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리를 잃어버린 도서관

독서 환경과 도서 정책을 살피다

‘책을 읽는 공간’이라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곳 중 하나가 도서관이다. 독서에 있어 도서관은 빠질 수 없는 요소다. 독서가 없으면 도서관도 없고, 도서관이 없으면 독서도 없다. 도서관이야말로 온전히 책을 위해 존재하는 공간이며 이곳에서 사람들은 책에 빠지는 경험을 한다.

그러나 매년 떨어져 가는 독서율과 함께 줄어드는 도서 대출량은 도서관의 존립을 위태롭게 한다. 책을 읽지 않는 사람만을 탓할 수 있을까. 어쩌면 책 읽는 공간이 제대로 마련되지 않아 책을 못 읽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우리 사회는 사람들이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을 제대로 마련하고 있나. 정부는 어떤 독서 정책을 추진하고 있을까. 우리나라의 독서 환경과 도서 정책을 살펴봤다.

책 읽는 법(法)

우리나라의 도서관법과 독서문화진흥법은 도서관 설치를 의무로 정하고 있다. 도서관법 제19조는 국가를 대표하는 도서관으로 국립중앙도서관을 둘 것을 규정한다. 제29조에서는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가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국공립 공공도서관을 설립하고 육성해야 한다고 언급한다. 중앙도서관뿐만 아니라 더 작은 지방 단위의 도서관을 설립해 많은 사람이 책을 근거리에서 접할 수 있는 기반을 제공하려는 의도에서다. 독서문화진흥법도 지방자치단체장이 지역주민의 독서 생활화에 필요한 독서 시설을 마련하고, 독서 여건을 조성하고 지원할 것을 당부한다. 그 일환으로 지자체장이 매년 1회 이상 독서 관련 행사를 개최하거나 독서 관련 기관 및 단체가 이를 개최하도록 지원할 의무가 명시돼있다. 도서관법은 도서관에 대한 접근 가능성을 넓히고, 독서문화진흥법은 국민의 도서관 접근 유인을 만든다. 책 읽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국가의 노력이다.


사법적인 부분에 더한 행정적 노력으로, 정부는 도서관에 관한 주요 사항을 수립하고 심의·조정하기 위해 대통령 소속의 국가도서관위원회를 운영하고 있다. 국가도서관위원회는 5년마다 ‘도서관 발전 종합계획’을 수립해 도서관 정책의 기본방향을 정한다. 이에 따라 중앙행정기관의 장과 각 지자체장은 매년 12월 말까지 ‘도서관 발전 연도별 시행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국가도서관위원회는 2019년 발표한 도서관 발전 종합계획에서 4가지 차원의 도서관 비전과 목표를 제시했다. 첫 번째 목표는 ‘개인의 가능성을 발견하는 도서관’으로, ▲시민의 힘을 키우는 문화서비스와 이용자 정보 접근 편의성 확대 ▲생애주기 맞춤형 도서관 서비스 강화를 계획했다. 이를 위해 2022년 전국 도서관은 1만 7천여 개의 인문·문화·예술·체험 프로그램을 증설했고, 전자책 22만 종도 추가로 구비했다. 두 번째는 ‘공동체의 역량을 키우는 도서관’으로 ▲분권형 도서관 운영체계 구축 ▲공동체 기억의 보존·공유·확산 ▲교류 협력의 플랫폼 기능 강화가 주요 내용이다. 특히 공동체 기억을 국가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국립중앙도서관은 한국 고문헌 통합관리를 시스템을 강화하고 국가 문헌을 더욱 포괄적으로 수집하고 있다.


도서관 발전 종합계획의 세 번째 비전은 ‘사회적 포용을 실천하는 도서관’이다. ▲정보 불평등 해소를 위한 적극적 정보복지 실현 ▲모두가 접근할 수 있는 도서관 조성을 위한 개방성 추구가 구체적 목표다. 이를 위해 2022년 기준 206개의 도서관이 특수환경 이용자를 위한 정보서비스를 제공하기로 했다. 마지막은 ‘미래를 여는 도서관 혁신’이다. ▲도서관 운영체계 질적 제고 ▲도서관 간 협력 체계 강화 ▲도서관 자원의 공유 기반 구축 ▲도서관 인프라 확대가 그 내용이다. 2022년 국가도서관위원회는 2020년 기준 4.5명인 공공도서관 1관당 정규직 사서 수를 4.8명으로 늘리고, 도서관 장서도 1천만 권 확충하겠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더 많은 이들이 독서 공간과 친해지고 도서관을 자주 찾을 수 있도록 정부는 법과 정책을 활용해 도서관을 세우고, 독서 공간을 정비하고 있다. 도서관에 대한 인식을 정비하고 구비 도서를 확대하는 것을 넘어 다양한 독서 지원 프로그램까지 진행하는 등 도서관은 끊임없이 변화를 거듭하는 중이다.

작지만 강한, 작은도서관


도서관의 접근성을 높이고 독서를 진흥하려는 정부의 노력이 무색할 만큼 도서관의 위기는 현재진행형이다. 국가도서관위원회의 도서관 발전 종합계획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도서관 이용자 수와 도서 대출량은 꾸준히 감소해왔다. 공공도서관 1관당 방문자 수는 2013년 331,813명에서 2017년 261,103명으로 약 7만 명 줄었고, 1관당 대출 도서 수는 같은 기간 151,313권에서 121,528권으로 줄었다. 이러한 감소세는 현재의 도서관 정책이 실질적인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올해 5월 발생한 마포중앙도서관과 마포구청 간 대립은 도서관의 후퇴를 여실히 보여준다. 마포중앙도서관은 개관 당시 자치구의 단일 도서관으로서 최대 규모였으며, 지하에 다양한 편의시설까지 입점해 주민들의 문화 공간으로서 기능해왔다. 또한 15개 도서관 간 상호대차 서비스를 시행해 주민들이 가까운 도서관에 없는 도서까지도 편하게 대출하고 반납할 수 있도록 돕는 등 이용 편의를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마포구청은 지난해 말 마포구 소재 ‘작은도서관’ 9곳을 폐쇄하고 독서실로 전환할 것과 도서관 예산의 약 3분의 1을 삭감할 것을 선언했다. 마포중앙도서관장 송경진 씨는 구의 조치에 반대하는 글을 페이스북에 게시했으나, 곧이어 송 씨가 직위를 해제당하고 징계 결과 파면되며 해당 사건은 더욱 주목받았다. 마포구는 송 씨의 징계 사유로 ‘성실·복종·품위유지 의무 위반’을 내세웠는데, 도서관 예산을 지키려는 노력을 위반 사항으로 간주해 파면한 것은 명백한 보복성 조치라는 비판이 거세다.

마포도서관의 예산 삭감의 배경에는 ‘도서관은 혈세를 낭비하는 곳’이라는 인식적 기반이 자리 잡고 있다. 도서관은 투입 예산에 비해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지 못하는 공간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2010년 문화체육관광부는 우리나라 공공도서관 서비스의 투자 대비 수익 값이 3.66배에 달한다고 밝혔다. 이는 실제 이용자에게 ‘도서관을 유료로 운영한다면 도서관 이용을 위해 얼마를 지불할 의사가 있는지’에 해당하는 지불의사액을 묻고, 그 금액에 기반해 경제적 가치를 측정하는 조건부가치평가법에 따라 산출한 결과다. 도서관의 가치를 수학적으로 매기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이 지표는 경제적 이익을 창출하지 못해 무용하다는 비판에 맞서 도서관이 얼마나 사회적으로 유효한 가치를 갖는지 보여준다.


도서관의 경제성에 대한 편견을 넘어 작지만 접근성 좋은 작은도서관과 같은 형태의 도서관을 확충할 필요가 있다. 작은도서관은 지방 자치 단체나 법인이 지역민에게 지식과 정보, 다양한 문화를 제공하기 위해 운영하는 도서관이다. 공공도서관보다 규모와 구비된 자료는 적은 편이지만, 그 가치는 공공도서관 못지않다. 빌 게이츠는 “지금의 나를 있게 한 것은 우리 마을의 작은 도서관이었다. 하버드 졸업장보다 중요한 것은 독서하는 습관이다”라는 말을 남긴 바 있다. 규모가 크지 않아도 동네의 가까운 도서관이 삶에서 매우 중요한 독서라는 행위를 할 수 있는 공간으로 기능한다는 것이다.

▲작은도서관의 모습 ⓒ용꿈꾸는작은도서관

작은도서관의 가장 큰 역할은 공공도서관이 차마 아우르지 못하는 시민들에게도 독서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작은도서관은 정보 및 문화 소외계층들이 가까운 거리에서 책을 빌려볼 수 있게 돕는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운영하는 ‘작은도서관 통합 홈페이지’에 따르면 우리나라에는 현재 7,495개의 작은도서관이 있다. 중요한 것은 각 지역에 설립된 작은도서관의 개수보다 도서관 1관당 인구수다. 1관당 인구수가 적을수록 지역 인구 규모에 상응하는 도서관이 확보돼 있고, 그만큼 시민들이 가까운 거리에서 쉽게 도서관을 찾을 수 있음을 의미한다. 전국 지자체 중 작은도서관 1관당 인구수가 가장 적은 곳은 4,409명인 광주광역시다.


1990년대부터 작은도서관은 지역 내 독서 환경 조성의 좋은 사례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강남구에서 공공기관의 유휴공간을 활용한 작은도서관이 동네 명소로 거듭난 것이 대표적이다. 이외에도 여러 지역에서 작은도서관은 독서 기회가 없는 주민을 상대로 무료 또는 실비로 책을 대출해주는 동시에 지역사회의 문화사랑방 구실을 해왔다. 국가기관은 200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작은도서관에 관심을 두고 운영하기 시작했고, 적은 재정을 투입해 결과물을 내기 좋은 사업이라는 장점 덕분에 2010년대부터는 지방자치단체장의 선거공약에도 자주 등장했다.


그러나 작은도서관도 위기를 맞았다. 대구광역시는 올해 작은도서관 265곳의 지원 예산을 전액 삭감했다. 작은도서관 한 곳당 들어가는 평균 100만 원의 지원금을 각 구·군에서 자체적으로 충당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서울특별시도 올해 작은도서관 지원 예산을 전액 삭감한 사실이 알려져 논란이 일었다. 한국작은도서관협회 정기원 이사장은 “지방자치단체 총예산의 0.001%도 되지 않는 예산을 없애거나 삭감하는 것이 맞냐”며 예산 삭감에 반발했다. 예산이 없으면 홍보도, 더 많은 장서 구매도 불가능하다. 결국 도서관을 찾는 발길이 줄어드는 결과로 이어진다.


작은도서관 운영에 대한 외부의 옹색한 행정도 문제지만, 질적 상향을 위한 내외부적 검토가 필요하단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작은도서관의 설립 조건은 간단하다. 자료를 1천 점 이상 소유하고 시설 33㎡ 이상의 면적에 서가, 컴퓨터 등 약간의 시설만 있으면 누구나 작은도서관을 설립할 수 있다. 정기원 이사장은 쉬운 설립 조건이 양날의 검이라며, “제대로 운영하지 못하면 이도저도 아닌 공간으로 남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말했다. 작은도서관 설립에 대한 명확한 조건이 없고, 도서관 시설을 개선하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작은도서관이 우후죽순 생겨나기만 하고 부실하게 운영되지 않도록 제도 보충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작은도서관은 자체적으로 실효성 있는 운영과 주민 접근성 확대를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올해 5월 창원특례시는 40곳의 작은도서관 운영진과 함께 ‘작지만 큰 존재, 작은도서관 워크숍’을 개최했다. 대전광역시 유성구에서도 같은 달 사립 작은도서관 운영자들을 대상으로 홍보역량 강화교육을 시행했다. 홍보 방안을 탐색하고, 주민들에게 작은도서관의 중요성과 역할을 알리기 위한 시도다. 작은도서관의 역할과 효용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기반으로, 지자체, 도서관, 그리고 개인이 작은도서관 활성화를 위해 힘을 모으고 있다.

아낌없이 주는 도서관


도서관의 또 다른 위기는 도서관을 ‘독서실’로 사용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도서관이 책만 읽어야 하는 공간은 아니기에 공부하는 공간으로 사용되는 것을 부정적으로만 바라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도서관은 사람들에게 문화를 향유하고 여럿이 한데 모여 소통할 공간 자체를 제공하는 의미도 지닌다. 도서관이 책을 읽는 것이 아닌 공부하기 위한 공간만으로 인식되는 것은 주객전도다.


독서실로 전락해버린 도서관은 그 본연의 가치를 잃어버린 것과 다름없다. 도서관법 제4조 2항 1목에 따르면 공공도서관은 ‘공중의 정보이용·독서활동·문화활동·평생학습을 주된 목적으로 하는 도서관’이다. 도서관이 단지 책을 쌓아두고 공부하는 곳이 아니라 주민들끼리 서로를 연결하고 돌보는 커뮤니티 허브의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도서관은 다양한 주민 모임과 문화 활동을 지원하며 공동체 형성을 돕고 있다. ‘공공도서관의 기능과 역할’을 제시한 사회학자 에릭 클린버그는 〈뉴욕타임스〉에서 ‘도서관은 사회적 인프라’이며 ‘문화적 자료들에 대한 자유로운 접근을 제공할 뿐 아니라 노인들의 친목, 바쁜 부모를 대신한 육아, 빈곤층, 노숙자 그리고 청소년을 위한 공공장소의 역할을 한다’고 언급했다.


도서관이 가진 본래의 기능으로 다시 돌아올 시간이다. 그리고 더 많은 이들이 ‘책으로 연결되는 공간’으로서의 도서관을 더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한발 나아갈 시간이다. 도서관은 도서 및 기타 자료를 보존하고 누구나 이를 활용할 수 있도록 제공하는 공간으로서 사회적이고 문화적인 가치를 지닌다. 모든 사람이 자신이 읽고 싶은 책을 전부 사서 읽을 수는 없기에 사람들은 도서관을 찾는다. 도서관법은 생활환경이 열악하고 재정 여력이 부족한 시·군·구에 우선적으로 도서관을 설립하도록 명시하고 있는데, 이는 경제적 격차로 인한 독서 기회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함이다.

▲스마트 도서관 ⓒ김가을 사진기자

최근에는 도서관 방문이 어려운 이들이 언제, 어디서나 도서관을 이용할 수 있도록 스마트 도서관 설치를 확대하는 추세다. 도서관에 직접 방문하지 않고도 무인 도서대출반납기를 이용해 책을 빌릴 수 있고, 장서도 베스트셀러와 도서관의 인기 대출 도서 목록을 반영해 정기적으로 교체되기 때문에 다양한 책을 접할 수 있다. 국립중앙도서관을 주축으로 975개의 전국 공공도서관과 161개의 대학도서관이 참여 중인 국가 상호대차 서비스 ‘책바다’도 도서 대출 활성화에 기여하고 있다. 책바다 서비스는 지역 개별 도서관의 자료 부족 문제를 해소해 예산과 인력의 한계에도 원하는 자료를 이용할 수 있도록 돕는다.


도서관의 또 다른 중요한 역할은 수많은 책 사이에서 이용자가 무엇을 읽을지 권해주는 ‘북 큐레이션’이다. 도서관 사서는 북 큐레이션 전문성을 갖춘 이들로, 도서관에 비치할 책을 선정하고 책의 내용과 그 가치를 상세히 안내할 수 있다. 국립중앙도서관 홈페이지의 ‘사서추천도서’ 메뉴에서는 ‘책과 함께 생활하는 현장 사서가 주제 분야별 및 테마별 좋은 책을 소개합니다.’라는 문구와 함께 문학, 인문과학, 사회과학, 자연과학 등 여러 분야의 책을 찾아볼 수 있다. 서울도서관도 매달 다양한 주제로 사서 추천 도서를 소개하고 있다. 올해 5월에는 ‘그럼에도, 사랑’을 주제로 사랑에 관한 여러 도서가 추천 목록에 이름을 올렸다. 도서관의 큐레이션 기능은 도서관을 책을 빌리기만 하는 공간을 넘어 이용객들이 사서, 큐레이터와 상호작용하는 교류의 공간으로 만든다.

가고 싶은 공간, 읽고 싶은 공간

도서관에 대한 이해와 관심을 높이고 도서관 이용을 촉진하기 위해 제정된 ‘도서관의 날’이 올해 4월 12일 첫 법정기념일을 맞았다. 서울 국립중앙도서관과 광화문광장에서는 2023 도서관의 날을 기념하기 위한 제1회 도서관의 날 기념식과 도서관 캠프가 진행됐다. 기념식에서는 도서관의 날 선언문을 낭독하며 도서관의 비전과 목표, 핵심 가치와 전략을 되새겼다. 도서관 캠프에서는 국립중앙도서관의 디지털 콘텐츠인 ‘실감서재’와 같은 전시와 공연이 진행됐고, 시민들은 직접 오디오북을 만들며 행사를 즐겼다.


이렇게 즐거운 축제의 모습처럼 도서관은 자꾸만 가고 싶고 책을 읽고 싶은 공간이 돼야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많은 도서관은 책이 주는 무거운 이미지와 함께 ‘책을 읽는’ 딱딱하고 삭막한 공간이라는 인상을 준다. 각 도서관이 자체적으로 시행하는 ‘도서관 인식 조사’에서는 도서관이 좁거나 시설의 노화 정도가 심하다는 아쉬움과 독서 공간이 다양했으면 좋겠다는 이용자들의 요구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는 도서관 이용자들이 독서 환경을 중요하게 생각하면서도 지금의 도서관 풍경이 공간에 대한, 나아가 독서 자체에 대한 흥미를 떨어뜨리고 있음을 보여준다. 질 좋은 장서를 구비하는 것을 넘어 장서를 내보일 공간을 보기 좋게 조성하는 것도 도서관 접근성을 높이는 데 중요하게 작용한다.


도서관이 방문하고 싶은 ‘복합 문화 공간’으로 조성된 대표적인 사례를 독일에서 찾을 수 있다. 독일의 도서관은 마치 북카페 같다. 작은 놀이터처럼 디자인된 구역, 방해받지 않을 수 있는 1인 열람실 등 이용객은 다양한 공간 중 자신에게 맞는 독서 환경을 선택할 수 있다.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고, 토론까지 할 수 있는 공간으로서의 독일 도서관은 주로 조용히 책을 읽거나 공부하는 우리나라 도서관의 모습과 대비된다. 독일인의 연간 독서율은 81.1%로, OECD 평균 독서율인 76.5%에도 미치지 못하는 우리나라의 독서율에 비하면 매우 높다. 독일의 도서관 1관당 인구수 또한 우리나라보다 5배 적은 9,500명으로, 다양한 공간을 가진 도서관이 가까운 거리에 위치해 끊임없이 주민을 이끈다. 우리나라 도서관의 경우 조용한 독서 공간은 이미 조성돼 있으므로, 도서관이 독서문화의 중심이자 사람들의 발걸음이 닿는 열린 공간으로 거듭나기 위한 새로운 시도가 필요하다.

▲내를 건너서 숲으로 도서관 ⓒ조진만건축사사무소

기존의 딱딱한 인식에서 벗어나 가고 싶은, 책을 읽고 싶은 공간으로 탄생한 도서관들이 있다. 서울 은평구에 위치한 ‘내를 건너서 숲으로 도서관’은 공공도서관의 이미지 변신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윤동주 시인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세워진 도서관인 만큼 도서관 곳곳에서 시인의 숨결을 느낄 수 있다. 또한 다양한 독서 환경을 제공하는 것이 특징인데, 편안한 소파 같은 의자부터 계단식 의자까지 기호에 맞게 책을 읽을 자리를 택할 수 있으며 개방감, 계단과 천정의 변화를 활용한 다채로운 구성, 나무가 보이는 창이 자유로운 분위기를 형성한다. 이용자들은 모여서 공부하는 분위기가 아닌 책을 보는 공간으로 구성돼 있다는 점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기존의 삭막한 도서관과 달리 주변의 자연과 도서관 공간이 물 흐르듯 이어져 안과 밖의 구분이 뚜렷하지 않다는 것이 특히 흥미를 끌었고, 이것이 독서의 원동력으로 이어졌다는 평가다.

▲구산동도서관마을 ⓒ디자인그룹오즈

기존 도서관의 이미지를 탈피한 또 다른 사례인 은평구 구립 ‘구산동도서관마을’은 건축계에서도 화제였다. 단독주택 5채와 연립주택 3채를 활용해 도서관을 만들었는데, 기존 건물의 외관과 조직 일부를 살려낸 것이 도시재생을 실천한 좋은 사례로 주목받은 것이다. 도서관 내부를 걸으면 구산동도서관마을이라는 이름처럼 마치 동네 골목을 걷는 기분이 든다. 도시문화, 페미니즘, 연극, 인디영화 등 다양한 주제의 주민 참여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상주 작가 지원사업을 운영하며 문학이 지역주민과 창작자를 만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한다는 점에서도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도서관 내의 공간을 활용하는 청소년 동아리도 활발하게 운영하고 있다. 구산동도서관마을은 어린아이부터 청소년, 성인, 노인까지 전 세대가 함께하는 진정한 커뮤니티 허브로 거듭났다.

▲책읽는 서울광장 ⓒ김가을 사진기자

도서관 접근성을 높이기 위한 공공의 노력도 돋보인다. 올해 4월 23일 개장한 ‘광화문 책마당’과 ‘책읽는 서울광장’은 시민에게 안전하고 편안하며 자유로운 야외도서관을 제공하기 위해 기획됐다. 〈news1〉의 5월 22일 보도에 따르면, 운영 2주 만에 책읽는 서울광장에 7만여 명이, 광화문 책마당에는 5만여 명이 방문했다. 서울야외도서관 홈페이지 회원 8천 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두 곳 모두 방문했다고 답한 31.7%의 시민 중 88.56%는 1권 이상의 책을, 14%는 3권 이상의 책을 읽었다고 답했다. 야외도서관이 시민들에게 책을 접할 기회를 늘리고 독서량 증가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이다.



도서관 이용을 장려하기 위한 다방면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 효과는 아직 기대만큼 나타나지 않고 있다. 왜 사람들이 도서관을 찾지 않는지, 그 이유가 공간에 있지는 않은지 고민해야 할 때다. 지역사회 공동체가 함께하는 장소로서 도서관의 진짜 공간성을 되찾고, 사람들이 도서관에 방문하는 계기를 만드는 것은 결국 우리 모두의 몫이다.


정부는 더 많은 이들에게 독서할 편안한 장소를 제공해야 한다. 구체적으로, 작은도서관과 공공도서관의 실효성 있는 운영을 위해 충분한 재정 지원과 운영 구조 검토, 공간 점검 등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도서관 또한 정부의 지원을 바탕으로 더 나은 독서 환경을 조성하고 독서 지원 프로그램과 문화 행사를 기획하는 등 도서관으로 사람들의 발길을 끌 수 있도록 다양한 시도를 이어가야 한다.


우리가 도서관만이 가진 가치를 인식하지 못한다면 그리고 도서관이 그 기능을 온전히 발휘하지 못한다면, 도서관은 발길이 닿지 않는 그냥 ‘책 보관소’가 될지도 모른다. 변화가 나타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릴 수도 있다. 그러나 더 많은 이들이 더 좋은 환경에서 독서하기 위해서는 도서관이 필요하므로, 그리고 도서관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독서하는 이들이 필요하므로 지역사회가 함께 제자리를 찾은 도서관에 모여 독서하고 교류하는 미래를 꿈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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