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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그런 책들이 있다. 어떤 독자에게 닿더라도 그의 삶과 너무나도 닮아 있어 마치 소설 속 주인공이 된 것만 같은 기분이 들게 하는. 장류진의 소설은 작품 한중간으로 독자를 몰입시킨다. 2019년 출간된 장류진의 단편소설집 「일의 기쁨과 슬픔」은 일하는 모두가 한 번쯤은 경험해봤을 법한 이삼십 대 회사원들의 이야기로 독자들을 순식간에 끌어들인다.
책에 담긴 8편의 단편 중에서도 「일의 기쁨과 슬픔」, 「백한번째 이력서와 첫번째 출근길」은 먹고살기 위해 일해야만 하는 우리의 모습을 보여주는 이야기다. 자본주의사회에서 살아남으려 우리는 계속해서 일해야만 한다. 돈을 버는 과정이 기쁘거나 슬프거나 일해야만 한다. 돈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으므로.
「일의 기쁨과 슬픔」에는 중고 거래 앱에 판매글을 도배하는 ‘거북이알’이 등장한다. 카드회사 공연기획팀 소속인 그녀는 업무 중 예상치 못하게 회장의 기분을 상하게 만들어 월급을 회사 카드 포인트로 받게 된다. 갑질을 당한 셈이다. 그녀는 이를 악물고 월급 대신 받은 포인트로 갖가지 물건을 사들이고, 그것들을 중고나라에 더 싼 가격으로 되팔아 현금으로 바꾸어 생활한다. 일의 기쁨과 슬픔. 회사원에게 고단함을 상쇄할 월급의 기쁨 대신 쥐어진 포인트는 유일한 기쁨을 빼앗긴 것이나 다름없었을 것이다. 기쁘자고 한 일이 내게 슬픔을 던져줬다면 그 슬픔에서라도 최고의 기쁨을 뽑아내겠다. 상상치도 못한 방법으로 불합리한 상황을 타개하는 거북이알의 생존력은 우리를 웃음 짓게 만든다. 하지만 그 끝맛은 씁쓸하다. 거북이알은 몇 번이고 그녀에게 월급 대신 포인트를 던져줄지 모를 회사의 힘 앞에 ‘더럽고 치사해도 그저 견디고 있을 뿐’이다.
「백한번째 이력서와 첫번째 출근길」은 비정규직이었던 ‘나’가 드디어 정규직으로 출근하는 날의 모습을 그린다. 아직은 첫날, 무엇도 변한 건 없지만 정규직이라는 신분이 공기부터 다르게 만든다. 적금을 부어볼까, 이탈리아 여행을 갈까. 전에는 상상도 못 했던 꿈들을 꿔본다.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다. ‘나’처럼 첫 출근길이 설레지 않았던 사람이 있을까.
하지만 마냥 그의 출근길이 행복해 보이지만은 않는다. 사정이 훨씬 나은 정규직이 되고 나서도 하루 만천 원씩만쓰기를 목표로 하는 ‘나’의 모습에는 떨치지 못한 고용과 생계에 대한 불안이 묻어난다. 첫 출근길 ‘나’는 터널을 지나는 내내 정규직 복지 차원으로 제공된 건강검진으로 스케일링 받은 자신의 이를 쳐다본다. ‘나’는 존중받는 느낌이 든다고, 정규직은 다르다며 기뻐하지만 건강관리조차 차별받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이를 체감할 수 있는 대목이다.
우리는 살기 위해 일하고, 저마다 일의 기쁨과 슬픔을 느끼고 대처한다.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가 주는 위로는 잠깐의 도피처가 돼 준다. 하지만 웃으며 잊으려 한대도 책장 밖에는 현실의 굴레가 형형히 도사리고 있다. 사람 사는 게 다 그렇다고 기뻐하고 슬퍼하기만 해선 바뀔 수 없는, 어쩔 수 없다며 애써 슬픔 속에서 기쁨을 찾으려 도피로는 벗어날 수 없는 여전한 굴레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