 무관심이 확대됐다”며 공동체 내 상호작용이 줄어든 것을 우려했다. 

  특히 학생회의 침체가 심각하다. 이찬영 사범대 부학생회장(교육 20)은 “비대면화가 학생회의 효능감을 감소시켰다”고 말했다. 이 부학생회장은 “다양한 사업들을 통해 (학생들이) 학생회의 역할을 느낄 기회가 제한되기 때문”이라며 대면 전환이 학생회의 효능감 향상에 기여할 것이라 전망했다.

  학생 대표자들은 학생사회의 활성화를 위해 대면 전환을 추진하고 있다. 각종 친목 행사의 대면 개최가 그 시작이다. 지난 2월 공과대학은 새내기 새로배움터(새터)를 대면으로 진행했다. 김경태 공대 학생회장(항공우주공학 19)은 “비대면 행사는 진행 방식이 한정적이라 학생들이 진부함을 느끼기 쉽지만, 대면 행사는 다양한 기획이 가능해 흥미를 끌고 참여도도 높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사범대학 역시 대면 새터 개최를 비롯한 다양한 대면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윤응식 사범대 학생회장(체육교육 20)은 “사범대학 교육포럼과 찾아가는 교육활동을 부활시키고 진로특강, 축제 등의 행사를 준비 중”이라고 덧붙였다.

사진 설명 시작. 푸른 배경을 바탕으로 2022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새내기 새로 배움터 바라봄이라고 써진 배경 앞에 여러 학생들이 각 과반의 명칭이 쓰인 깃발을 들고 있다. 사진 설명 끝.

  ▲2022 사범대학 새내기 새로배움터 ⓒ사범대학 학생회

  캠퍼스 대면화는 학생 대표자들의 주요 공약으로 제시되기도 했다. 비대면 학사 운영에 대한 학생들의 피로감이 그만큼 크다는 얘기다. 지난해 9월 제62대 총학생회 선거운동본부로 출마한 ‘자정’은 코로나19 이전의 캠퍼스를 재현하겠다는 기조를 전면에 내세웠다. 고려대학교에서 2년 만에 들어선 제52대 총학생회 역시 대면 행사 추진을 주요 목표로 하고 있다. 이규상 고려대 총학생회장은 “단절된 고려대 문화를 계승하고자 한다”며 대면화에 대한 의지를 밝혔다.

대면화 너머의 정상화

  일각에선 학생사회 활성화를 위해 학내 행사 대면화 이상의 해결책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비대면화 이전부터 존재하던 학내 문제들이 다시 떠오를 것이며, 이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집담회에서 참가자 대부분은 대면 캠퍼스에선 학내에 산재한 문제들을 더 많은 학생들이 접할 수밖에 없다고 전망했다. 임현정 씨는 “대면 활동으로 만들어진 인간관계가 학내 의제의 창구 역할을 한다”며 “관심 없던 문제라도 대면 활동을 하다보면 알게 될 가능성이 높고, 그로 인해 내가 직접적인 피해나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걸 알기도 쉽다”고 말했다. 

  비대면화 이전부터 학생사회에서 얘기돼 온 문제로는 소수자 차별 문제가 있다. 최은영 씨는 비대면 상황에서 소수자 문제에 대한 논의가 진전되기 어려웠다고 주장했다. 최 씨는 “대면 상황에서는 비건인 친구와 식사하게 되고 휠체어를 타는 친구가 학과 행사에 온 것도 보게 된다”며 대면화 이후 “그런 상황들을 겪으면서 소수자 관련 사안에 대해 고민해야 될 것”이라 전망했다.

  대면화 이후 다시 떠오를 의제들에 대해 학생회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숙명여대 황지수 전 총학생회장은 학생회의 근본적인 역할을 되짚어볼 것을 강조했다. 학생회가 학생들의 요구를 수렴하고 대리하는 행정 단체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게 황 전 총학생회장의 입장이다. 황 전 총학생회장은 총학생회와 학생의 관계를 다룬 〈한국일보〉 주최 집담회에서 ‘소수자나 인권 문제, 외부 투쟁이나 의제가 ‘내 삶’과 직결되어 있다는 걸 알려주는 게 학생회의 역할’이라고 주장했다. 

  학생회가 실무 외에도 다양한 의제를 제시하고 학생들을 설득해야 한다는 얘기다. 홍익대 신민준 전 총학생회장은 〈한국일보〉 주최 집담회에서 ‘대중의 평가도 중요하지만 소위 학생 복지와 같은 즉각적인 혜택을 주지 않는 학생회에 대해 학생들의 관심이 없다’고 꼬집었다. 신 전 총학생회장은 ‘어떤 가치를 가져야 해’보다는 ‘이런 것을 할 거야’ 위주로 공약이 만들어지고, 정책이 되고, 원칙이 사라진다’며 실무 논의에 치우친 학생회 동향을 비판했다. 학생 편의와 관련된 의제뿐만 아니라 학생사회가 함께 고민해봐야 할 의제를 던져야 한다는 지적이다.

  서울대 학생회 역시 실무적인 측면에 중점을 두고 있다.  지난해 9월 제62대 총학생회 선거운동본부로 출마했던 ‘자정’의 핵심 공약은 관악사 택배보관소 문제 해결, 인기 전공 강좌 수강 정원 개선 등 학생 복지 측면이 주를 이뤘다. 고려대 제52대 총학생회가 선거운동 당시 내걸었던 핵심 공약 역시 드롭 제도 재도입, 총학생회 건의 오픈채팅방 운영 등 실무와 관련된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사진 설명 시작. 버팀돌 핵심 공약 정리라는 제목 하에 교육권/수업권, 자치교류, 인권연대, 문화복지, 미디어/소통, 등록금의 여섯 카테고리가 붉고 굵은 글씨로 쓰여 있다. 교육권/수업권 아래에는 드롭제도 부활, 수강희망과목등록, 데이터 기반 수강 TO 증대가 쓰여있고 자치교류 밑에는 학생자치공간 활성화, 신설학과 자치공간 확보가 쓰여있다. 인권연대 밑에는 건물 엘리베이터 및 경사로 확대, 근로장학생 임금 지급일 정례화가, 문화복지 밑에는 대동제 안전 진행, SK미래관.캐럴 이용 시간 증대, 미디어/소통 밑에는 총학생회 건의 오픈채팅방 운영, 그리고 등록금 밑에는 학생참여예산 제도 정상화, 이수 학점별 차등 등록금 제도 도입이 쓰여있다. 사진 설명 끝.

▲고려대학교 제52대 총학생회 핵심 공약 ⓒ고대신문

학생을 위하는 학생회, 학생회를 바라보는 학생

  지난 2월 사범대학 학생회는 학생 공동체의 지속 방향을 고민하는 행사인 ‘사범대 만들기’(사만)를 개최했다. 사만에서 사범대 학생들과 대표자들은 학생 자치와 관련해 ▲학생회 무용론 ▲대표자 vs. 대리인-대표성의 권한은 어디까지? ▲어디까지 목소리를?-학생회는 어쩔 수 없이 정치적 기구일까? 등의 의제들을 선정해 조별로 의견을 나누고 공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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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진행된 '사범대 만들기' ⓒ사범대학 학생회

  사만에서 논의된 의제들은 대면화 이후 학생회의 역할에 대한 고민과 연결된다. ‘학생회 무용론’은 비대면화 전부터 지속적으로 제기된 문제다. 현재 서울대를 포함해 서울 시내 대부분의 대학은 총학생회 없이 연석회의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몇 년째 선거 출마자가 없거나 유효 투표율에 다다르지 못해 선거가 무산됐기 때문이다. 총학생회의 부재가 장기화되면서 학생회의 존재 의미에 대한 의문도 제기됐다. 

  하지만 학생 대표자들은 대면화 이후 학생사회에 산재한 다양한 문제들을 다루기 위해선 학생의 의견을 대변할 학생회의 존재가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모은다. 대표성을 가진 단체가 있어야만 실질적 문제 해결을 위한 의사 결정 및 실천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2021 연석회의 김정우 전 기획국장은 “학생회가 공동체를 회복해 새로운 문제의식과 의제를 도출하고 이를 발전시켜야 한다”며 존재 의의를 강조했다.

  학생사회 외부의 사안에 대한 입장 표명 역시 학생회의 중요한 역할이다. 고려대 김윤태 교수(공공사회학부)는 “대학생은 본격적으로 사회에 진출하기 이전의 위치에서 민주 시민이 되기 위해 다양한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며 “사회의 공적 의제에 대해 광범위한 목소리를 내야한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총학생회에 대한 무관심은 향후 회사, 마을공동체에 대한 무관심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사회문제에 대해 목소리를 내는 방법을 알려주지 않는 우리나라 교육 현실 속에서 대학은 학생이 민주시민으로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공간이 돼야 한다’고 역설했다. 학생회가 대학생이 성숙한 민주 시민으로 거듭나기 위한 예행 과정이란 것이다.

코로나 이후의 학생 사회는

  학생 대표자들은 모든 학생이 주체적으로 의견을 제시하고 행동에 옮길 수 있게 되는 것이 바람직한 학생 사회의 방향이라고 말했다. 윤응식 사범대 학생회장은 “학생 자치란 학생이 하고싶은 걸 실현할 수 있는 장이 형성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학생회가 이러한 장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찬영 사범대 부학생회장도 “모든 이들이 평등하게 접근하고 이야기 나눌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캠퍼스의 전면 대면화가 눈앞에 와있는 지금, 학생 대표자들과 일반 학생 모두가 건강한 대학 공동체의 방향에 대해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그때 대학은 비로소 ‘정상화’를 넘어 ‘성장’을 도모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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