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마음을 기록하고, 모으고, 나누다

학내에서 예술하는 사람들을 만나다

  학생이자 예술가인 이들에게 캠퍼스는 기회의 장이다. 예술을 전공했든 아니든, 이전에 해본 적이 있든 없든 상관없다. 누구든 대학에서 마음이 맞는 사람을 만나 글을 쓰고, 음악을 만들고, 그림을 그리고, 공연을 올리는 등 다양한 형태로 ‘예술할’ 수 있다. 학내 예술가들은 좋아하는 것에 대한 기록을, 또 좋아하는 마음 자체를 남기고 누군가의 그러한 마음을 한데 모아 다른 이들과 나누고 있었다. 자신만의 색으로 예술을 실천하며 캠퍼스를 다채로운 빛깔로 물들이는 사람들, 문예지 프로젝트 ‘책망’과 전시기획동아리 ‘암실’을 만났다.

1년간의 나를 문학으로 남기다, 프로젝트 ‘책망’

  “종합 문예지를 만들어야겠다.” 학내 시 동아리에서 만난 두 학생, 유선혜(철학 17) 씨와 권소원(경제 19) 씨는 문학을 좋아한다는 공통점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나누다 문예지를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에 다다랐다. “한번 해볼까?”라는 마음을 밀어붙여 문예지 프로젝트 책망을 시작한 유 씨와 권 씨는 학생으로, 또 동시에 문예지의 편집자로 작년 한 해를 보냈다. 두 편집자와 나눈 대화 곳곳에는 문학을 좋아하는 마음이 한껏 담겨 있었다. 글쓰기에 관한 편집자들의 소소한 경험을 나누며 프로젝트 책망을 돌아봤다.

  책망은 2022년 한 해 동안 시, 소설, 평론 등의 글을 담은 문예지를 계절마다 한 권씩 발행하는 프로젝트였다. 유선혜 편집자는 “‘Book Network’, 즉 문학 작품이, 또 작품을 써낸 사람들이 서로 연결된다는 의미로 ‘책망’이라는 이름을 지었다”고 전했다. 유 편집자는 “비공식적인 자리에서는 ‘책과 망한 인생들’의 줄임말이자 글을 쓰며 과거의 나를 책망한다는 의미도 담겨있다고 설명한다”고 덧붙였다. 책망은 한 호를 함께 완성해나가는 작가들이 원고를 쓰는 시간을 함께 견디고, 나를 마주하는 과정을 조금 더 부드럽게 넘길 수 있는 구심점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탄생한 이름이었다.

사진 설명 시작. 회색 이불 위에

2022년 발행된 책망 계간지 ©프로젝트 책망

  두 명으로 시작한 프로젝트였기에 ‘일인다역’이 필수였다. 디자인과 홍보는 유선혜 편집자가, 교정·교열과 내용 검토는 권소원 편집자가 담당했다. 봄호를 기획할 때는 학내 문학 동아리 위주로 필진을 모았지만, 봄호가 배포된 이후에는 SNS를 통해 ‘자신도 글을 써보고 싶다’며 기고 의사를 밝히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났다. 권 편집자는 “문예지를 만들자는 것이 그냥 한번 해본 말에서 끝날 수도 있었지만, ‘잘 읽고 있다, 나도 글을 써보고 싶다’고 말해주는 사람들이 있어서 네 권의 문예지를 완성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권 편집자는 “학내에 문학을 사랑하는 이들이 많고, 대학은 창작이 자유로운 공간이라는 믿음이 있었던 것”을 책망의 또 다른 동력으로 꼽았다.

  두 편집자는 한 권의 문예지를 만드는 과정을 ‘엮어냄’이라고 표현했다. 최대한으로 보장된 자율성 안에서 작가들이 다양성을 마음껏 펼치도록 하는 것. 시, 소설, 평론이라는 세 가지 틀만을 정해놓되 자유롭게 글을 받고, 공통점을 찾아 한 권으로 엮고, 내·외지 디자인을 마친 뒤 책망은 세상에 나왔다. 권소원 편집자는 책망이 “1년을 같이 지나온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였다며 함께 만들어가는 문예지라는 의미를 강조했다. 유선혜 편집자 또한 “동시대에 같은 학교에서 수업을 들으며 살아가는 우리의 마음을 기록하는 것, 무엇보다도 솔직하고 자유롭게 남기는 것을 추구했다”며 책망이 걸어온 길을 돌아봤다. 무엇이든 새로 시작하는 게 자연스러운 대학이란 환경에서, 자신의 창작물을 유형의 결과로 남기고 싶은 사람들과 함께했던 1년의 기록이 책망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사고를 간단하게, 일단 시작했다

  두 편집자 모두 문학을 전공하지는 않았지만, 글을 쓰는 것을 좋아했고 계속 글을 써왔다. 혼자 글을 써온 시간을 넘어 작품을 한데 모아보고 싶다는 마음과 열정으로 시작한 일이었기에 전공은 중요치 않았다. 편집자들은 문예지를 만들며 쌓였던 고민과 어려움도 털어놓았다. 과외를 늘리고 장학금을 끌어 쓰며 예산을 충당했던 것도, 수많은 작가의 원고를 수합하는 동시에 자신의 작품을 마감하는 과정도 힘들었지만, 모든 과정이 “나의 일부를 다져가는 귀중한 시간이었다”고 권소원 편집자는 회상했다.

  두 편집자는 문학을, 또 예술을 사랑함에도 쉽사리 창작에 도전하지 못하는 이들에게 자신의 경험을 전하기도 했다. 권소원 편집자는 “문예지를 만들고 싶니? 그럼 만들어!”라며 생각을 실천으로 옮길 것을 강조했다. 권 편집자는 “글을 쓸 때도, 다른 뭔가에 도전할 때도 지금 느끼는 것 자체를 표현하며 살아가기 위해 노력했던 것이 책망을 만드는 데 많은 도움이 됐다”며 사고를 간단하게 만들라고 조언했다. 유선혜 편집자는 “많이 읽었기 때문에 쓸 수 있었다”며 “일단 많이 읽어보고, 마음에 드는 글을 찾으면 이상향으로 두고 따라해보다가 나만의 방식을 찾는 방법도 추천한다”고 전했다.

사진 설명 시작. 나무 판자 위에 여러 권의 책망 문예지가 쌓여있다. 책의 표지는 분홍, 파랑, 민트색이 그라데이션으로 칠해져 있고, 중앙 부근에 여러 개의 가로 선과 동그라미, 눈송이 모양, 곡선 등의 도형이 위치해있다. 책의 가장 아래 쪽에는

교내에 배포된 책망 ©프로젝트 책망

  책망 프로젝트를 마무리한 뒤 두 편집자는 각각 다른 길을 걷고 있다. 유선혜 편집자는 작년 6월 잡지 『현대문학』을 통해 시인으로 등단했다. 권소원 편집자는 법학전문대학원 진학을 준비하고 있다. 권 편집자는 “글 속에서 맥락을 읽어내고, 숨겨진 인물과 사건을 생각하는 것이 편집자로서 해왔던 일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느끼기도 한다”고 말했다. 유 편집자는 “전공이 아니더라도 좋아하는 뭔가를 계속한다면 그것이 새로운 방향으로 가는 데 많은 도움을 주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두 편집자에게 책망은 계절의 마음을 엮어낸 문예지이자 다시 오지 않을 시간의 기록이고, 문학을 사랑하는 마음을 담아낸 결과물이었다. 유선혜 편집자는 “문학을 사랑하고, 쓰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다고 생각한다”며 “그 마음을 잃지 않고 계속 함께 쓰고, 읽고, 공유하는 사람이 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남겼다. “좋아한다는 사실을 솔직하게 받아들이고 그 마음을 망설이지 말고 표현하자. 뭔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면 일단 시작하자.” 권소원 편집자는 책망을 만들었던 날들의 마음가짐을 이렇게 표현했다. 사랑하는 대상을 넘어 1년을 같이 보낸 친구가 되기까지, 용기 내 도전한 결과는 네 권의 작품으로 세상에 남았다.

대학생 작가와 대중의 연결고리를 만들다, 전시기획동아리 ‘암실’

  지난 2월, 전시기획동아리 암실은 제3회 기획전 『춤추는 사람들은 안개 속에서』를 통해 네 명의 대학생 작가를 소개했다. 작가를 무용수에, 그들의 작품을 안개 속에서의 움직임에 비유하면서 암실은 “그들의 작업과 이야기를 그 앞에서 한동안 바라보자”고 제안했다. 어떤 과정을 거쳐 조형, 영상, 패브릭 등 다양한 형태의 작품들이 ‘춤’이라는 이름으로 한데 엮였을까. 암실 부장 이재성(미학 20) 씨를 만나 이번 전시와 암실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사진 설명 시작. 암실의 제3회 기획전  『춤추는 사람들은 안개 속에서』 전시장의 입구 사진이다. 사진 왼쪽에는 『춤추는 사람들은 안개 속에서』의 메인 포스터 두 장이 붙어 있다. 포스터에는 전시 기간인
▲암실의 제3회 기획전 『춤추는 사람들은 안개 속에서』의 전시장 ©전시기획동아리 암실

암실의 제3회 기획전 『춤추는 사람들은 안개 속에서』의 전시장 ©전시기획동아리 암실

  암실은 대학생 예술가를 대중에게 소개하고자 전시를 기획하는 인문대학 소속 동아리다. 이재성 부장은 “사진을 인화할 때 빛을 차단하는 암실이 필요한 것처럼, 편견과 배경지식에 구애받지 않고 작품을 대중들에게 전달하는 방식을 고민한다는 의미”라고 암실이라는 이름이 가진 뜻을 설명했다. 암실 기획전에서 작품을 전시하는 대학생 작가는 미술 또는 음악 전공자지만, 암실 부원 대부분은 비전공자다. 전시를 좋아해서, 한번 도전해보고 싶어서, 색다른 경험을 하고 싶어서. 저마다의 이유를 가지고 모인 이들은 4개 팀으로 나뉘어 암실의 1년을 함께 만들어간다.

  암실의 활동은 대학생 작가 16명을 소개하는 잡지 『작전』을 발행하며 시작된다. 에디터는 작가와 나눈 이야기를 바탕으로 작품과 함께 읽을 수 있는 글을 써 잡지에 싣고, 전시에 초대할 4명의 작가를 선정한다. 암실은 이후에 이뤄지는 전시 주제 선정, 큐레이팅, 전시장 구성, 도록 제작, 홍보, 전시 진행 등 모든 과정을 직접 진행한다. 이재성 부장은 “짧게는 6개월, 길게는 1년간 함께 거대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방식”이라고 설명하며 암실이 “대학생 작가들의 예술 언어를 일반 언어로 바꿔 대중들에게 전달하는 연결고리 역할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사진 설명 시작. 암실의 제3회 기획전  『춤추는 사람들은 안개 속에서』 전시장의 전경 사진이다. 가장 안쪽에서부터 여러개의 밧줄이 걸린 작품, 나무 밑동에 철기둥이 꽂혀있고 그 끝에 여러 철실이 매달린 작품, 사람의 움직임을 여러 색으로 표현한 조형물이 위치해있다. 그 앞에는 천장에 매달린 천 2개로 구성된 작품, 분홍색의 조형물, 기도하는 손과 사람 얼굴을 표현한 조형물, 그 위에 십자가가 위치해있다. 사진 설명 끝.

『춤추는 사람들은 안개 속에서』에 전시된 작품들 ©전시기획동아리 암실

  이재성 부장은 “전시 기회가 부족한 대학생 예술가들이 한 번이라도 더 전시에 참여해 보고 진로를 결정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암실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가치”라고 강조했다. 이 부장은 “좋은 작품을 만든 전공자가 전시 기회를 얻지 못하고 사라지거나 다른 선택지가 없어 일반 기업에 취직하기도 하는데, 암실이 기획한 전시를 계기로 기업과 계약하는 작가도 있었다”며 전시가 갖는 의미를 설명했다. 누군가는 꾸준히 좋은 작가를 발굴해 소개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뜻에 따라 암실이 내건 전시 참여 조건은 대학생이라는 신분뿐으로, 다른 학교에 재학 중인 대학생 작가들과도 협업하고 있다.

좋아하는 이유를 대중에게 설득하다

  1년 중 가장 큰 행사를 마친 이재성 부장은 “전시장을 철거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한 번만 더 하고 싶다는 생각을 계속하게 된다”는 소회를 밝혔다. 이 부장은 “내가 뭔가를 만들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동시에 그 결과물이 언젠간 내 손을 떠난다는 것이 예술의 매력이자 예술을 하는 이유”라며 전시기획에 대한 애정을 내비쳤다.

  전시기획에서 가장 어려웠던 점이 무엇이었냐는 질문에 이재성 부장은 ‘설득’이라 답했다. 전시의 틀이 잡히기도 전에 전시에 참여할 작가와 후원해줄 기업 모두에게 함께하자고 설득하고 확신을 주는 일이 가장 어려웠다는 설명이다. 이 부장은 “전시기획뿐만 아니라 비전공자로서 학내에서 예술하는 모든 상황이 이와 비슷하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대학에 입학하기 전까지 예술을 해보지 않았던 학생이 예술에 도전하기란 어렵지만, 내가 좋아하는 것을 타인에게 설득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시작하면 된다”고 조언했다.

사진 설명 시작. 암실의 제3회 기획전 『춤추는 사람들은 안개 속에서』에 전시된 암실의 지난 전시 도록들이다. 사진의 가장 왼쪽에서부터 2021년 8월에 진행한 『불협화음』 전시의 포스터가 붙어 있고 그 아래 하얀 바탕에 검은 글씨로

『춤추는 사람들은 안개 속에서』에 전시된 암실이 발행한 도록들 ©전시기획동아리 암실

  학부에서 미학을 전공한 이재성 부장은 미학과 대학원에 진학할 예정이다. 이 부장은 “예술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예술 근처에 머무르는 것은 충분히 해볼 만한 일”이라고 말했다. “자신보다 잘하는 사람과 함께하더라도 자신감을 가지고 아이디어를 나누다 보니 어느 순간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싶은 근사한 것을 계속 만들어내고 있었다”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내린 결론이었다. 이 부장은 또한 “계속 노력하는 과정에서 얻는 즐거움과 뿌듯함이 예술하는 마음을 식지 않게 만들어 줬다”며 암실 활동을 이어가는 이유를 설명했다. “좋아하는 것을 해보기 전까지는 잘할지 못할지 그 누구도 확신할 수 없다.” 이 부장은 하고 싶다는 마음만으로도 도전할 이유는 충분하다고 말했다.

  누군가는 예술이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이재성 부장은 “내가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까, 하고 싶으니까, 또는 숙고하게 만드니까 등 예술은 그 자체로 수많은 존재 이유를 갖는다”고 설명했다. 예술하고 싶은 마음, 예술을 사랑하는 마음, 그리고 예술하는 즐거움이 암실에 켜켜이 쌓여가고, 그 마음은 전시에서 비로소 피어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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