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죽었는데 사람을 사랑해도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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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민(사회 20)

사회학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pjmpjc12@snu.ac.kr

사람이 죽었는데 사람을 사랑해도 될까. 나무 문이 삐걱댔다. 문을 열면 아무도 없다.

 

손미, 「사람을 사랑해도 될까」 中 발췌

  올해 5월, 교생을 다녀왔다. 교실에는 많은 학생들이, 그리고 많은 교사들이 있었다. 실습을 함께한 또래들은 시간이 날 때마다 반의 학생들을 보러 다녔고 사촌뻘의 젊은 선생님들은 아침부터 오후까지 책들을 들고 교실을 옮겨 다녔다. 내 나이보다 교직 생활을 오래 하신 선생님들은 아이들에게 시험에 나오니까 집중하라며 성실하게 잔소리를 했다. 교감 선생님은 사업을 따왔다며 학생들에게 새 도서관을 지어줄 수 있다고 기뻐했다. 

  그리고 스물네 살의 어린 교사가 죽었다. 서른여덟 살의 교사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퇴직을 일 년 앞둔 육십 대의 교사도 끝내 생을 버렸다. 6년간 100여 명의 교사가 자살했다. 권위가 추락하고, 권리가 침해된다는 언어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붕괴가, 참사가 벌어지고 있다. 교사를 꿈꾸던 자로서 자문한다. 사람이 죽었는데 사람을 사랑해도 될까. 동료가 죽어가는 현장에서 학생들을 진실되게 사랑하는 게 가능한 일일까. 나무 문을 열면, 아무도 없을까 두렵다. 

교권이라는 말의 뜻은 크게 세 가지로 구분된다. 첫째는 ‘교사의 권위’, 두 번째는 ‘교사의 교육활동권’, 마지막은 ‘교사의 인권’이다. 교권 추락, 교권 침해, 교권 회복 등 여러 곳에서 교권의 의미는 혼재돼 사용되고, 이는 교권에 대한 논의의 질을 저해한다. 이에 본 글에서는 위에서 분리한 세 개의 교권을 순서대로 논하며 서이초 사건을 계기로 급부상한 교권 보호에 대해 논의하고자 한다. 

교권 ①: 교사의 권위

  전통적으로 한국 사회에서 교권은 가장 처음의 의미로 통용돼 왔다. 그리고 그 논의의 중심에는 학생의 인권이 있었다. 권위주의적이었던 20세기 학교에서는 교사가 교육·훈육을 명목으로 학생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일이 잦았다. 억압적인 학교 규율 역시 학생들의 기본적인 자유를 제한하고 통제했다. 특히 2011년 이전까지의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은 교사의 학생 징계권을 법적으로 보장해, ‘교육상 불가피한 경우’에 한해서는 물리적 체벌을 허용하고 있었다. 이때 ‘교육상 불가피한 경우’라는 단서는 구체적인 규정 없이 제시되고 있었으며, 사실상 해당 시기까지 체벌은 용인되고 있었던 것이나 다름없다. 그러나 체벌과 관련한 사회적 논란이 반복되고, 학생 인권에 대한 관심이 고조됨에 따라 2011년의 법 개정을 통해 교사의 체벌은 아동학대에 해당하는 민·형사적 처벌의 대상이 됐다. 즉 학생 인권 신장은 폭력의 추방과 맥을 함께한다. 학생 인권과 교권이 대립되는 것으로 이해되는 데는 이러한 기저가 있다. 

  그러나 교사의 권위는 폭력이나 강제력으로 학생의 복종을 얻어내는 것이 아니라 학생이 교사를 신뢰하고 교육 내용을 스스로 수용하는 데서 나오는 교육적 힘이다. 하지만 한국적 맥락에서 교사의 권위는 오랫동안 전자의 의미로 이해돼 왔고, 교권 추락은 흔히 교사가 ‘(물리적 통제력으로서) 힘을 잃었기에’ 더 이상 학생을 ‘관리할 수 없다’는 논리로 치환됐다. 같은 맥락에서 일군의 여론 및 일부 정치권은 학생인권조례가 최근 교권 추락의 원인이라고 지목한다. 하지만 그것은 사실이라 보기 어렵다. 학생인권조례는 헌법, 교육기본법(제12조 및 13조), 초중등교육법(제18조의 4), 유엔아동권리협약에 근거해 수립됐으며, 학교 현장에서 침해돼 온 학생 인권을 보호하는 것이 목표다. 이에 따라 학생인권조례는 ▲폭력으로부터 자유로울 권리 ▲차별받지 않을 권리 ▲표현의 자유 ▲양심과 종교의 자유 ▲소수 학생의 권리 보장 등의 기본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위 내용이 교육권에 반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교권 침해 현황에 대한 조사를 살펴보면, 학생인권조례가 존재하는 지역에서는 오히려 조례가 없던 시기보다 교권 침해 건수가 줄었으며, 학생인권조례가 존재하지 않는 지역과 비교했을 때도 교육 활동 침해 건수의 차이가 크지 않았다(0.04건). 교사의 교육활동권, 교사의 인권으로서의 교권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학생인권조례를 폐지하는 것이 아니라 교권을 보호할 수 있는 법안을 제·개정해야 한다. 집회에 참여한 교사들 역시 학생인권조례의 폐지를 요구하는 게 아니라, 교사의 교육 활동과 교사 인권을 보장할 수 있도록 아동학대법 개정 등을 요구하고 있다. 

교권 ②: 교사의 교육활동권

  교육적 권위로서의 교권은, 교사가 제도적으로 교육활동권을 충분히 보장받을 때 형성될 수 있다. 다시 말해 실제적인 교권은 교사가 외부로부터의 간섭 없이 교육 활동을 할 권리다. 좁은 의미에서 교육활동권은 학부모나 교장 및 교감 등 관리자로부터 독립적인 수업의 자율권을 갖는 것이다. 현행 교육공무원법의 제7장 제43조(교권의 존중과 신분보장)는 ‘교권(敎權)은 존중돼야 하며, 교원은 그 전문적 지위나 신분에 영향을 미치는 부당한 간섭을 받지 아니한다’고 명시하고 있으나, 제43조의 3개 조항들은 교육활동의 권리를 구체적으로 규정하기보다는 교사의 부당한 면직을 예방하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위 항목에서도 ‘전문적 지위나 신분에 영향을 미치는 부당한 간섭’이 무엇인지, 문제 상황이 발생하면 어떤 제재를 가할 수 있는지는 규정하지 않고 있다. 사실상 선언적인 항목인 셈이다. 

  작금의 제도적 미비는 교사의 교육활동권을 보호하지 못하며, 보호 방안이 없는 상황 속에서 ‘정서적 학대행위’에 대한 정의가 모호한 아동복지법과 아동학대처벌법을 악용하는 사례는 무수하다. 학교와 교육부는 교사를 보호하지 못하고 교사는 교실을 보호하지 못한다. 교실이 보호받지 못하는 상황에서는 정상적인 교육이 이뤄질 수 없다. 교사의 교육활동권은 단순히 수업 설계 및 진행만을 보장하는 것이 아니다. 교사는 학생의 인지적 역량 신장 및 정서적 성장, 인격 발달을 이끄는 존재다. 이에 따라 학생 생활을 지도하고, 문제 행동을 바로잡는 것 역시 학생의 바른 성장을 위해 교사가 수행할 교육 실천의 범주에 포함된다. 교육의 역할은 아이에게 긍정적인 말만을 해주는 것이 아니라 다른 존재들과 더불어 살아갈 수 있도록, 학생의 인격이 성장할 수 있도록 옳고 그름을 판단할 능력을 키워주는 것이다. 점점 침범당하는 교육의 영역, 사법을 통한 외부의 압력은 교사의 행동 범위를 극도로 제한한다.

교권 ③: 교사의 인권

  교육활동권에 대한 침해는 쉽게 교사 인권의 침해로 이어진다. 신고와 악성 민원을 감내해야 하는 교사는 우울증이나 공황으로 고통받기도 하며, 상급 기관으로부터의 보호 대신 보복성 직위 해제에 내몰려 생계유지의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다. ‘비도덕적인 교사’라는 낙인, 아동학대를 했다는 사회적 비난, 고소당하는 경우 장기간의 소송 비용까지 감수해야 한다. 그러나 교사 인권에 대한 적절한 보호 법안은 부재하다. 

  ‘교원의 지위 향상 및 교육 활동 보호를 위한 특별법’에서는 ‘교육 활동 침해행위’와 ‘교원 보호조치’에 대한 항목을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이때의 교육 활동 침해행위는 기본적인 형법에서 규정하는 상해와 폭행, 협박, 손괴 및 성폭력 범죄 등의 범죄행위에 한정된다. 즉 문제 상황 발생 시 학생이자 미성년자인 가해자-성인이자 교사인 피해자라는 교실의 특수성은 행동 제지 및 자기방어를 어렵게 하는데, 이러한 맥락을 고려해 마련된 법률이 아니다. 가해를 저지른 학생은 교사가 학생을 고발하지 않는 이상 학내외 봉사, 교육 이수, 학급 교체 및 전학 따위의 조치만을 받게 된다(의무교육과정 수준에서는 퇴학을 할 수 없으므로 타 학교의 타 학급으로 전학만 보낼 수 있다). 또한 교사가 받을 수 있는 보호조치는 가해 학생과의 분리와 같은 행정적 조처가 아니라 고작 심리상담 및 조언, 치료를 위한 요양 등에 그친다. 사전적 예방 조치는 전무하다. 학생과의 문제 상황을 넘어, 학부모의 무고 신고에 대처할 방안 또한 없으며 녹취 등으로부터 자유롭게 직업 생활을 하는 것도, 퇴근 이후 학부모의 연락으로부터 사생활을 보장받기도 어렵다. 

  일련의 사건 이후 여론은 미국처럼 스쿨캅 제도를 도입해 교사를 보호해야 한다고 이야기하나, 한국에도 학교폭력 예방대책의 일환으로 2012년 도입된 ‘학교전담경찰관’ 제도가 있다. 그러나 공립학교 68%에 경찰이 상주하는 미국과 달리 한국은 경찰관 1인이 10개교 내외를 담당한다. 사실상 문제 발생 시 현장 지원을 가는 것이 불가능하며, 이들의 주된 역할은 평소 범죄 예방 교육 특강을 가거나 학생 간 학교폭력 사안 접수를 담당하는 것이다. 교사는 보호 제도도 없이 학교에서 판사이자 경찰관, 교수자, 행정직, 돌봄 제공자의 역할을 모두 수행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교사들은 동료 교사를 추모하며 법의 개선을 요구하고 있다. 9월 2일, 50만 교원 총궐기 추모집회에서 교사들은 아동복지법 개정과 학생·학부모·교육 당국의 책무성 강화, 분리 학생의 교육권 보장, 통일된 민원 처리 시스템 개설 등 8가지 내용을 담은 정책요구안을 발표했다. 교육부 장관은 교사 보호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응답하는 대신, 공교육 멈춤의 날을 앞두고 참여 교사들을 파면, 해임하거나 임시휴업을 결정하는 교장을 형사 고발하겠다고 대응했다. 과연 교육부와 국회는 교사들의 목소리에 얼마나 응답할까. 교사들의 자살, 증가하는 신규 교원 퇴직률, 붕괴하는 교실 현장. 한국의 교육은 얼마나 더 지속될 수 있을까. 아이들이 선생님을 잃으면 그네들의 작은 손은 누가 잡아주나. 

  사람이 죽었는데 사람을 사랑해도 될까. 나무 문을 두드리는 울음을 모른 척해도 될까. 문 밖에는 누가 남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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