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의 말을 담아내는 것

처음으로 카메라를 손에 쥔 순간이 떠오릅니다. 낯선 기기로 처음 포착한 것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였을까요? 저는 유독 사람을 담아내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카메라에 인물의 감정이, 그 순간이 담깁니다. 사진을 바라보면 그때의 대화와 생각이 절로 떠오르는 듯합니다. 반면 이상하게도 공간, 풍경 등을 담는 일에는 정이 가지 않았습니다. 어딘가 허전해 보이는 것이, 중요한 부품이 빠진 미완성품을 보는 듯했기 때문입니다.

사진을 매개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싶어 〈서울대저널〉의 PD가 되었습니다. 매호 발행되는 저널에서 TV부는 ‘세상에 눈뜨기’와 ‘사진으로 보다(사보)’를 담당합니다. 한 장, 때론 여러 장의 사진에 세상을 담아냅니다. 사진을 중심으로 기사를 이루는 행위는 녹록지 않습니다. 매호 서울대저널의 PD들은 백 마디 말보다 한 장의 사진이 더 효과적인 소재를 찾고자 고심하고 또 고심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공간이 말을 걸어왔습니다. 177호 사보에 배리어프리를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아내던 중이었습니다. 기사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주목했지만, 사실 사진으로 담아낸 것은 공간이었습니다. 그들이 만든 ‘문턱 없는 공간’이 기사에서 제가 진정으로 보여주고 말하고 싶었던 것들을 존재 자체만으로 전해주고 있었습니다.

제 전공인 고고학에는 ‘정황(context)’이란 개념이 존재합니다. 유물과 더불어 유물의 출토 상황 전반을 이해하는 정황 파악은 고고학 발굴에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입니다. 즉 정황이란, 유물 혹은 유적이 맺고 있는 관계를 파악하는 일입니다. 문득 사람과 공간도 그렇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최근 두 호에 걸쳐 PD들은 공간을 찾았습니다. 180호 미림극장은 인천시민과 60년이 넘는 시간을 함께한 곳으로, 과거의 추억을 바라보고 새로운 기억을 쌓아가는 공간이었습니다. 극장 곳곳에 관객들의 소중한 순간이 어려있었습니다. 181호 관악학생생활관 906동은 LnL 학생들의 목소리와 움직임으로 활기찬 공간이었습니다. 곳곳에 학생들의 생활과 배움의 순간들이 녹아있었습니다.

공간은 더 이상 허전하지 않았습니다. 과거에는 발견하지 못했던 중요한 부품을 찾았기 때문입니다. 공간의 정황이 제게 한 걸음 다가왔습니다. 사진은 공간이 맺고 있는 관계를 보여주기에, 공간의 말을 담아내기에 적합한 매개체입니다. 네모의 프레임 안에 오늘도 공간을 담습니다. 공간과 공간에 어린 기억들, 순간들이 그 안에 고스란히 들어옵니다.

지금, 이 글을 어떤 공간에서 읽고 계시나요?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 어디에 계시든 저널을 통해 저널이 전하고 싶었던 공간의 말이 충분히 닿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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