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그토록 사랑스러운 통증
2배 비싸지고 더 나빠진 셔틀버스 이럴 거면 차라리 직영화하라
영화라는 이름의 축제

2배 비싸지고 더 나빠진 셔틀버스 이럴 거면 차라리 직영화하라

고근형 (조선해양공학과 통합과정)

대중교통 애호가

justco15@snu.ac.kr

  올해 캠퍼스 최고의 ‘빌런’은 셔틀버스가 아닐까 싶다. 가뜩이나 입석 제한으로 셔틀 타기가 쉽지 않은데 배차 간격도 불량하다. 정해진 시간도 지키지 않고, 한꺼번에 버스가 몰렸다가 또 한참 동안 오지 않기를 반복한다. 사당행 셔틀의 경우, 업체에서 임의로 셔틀을 소형버스(15인승 밴)로 바꿨는데, 학교 당국은 뒤늦게야 사실을 파악했다고 한다. 배차 간격, 대수, 심지어 차종까지 대학 당국이 외주업체의 셔틀버스 운영을 전혀 통제하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렇듯 셔틀버스 운영이 열악해지고 있지만, 셔틀 계약금은 작년보다 오히려 2배 이상 뛰었다. 필자가 학교 당국에 정보공개청구를 진행한 결과, 2022년(2022.03.02.~2023.02.28.) 서울대가 셔틀 외주업체(엑스포관광전세버스협동조합)에 지급한 계약금은 약 13.8억 원이었다. 반면 올해(2023.03.02.~2024.02.29.) 외주업체(주식회사 BTS)와 맺은 계약금은 30.2억 원으로 전년 대비 2.2배 증가했다. 계약금은 2배 이상 비싸졌는데, 셔틀버스 서비스는 나빠졌고, 심지어 학교 당국이 통제조차 못 하는 셈이다.

셔틀 외주화, 등록금 낭비의 길

  이제는 많은 이들이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2015년 봄학기까지 모든 셔틀버스에는 대한민국 정부 엠블럼과 함께 ‘공무 수행’이라는 글자가 적혀 있었다. 서울대학교가 국립대학일 때의 흔적인 셈인데, 모든 셔틀버스는 대학이 직영으로 운영했다. 즉, 셔틀버스 노동자들은 학교 구성원이었고, 셔틀버스는 학교의 자산이었다. 2015년 가을학기에 새로운 모델의 셔틀버스가 도입됐을 때 역시, 모든 신규 셔틀버스에는 학교 상징이 표시돼 있었다. 학교의 자산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셔틀버스 운영에 필요한 비용은, 버스노동자들의 임금과 연료비, 버스 유지비 등 실제 버스를 움직이는 데 필요한 비용, 그러니까 셔틀 운영 원가에 그쳤다.

  그러다 2016년부터 셔틀버스 외주화가 시작됐다. 이제 셔틀 운영비는 외주업체와 맺은 계약금이 된다. 그런데 외주업체는 사기업이므로 이윤이 남아야 한다. 즉, 계약금에는 버스노동자 임금과 연료비, 차량 유지비도 있지만, 업체의 이윤이 포함돼야 한다. 이 부분은 셔틀이 직영으로 운영됐을 때는 없던 항목이다. 따라서 만약 외주업체가 정상적으로 임금과 유지비를 지출하고 있다면, 계약금은 직영일 때 운영비보다 더 비쌀 수밖에 없다. 이윤만큼의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만약 외주업체 계약금이 직영일 때 운영비보다 낮다면, 임금이나 유지비가 낮아졌다는 뜻이다. 즉 버스노동자가 적정한 임금을 받지 못하거나, 차량 대수가 줄었거나 제대로 정비되지 않는 경우일 것이다. 전자의 경우라면 등록금을 외주업체 이윤으로 바꾼 셈이고, 후자라면 셔틀 운영의 질이 떨어진 셈이다. 어느 경우든 바람직하지 않다.

  올해는 어떤가. 〈대학신문〉에 따르면 캠퍼스관리과 담당자는 ‘코로나19 이후 관광수요가 회복됨에 따라 계약금이 상승’했다고 한다. 수요 증가로 작년보다 2배 이상 계약금을 늘렸다는 것이다. 그런데 셔틀버스 차량 대수는 작년과 큰 차이가 없다. 버스노동자의 임금이 2배 이상 증가했을 리도 없다. 연료비나 운영비 역시 작년과 큰 변동이 없다. 즉, 셔틀버스 운영 원가는 작년이나 올해나 대동소이할 것이다. 그렇다면 작년 대비 올해의 계약금 증가분은 모두 셔틀 외주업체의 이윤 증가분이 될 것이다. 즉, 교비 중 16.4억 원이 외주업체의 이윤을 위해 지출되었으며, 그럼에도 셔틀버스 운영의 질은 오히려 나빠졌다. 등록금 낭비다.

장애인은 못 타고, 통제 벗어난 셔틀 외주화

  다시 2015년 얘기를 해보자. 이때 직영 셔틀버스에 새로운 모델이 도입됐는데, 그건 바로 저상버스였다. 이때 도입한 직영 저상버스가 지금도 운영되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체감하다시피 외주업체가 운영하는 셔틀버스에는 저상버스가 없다. 버스 탑승을 위해선 두 계단을 올라가야 하므로 휠체어를 이용하는 구성원과 시민은 셔틀버스를 이용할 수 없다. 참고로 국토교통부는 2026년까지 전국 시내버스의 62%를 저상버스로 교체할 계획이다. 굳이 국토부의 계획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학내 장애인 구성원들의 이동권 보장을 위해서는 당연히 셔틀버스를 저상버스로 대체해야 한다. 그러나 한국 관광버스 전세 업체 중 저상버스를 보유한 업체는 없다시피 하다. 게다가 이미 계약이 체결된 올해, 외주업체에 셔틀을 저상버스로 교체해달라고 요구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즉, 셔틀버스 외주화는 장애인 이동권을 제약한다.

  비장애인 구성원들 역시 불편하긴 마찬가지다. 외주계약을 맺은 이상, 학교 당국이 직접 외주업체의 버스노동자에게 업무지시를 내릴 수 없다. 파견법 위반(불법파견)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셔틀버스 배차 간격이 지켜지지 않아도, 또는 예상 밖으로 셔틀버스 대기 줄이 길어져도 학교 당국이 당장 취할 수 있는 조치는 없다. 학교 당국이 외주업체에 상황을 설명한 뒤, 외주업체에서 다시 버스노동자들에게 업무를 지시해야 한다. 그러는 동안에도 시간은 흐르고, 불편은 셔틀버스를 기다리는 구성원들의 몫이다.

  셔틀버스는 수요, 즉 구성원의 필요에 따라 탄력적으로 운영되는 것이 중요하다. 일반적으로 등하교 시간대에, 학기 말보단 학기 초에, 금요일보단 월-목요일에 더 많은 셔틀버스가 필요하다. 학교 당국의 역할은 구성원의 필요를 파악하고, 필요에 따라 셔틀버스를 배치하는 일이다. 외주화가 이를 가로막는다. 배차 권한이 외주업체에 있기 때문이다. 특히 올해는 입석 제한에 따라 버스 1대당 수용 가능 인원이 줄어들었다. 그러자면 인원 축소에 반비례해 배차 대수를 늘려야 한다. 그러나 학교가 배차 대수를 통제할 권한이 없으므로 구성원들이 불편을 겪고 있다. 심지어는 사당행 셔틀을 밴으로 바꾸었음에도, 학교 당국은 이를 사후적으로 파악했다. 셔틀에 대한 학교의 통제력이 얼마나 떨어졌는지가 여실히 드러난다.

기후정의로 가는 셔틀버스, 직영화가 답이다

  관악캠퍼스는 서울에서 가장 많은 탄소를 배출하는 공간 중 하나다. 기후위기에 대응하자면, 캠퍼스 내 탄소배출을 줄여야 하고 주요하게는 자가용 이용량을 줄여야 한다. 물론 관악캠퍼스의 교통이 매우 불편하므로 지금의 자가용은 필수재적인 측면이 있다. 따라서 자가용 축소를 유도하려면, 더 많은 시내버스와 셔틀버스가 학교 안팎을 연결해야 한다. 필자가 보기에 관악캠퍼스의 셔틀버스는 배차 대수는 물론, 캠퍼스 어디서나 접근할 수 있도록 정류장과 노선도 확충해야 한다.

  이를테면 지난해 학교 당국은 총장잔디 밑에 대규모 지하주차장을 건설했다. 주차공간 문제 해결을 위해서다. 그러나 더 친환경적이고 본질적인 해결은, 자가용을 이용하는 교직원들도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셔틀버스를 확충하는 것이다. 지금 셔틀버스를 이용하자면, 구성원이 속한 건물이 어디든 윗공대나 행정관 앞 셔틀버스 정류장까지 걸어가야 한다. 심지어 정류장까지 걸어가도 셔틀을 탑승하기 위해서는 한참을 기다려야 한다. 시내버스를 이용하자니 학생들만 타기에도 비좁다. 자가용이 있는 교직원이라면 당연히 자가용 이용이 훨씬 편리하다. 이들에게 셔틀버스 탑승을 유도하자면, 셔틀버스 증차는 물론 노선과 정류장을 확충해, 각자가 속한 건물 인근에서 셔틀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런데 올해는 배차 대수 확충 없이도 계약금이 2배 이상 뛰었다. 이대로라면 셔틀 확충에는 더 많은 등록금이 낭비될 것이다. 기후정의를 위해 적극적으로 셔틀 확충을 하려면, 셔틀 외주화는 중단돼야 한다. 셔틀 직영화를 통해 운영 원가만큼만 지불하는 것이 그나마 등록금과 세금을 아끼는 길이다.

  비용 절감을 위해서든,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위해서든, 더 편리한 셔틀 운영을 위해서든, 기후정의를 실현하기 위해서든, 셔틀을 직영화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셔틀 직영화는 심지어 급진적인 변화도 아니다. 그저 2016년 이전으로 ‘원상 복귀’ 하자는 것이다. 차이가 있다면, 버스노동자에게 생활임금을 지급하고, 셔틀버스에 대한 구성원의 민주적 통제를 보장하는 직영화라는 점이다. 더 이상 셔틀버스 대기 줄에서 시간을 허비하고 싶지 않다면, 바로 지금 셔틀버스 직영화를 요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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