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호에선 저도 노래 한 곡 소개하려 합니다.

  “안녕 안녕 안녕 손을 흔들며… 민들레 민들레처럼 돌아오지 않아요 민들레처럼… 나 옛날엔 사랑을 믿었지만 지금은 알아요 믿지 않아요…”

  1996년 발매된 진미령 씨의 《하얀 민들레》입니다. 이 노래를 알게 된 지 10년 정도 됐나요. 문득 공기는 차갑고 유독 혼자인 것만 같은 밤이면 아련한 노랫말이 떠올라 흥얼거리곤 했습니다. 정확한 가사가 ‘나는 나는 사랑을 믿었지만’이 아니라 ‘나 옛날엔 사랑을 믿었지만’인 줄은 글을 쓰기 며칠 전에 알았습니다. 글쓰기 전에 감상에 좀 젖고자 오랜만에 다시 찾았습니다. 여러 가수들이 다시 부른 명곡이지만, 《불후의 명곡》 작곡가 유승엽 편에서 유리상자 이세준 씨가 부른 버전이 가장 좋다고 생각합니다. 이세준 씨의 얇고 청순한 목소리와 노랫말의 힘을 빌리고자 했는데, 방송 영상도, 공식 음원도 다 내려가고 없더군요.

  듣고 싶은 노래 하나 못 듣는 것도 이렇게 빈정이 상하는데, 생의 핵을 이루는 것이 스러져가는 걸 보는 사람들의 심정은 어떨까요.

  편집장은 모든 원고를 봅니다. 자연히 한 호에 실릴 글들을 엮어 생각하게 돼있습니다. 이번 호 기사들은 위태로운 것을 꿋꿋이 지켜내려는 사람들의 이야기들로 보였습니다. LED 액정 화면이 뿜어내는 눈부신 빛에 뒤안길로 밀려나는 책, 낡고 아무도 찾지 않는다며 허물어지려는 극장, 인간답게 살 세상 좀 만들라는 외침.

  사랑 가득한 목소리들인데, 한편으로는 백날 외쳐도 귓등으로도 들어지지 않는 목소리들을 담은 글들입니다. 꼭 이럴 때 들리는 대로 흥얼거리던 노랫말이 입에 오릅니다. “나는 나는 사랑을 믿었지만…” 왠지 울적하고 처집니다. 저 홀로 그런 건지, 글에 등장하는 사람도 그럴지, 글을 쓴 사람도 그럴지는 모르지만… 쓸쓸하고 가련합니다.

  무언가 자꾸 잃어버리다 보면 말입니다… 생기를 잃고, 분함을 잃고, 울컥 차오르는 반항심을 잃고, 희망을 잃습니다. 어떻게든 지켜보려 애썼는데 결국 잃어버리면, 더 아프고 슬픕니다. 터질 것 같은 가슴의 통증이 몇 달 몇 년을 갑니다. 팽팽히 잡고 있던 줄이 살을 거세게 할퀴며 빠져나갔을 때, 꼭 쥐고 있던 손바닥이 잔뜩 까져 얼마나 쓰라린지…. 그렇게 자꾸 잃어버리다 보면 그냥 손 틈새로 쉬이 흘려보내버리게 됩니다. 붙잡을 수도 없는데 다치지라도 말겠다고. 그런 생각으로 더 이상 희망조차 갖지 않고 들끓는 감정까지 무시하고 처져 있는 것은… 사랑을 잃은 것이지요.

  사랑하지 않고 산지 좀 오래 돼서, 어울리지 않는 사랑 타령에 저를 아시는 분들이 글을 보고 좀 놀라실지도 모르겠습니다. 한데요, 타고 나길 “사랑이 밥 먹여주냐?”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저는 사랑을 믿지 않는다 말하는 사람들이 사실 사랑이 보여줄 기적을 가장 소망하는 이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그렇습니다.

  아득했던 세상에 대한 사랑을 잃게 된 건, 제 사랑이 자꾸 무너지는 경험을 해섭니다. 지켜보려 했는데 많이 다쳤습니다. 그러다보니 되도록 사랑하지 말고, 맘 주지 말고, 가능한 빨리 발 뺄 수 있도록 채비하라고 되뇌며 살게 됐습니다. 얼마나 비겁하고 바보 같은지…. 사랑이란 행위는 잘못일 수가 없는데, 몇 번의 엔딩이 쓰라렸다고 이젠 더 이상 사랑하지도 않겠다니….

  용기를 내서 한 번 물어봅니다. 그렇게 포기해버렸던 사랑이, 정말 엔딩을 맞긴 했냐고. 좀 더 뒤에 결말을 내볼 수는 없었냐고. 사랑을 상징하는, 그리고 생명을 상징하는 심장은 뛰는 한 잔뜩 힘을 줘 쪼그라들었다가 힘을 빼 부풀기를 반복합니다. 파형도 위로, 아래로 그려지기를 반복합니다. 네 사랑이, 네가 사랑하던 것의 박동이 더 이상 물결치지 않고 정말 수평선을 그었냐고 물어봅니다. 잠깐 낮아진 혈압을 죽음으로 생각해 더 뛸 수 없다고. 맘대로 생을 빼앗아 버리진 않았냐고 물어봅니다. 잠깐만 기다려봤다면, 버텨봤다면, 어쩌면….

  좁아지는 파형의 크기를 넓히려 두 손을 깍지를 꽉 끼고 압박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지치지 않고 생명을 공급하려는 힘을 존경합니다. 당신들의 사랑이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감히 누가 그렇게 말을 합니까? 돌아오지 않는 홀씨를 날린다는 하얀 민들레 말입니다, 뿌리 뽑히지 않고 그 홀씨 매년 두둥실 띄웁니다. 비겁한 사람의 말이지만, 여러분의 사랑이 죽으려는 제 심장도 압박합니다. 여러분이 쉼 없이 짓누르는 덕에 심장이 둥, 둥, 뜁니다. 희망을 품기보단 여러분에게 걸기만 하는 정도로 약해졌지만… 나는 사실 사랑을 믿습니다. 제 박동이 가슴에 댄 손에 전해져, 부디 저보다 깊이 사랑을 믿는 분들께서는 사랑을 의심하게 되는 일이 없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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