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각정원
‘대림동 여경’을 기억하는가. 2019년 5월, 그녀의 영상이 인터넷 커뮤니티를 뜨겁게 달군 적이 있었다. 영상에는 피의자를 제압하고 있는 남성 경찰과 시민에게 수갑을 채우라고 요구하는 여성 경찰이 등장한다. 해당 영상을 접한 어떤 이들은 무능한 여성 경찰은 필요 없다며 여성 경찰을 없애자는 일명 ‘여경 무용론’을 주장했다.
그녀는 실제로 무능했는가. 그렇지 않다. 사건 당사자인 이선영 경관은 “나는 도망치지 않았고 시민에게 수갑을 채우라고 지시한 적도 없다”고 분명하게 말한다. 영상 속 대화는 사건 현장에 나선 경찰관 간의 일반적인 대화였다. 남성 경찰이 체포 과정에서 수갑을 채우냐고 물었고, 이 경관은 채우라고 답했을 뿐이다. 이 경관은 대응 과정에서 피의자를 무릎으로 눌러 제압하기도 하는 등 매뉴얼에 따른 적절한 대처를 했다.
‘여경 무용론’을 펼치던 이들은 자신들의 편견을 정당화하기 위해 한 경찰을 무능한 여성으로 전락시켰다. 그들의 세계에서 여성 경찰은 무능해야만 했기에, 정당한 공무 집행의 현장을 한껏 왜곡하고 꾸며낸 것이다. 이 사건은 심지어 대림동에서 일어나지도 않았다. 언론은 사건을 더 자극적으로 보이도록 하기 위함인지 경찰 측의 정정 요청에도 ‘대림동 여경’이라는 표현을 고집했다.
여성 경찰이 마주해 온 여성혐오적 편견과 멸시의 순간은 이 사건 외에도 수없이 많았다. 『여성, 경찰하는 마음』은 여성 경찰에 가해지는 혐오와 그들이 혐오에 대응하는 방법을 조명한다. 이선영 경관을 포함한 여성 경찰 23명이 31편의 글을 써 여성 경찰이 놓인 현실을 고발한다.
이수진 경비교통과장은 경찰 조직 내에서 여성 경찰의 존재 자체를 꺼리는 현실을 폭로한다. 그녀가 처음 경비과에 지원했을 때, 담당자는 경비과가 남자들만 근무하는 부서라는 이유로 지원서를 무시했다. 이 과장은 당시 경비과 과장에게 직접 찾아가는 수고를 들여 겨우 경비과에 들어갈 수 있었다. 이후 그녀는 열심히 노력해 경비계장과 경비과장까지 올랐다.
이비현 경제팀 경관은 업무 중 만나게 되는 사람들이 자신을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무시했던 기억을 떠올린다. 유독 이 경관에게만 비협조적으로 대하던 민원인, 피의자, 또 동료들. 한 피의자는 그녀에게 조사를 받던 중 “(나이가 어리셔서) 아직 잘 모르실 것 같은데, 제가 책 추천해 드릴게요”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 경관은 이런 멸시에 대응하기 위해 ‘쌈닭’이 됐다고 말한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무시당하지 않기 위해 더 남성적으로 변하는 것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전지혜 경찰청 스토킹정책계장은 남성 경찰들의 배려가 오히려 차별로 다가왔던 경험을 소개한다. 지구대로 인계된 한 주취 소란자가 전 계장에게 욕설을 한 적이 있었다. 이는 평소 관련 업무에서 자주 발생하는 일이기에 전 계장은 별 생각 없이 한 귀로 흘려버렸다. 하지만, 평소와 달리 남성 동료들은 전 계장을 위로하며 그녀를 피해자로 한 진술조서를 작성했다. 그녀는 자신이 동료들에게 경찰이 아닌 보호가 필요한 대상으로 취급된 상황에 큰 불편함을 느꼈다. 동료들의 행동이 일부러 전 계장을 배제하고 차별하려는 악의였을 리 없기에 상황은 더욱 씁쓸하게 다가왔다.
이렇게 여성은 경찰에 적합하지 않다는 인식이 조직 내부부터 사회 전체까지 널리 퍼져 있는 현실에서, 인터넷의 ‘여경 혐오’ 여론은 여성 경찰에게 더 큰 짐을 부과했다. 이선영 경관은 남성 경찰 한 사람의 잘못은 그 개인만의 문제로 끝나지만, 여성 경찰 한 사람은 무엇을 하든 곧 여성 경찰 전체를 대표하는 것으로 여겨지는 게 현실이라 말한다. 이 경관은 “교통사고 현장 조치 후 인도에 잠깐 서 있을 때조차 여경 혐오자들에게 목격돼 대림동 여경처럼 되는 건 아닌지 사방을 돌아본다”고 말했던 동료 여성 경찰을 언급하며, 여경 혐오가 여성 경찰을 감시하고 위축시키는 현실을 지적한다.
문제의 핵심은 경찰 조직의 남성 중심성과 이로부터 비롯된 차별과 배제다. 오랜 시간 경찰은 남성만의 직업이었기 때문에, 경찰의 표준은 늘 남성이었다. ‘얼마나 유능한 경찰인가’를 판단하는 기준도 곧 ‘얼마나 남성적인가’였다. 이런 조직문화 속에서 여성 경찰은 무능이라는 편견에서 벗어나기 위해 “나는 남성 경찰처럼 업무를 수행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도록 요구받는다. 조직 내에서 ‘진짜 경찰’로 인정받기 위해 유능한 경찰은 남성적이라는 편견에 가담해야 하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여경 혐오의 이유로 여성 경찰들의 노력 부족을 지목하며 여경 개인에게 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책임을 전가하는 것은 옳지 않다.
여성 경찰을 대상으로 한 혐오를 없애기 위해서는 남성으로 상정돼 온 경찰의 표준을 바꾸고 경찰 내의 뿌리 깊은 남성주의적 문화를 없애는 것이 먼저다. 이를 위해서는 경찰 조직을 넘어 사회 구성원 모두의 연대가 필요하다. 이선영 경관이 용기를 내 왜곡된 정보와 편견을 딛고 진상을 알리려 노력하지 않았다면 여경 혐오 여론의 심각성이 이렇게 공론화될 수 있었을까. 『여경, 경찰하는 마음』 속 여성 경찰들이 사명과 긍지로 내는 목소리에 더 많은 연대의식과 지지가 필요하다. 혐오와 싸우는 여정은 아직 갈 길이 멀지만, 언제나 여성 경찰의 자긍심이, 우리의 연대가, 그들의 혐오보다 강하다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