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설명 시작. 파란색 촉지도가 크게 확대되어 있다. 사진 중앙에 현위치가 표시되어 있고, 그 주위를 흰색 선들이 둘러싸고 있다. 사진 설명 끝.

 

  ‘장애인차별금지법 24조’는 ‘문화예술 활동에서의 차별금지’를 규정한다. 장애를 이유로 문화에 대한 권리를 박탈당하지 않을 것, 이 전제에서 출발한 배리어프리는 문화공간에서의 장벽을 허물어왔다. 영화, 공연, 전시 분야에서 보이지 않는 선을 지우고자 노력해온 이들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배리어프리영화위원회

  배리어프리 영화는 시·청각장애인뿐 아니라, 어린이, 노인, 외국인 등 모든 이들이 즐길 수 있는 영화다. 배리어프리 영화는 화면을 설명하는 ‘음성해설’과 화자 및 대사, 음악, 소리 정보를 전달하는 ‘배리어프리 자막’으로 구성된다.  2012년 영화인들이 주축이 되어 설립한 배리어프리영화위원회(KOBAFF)는 우리나라에서 배리어프리 영화 제작, 배급, 상영을 선도하는 기관이다. KOBAFF 김수정 대표는 배리어프리 영화 제작이 일종의 ‘감각 번역’이라고 말한다. 시청각 예술인 영화를 시각 및 청각장애인들도 향유할 수 있도록 다른 감각 언어로 옮기는 작업은 무엇보다 영화매체에 대한 이해가 중요하다. 김 대표는 “과거에도 장애인단체가 제작한 한글 자막영화가 있긴 했지만, 영화인들이 직접 번역 작업에 참여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며 KOBAFF의 설립 배경을 전했다. 

사진 설명 시작. 배리어프리영화 제작 현장이다. 중앙의 커다란 스크린이 있고, 제작자들이 콘솔 앞에 앉아 자막 삽입 작업을 하고 있다. 사진 설명 끝.
  ▲배리어프리영화 제작현장©KOBAFF

사진 설명 시작. 영화 반짝반짝 두근두근 일반 버전의 장면이다. 어두운 밤에 차 안에 앉아 있는 어린 소녀가 아버지와 대화하며 웃고 있다. 사진 설명 끝.

[크기변환]사진3.jpg
             ▲단편영화 《반짝반짝 두근두근》의 일반 버전과 배리어프리 버전 ©KOBAFF

  이른바 영화의 ‘감각 번역’에서 중요하게 고려되는 점들은 무엇일까. 김수정 대표는 “차단된 감각에서 느껴질 수 있는 모든 것을 갖고 영화를 즐길 수 있게끔, 기계적 번역을 넘어 어떻게 장애인 관객들이 즐기고 이해할 수 있도록 번역할지 고민한다”고 설명했다. 음성해설의 내용, 내레이션의 위치, 사운드 믹싱의 방식 등 전 과정에서의 사소한 선택들이 감상을 크게 좌우하기에, 창작자의 의도와 관객들의 즐거움을 모두 살리는 번역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사진 설명 시작. 배리어프리 영화 녹음현장이다. 녹음실 왼쪽에서는 대본을 손에 든 남자 성우가 대사를 녹음한다. 오른쪽에는 앉아 있는 여자가 성우가 대사를 녹음한다. 사진 설명 끝.
▲배리어프리영화 녹음 현장 ©KOBAFF

사진 설명 시작. 서울배리어프리영화제 개막식이다. 커다란 극장의 스크린에서 상영작이 소개되고 있다. 스크린 앞 무대에서 수어통역사가 소개 내용을 통역하고 있다. 관객들이 극장에 가득 앉아 있다. 사진 설명 끝.
▲서울배리어프리영화제 개막식. 수어통역사가 영화 소개를 통역하고 있다. ©KOBAFF

  김수정 대표는 배리어프리 영화가 예외적 경험이 아닌 ‘디폴트 옵션’이 되기를 바란다. 김 대표는 “일본과 미국은 장애인차별금지법을 엄격히 적용해 OTT 개봉영화에 자막과 음성해설을 사실상 의무화했다”며 “배리어프리 옵션을 극장과 기업의 자율성에 맡기는 것을 넘어 배리어프리에 대한 제도적 의무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KOBAFF가 설립된 2012년으로부터 약 10년, 김 대표는 사회적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다고 말한다. 각종 영화제에서 교류 제의가 들어올 정도로 배리어프리에 대한 영화계의 인식이 고양되고 있다. 천천히 조금씩, 배리어프리 영화와 KOBAFF는 나아가고 있다.

아르코·대학로예술극장

 2010년대 말부터 공연·예술계의 배리어프리를 향한 관심이 높아졌다. 아르코·대학로예술극장(아르코예술극장) 역시 이에 발맞춰 배리어프리 지원을 도입하고 확충해 왔다. 하지만 아르코예술극장은 1981년에 비장애인만을 염두에 두고 설계된 오래된 시설이자, 김수근 건축가의 작품으로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돼 개보수에 제약이 따라 배리어프리 지원 도입이 쉽지 않았다. 극장운영팀의 이유진 PD는 시설 보존과 배리어프리 시설 확충 간 타협점을 끊임없이 고민해왔다고 전했다.

사진 설명 시작. 혜화동 아르코예술극장의 입구이다. 붉은 벽돌로 된 건물의 옥상 부분에는 사각형 구멍이 나 있어 마치 액자처럼 푸른 하늘을 감싼다. 출입문 앞에는 원형의 조각품이 있다. 사진 설명 끝.
▲아르코예술극장 입구

  2019년 아르코예술극장이 배리어프리 지원 도입을 결정한 후, 운영팀은 가장 먼저 휠체어 경사로의 울퉁불퉁한 자갈부터 갈아냈다. 기존 건축을 파괴하지 않으면서도 휠체어 이용객의 접근성을 높이기 위함이었다. 이외에도 입구에 음성해설을 지원하는 촉지도를 설치하고, 입구부터 매표소까지 점자블록을 부착하는 등 시각장애인의 편의를 위한 시설을 추가했다. 

사진 설명 시작. 혜화동 아르코예술극장의 입구이다. 왼쪽에는 계단이, 오른쪽에는 휠체어램프가 있다. 계단과 휠체어램프 모두 포석을 깔아 만들었지만, 휠체어램프 쪽의 포석은 갈아내어 비교적 매끈하다. 사진 설명 끝.

 

사진 설명 시작. 아르코예술극장 입구의 계단과 휠체어램프 포석을 확대하여 찍은 사진이다. 계단의 포석은 울퉁불퉁하지만, 휠체어램프의 포석은 갈아내어 매끈하다. 사진 설명 끝.

 의 계단과 휠체어램프. 휠체어램프의 자갈을 갈아 매끄럽게 만들었다.

사진 설명 시작. 아르코예술극장 입구의 촉지도이다. 푸른 배경 위에 흰색으로 건물의 경계선이 도톰하게 그려져 있다. 촉지도 아래에는 음성해설을 제공하는 음성안내버튼이 있다. 사진 설명 끝.

사진 설명 시작. 공연장 로비 출입문에 노란 점자 보도블록이 깔려 매표소까지 이어지고 있다. 사진 설명 끝.

 의 촉지도와 점자 보도블록

 

  배리어프리 공연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장애인 관객들의 안전이다. 아르코예술극장은 지하 공연장에 보행 약자를 위한 대피 보조 기구를 비치했다. 비상 상황이 발생하면 안내 직원들이 보조 기구에 관객을 태우고 양쪽에서 짊어져 1층까지 이동한다. 황수희 하우스 매니저는 “실습을 통해 관람객들을 비상 상황에 빠르게 대피시킬 수 있도록 안내원들을 훈련한다”고 설명했다. 이동부터 안전까지 여러 방면에 걸친 세심한 노력 끝에 오늘날 아르코예술극장은 대학로의 대표적 배리어프리 극장으로 꼽히고 있다.

사진 설명 시작. 황수희 매니저가 보행약자를 위한 비상 대피기구를 들고 있다. 천으로 된 비상대피기구는 의자처럼 펼쳐져 있으며, 비상 상황 발생시 도우미들이 맬 수 있는 끈이 양쪽에 달려 있다. 사진 설명 끝.

져 있으며, 비상 상황 발생시 도우미들이 맬 수 있는 끈이 양쪽에 달려 있다. 사진 설명 끝. 사진 설명 시작. 대학로예술극장 지하의 점자 비상대피 안내도이다. 사진 설명 끝.
▲대학로예술극장의 보행 약자 대피 보조 기구와 피난 점자안내도

  이유진 PD는 공연계 배리어프리 확대의 주된 동력이 극장과 극단들의 협력이라고 말한다. 아르코예술극장을 비롯해 국내의 여러 극장은 접근성 강화를 위한 아이디어를 다른 극장 및 극단들과 공유하고, 배리어프리 극을 제작하는 극단들에 공간과 자문을 제공하고 있다. 이 PD는 “점차 여러 지역의 극장 간 유기적 결합방식이 마련된다면, 배리어프리 공연들도 더 확대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밝혔다.

사진 설명 시작. 대학로예술극장의 휠체어석이다. 바닥의 노란 테두리 안에 휠체어 표시가 그려져 있다. 사진 설명 끝.
▲대학로예술극장 휠체어석

사진 설명 시작. 점자와 묵자가 함께 쓰인 프로그램북을 확대한 사진이다. 회색빛이 도는 종이에 한쪽 팔을 뻗은 여자 무용수의 사진이 흑백으로 삽입돼 있으며, 오른쪽에는 제작진의 직책과 이름이 붉은 글씨로 적혀 있다. 사진 설명 끝.

  ▲99아트컴퍼니 기획공연 「침묵」의 프로그램북. 아르코예술극장이 배리어프리를 

지원했다. 

 배리어프리 연극 「견고딕-걸」

  지난 2월 17일부터 24일까지, 극단 작은방의 연극 「견고딕-걸」이 아르코예술극장 무대에 올랐다. 「견고딕-걸」은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즐기도록 기획된 배리어프리 극이다. 「견고딕-걸」의 이보람 기획은 작품에 대해 “배리어프리에 관심이 많은 신재훈 연출자가 참여한 국립극장의 「틴에이지 딕」, 전통예술 「오셀로와 이아고」 등에 이은 또 다른 배리어프리 극”이라 설명했다.

「견고딕-걸」은 개방형 자막해설과 폐쇄형 음성해설을 제공했다. 새로운 시도로 도입된 개방형 자막해설은 관객들의 호평을 받았다. 기존 배리어프리 극의 자막과 달리, 「견고딕-걸」의 개방형 자막해설은 배우들의 움직임, 소리, 감정에 따라 글꼴과 크기까지 변주되는 자막을 제공했다. 이는 단순히 청각장애인 관객들의 이해를 도울 뿐만 아니라, 극의 내용과 어우러져 관객들에게 새로운 경험을 선사했다.

사진 설명 시작. 어두운 무대 위에 다섯 명의 배우가 있다. 두 명의 배우는 절망한 듯 바닥에 엎어져 있고, 세 명의 배우는 각자 의자를 들고 두 배우를 둘러싸고 위협하듯 서 있다. 세 화면으로 분할된 배경의 스크린에는 각각 검은 구덩이가 피식 웃습니다, 쩍 입을 벌리고 두 사람을 삼킵니다, 아래로 아래로 폭삭 주저앉습니다, 라는 자막이 쓰여 있다. 자막은 주인공들의 절망적 심리를 반영하듯 제멋대로 기울어져 있다. 사진 설명 끝.

사진 설명 시작. 어두운 무대 위에 남자 배우가 의자를 끌어앉고 주저앉아 있다. 세 화면으로 분할된 배경의 스크린에는, 맨호오오올! 이라고 적힌 거대한 자막이 볼드체로 띄워져 있다. 사진 설명 끝.
▲「견고딕-걸」의 공연 모습 ©김솔

  음성해설은 전문성을 갖춘 음성해설 각본가가 작성한다. 음성해설 각본가는 리허설 단계부터 참여해 작품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창작자의 의도를 고려해 극의 각 장면에 가장 적절한 해설을 작성한다. 구지수 음성해설 각본가는 “「견고딕-걸」의 경우 특이하게 배우들이 안무나 상황을 직접 해설해주는 부분이 있어서, 지문과 배우들의 해설을 비교하며 음성해설이 어떻게 기능해야 하는지 많이 고민해야 했다”고 회상했다.

사진 설명 시작. 음성해설을 위한 FM수신기 여러 개가 관객들에게 배포를 위해 상자 안에 담겨 있다. 사진 설명 끝.

사진 설명 시작. 음성해설을 위한 FM수신기를 확대한 사진이다. 리모컨형의 수신기에는 채널을 보여주기 위한 작은 스크린이 있고, 유선이어폰이 감겨져 있다. 사진 설명 끝.

  ▲폐쇄형 음성해설을 위한 FM 수신기

  실시간 음성해설은 공연 당일 무대 뒤편 음성해설 부스에서 이뤄진다. 음성해설자는 부스 스크린을 통해 공연을 실시간으로 관람하며 배우들의 움직임과 무대 구성을 해설한다. 「견고딕-걸」의 음성해설을 맡은 윤진성 배우는 “다른 배우들의 호흡, 장면 전환에 익숙하다 보니 음성해설을 배우들이 담당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사진 설명 시작. 암막커튼이 쳐진 음성해설 부스에서 헤드폰을 쓴 여성 배우가 휴대전화를 보며 마이크 앞에 앉아 있다. 마이크 옆에는 음성출력을 조절하기 위한 작은 콘솔이 있다. 사진 설명 끝.
▲음성해설 부스에서 대기하는 윤진성 배우

사진 설명 시작. 연극 견고딕 걸의 프로그램북 중 배리어프리 요소들을 설명하는 페이지다. 페이지 위에는 배리어프리라는 단어가 볼드체로 쓰여 있고, 아래에는 부연설명과 공연 사진 두 장이 삽입돼 있다. 부연설명은 다음과 같다. 전 회차 스크린을 통해 한글자막이 제공된다. 단지 글자를 읽는 것을 넘어 청각적 요소를 시각적으로 감각할 수 있도록 글씨의 형태를 다양하게 디자인하고, 영상과 그래픽적인 부분을 가미하였다. 사진 설명 끝.

 ▲「견고딕-걸」의 프로그램북. 점자와 묵자(점자가 아닌 먹으로 쓰인 글씨)가 함께 쓰였다.

 

  배리어프리 극 상연은 기존 극에 비해 품이 많이 든다. 이유진 PD는 “체감상 1.5~1.8개의 작품을 만드는 수준”이라고 표현했다. 그럼에도 공연계의 노력은 계속된다. 「견고딕-걸」의 권지현 접근성 매니저는 “창작자들의 인식이 많이 좋아졌고 많은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고 언급했다. 극장과 창작자들의 지속적 노력으로 공연장의 경계선은 조금씩 지워지는 중이다.

국립중앙박물관

 국립중앙박물관(국중박)은 전시 공간 배리어프리 지원에 힘써온 국내의 대표적 박물관으로, 장애 유무와 관계없이 누구든 전시를 즐길 수 있도록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사진 설명 시작. 여러 버튼이 설치된 키오스크 화면이 켜져 있다. 화면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쓰여 있다. 이용 장벽 없는 스마트 전시관 서비스, 지금은 운영 준비 중입니다. 화면 오른쪽에는 손을 모은 여성 안내원의 이미지가 있다. 사진 설명 끝.

사진 설명 시작. 키오스크 아래 설치된 점자 디스플레이를 확대한 사진이다. 사진 설명 끝.

  ▲국중박 입구의 배리어프리 스마트 전시관 서비스

  국중박은 국내 최초로 청각장애인 관람객을 위한 수어통역 및 전시해설을 도입했다. 국중박 수어통역 및 전시해설은 예약 신청과 현장 신청이 모두 가능하며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수어해설 영상을 제공하고 있다. 국중박의 배리어프리를 담당하는 최환 학예연구관은 “일대일로 이뤄지는 수어통역의 특성이 관람객과 박물관 간의 유대감을 형성해 장애인 관람객들이 박물관을 계속 찾게 한다”며 박물관 수어통역·전시해설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사진 설명 시작. 사진 왼쪽에는 신라 시대의 금허리띠가 전시돼 있다. 오른쪽에는 금허리띠에 대한 수어해설 영상을 띄워놓은 기자의 휴대폰 화면이 있다. 사진 설명 끝.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제공되는 수어해설 영상

  국중박은 시각장애인 관람객을 위한 촉각 전시품도 배치하고 있다. 최환 학예연구관은 “주요 유물에 대한 촉각 전시품을 전시실마다 마련해 유물을 만져보며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자 노력한다”고 말했다. 이 외에도 국중박은 촉지도, ‘사유의 방’ 전시실의 점자 안내서, 저시력 관람객을 위한 대활자 책자 등의 보조자료를 비치하는 등 전시 공간의 배리어프리 강화 시도를 이어가고 있다.

사진 설명 시작. 사진 위쪽에는 고대 시대의 단검이 만질 수 있도록 모형으로 재현된 촉각전시품이 있다. 단검 모형 바로 밑에는 점자와 묵자로 된 유물 설명이 있다. 기자의 손이 점자를 짚어가고 있다. 사진 설명 끝.
▲전시실의 점자해설과 촉각전시품

사진 설명 시작. 사유의 방 앞에 한국어, 점자, 영어로 된 팸플릿이 나란히 놓여 있다. 기자의 손이 점자 팸플릿을 짚고 있다. 사진 설명 끝.

 ▲’사유의 방’의 점자 안내서는 다양한 언어 책자 사이에 놓여 있다.

사진 설명 시작. 사진 배경에는 유리 전시장 안에 청동 투구가 걸려 있다. 전경에는 저시력자를 위한 대활자 유물 설명 팸플릿이 놓여 있다. 팸플릿에는 투구의 확대 사진과 함께 다음의 글이 큰 글씨로 쓰여 있다. 손기정 기증 청동 투구. 손기정 선생이 1939년 베를린 올림픽의 마라톤 경기에서 우승하고 받은 것입니다. 그리스에서 발견된 유물입니다. 손기정 선생이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했습니다. 우리나라의 보물로 정해진 문화재입니다. 사진 설명 끝.

 ▲저시력 관람객을 위한 대활자 책자

  국중박은 특별전에서도 접근성 강화 시도를 이어갔다. 작년 10월 25일부터 올해 3월 15일까지 열린 특별전 『합스부르크 600년, 매혹의 걸작들』의 일부 전시품은 촉각전시품으로 제작됐다. 관람객들은 촉각명화로 제작된 마르가리타 테레사 공주, 루돌프 2세 등 합스부르크 왕가 인물들의 초상화를 손으로 만지는 방식으로 감상할 수 있었다. 특별전의 전시 연계 교육프로그램 개발을 담당한 설은경 학예연구사는 “어떻게 하면 시각장애인도 비장애인과 최대한 같은 전시 경험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계기를 마련하는 것은 물론, 비장애인 관람객들에게 촉각으로 그림을 감상하는 경험을 제공함으로써 전시 공간 배리어프리 인식을 개선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고 의도를 설명했다. 설 학예연구사는 “생각보다 많은 관람객이 진지하게 촉각명화를 감상하고 이야기를 나눴다”며 촉각전시품의 가능성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사진 설명 시작. 목 주름장식이 달린 중세 옷을 입은 에스파냐 왕 필리프 2세의 초상화가 촉각명화로 재현돼 있다. 초상화는 윤곽을 강조하는 방식으로 단순화됐으며, 윤곽은 음각으로 파여 있다. 촉각명화 왼쪽에는 초상화에 대한 설명이 점자와 묵자로 적혀 있다. 사진 설명 끝.
▲『합스부르크 600년, 매혹의 걸작들』의 촉각전시품

실로암 시각장애인복지관의 촉각명화

  ‘손으로 보는 그림’인 촉각명화는 2016년 실로암 시각장애인복지관에 의해 국내에 도입됐다. 국중박 특별전 『합스부르크 600년, 매혹의 걸작들』에 사용된 촉각명화 역시 실로암 시각장애인복지관의 작품이다. 촉각명화 제작 프로젝트를 시작한 촉각교재제작팀의 이인애 팀장은 “시각장애인 학생들의 미술 교과 지원을 위해 하나둘 입체 그림을 만든 것이 문화 시설 전시품 제작으로 이어졌다”고 설명했다.

사진 설명 시작. 흰색 전시장 벽에 점자책과 교재들이 세 열로 진열돼 있다. 진열장 위쪽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영어로 크게 적혀 있다. 당신이 만지는 모든 것은 희망입니다. 사진 설명 끝.
▲실로암 시각장애인복지관 S갤러리 전경

사진 설명 시작. 전시품 아래에

  

  촉각명화 제작 과정은 크게 세 단계로 나뉜다. 먼저 전체적인 윤곽과 원근감을 고려해 회화작품의 구성을 단순화한다. 다음으로 그림 속 사물의 고유한 질감을 살리는 재질을 선택해 작품을 3차원으로 구현하고, 마지막으로 작품이 쉽게 닳지 않도록 후처리를 통해 내구성을 강화한다.

사진 설명 시작. 피카소의 그림 아비뇽의 처녀들의 촉각명화를 찍은 사진이다. 제각각 다른 자세를 취하고 있는 여인 네 명을 그린 입체파 작품이다. 촉각명화에서도 오브제의 굴곡이 입체적으로 표현돼 있다. 사진 설명 끝.

 ▲파블로 피카소의 「아비뇽의 처녀들」의 촉각명화

사진 설명 시작. 아비뇽의 처녀들 촉각명화를 오른쪽에서 비스듬하게 찍은 사진이다. 오브제의 윤곽과 굴곡이 드러나 있다. 사진 설명 끝.

 

사진 설명 시작. 아비뇽의 처녀들 촉각명화의 하단을 찍은 사진이다. 원작의 포도가 매끈한 구슬 뭉치로 표현됐다. 사진 설명 끝.

 

사진 설명 시작. 아비뇽의 처녀들 촉각명화에서 네 명의 여인들 중 한 명의 얼굴을 확대해 찍은 사진이다. 여인의 검은 머리카락은 털실로 처리돼 있다. 사진 설명 끝.

  

  촉각명화가 기존 회화와 같은 미학적 체험을 제공할 수 있을까. 이인애 팀장은 동일할 경험을 제공할 수는 없음을 인정하면서도, 촉각명화의 미학적 가능성에는 긍정적 견해를 내비쳤다. 이 팀장은 “‘미는 그 진가를 감상하는 사람이 소유한다’는 말이 있듯, 만져보는 그 자체로 자신이 추구하는 아름다움을 찾고 에너지를 얻는다면 미학적 체험이라 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 설명 시작. 다빈치의 명화 모나리자를 흉상으로 제작한 촉각명화가 놓여 있다. 원작의 희미한 윤곽이 머리에 씌워진 면사포로 처리됐다. 사진 설명 끝.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의 촉각명화. 실로암 시각장애인복지관의 첫 

촉각명화이다.

  실로암 시각장애인복지관 갤러리 한쪽 벽은 몬드리안의 「빨강, 파랑, 노랑의 구성」의 촉각명화가 차지하고 있다. 선과 색으로만 이루어진 추상화를 어떻게 촉각명화로 제작한 것일까. 이 팀장은 “각 색이 연상시키는 느낌을 찾는 것이 핵심이었다”고 말한다. 붉은색은 고무장갑으로, 노란색은 점자보도블록과 개나리 조화들로, 푸른색은 물을 연상시키는 차가운 비즈로 표현됐다. 색의 고유한 느낌을 직관적으로 경험하게 한 몬드리안의 의도를 각 색과 연관된 질감으로 재치 있게 살렸다. 

사진 설명 시작. 몬드리안의 그림의 촉각명화가 확대돼 있다. 다양한 크기와 색의 직사각형들로 이루어진 커다란 정방형의 그림이다. 각 직사각형은 해당 색에 어울리는 재질들로 채워져 있다. 예컨대 붉은 정사각형은 빨간 고무장갑들로, 파란 직사각형은 시원한 느낌을 주는 비즈로 채워져 있다. 사진 설명 끝.

사진 설명 시작. 몬드리안 촉각명화 중 노란색 사각형들 세 개의 재질을 확대해 비교한 사진이다. 가장 왼쪽에는 점자 보도블록이, 중간에는 노란 조화의 꽃잎들이, 오른쪽에는 부드러운 노란색 양탄자가 직사각형을 채우고 있다. 사진 설명 끝.
▲몬드리안의 「빨강, 파랑, 노랑의 구성」의 촉각명화. 같은 노란색을 다양한 재질로 표현했다.  

  이인애 팀장은 “‘문턱 없는’ 환경은 결국은 장애인과 비장애인 모두에게 좋은 공간”이라고 주장한다. 이 팀장은 “궁극적으로 ‘장애인을 위한 배려’라는 말 자체가 없어지는 것이 진정한 배리어프리가 아닌가 싶다”며 “모두가 동등하게 아름다움을 즐기고 논할 사회를 소망한다”고 말했다. 문화 공간에서의 장애와 비장애를 가르는 선이 지워질 그 날까지, 베리어프리를 꿈꾸는 이들은 오늘도 각자의 자리에서 바쁘게 움직인다.

댓글 댓글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

Previous Post

사랑하는 마음을 기록하고, 모으고, 나누다

Next Post

학생회 동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