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라는 이름의 축제

제24회 전주국제영화제에 대한 소회

  무언가를 좋아하면 세상이 그걸 중심으로 돈다 했던가. 일명 ‘시네필’까진 아니더라도 영화를 좋아하기 시작하면 새로운 달력이 머릿속에 자리한다. 어느 영화가 언제 개봉하는지, 오랜만에 스크린을 찾은 옛 영화의 재상영일은 또 언젠지, 감독과의 대화 행사가 있는 날은 언젠지. 영화에 귀속된 날짜가 한가득이다. 이런 날짜들을 헤아리다 보면 하루하루가 금방 지나 어느새 달력 몇 장이 훌쩍 넘어가 있다. 

  그러다 멈칫, 달력을 잡아 들게 되는 시점이 있다. 머릿속과 일상의 두 달력을 오가며 일정을 확인하고 기차표를 예매한다. 온종일 영화만 보겠구나 싶은 흡족함과 함께 달력에 빨간 동그라미를 연신 그어본다. 영화의 축젯 날이다. 계절을 가로지르듯 봄가을로 크게 영화제가 열린다. 사월 말이면 전주에서, 구월 말이면 부산에서 국내 최대 규모의 국제영화제가 관객을 기다린다. 지난 4월 27일 어김없이 전주국제영화제가 24번째 개최를 맞이했다. 예술은 왜 항상 축제가 될까. 그 답을 영화제에서 찾아봤다.

우리는 늘 선을 넘지

사진 설명 시작. 전주 영화의 거리 전경. 전주국제영화제 배너가 기둥에 붙어있고, 천막에는 영화 포스터들이 만국기처럼 널려 있다. 사진 설명 끝.
▲전주 영화의 거리 초입

  축제마다 내세우는 신조가 있기 마련이다. 소규모 독립 영화제에선 평화, 환경, 다양성 등 하나의 소전제를 내세우는 경우가 많지만, 규모가 조금 커지면 드넓은 영화의 범주를 포섭해낼 대전제를 내세운다. 전주국제영화제는 “영화, 표현의 해방구”란 문구의 슬로건을 사용해 왔다. 창작자를 적극 지지하고, 영화를 통해 투사하는 사회와 문화의 다양한 양상까지도 지지하는 문구다. 도전적인 생각과 취향, 작품을 추구하는 태도를 엿볼 수 있다.

  그간 전주국제영화제는 독립적이고 실험적인 영화에 초점을 맞추면서, 국내 개봉이 예정되지 않은 작품을 주로 선보여 왔다. 해외 작품이더라도 주로 수입 및 배급이 예정된 영화를 내거는 부산국제영화제와 다른 양상이다. 전주국제영화제에서의 상영은 그 영화를 볼 마지막 기회인 경우도 많다. 물론 이번 영화제 개막작이었던 다르덴 형제의 《토리와 로키타》처럼, 영화계 거장의 작품을 선보이기도 한다.

  올해 전주국제영화제에서는 새로운 슬로건을 내놨다. “우리는 늘 선을 넘지”다. 전주국제영화제만의 전복적이고 도발적인 태도가 더욱 돋보인다. 기존 문구의 ‘해방’이란 단어에서 이미 암시됐다시피, 전주국제영화제가 바라보는 영화는 사회의 틀로부터 탈피하고 새로운 길로 성큼 나아가는 매체다. 24번째를 맞이한 올해, 영화제는 장르와 표현방식뿐 아니라 시대와 사회를 넘나들며 전통적인 경계 넘어서기를 표방했다.

  어떤 프로그램 아래 어떤 영화가 있는지를 보면 전주국제영화제가 추구하는 ‘선 넘음’이 무엇인지 이해할 수 있다. 여느 영화제처럼 한국·국제 장·단편 경쟁 프로그램이 기본적으로 구성돼있는 한편, 영화 간 독특한 집합소를 찾아 묶은 프로그램도 여럿 있다. ‘영화보다 낯선’ 섹션은 전주국제영화제가 스스로도 “영화제의 전체 프로그램을 관통하는 정신이 혁신성에 있다 해도 영화제가 영화에 대한 논의를 가장 끝까지 밀고 나가 위험을 감수하는” 프로그램이라 소개한 바 있을 만큼 기존 영화 양식에서 완전히 일탈해 새 길을 모색하는 실험영화로 가득하다.

  형식과 더불어 내용적 ‘선 넘음’도 추구한다. ‘프론트라인’ 섹션은 사회문제를 비판적으로 다루는 ‘문제작’들만 꼽아 소개한다. 올해도 튀르키예의 이민자 문제를 다룬 극영화 《불편한 편의점》, 유류세 인상으로부터 촉발된 프랑스 시위를 다룬 다큐멘터리 《노랑 조끼의 프랑스》, 1950년대 그린 아일랜드의 여성 사상범을 이야기하는 픽션《그녀의 묻혀진 이야기》 등 국가부터 다루는 사건과 상황까지 산발적이고 현재적인 작품만 골라 모았다.

  혁신적이고 도전적인 상영작에 발맞추기 위한 듯, 올해 전주국제영화제는 상영 방식과 제작 지원에도 발을 넓혔다. 일부 영화는 3D 영화나 16mm 필름 영사의 형태로 스크린에 틀어졌고, 인터랙티브 VR 영화 관람에 최적화된 환경을 구현하기도 했다. 국내외 극영화와 다큐멘터리 프로젝트를 발굴하고 제작 지원하는 ‘전주프로젝트’도 올해로 15회를 맞이했다. 전주국제영화제는 작품 안팎으로 새로운 시도를 계속 이어가고 있다.

영화와 만난 도시

사진 설명 시작. 출발하지 않는 노란 기차가 철도 너머로 정거해 있다. 파란 판넬 안에
▲전주역사 내 플랫폼

  제24회 전주국제영화제는 공식 트레일러를 통해 이렇게 말했다. “개인적인 스크린의 경계를 넘어서 전주에서 확장되는 스크린의 무한한 가능성은 ‘전주’라는 도시를 방문한 관객에게 더 몰입적이고 환상적인 경험을 제안합니다.” 영화제는 타지로의 여정이기도 하다. 칸, 베를린, 베니스 세 도시가 곧 세계 3대 영화제를 곧장 연상하게 만드는 것과 마찬가지다. 전주라는 도시는 어느새 영화와 밀착하면서 함께 호흡하기 시작했다.

  상영 시간에 맞춰 영화관으로 향하다 보면 영화라는 세계로 들어온 기분이 든다. 가로등에는 전주국제영화제의 포스터가 달려 있다. 영화의 거리엔 각종 영화관과 영화제 관련 시설이 즐비해 있다. 거리 초입에 있는 광장 ‘전주라운지’에는 거대한 빨간 큐브가 비스듬하게 서 있다. 광장 한가운데 운석이 떨어져 박힌 듯 설치된 JIFF 큐브는 전주국제영화제의 상징과도 같다. 어쩌면 한옥마을을 중심으로 이미 관광도시로 기능해왔을 전주에 난데없이 나타난 굴러온 돌 같은 영화는 이제 도시에 안착했다. 

  팬데믹 시기를 거쳐 관객이 다시 영화관을 찾을 수 있게 된 지금, 전주국제영화제는 지역과의 교류를 더 튼튼히 했다. 외지인은 ‘전주씨네투어’를 통해 도시에 가까워질 수 있다. 전주 시 내의 산책로와 야외공간에서 선정된 작품과 뮤지션의 공연을 관람하거나, 무성영화를 실제 라이브 공연과 함께 곁들여 볼 수 있으며, 독립영화계 배우와 직접 대담을 나눌 수도 있다. 외지인이 ‘영화’를 매개로 영화의 거리 바깥의 전주로도 나서게 되는 것이다.

  ‘타지로의 여정’이란 점도 도시를 영화와 맞닿게 한다. 영화제 기간 내내 짧게는 하루 길게는 전일 전주에 머무르며 영화제 참여와 온갖 맛집과 카페 섭렵을 겸하는 이들이 많다. 숙소가 전주 한옥마을에 포진해있어 영화제 방문객들은 영화와 한옥을 오가며 축제 기간을 지낸다. 스크린에 매몰됐다가도 익숙지 않은 풍광을 마주하면서 살아있는 도시를 목도한다. 매년 전주로 향할 때마다 찾는 가게나 점차 익숙해지는 도시의 순간이 생길 때면 영화와 나만큼이나 도시와 내가 가까워져 있음을 감각한다. 

 

사진 설명 시작. 전주시네마타운 건물 앞. 호남유일의 향토 영화관이라는 문구가 빨갛게 써있다. 사진 설명 끝
▲전주 시 내 향토극장으로, 70여 년간 영업을 지속해왔다.

  한편 전주 시민도 도시를 매개로 영화와 가까워진다. 영화제 동안 전주 시민만을 대상으로 향토 극장 ‘전주시네마타운’에서 특별상영회를 운영한다. 선정 작품과 전주지역 독립영화를 무료로 상영한다. 지역의 역사 깊은 영화관에서 영화를 본다는 경험도 특별하지만, 그러한 공간에서 지역 영화를 시청하는 경험은 도시와 영화 간의 유대를 깊어지게 한다. 더불어 ‘골목상영’ 프로그램에서는 동네 골목 공간에서 시민과 관객 전체를 대상으로 영화를 상영한다. 이로써 일상 터전과 여행지에도 새로운 가치가 덧대어진다.

축제로 영화 감각하기

  ‘영화’제인 점을 잊지 말자. 평소엔 일주일에 몇 편을 겨우 챙겨봤다면 영화제에서는 일상으로부터 거리를 두고 온종일 영화를 볼 수 있다. 영화제가 4월 말이라면 예매 계획을 짜는 4월 초부터 진작에 행복하다. 영화 고르기란 눈 감고 제비뽑기와 다름없다. 영화를 소개하는 단평과 시놉시스 몇 줄에 의존해야 한다. 미리 입소문을 타고 알음알음 인기를 끌어둔 영화도 몇 있지만, 그 경우엔 금방 매진되는 탓에 예매 사이트를 헤매다가 눈에 들어온 제목이나 딱 맞는 시간대의 영화를 골라 예매하고 만다. 평소 극장에선 잘 볼 수 없던 단편영화 모음이나 다큐멘터리, 실험영화도 관람 목록에 한두 개 껴놓는 것도 감상의 다양성을 더하는 길이다. 

  여행은 감각을 곤두서게 하기 마련이라 기차역에 내리는 순간에서부터 두 눈과 귀를 쭈뼛 세운 채 주변을 살피기 시작한다. 기차에서 내린 후 출구를 향해 다 같이 걸어가는 순간에 주변을 잠깐 훑어보자. 금방 누가 나의 이름 모를 동행이 될지를 알 수 있을 테니. 작년도 영화제 기념품으로 판매했던 배지를 달고 다니거나, 휴대전화 화면과 시계를 연신 들여다보다 총총걸음으로 앞사람을 앞지르거나, 품이 큰 어두운색 점퍼를 입은 채 어딘가 들떠 보이는 이라면 그와 ‘전주 영화의 거리’로 향하는 시내버스 정류장까지 함께 걷는 게 확정이다. 출발지는 달랐을지 몰라도 다 같은 도착지에 내린 사람들과 이유 모를 동질감을 느낀다.

  그렇게 도착한 영화의 거리. 온 세상이 영화로 가득하다. 땅에도 전주국제영화제 로고가 새겨져 있고 몇 걸음마다 영화관이 즐비해 있다. 한편 영화 포스터 100개가 하늘에 만국기처럼 걸려있다. 올해로 7회차를 맞은 ‘100 Films 100 Posters’ 프로젝트의 일환이다. 해마다 100명의 디자이너가 선정된 100편의 영화에 대해 상업적 관습이 아니라 예술적 상상력에 따라 포스터를 디자인한다. 정식 전시는 지역 문화재단 소속의 ‘팔복예술공장’에서 이뤄지지만, 영화제를 오가며 볼 수 있도록 거리에도 설치됐다. 좋아하는 것들이 널려 있어 시선을 어디에 두든 들뜨게 돼 있다. 

사진 설명 시작. 전주 영화의 거리 광장에 놓인 빨간 큐브 앞으로 스타워즈 코스프레 행렬이 서 있다. 사진 설명 끝.
▲스타워즈 데이 코스프레 행진 중의 모습이다. 거리 악대와 오케스트라가 OST를 연주했다.

  거리와 골목을 이리저리 누비다가 예상치 못한 이벤트를 맞닥뜨리기도 한다. 전주라운지에 설치된 토크 스테이지에서 각종 영화인을 만나 얘기를 들을 수 있다. 영화의 거리 한중간에서 버스킹과 각종 체험 행사도 벌어진다. 어떨 땐 퍼레이드 행렬에 섞여들기도 한다. 올해는 5월 4일 《스타워즈》 팬덤의 코스프레 행렬과 이를 따르는 사람들로 영화의 거리가 북적였다. ‘스타워즈 데이’ 기념행사가 전주국제영화제와 협업을 통해 이뤄졌기 때문이다. 행진 내내 악대의 연주가 울려 퍼지고, 행진 끝에는 따로 마련된 행사 부스에서 오케스트라의 OST 연주가 이뤄졌다. 화려한 코스프레보다도 눈에 들어온 것은 스타워즈 옷을 입었거나 굿즈 마스크를 뒤집어썼거나 광선검, 인형 등을 들고 있는 사람들의 상기된 표정이었다. 무언가를 좋아하는 마음이 한 데 모인 순간임을 체감하면서 기자 역시 저도 모르게 행렬을 따르고 있었다.

  《스타워즈》 시리즈를 사랑해서 거리에 사람들이 모여들었다면, 영화를 사랑해서 영화관에 사람들의 엉덩이가 들어앉는 것일지도 모른다. 상업 영화관도 축제 동안에는 쉽게 마주할 수 없던 영화들의 장으로 변모한다. 큰 스크린과 편안한 좌석이 반긴다. 영화를 보며 피로가 쌓인 몸을 녹진하게 받아줘 너무 편안한 나머지 상영 도중에 꾸벅꾸벅 졸게 되기도 한다. 졸았다고 죄책감을 느낄 이유는 없다. 와중에 파편적으로 파고든 이미지와 인상 몇 가지가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본 영화보다 오래 남을 때도 있다.

  어떤 영화일지 짐작도 가지 않는 영화는 시작부터 떨리게 한다. 어떤 영화는 한 풍경을 러닝타임 내내 조망만 하기도 하고, 어떤 영화는 사회 실태를 너무 적나라하게 드러내기도 한다. 기자가 이번 영화제에서 관람한 영화 중 하나인 다큐멘터리 《망각의 형태》는 헤어진 연인이 대화로 과거를 회상하는 것에서 시작해 점차 기억과 망각의 추상적인 은유로 뻗어갔다. 처음부터 어떤 설명도 없이 얼음 지대에 동그랗게 난 구멍에서 하염없이 그물만 건져 올리다가 다시 구멍 안으로 그물을 집어넣고, 끝에 가서는 뇌와 관련한 충격적인 이미지를 병치했다. 이런 예측불허의 영화를 볼 때면 처음엔 손에 하나도 내용이 잡히지 않다가도 점차 갈피를 잡아가고, 내용에서나 형식에서나 신선한 충격을 받아 크레딧이 올라가는 내내 심장이 두근댐을 느끼게 된다. 

사진 설명 시작. 좌석에서 바라보는 영화관 전경. 화면에는 영화제를 상징하는 J 마크가 띄워져 있다. 사진 설명 끝.
▲전주객사 영화관의 한 모습. 리클라이너관으로 쾌적했다.

  영화의 축제이니만큼 상영관도 예를 갖춘다. 상영은 정시에 시작하고 관내 조명은 크레딧이 다 올라가고 나서야 켜진다. 다음 영화를 위해 크레딧이 오르는 새에 자리를 뜨기도 하지만, 대개 암흑의 공간에서 퇴행 상태*로 빠져나오지 않기를 자처하고 앉아 있다. 조명이 탁 켜질 때면 어디선가부터 박수 소리가 시작돼 관 내 전체로 번진다. 한 영화에 대한 존중이자 함께하는 여운의 표현이다. GV가 예정된 경우 영화는 크레딧이 올라도 끝나지 않고 감독, 배우, 그리고 관객과의 대화 속에서 더 상영되는 것이나 다름없다. 상영관을 나서면서 들리는 곳곳의 생생한 관람 후기도 묘미다. ‘너무 어려워서 하나도 모르겠더라’ 같은 솔직한 고백이나 ‘한국에서 개봉 안 한대’ 같은 아쉬움 섞인 말이 들려온다. 비슷한 감상이라면 같은 생각을 했다는 동질감을, 다른 감상이더라도 같은 영화를 봤다는 동질감을 느낀다.

* 퇴행 상태: 프랑스 정신 분석 영화이론가인 장 루이 보드리는 영화관의 관객이 꿈이나 유아기처럼 일종의 퇴행 상태에 있다고 설명했다.

우리는 영화를 사랑하니까

  왜 우리가 사랑하는 것들은 축제가 될까. 매일이 축제 같을 수는 없다. 모든 영화가 좋을 수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때가 오면 도래지로 향하는 철새처럼 영화제로 떠나는 이들이 있다. 휴대전화 하나만으로 영화 몇백 편을 볼 수 있는 시대에 낯선 도시의 영화관에 틀어박히기를 택하는 이들이 있다. 분명 영화제에 영화를 보는 것 이상의 의미가 스며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작품은 어렵고 저 작품은 작품성이 아쉽니 하며 젠체하러 영화제를 향하는 것이 아니다. 《스타워즈》 OST 멜로디만 들어도 마음이 두근대서 입꼬리가 잔뜩 올라간 채 목적도 없이 길을 걷던 행렬 속 사람들처럼, 초당 24개의 이미지가 스쳐 간단 사실만으로도 좋아서 영화가 나를 어디로 이끌지 몰라도 일단 영화관에 들어앉게 되는 것이다.

  한 도시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스크린에 영화가 틀어지고 그것을 몇천 개의 눈동자가 바라본다. 중요한 것은 시선이 한데 모인다는 데에 있다. 같은 곳에서 영화를 보는 것에 더해 사람들은 같은 거리를 며칠간 거닐고 같은 음식점서 몇 번이고 식사한다. 이런 우연한 중첩이 축제 내내 이어진다. 그리고 시선이, 발자국이, 그리고 마음이 켜켜이 쌓인다. 영화로 향한 불특정 다수의 애정은 빔프로젝터처럼 쏘아지기보다는 스피커처럼 울린다. 영화제를 정처 없이 거니는 것만으로도 길거리서 흘러나온 음악을 귀에 담듯 영화에 애정 어린 마음을 온몸으로 듣게 된다. 영화제는 영화를 위하기보단 영화를 위하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라고나 할까.

  음악과 춤은 물론이고 과일이며 마을이며 물질성과 생명성을 가리지 않고 사랑이 모인 것은 축제의 장으로 향한다. 하나를 아끼고 좋아했던 각자의 마음이 한데 모였을 때 그 마음은 크게 울렁이며 퍼져나간다. 시공간과 방식, 형식을 가리지 않고 축제에 발을 들이면 감각은 확장하고 정동은 요동치기 시작한다. 심장 뜀을 느낄 만큼 들떴을 때뿐 아니라 심장 소리가 들릴 만큼 적막한 순간에도 그러하다. 그렇게 우리가 사랑하는 것들은 어쩔 도리 없이 축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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