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5월 4일, 용산미군기지 반환부지에 조성된 ‘용산어린이정원’이 임시 개방됐다. 작년 6월 중순 경 ‘용산공원’이라는 이름으로 시범 개방했던 부지와 같은 구역이다. 거센 반대 여론을 무릅쓰고 집무실을 용산으로 옮기며 용산 시대의 개막을 선언한 윤석열 대통령에게 이 공간은 어떤 의미일까.
윤석열 정부는 거듭 용산어린이정원의 공공성을 강조한다. 5월 4일, 개방 축사에서 윤 대통령은 “우리나라는 어린이들이 뛰놀 수 있는 넓은 잔디밭도 제대로 없다”며 반환부지를 어린이정원으로 조성한 배경을 밝혔다. 개방 후 열흘 동안 세 차례나 방문해 어린이들과 만나는 퍼포먼스도 벌였다. 국토교통부는 대통령실과 접한 용산어린이정원이 “명실상부한 국민 소통공간으로 자리매김할 것을 기대한다”고 밝혔다. 제왕적 대통령제를 벗어나 국민과 소통하겠다는, 집무실을 이전하며 내걸었던 야심찬 구호와도 일맥상통한다. 용산어린이정원은 정말 어린이를 위한, 국민과의 소통을 위한 공간으로서의 가치를 담아내고 있을까. 지난 5월 24일 기자가 방문해봤다.
입장부터 간단하지 않았다. 우선 내국인은 방문 6일, 외국인은 10일 전까지 사전 예약을 해야 한다. 입장 절차는 종합 안내 센터에서 진행되는데, 먼저 본인 명의 핸드폰으로 예약 확인 후 신분증을 제시했다. 카메라를 응시해 얼굴 인식도 거쳤다. 신분증의 진위 확인을 위한 절차다. 다음으로 소지품 검사가 이어졌다. 공항 보안검색대처럼 엑스레이를 활용한다. 기자의 텀블러를 열어 내용물을 확인하기도 했다. 언제든, 누구나 제약 없이 드나들 수 있는 여느 공원들과는 다른 모습이다. 한 정부 관계자는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대통령실이 인근에 있어서 입장 확인 절차를 철저하게 한다’고 밝혔다. 대통령실과 가깝다는 이유로 입장 시 삼엄한 경비를 통과해야 하는 이곳은 자유로운 소통의 공간이 될 수 있을까.
게다가 용산어린이정원 이용수칙에서는 정치적 활동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수칙을 어길 시 입장 제한 및 퇴장 조치를 취할 수 있다고도 명시돼 있다. 국가가 운영하는 정원에서 헌법이 기본적 권리로 보장하는 집회의 자유를 제한하는 처사다. 용산공원이 대통령실과 가깝긴 하지만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상 집회 금지 구역인 대통령 관저 100m 이내에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이 이용수칙으로 권력은 어떤 목소리를 내쫓으려 하는 걸까. 국민의 기본권 행사조차 막겠다는 곳에서 소통의 공간이라는 수사는 헛되다. 청와대에서 용산으로 장소는 바뀌었지만, 탈피하겠다던 제왕적 권위는 곳곳에 선명하다.
이곳은 왜 어린이정원이 되었나. 2021년 국민의 투표를 통해 결정된 이름 ‘용산공원’에 따르지 않고 어린이를 강조해 새로 이름 지은 것이 무색하게도, 어린이를 위한 시설이 많은 공간은 아니었다. 어린이 도서관이 있었지만 규모는 매우 작았고, 이를 제외하면 어린이 전용 축구장과 야구장 정도다. 어린이들이 뛰어놀기 좋다는 잔디밭에는 햇빛을 피할 그늘막도 없었다. 어린이의 존재감이 사라진 곳에 서 있는 건 위풍당당한 대통령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