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말을 잃은 자리에서

  가당치도 않은 날들의 연속에 할 말을 잃습니다. 가장 말을 많이 해야 할 언론이 말할 기력을 잃게 만든다니, 최악입니다. 상식도 몰상식에는 쥐약이고, 논리도 무논리에는 어쩔 도리가 없습니다. 상식 없는 이들이 국정을 운영하고 논리 없는 이들이 그를 지지하니 나라꼴이 제대로일 리가 없습니다.

  이 정권은 그 자리에 서있는 사람의 입장으론 도무지 할 수 없는 말만 하고 있습니다. 한평생 눈치를 보며 아픔과 모욕을 삼켜가며 일해본 적 없을 이들이 펼치는 노동 정책이 멀쩡할 수가 있겠습니까? 참사와 폭력에 희생당한 이들의 심정을 헤아려야 하는 이유를 모르니, 무엇이 위로인지도 모릅니다. 국가가 뭘 해야 하는지도 정확히 모르고, 알려고도 하지 않은 채로 연단에서 입을 놀리는 혀들을 증오합니다. 그런 식으로 말해도 아무런 화도 입지 않도록 그들을 비호하고, 그들의 말에 달콤해 하며 날개를 달아주고 환호하는 이들을 경멸합니다. 

  한 평생 피해자가, 약자가 돼본 적 없는 이들이 내놓는 생존지침은 ‘피해자가, 약자가 되지 말라’입니다. 그렇게 일하기 싫으면 부리는 사람이 되고, 죽음이 억울하면 죽지 말고, 말을 들어주길 바란다면 절절맬 위치에 있어라. 이 정권은 가장 취약한 삶부터 말려버리고 있습니다. 남의 생을 결정지을 수 있는 사안들을 이토록 치졸하게 짜맞춰 내놓는다니. 가진 것 어느 하나도 내놓지 않으려 용쓰는 발버둥으로 남의 생을 파괴하는 사악함에 분노합니다.  

  굴종의 치욕을 지독히 선사하는 이 정권에 박수를 쳐주겠습니다. 분노하고 저지하려 말하는 이들이 할 말을 잃고 냉소나 짓게 만든, 그 자연스러운 굴종을 이끌어낸 우수한 길들임에 찬사를 보냅니다. 의욕을 잃을 때마다, 하나하나 글을 쓰지 못할 때마다 고개를 들 수가 없습니다.

  차마 어디부터 말해야 할지 아득할 정도로 황망할 때마다 살을 꼬집으며 말을 남겨놓겠습니다. 아직 내 삶의 목전까지는 위협하지 않아 침묵할 수 있는 여유로운 비겁은 떨지 않겠습니다. 할 말이 없을 때, 그때 가장 많이 말 해둬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왜 할 말을 잃었는지도 잊어버리게 됩니다. 어떻게 말해야 할지도 모르고, 무엇이 잘못됐는지도 모르게 됩니다. 우리의 글은, 바로 그를 위한 기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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