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곤의 문제, 즉 삶을 취약하게 만드는 각종 위협과 인간다운 삶을 벅차게 하는 수많은 위기는 오랫동안 이 도시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가난을 이유로 사람들이 자꾸만 밀려나고, 쓰러지며, 빼앗기고, 사라진다. 모두와 단단하게 연결돼 살아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가난하더라도 위험하지는 않게, 빈곤하더라도 아프지는 않게 살아가는 세상, 누구도 가난 때문에 죽지 않는 세상은 정말 불가능할까. 빈곤 없는 세상으로 가는 길, 반빈곤의 발걸음을 따라가 보자. 〈서울대저널〉이 빈곤사회연대 김윤영 활동가와 이재임 활동가에게 반빈곤운동에 관해 물었다.

빈곤사회연대의 소개를 부탁드린다. 어떤 사람들이 모여 무슨 일을 하는 곳인가.
재 임 빈곤사회연대를 소개할 때는 늘 ‘빈곤 없는 세상은 가능하다. 빈곤은 어쩔 수 없는 것이 아니다’라는 믿음으로 투쟁하는 단체라고 소개하곤 한다. 빈곤사회연대는 철거민, 노점상, 홈리스, 빈민 대중들이 함께 모여 빈곤을 만들어내는 구조 자체에 저항하는 연대체다. 기초생활보장제도개정운동이나 주거권 투쟁 등 빈민들에 대한 차별과 권리 침해에 대응하고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서 빈곤이란 무엇인가.
윤 영 당장 먹고 사는 일이 현저히 어려워야만 가난이라고 인식되는 사회적 경향이 있지만, 빈곤은 소득수준만으로 파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 사회가 빈곤을 만들어내는 방식, 사람들이 돈을 벌게 하는 방식과 연관해 총체적으로 이해해야 한다. 그 해결책 역시 소득을 보충하기 위한 복지제도를 확대하려는 접근이 아니라 빈곤을 발생시키는 구조 자체를 문제 삼는 것에서 시작된다. 누군가는 가난해질 수밖에 없는 고도화된 경쟁의 구도, 탈락자들에게 너무 많은 것들을 짐 지우는 행태, 소수가 대부분의 자원을 독점하는 문제를 살펴야 한다. 이 겹겹의 사회 현실들을 동시에 바라보는 것이 빈곤에 대한 보다 바람직한 접근과 이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반빈곤운동이란.
윤 영 빈곤사회연대를 처음 꾸리던 선배들의 정의에 따르면 반빈곤운동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필연적으로 빈곤이 발생한다는 것을 인지하되,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체념하지 않는 일’이다. 가난한 이들의 삶에 필요한 변화를 하나하나 달성하고, 우리 사회의 빈곤을 만들어내는 경로들을 밝혀내며, 그 경로 위에 있는 사람들의 새로운 연대와 연합을 꾸려나가는 것이다.
매주 금요일마다 아웃리치 활동을 한다고. 아웃리치 활동에선 어떤 장면들을 만나나?
재 임 아웃리치 활동은 인권감시활동인데, 금요일마다 ‘홈리스행동’과 함께 팀을 꾸려 서울역, 남대문, 용산역 일대에 나가 홈리스들을 만난다. 거리 홈리스 인권침해 현장을 감시하거나, 필요한 복지제도를 연결하거나, 일상적인 대화나 상담을 하는 일이다. 내가 속한 팀은 서울역 중앙지하도 팀인데, 최근엔 서울역 중앙지하도와 연결된 서울스퀘어 건물의 경비보안직원이 서울역 중앙지하도의 홈리스들을 내쫓은 일이 있어 관련 대응 활동을 했다. 건물과 곧장 연결돼 있긴 하지만 서울역 중앙지하도 구역은 중구청이 관리하는 구역으로 엄연한 공공시설물이다. 공공시설물을 이용할 수밖에 없는 주거 박탈 상태의 홈리스들을 민간기업 소속 직원들이 쫓아낸 것이다. 서울에는 서울역을 비롯해 상업 시설과 공공시설이 경계가 모호하게 섞여 있는 곳이 많다. 이런 공간 구획이 홈리스들을 어떻게 취약하게 하는지, 무엇을 바꿔내야 하는지는 앞으로도 계속 얘기해나가야 할 것 같다.
빈곤사회연대 사무실이 자리한 이곳 ‘아랫마을’에 관한 이야기도 들어보고 싶다. 어떤 공간인가?
재 임 인근에 동자동 쪽방촌과 양동 쪽방촌이 있는데, 주거 공간이 너무 덥거나 열악해 낮 시간을 보내기 어려우신 그곳 주민들이나 거리 홈리스 분들이 여기서 TV도 보시고 컴퓨터도 쓰시고 식사도 하신다. 홈리스 야학의 교실이기도 해 밤에는 야학이 열린다. 빈곤사회연대를 비롯해 반빈곤운동을 이어가는 각 단체의 사무실로도 쓰이고. 벽을 다 열 수 있는 구조라 큰 강당을 만들어 행사도 한다.

아랫마을도 청파동으로 작년에 이사를 왔다. 원래 있던 곳에서 떠나야 했던 것은 이 도시의 고질적인 주택 문제 때문 같은데.
윤 영 원래 아랫마을은 원효로에 있었는데 그 일대의 재개발이 결정되며 계약 종료를 통보받았다. 우리가 떠나온 그 집은 아직 비어있다. 도시에 그렇게 빈집이 늘어나는 것은 좋지 않다. 유럽의 경우 도시에 빈집이 늘어나는 것을 사회 공공성의 침해로 바라본다. 집이 사유물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그에 비해 한국에선 개발이 일어날 것 같으면 세입자를 얼른 내쫓아버리고 개발을 기다리며 집을 비워두는 일이 너무 손쉽게 일어난다. 이 상황이 자연스럽게 여겨지고 아무도 이에 대한 사회적 통제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땅과 집을 철저하게 사적 소유물로 생각하는 탓이다. 집에 대한 사람들의 욕망이 이렇게나 배타적으로 구성된 현실에서 집의 문제는 한국 사회에서 불평등을 양산하고, 심화시키는 경로 그 자체다.
반빈곤운동에 있어 인권으로서의 주거권이 중요한 이유가 와닿는 것 같다.
윤 영 누군가는 자신의 낮은 소득수준이나 집이 없는 상황 자체를 훨씬 끔찍하게 경험하고 있다. 주거문제 자체가 빈곤과 불평등으로 이어지는 상황에서 주거권은 인권의 문제일 수밖에 없다. 다만 사람들이 기본적으로 주거권을 자신이 가진 권리라고 생각하지 못하는 것 같다. 예를 들어 사람들이 2년 임대차 계약을 맺고 2년이 지난 뒤, 집주인이 나가라고 하거나 월세를 엄청나게 올릴 것을 쉽게 예상하고 수긍하며 다음 살 집을 찾는 것을 당연히 여긴다. 그것이 집주인에게도 자신에게도 선택의 문제인 것으로 생각하고. 좀 더 권리의 문제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기초생활보장제도에 관해 묻고 싶다. 기초생활보장법(이하 기초법) 개정에도 목소리 내고 있는데. 기초법은 반빈곤운동의 성취이기도 하지만 한계이기도 하다고.
윤 영 기초법은 사회권을 최초로 제도화한 법이다. 모든 사람은 사회보장을 받을 권리가 있고 그것을 국가에 청구할 권리가 있다. 국가는 청구를 수행할 의무가 있고. 하지만 그간 이 제도는 그 의의에 걸맞게 인권 중심의 관점으로 충분한 급여액과 합리적인 선정기준을 가지고 운영되진 못했다. 그 간극만큼이 이 제도의 한계다. 기초법 개정 운동에는 크게 두 가지 목표의식이 있다. 하나는 선정기준을 대폭 완화해 더 많은 사람을 제도 안으로 진입하게 하는 것, 또 하나는 수급권자로 사는 삶의 불안정성을 개선하는 것이다.
수급권자의 삶을 불안정하게 만드는 요소로는, 우선 제도가 너무 어렵다는 점이 있다. 모르니 신청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하고, 알더라도 자신이 대상자인지 아닌지, 선정될 것인지 안 될 것인지를 모르고 신청해야 한다. 스스로 제도를 어떻게 활용하고 통제할지 모르는 상황을 권리라 말할 순 없다. 또 지금은 정부의 성격이 다소 보수적인데, 이런 정부에선 부정수급 담론이 강화되는 경향이 있다. 수급권자에 대한 조사도 자주, 강도 높게 이뤄진다. 제도 바깥으로 언제든 내쫓을 수 있다는 시그널이다. 서류상의 숫자들과 실제 나의 삶 사이에서 계속해서 무언가 입증하고 설명할 것을 요구받는 과정들은 수급권자의 지위를 위태롭게 만든다. 부정수급 담론은 그런 점에서 무척 악독하다. 급여를 받는 현재의 상태가 사회적으로 바람직하지 않다는 인식이 만연한 것 역시 수급권자의 삶을 불안정하게 만든다.
재 임 올해 초 난방비가 크게 올랐을 때 언론에서 연락을 많이 받았다. 각종 복지제도에 통달한 전문 기자분들이 ‘난방비 지원을 비롯해 이런저런 제도가 있는데 대상자분들이 왜 신청을 안 하시나요?’라는 취지의 질문을 하시더라. 제도가 복잡하다 보니 겉으로 알려진 내용과 구체사항 사이 간극이 큰 경우가 많다. 신청하려 해도 대상자가 아니라는 말을 듣거나 탈락하는 경우가 자주 있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자신이 대상자에 해당하는 제도에 대해서도 신청을 머뭇거리고 이내 단념하게 된다. ‘제도가 있는데도 이용을 안 한다’는 프레임은 사실 어떤 악순환의 모습이다.
현 정부의 빈곤 및 복지 정책 방향성에 있어 특히 우려되는 부분이 있나.
윤 영 전반적인 ‘공공성의 후퇴’가 우려된다. 사람들이 실업급여를 수령해 명품 가방을 산다는 편견 깃든 말들이 정부의 스피커에서 들려오고, 사회보험부터 시작해 온갖 공적 영역에서 민영화 시도가 나타난다. 이런 변화들은 최종적으로 사회 전체의 빈곤이라는 새로운 부담감을 만들어낼 수 있다. 가난한 사람들이 견뎌야 하는 것들이 늘어나는 것이다. 이번 정부에서 생계급여가 다소 오른 것은 사실이고 그것이 크게 홍보되기도 했지만, 자활 일자리 개수나 예산은 철저하게 통제되고 있다. 공공임대주택 예산은 20% 삭감됐다.
빈곤사회연대는 기후정의행진에 참여하는 등 기후위기 역시 빈곤의 문제로 바라봐야 함을 피력하고 있다. 오늘날 기후위기와 빈곤은 어떻게 중첩되고 있나.
재 임 기후위기 시대 불평등은 열악한 집에서 나타나고 있다. 너무 더워진 여름엔 머무르기 어렵도록 뜨겁고, 너무 추워진 겨울엔 얼음이 얼고 변기가 터진다. 냉난방비는 한없이 비싸진다. 올해는 ‘오래살자, 공공임대’란 구호를 갖고 기후정의행진에 참여할 예정이다. ‘오래살자’가 포인트다. 공공이 보장하는 안전한 집들을 늘리고, 그곳에서 오랫동안 안전하게 거주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려 한다.
또 공공임대주택을 설계하고 짓는 과정에서 주민들의 의견이 들어가야 하지 않나. 거기서 기후정의까지 고려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건물의 에너지원부터 하나씩 함께 고민해나가는 것이다.
이재임 활동가가 필진으로 참여한 『그여자가방에들어가신다』(2023)가 출간됐다. 여성 홈리스에 관한 이야기인데, 여성 홈리스의 삶과 생애에는 어떤 이야기들이 있었는지.
재 임 한국의 홈리스 문제를 다루는 여러 논문이나 책에는 남성 홈리스들은 IMF 시기의 부도, 부채, 실직 같은 경제적 요인으로 홈리스가 되고 여성 홈리스들은 가정해체나 이혼, 가정폭력이나 성폭력 같은 이른바 비경제적 요인으로 인해 홈리스가 된다는 설명이 많다. 하지만 가족해체가 어떻게 순수하게 비경제적인 요인이겠나. 결국은 한 뿌리다. 경제적·비경제적 요인을 떠나, 홈리스가 된다는 것은 무언가를 박탈당한 상태가 되는 것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안정적인 공간을 박탈당하기 때문에 홈리스가 된다.
윤 영 여성 홈리스들은 사회 구조적 문제들과는 관계없는 개인적 사유로 홈리스가 됐다고 여겨지며 홈리스 정책에서 여성이 홈리스가 되는 경로도, 그에 맞는 지원정책도 전혀 고려되지 않아 왔다. 여성 홈리스는 고정적인 자리에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것이 생존의 위협이기에 ‘비가시화’를 생존전략으로 택한다. 밀집 지역에 덜 머무르고, 지하주차장이나 기도원, 피시방, 찜질방 등 최소한 자신의 몸을 숨길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하려고 한다. 그렇지 않을 때는 늘 이동한다. 어느 거리에 몇 명의 홈리스가 있는지를 일제히 같은 시간에 조사하는 한국의 홈리스 조사방식이 여성 홈리스의 이러한 특성을 완전히 간과한 채 홈리스 현황을 파악해왔기에 연구에서도 정책에서도 누락돼 온 것이다.
비로소 여성 홈리스로 포착되는 대다수는 정신질환자 여성이다. 정신질환이 있는 여성 홈리스는 밀집 지역에 모습을 드러내기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의 특수한 상황을 고려하지 못하는 정책이 상황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탈노숙의 첫 계단은 집의 제공이기에 임시주거지원 제도가 있음에도 정신질환자 여성 홈리스는 이를 활용할 수 없다. 질환의 치료를 위한 복약이 그 조건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항정신성 의약품의 복용을 두려워한다. 약을 먹으면 일순간에 잠이 쏟아진다거나 자신의 의지대로 몸을 가눌 수 없게 되고, 이것은 거리 생활에 치명적이다. 이는 곧 치료를 위해 집이 필요하다는 의미임에도, 치료를 하지 않으니 집을 못 주겠다는 논리로 제도가 막혀있는 것이다.
재 임 여성 홈리스는 여성혐오와 빈곤혐오를 이중으로 경험한다. 홈리스행동에서 한 여성 홈리스에게 여성전용 고시원을 지원한 적이 있다. 조용하고 괜찮아 보이는 방이 있어 계약을 하고 입금을 했는데, 고시원 원장이 임금자명이 홈리스행동인 것을 보고 계약자가 노숙인이냐며 이곳은 직장인들과 학생들이 많이 사는 곳이니 거주가 안 되겠다고 월세를 돌려준 일이 있었다. 공적인 홈리스 지원 체계에선 여성으로 호명되며 소외돼 왔던 여성 홈리스들은 비노숙인이 많은 민간에선 빈민 자체에 대한 혐오와 맞서야 한다.

이번 여름 진행한 반빈곤연대활동(이하 빈활)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다.
재 임 빈활은 말 그대로 연대하러 가는 거다. 올해 빈활은 코로나19 때문에 오랫동안 중단됐다가 오랜만에 열린 빈활이었다. 부천 소사 철거지역, 동자동 쪽방촌을 방문하고, 용산참사 현장과 홈리스 텐트촌, 민자역사를 바라보는 용산 다크투어도 진행했다. 이번 빈활의 슬로건은 ‘평등한 땅, 빼앗기지 않는 도시’였다. 도시의 땅과 공간들이 가진 사람들, 즉 소유자를 중심으로 재편되는 상황에 그로부터 밀려나는 사람들이 가려지는 문제를 더 들여다보고 연결점을 찾아 나섰다.
빈활에 대학생, 청년들이 주로 참여했는데.
재 임 맞다. 청년층 사이에도, 대학사회에도 이런 문제를 고민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있을 테다. 고민을 함께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마주할 수 있게끔 문턱을 낮추는 기획이기도 했다.
윤 영 대학생이라고 해도 그 안의 상황들은 가지각색이다. 예전 빈활에 참여했던 친구 중 한 명은 빈활이라는 말을 듣고 반감이 들었다는 평가를 하기도 했다. 기초생활수급자로 학교에 다니고 있는 상황이었는데, 빈활을 간다는 말이 너무 짜증 났다는 거다. ‘강제퇴거가 반복되는 삶을 느껴보지 못해서 느끼러 가다니! 그런 것도 체험을 하러 가다니!’ 이런 배신감이 들기도 했다고. 이번 빈활에 온 대학생 몇몇도 이 지점을 크게 걱정하기도 했다. ‘내 시선이 너무 폭력적이진 않을까? 나의 접근이 다소 무지한 건 아닐까? 쪽방촌 등 현장 모습을 사진으로 찍는 것은 무례한 것 같다.’ 등의 우려였다. 하지만 타인의 삶을 들여다보며 가까워지는 일을 너무 부끄러워하진 않았으면 좋겠다. 과감하게 해보자는 마음으로 서로에게 뛰어들어 보는 거다. 이 세상에선 어떤 사람의 삶에서 강제퇴거 같은 경험은 가족사적으로 반복되는 반면, 또 어떤 사람은 그런 일이 세상 어느 곳에 있다는 것을 가늠도 못 하고 산다. 그러니 다른 사람의 신발을 신어보는 거다. 왜 사람들은 때로 그런 상황에 처하게 되고 무엇을 잃게 되는가. 그걸 막기 위해 왜 우리가 공동의 관심을 가져야 하는지를 돌아볼 수 있는 최소한의 시간이 빈활이다. 인생을 살아가며 자기 삶의 경험이 전부라고 생각하는 것만큼 우리의 연대를 해치는 건 없으니까.
연대에 관해 물으며 마치고 싶다. 빈곤에 연루되고, 반빈곤운동에 연대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반빈곤 활동가로서의 원동력도 궁금하다.
재 임 반빈곤운동에 함께한다는 것은, 친구가 많이 생기는 것이다. 빈활을 마치고 참여자 한 명이 아는 얼굴이 많이 생긴 것이 빈활 이후의 가장 큰 변화라고 했다. 만약 어떤 철거지역에 강제집행이 자행됐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그것이 뉴스에서나 보는 A씨의 일이었을 때와 나의 친구가 겪은 일이었을 때와는 마음의 무너짐이 크게 다를 것이다. 아는 얼굴이 생기고, 같이 보내는 시간이 늘어나며 이 일에 함께해야겠다는 마음가짐도 달라져 왔다.
윤 영 반빈곤 활동가로 지내는 것은 때로 독수리 오형제처럼 지구를 구해야 할 것 같다가도 때로 아랫마을 공간 청소를 분담하는 일로 다투기나 하는 일이다. 영원히 끝나지 않는 거대한 프로젝트를 하는 것 같기도 하고 작은 프로젝트들을 조금씩 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반빈곤운동은 재미있다.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며, 세상의 여러 가지 문제들을 외면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