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생산권은 한 인간이 자신의 몸과 삶의 방식에 대해 주체로서 결정할 수 있도록 하는 중대한 권리다. 오늘날 우리 삶의 근간을 이루는 많은 권리들이 그렇듯, 재생산권 역시 어떤 사람이 처한 사회적 상황과 관계없이 최대한 보장됨이 마땅하다. 그러나 국가의 정책은 물론, 사회적인 인식에서도 좀처럼 재생산권의 주체로 인정받지 못하는 존재들이 있다. 우리 사회 속 권리로서의 재생산으로부터 가장 깊이 소외된 이들에 주목해 보자.
외면받는 장애여성의 재생산
한국이 2008년 비준한 유엔 장애인권리협약 제23조에서는 장애인이 자녀의 수와 출산 계획을 자유롭게 선택할 권리를 인정하고 있다. 또한 연령에 적합한 정보, 출산 및 가족계획에 대한 교육에 접근할 권리를 보장하고, 장애인이 이런 권리를 행사하는 데 필요한 수단을 제공할 것을 당사국에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지난해 유엔 장애인권리위원회는 한국 정부의 협약 이행 상황에 대해 ‘장애가 있는 부모가 부모의 책임을 다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충분한 지원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한국 사회가 장애여성이 아이를 낳아 기르기 녹록지 않은 환경이란 평가다.
장애여성의 재생산에 대한 사회적 제약의 존재는 낮은 출산율에서도 드러난다. 더불어민주당 최종윤 의원실이 공개한 ‘2021년 여성 장애인 출산 현황’에 따르면, 가임기 장애여성 천 명 중 출산한 여성은 5.3명뿐이다. 같은 해 국내 전체 여성의 출산 현황이 가임기 여성 천 명 중 22.2명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매우 적은 수치다.
전문가들은 장애여성의 재생산권이 사회적으로 외면받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장애인의 재생산은 회피하고 억제해야 할 일로 여겨지는 우생학적 논리 때문이다. 국가가 우생학적 논리로 장애인의 재생산을 통제해 온 역사는 무척 길다. 광복 이후부터 1990년대까지도 국가 주도로 운영되는 한센인 거주시설에서는 한센인의 강제 정관 수술 및 임신 중절 수술이 행해졌다. 시설에서 한센인이 임신하거나 출산하면 시설 퇴소를 강요했고, 아이는 고아원에 보내졌다. 지적 장애인 수용 시설에서의 강제 불임 시술 또한 국가의 묵인 아래 이뤄졌다.
1999년 삭제된 모자보건법 제9조는 장애인의 재생산에 대한 국가의 시각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사례다. 해당 조항은 특정 질병이 있는 환자는 질병의 유전과 전염을 방지하기 위해 불임수술을 하는 것이 공익을 위해 필요하다고 의사가 판단한다면, 절차를 거쳐 불임수술을 강제할 수 있음을 규정하고 있다. 장애인을 공익에 위협이 되는 존재로 보고 유전이나 전염을 통해 그 위협을 증가시킬 수 있다는 논리로 재생산권을 제한하는 것이다. 부모가 유전성 장애를 지닌 경우 임신중절수술을 허용토록 하는 모자보건법 14조 1항에 대해서도 지속적으로 비판이 제기됐다. 국가인권위원회는 해당 조항이 ‘우생학을 바탕에 둔 장애 차별적 조항으로, 장애여성 당사자의 동의 없는 강제 불임 시술이나 낙태를 정당화할 수 있는 우려가 있고 장애인을 열등한 존재로 인식하게 하는 낙인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며 폐지를 검토할 것을 권고했다.
장애여성의 재생산권에 대한 통제는 개인적 수준에서도 이뤄진다. 부모나 시부모, 의사 등이 당사자의 의사를 고려하지 않고 불임 시술을 권유, 강제하는 것이다. 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의 나영정 기획운영위원이 진행한 「장애여성의 경험과 관점으로 다시 제기하는 재생산권리」 연구에 참여한 장애 여성 D씨는 월경을 시작하는 시기에 부모님이 불임수술을 권유했다고 답했다. 또 다른 참여자 H씨와 O씨는 시부모의 요구로 임신중절 수술을 하게 됐다고 밝혔다. 나 위원은 이러한 압력의 배경으로 ‘장애가 유전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 양육으로 인한 비용과 책임에 대한 부담’을 짚었다. 공적, 사적 통제의 과정에서 재생산권의 주체인 장애여성의 지위는 보장받지 못한다.
장애여성의 재생산을 권리가 아니라 통제의 대상으로만 바라보는 시각은 재생산과 관련된 활동을 수행하며 장애여성이 겪는 어려움에 대한 외면으로 이어진다. 장애여성들이 비장애인을 기준으로 구성된 사회 속에서 가중된 어려움을 경험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장애여성을 재생산권 주체로 여기지 않는 탓에 개선을 위한 논의를 막는 것이다.
장애여성들은 적절한 피임방법을 찾는 데서부터 자기결정권의 제약을 경험한다. 셰어의 황지성 기획운영위원은 「선택과 권리를 넘어서 장애여성의 재생산권 확보를 위한 시론: 신체장애여성의 경험에 나타난 재생산 정치」 연구에서 ‘루프, 난관 수술 등 우리나라에서 일반적으로 많이 사용하는 몸 장착 시술을 통한 피임방법은 몸의 형태나 기능이 다양한 신체장애여성에게 심한 무리를 주거나 아예 적용할 수 없는 경우도 있다’고 지적했다. 피임에 대한 의료 지식이 비장애 여성의 몸만을 상정한 채 구성된 탓에 장애여성의 몸과 재생산에 관한 자기결정에 필수적인 수단이 갖춰지지 못한 상황에 대한 비판이다. 적절한 성교육의 부재로 피임방법에 대해 확실히 알지 못하거나 남성 파트너와의 관계에서 의사 피력이 어려워 원치 않는 임신을 하게 되는 사례도 많다.
재생산 건강을 유지하는 여정에서도 장애여성은 더 많은 장벽을 경험한다. 임신과 출산 시의 검진과 분만을 위한 지원이 부족하고, 생애 전반에 걸쳐 재생산 건강을 관리하기 위한 의료 서비스 이용이 쉽지 않은 탓이다. 진료실에 진입할 때까지의 접근성 문제 다양한 몸을 가진 장애여성들이 이용하기 어려운 산부인과 진찰대와 검진 장비 장애인의 몸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거나, 비장애인 동반인과만 대화하는 의료진 비장애인의 신체에 맞춰진 획일적 산후조리 프로그램까지 장애 여성이 재생산권 주체로서 존중받으며 적절한 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만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서울대학교병원 산부인과 장애친화진료실 전경 ©서울대학교병원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13년부터 일부 지자체에서 장애 친화 산부인과를 지정해 운영했지만, 2019년 보건복지부가 해당 산부인과들의 운영 실태를 점검한 결과 앞서 지적됐던 문제점들이 그대로 드러났고, 당연히 장애여성의 이용율도 낮았다. 이에 보건복지부는 현재까지 총 10곳의 병원을 장애 친화 산부인과로 지정해 시설 개보수 비용과 인건비 등을 지원하고 있으며, 이 중 3개 병원이 시설 개선을 마쳤다. 그러나 절대적인 수가 너무 적고 지정된 10곳 중 4곳은 수도권에 위치한 탓에 제도에서 소외되는 장애여성이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임신과 출산 이후 장애여성이 아이를 양육하면서 마주하는 사회적 장벽을 해소하는 것도 장애여성 재생산권의 중요한 화두다. 아이를 기르는 것은 누구에게나 쉽지 않은 일이겠지만, 복합적인 요인으로 인해 장애인 부모의 어려움은 때로 더욱 가중된다. 접근성이 떨어지는 양육지식 신체 손상으로 수행하기 힘든 특정 양육 과업에 대한 지원의 부재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편견 등이 장애인 부모가 마주하는 다양한 장벽이다. 장애여성도 양육자로서의 삶을 선택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체계가 필요하다. 특히 개인별로 다른 장애 특성에 맞추어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중요하다. 예를 들어, 자녀에게 언어를 가르치기 힘든 청각장애인 부모에게는 방문 언어 교육 지원이, 휠체어로 이동하는 부모에게는 양육을 위한 이동지원이 장애여성이 양육자로서 책임을 다하는 것을 가능케 한다. 그러나 장애인 부모의 양육을 지원하는 중앙 정부 차원의 정책은 거의 없다. 서울시와 경기도 등 일부 지자체만이 장애여성의 육아를 보조할 수 있는 도우미를 파견하는 사업을 진행하고 있고, 그마저도 지자체별로 지원 대상이나 이용 가능 시간이 상이해 전반적인 지원 확대가 요구된다.
장애여성이 아이를 낳아 기르는 길에 놓인 수많은 장벽은 유달리 높다. 지금까지 우리 사회는 그럼에도 그 길을 선택한 이들에 대한 존중도, 장벽 없는 길을 만들기 위한 노력도 부족했다.
도구화된 이주여성의 재생산
법무부가 발표한 등록외국인 체류 현황에 따르면, 2023년 3월 기준 국내에 체류하고 있는 이주여성은 약 52만 명이다. 이주여성은 여성에 대한, 그리고 외국인에 대한 이중의 차별에 노출되며, 출신국과 사회 경제적 상황에 따라 인권 침해에 대한 취약성이 가중되기도 한다. 재생산권 문제 역시 이주여성이 놓여 있는 사회적 맥락과 무관할 수 없다.
특히 전체 이주여성의 약 20%에 해당하는 결혼이주여성의 재생산은 권리로서 보장되지 못하고 국가의 정책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여겨지고 있다. 결혼이주여성은 한국 국민의 배우자 자격으로 결혼이민(F6) 비자를 발급받아 국내에 체류하고 있는 이주여성이다. F6 비자 발급자 중 여성 비율은 약 78%로, 한국인 남성과 외국인 여성 간의 혼인이 한국인 여성과 외국인 남성 간의 혼인에 비해 월등히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국 사회에서 결혼이주여성의 존재가 수면 위로 드러나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중반 이후, 지자체들이 일명 ‘농촌총각 장가보내기’ 사업을 시작하면서부터다. 이 사업은 지자체가 지역 내 미혼 남성이 외국인 여성과 결혼하기 위해 국제결혼 중개업체에 지급해야 하는 비용을 지원하는 형태로 진행됐다. 촌락 지역의 지자체들이 지역 내 청년 여성 인구의 부족과 그에 따른 저출생 등 여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외국인 여성 공급을 직접 지원하는 방식을 택한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와 같은 이주 정책이 결혼이주여성을 수단화한다고 비판했다. 2016년 진행된 포럼 ‘소수자 운동의 관점으로 성과 재생산 말하기’에서 허오영숙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대표는 ‘결혼이주여성이 한국인 자녀를 낳고 자녀와 시부모를 돌보는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되며, 이러한 시각이 반영된 체류 정책이 이주여성 개인에게 (출산에 대한) 실질적인 압력으로 작용한다’고 평가했다.
최근 몇 년 새 농촌총각 장가보내기 사업은 자취를 감췄다. 업체의 중개로 이뤄진 국제결혼이 지닌 매매혼적 성격과 그로부터 심화되는 부부간의 불평등한 관계, 결혼이주여성 대상 가정폭력 사건 등에 대한 사회적 비판이 지속된 결과다. 그러나 여전히 한국 사회는 결혼이주여성을 독립된 주체로서가 아니라 한국인 남편 및 자녀와의 관계 속에서만 받아들인다. 이 관점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는 지점이 체류 자격 문제다. 대한민국 국민의 배우자 자격으로 한국에 체류하는 결혼이주여성에게 남편과의 이혼은 체류 자격의 정지로 직결된다. 한국인 배우자와 결혼이주여성 사이에 제도적 권력 차이가 발생하는 것이다. 이혼 후에도 체류 자격을 연장하려면 재판을 통해 이혼의 주된 책임이 배우자에게 있음을 입증하거나, 한국인 배우자와 낳은 자녀를 양육하고 있어야 한다. 국가가 한국인 자녀의 양육자로서만 이주여성의 체류를 허가하는 구도다. 귀화를 신청한 결혼이주자에 대한 심사 기간도 한국 국적 자녀가 있을 경우 수개월 단축된다. 이처럼 가족 관계에 따라 달라지는 체류의 안정성은 결혼이주여성이 재생산에 대한 자기결정권을 온전히 행사하는 것을 막는다.
결혼이주여성에 대한 배제가 재생산 기능을 수행하지 않는 이들을 향하는 한편, 한국인 남성과 혼인하지 않은 이주여성들은 아이를 낳아 기르기 위한 사회적 지원 체계에서 배제된다. 대표적인 사례가 고용허가제를 통해 한국의 사업장에 고용돼 비전문취업(E9) 비자를 받아 체류하고 있는 여성 이주 노동자들이다. 고용허가제란 국가가 농축산업, 건설업, 중소 제조업 등 특정 업종의 사업장이 외국인 근로자를 합법적으로 고용하도록 허용하는 제도다. E9 비자 소지자들은 지정된 사업장에 고용돼 노동하는 것을 전제로 체류를 인정받는다. 2023년 3월 기준 E9 비자를 통해 국내에 체류하고 있는 이주여성은 약 2만 2천 명이다.

비전문취업(E9) 여성 근로 업종 ©송나윤
여성 이주 노동자들은 열악한 노동 및 주거 환경에 노출되는 경우가 많고, 이는 재생산권 실현을 어렵게 한다. 원칙대로라면 여성 이주 노동자들도 근로기준법이나 남녀고용평등법과 같은 법률 등을 통해 보호받을 수 있어야 하지만, 이주 노동자가 경험하는 권리 침해를 적극적으로 살피지 않는 제도로 인해 실질적으로 법적 보호에서 누락되고 있다.

비전문취업(E9) 여성 거주시설 ©송나윤

이주노동자가 거주하는 한 농장의 비닐하우스, 컨테이너 숙소 ©〈한겨레21〉
2019년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발행한 연구보고서 「이주여성의 다양성과 정책 재구성 방향」에 따르면, 전체 비전문취업 여성 중 42.7%가 기타 거주시설에 살고 있다. 기타 거주시설은 오피스텔이나 주거용이 아닌 거처를 말하는데, 상가나 공장 내부, 판잣집, 비닐하우스, 컨테이너 등에 거주하는 경우도 이에 해당한다. 농업 분야로 한정할 경우, 기타 거주시설 거주 비율은 67%로 더욱 높다. 편안하고 건강한 삶을 영위하기 힘든 주거 환경에 내몰린 여성 이주 노동자들이 재생산의 문제에 대한 자기 결정권을 갖기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더불어 여성 이주 노동자들은 출산휴가나 육아휴직, 양육 지원 등 아이를 낳고 기르는 데 필요한 정책적 지원을 누리지 못한다. 한국인 남편과의 혼인 관계인 결혼이주여성의 경우에는 임신이나 출산, 양육에 대한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출신국에서 가족을 초청해 일정 기간 함께 거주하는 것이 허용된다. 그러나 비전문취업 여성은 임신·출산·양육을 하더라도 가족 초청이 허용되지 않는다.
비전문취업 여성들은 여성 노동자 일반을 대상으로 한 일·가정양립 정책에서도 소외된다. 그 제도적 원인으로는 고용보험 제도가 지목된다. 출산휴가 급여 등이 고용보험 체계를 통해 지급되지만, 여성 이주 노동자의 60%가 고용보험에 미가입 돼 있어 배제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원칙적으로 모든 근로자가 의무적으로 고용보험에 가입해야 하지만, 외국인 근로자는 예외적으로 의무 가입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가입률이 낮다. 2019년부터 고용보험 미적용자에게도 출산 급여를 지급할 수 있도록 제도가 수정됐지만, 외국인 여성 중에서는 결혼이주여성만으로 그 대상을 한정했다. 이밖에도 고용주와의 관계에서의 불리한 위치, 낮은 임금으로 인한 생계의 어려움, 제도에 대한 인식 부족과 같은 복합적 요인들은 여성 이주 노동자가 재생산권을 보장받는 것을 막는다.
이주여성은 외국인이기 이전에 인간이다, 그러나 이주여성들은 우리나라 국민이 아니라는 이유로 재생산권에 대한 최소한의 보호조차 받지 못하고 있다. 국가가 적극적으로 그러한 권리 침해를 묵인, 조장하기도 한다. 한국 사회를 위한 도구적 가치를 증명해야만 머무름을 허용받을 수 있는 이곳에서, 이주여성의 재생산권이 위협받고 있다.
훈계 당하는 여성 청소년의 재생산
청소년은 사회적으로 권리의 주체보다는 보호의 대상으로 여겨진다. 성인과 달리 청소년은 아직 미숙한 존재이므로 보호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청소년 보호라는 말 이면에는 권리에 대한 통제의 논리가 작동한다. 성인이라고 미숙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유독 아동청소년의 미숙함은 그들의 권리를 인정하지 않는 것의 명분이 된다. 특히 성과 재생산 영역에 대해 논의할 때에는 청소년을 권리의 주체로 바라보지 않는 시각이 강하다.
청소년 시기 임신·출산하여 아이를 양육하고 있는 이들의 삶을 다루는 〈MBN〉 예능 프로그램 《고딩엄빠》는 사회가 청소년의 재생산을 바라보는 시각을 반영한다. 방송은 주로 양육 방법을 잘 모르거나 경제관념이 부족한 청소년 부모들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그에 대해 성인 패널들이 잔소리하는 모습을 교차해 보여주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변화된 미래를 만드는 미혼모협회 인트리’에서 진행한 《고딩엄빠》 모니터링에 참여한 한 당사자는 ‘젊은 나이에 아이를 낳은 부모들을 다그치기 위해 만든 프로그램 같이 느껴졌다’고 발언했다. 아이를 낳아 기를 자격이 없다는, 청소년 부모에 대한 낙인을 확대하고 있는 것이다.
해당 프로그램의 특징적인 지점은, 출연자들이 아이를 양육하면서 겪는 어려움을 청소년기의 잘못된 행동에 대한 징벌로 조명한다는 것이다. 제작자인 남성현 PD는 〈미디어오늘〉과의 인터뷰를 통해 ‘제작진이 미성년자의 임신에 대해 찬성하고 장려할 생각이 절대 없으며, 책임을 지는 자세가 필요함을 보여주는 것이 기획 의도’라고 밝혔다. 패널들은 어린 부모가 겪는 어려움을 강조하며 청소년 시청자들을 향해 청소년기 임신과 출산의 결과는 이런 것이라고 으름장을 놓는다.

《고딩엄빠》 방송 화면 ©〈MBN〉
임신과 출산을 경험하는 여성 청소년에 대한 낙인은 비단 한 방송 프로그램만의 문제는 아니다. 2021년 여성가족부가 진행한 「다양한 가족에 대한 국민인식조사」 결과, 미성년이 자녀를 낳아 기르는 것을 수용할 수 없다고 응답한 비율은 1,500명 중 73.9%에 달했다. 전문가들은 청소년 부모들이 사회적 낙인에 의해 이중적 고통을 겪는다고 입을 모은다.
임신·출산을 경험한 청소년에 대한 낙인은 청소년의 성적 권리 통제와 관련이 깊다. 한국 사회에서 청소년의 섹슈얼리티는 금기시돼 왔다. 자위기구를 유해한 물건으로 규정해 청소년에 대한 판매를 금지하는 청소년보호법이나, 지난해 발표된 ‘2022 개정 교육과정’에서 섹슈얼리티라는 단어를 삭제한 일은 청소년의 성적 권리에 대한 통제가 제도적 수준에 반영된 사례다. 이러한 관점에서 청소년의 임신은 성관계라는 사회적으로 비난받을 만한 행위에 의해 발생하는 결과가 되고, 그로 인해 경험하는 고충 역시 개인이 감당해야 할 일로 남는다. 그러나 청소년 역시 재생산권의 주체라는 점에 주목해 청소년 부모가 경험하는 권리 침해를 해소할 필요가 있다.
전문가들은 특히 임신·출산·양육을 경험하며 청소년 부모들의 교육권이 침해된다고 지적한다. 서울시여성가족재단 김영정 연구위원은 「일탈자에서 권리주체로:청소년 한부모의 재생산권, 교육권, 노동권」 연구에서 아이 돌봄과 학업 병행의 어려움, 그리고 학비 부담을 청소년 부모의 학업 중단 원인으로 짚었다. ‘학업을 지속하려면 원가족의 도움이 있어야 하는데 청소년들이 임신과 출산을 하면서 가족과의 갈등과 고립을 경험하는 경우가 많고, 가족에게 충분한 경제적 자원을 받지 못하는 등의 문제로 학업을 중단하는 경우가 많다’는 설명이다. 청소년기의 중요한 권리인 교육권이 아이를 낳아 기르는 청소년에게는 사실상 보장되지 않는다는 현실은 재생산권 주체로서의 청소년에 대한 정책적 고려가 부족했음을 드러낸다. 김 연구위원은 ‘당사자들이 본인의 선택이 존중받을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질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더해 교육권 침해는 추후 취업에도 제약이 돼 청소년 부모가 경제적으로 자립하는 것을 어렵게 한다. 강원대 정미경 교수(사회복지학과)는 「10대 미혼모로 살아가기 사례분석」 연구에서 경제적인 어려움이 10대 미혼모에게 가장 큰 부담이 된다고 분석했다. 연구참여자들은 아이와 함께 살 집을 구하고, 아이를 키우기 위한 돈을 벌어야 하는 문제가 막막하다며 국가 지원금이 부족하다고 응답했다. 돌봄 지원의 부족으로 양육과 병행할 수 있는 일을 찾기 어렵다는 것 또한 문제로 지적된다.
출산과 양육을 선택한 청소년의 권리 침해가 발생하는 한편, 임신 중절에 대한 선택권에서도 청소년은 더욱 소외돼 있다. 낙태죄 헌법불합치 판결 이전에도 청소년이 수술을 원할 경우 병원에서 부모의 동의를 요구하는 것이 관행이었는데, 판결 이후 2020년 정부가 발표한 개정입법예고안 상에서는 만 16세 미만의 청소년은 법정대리인의 동의를 받아야 임신 중지가 가능함이 법적으로 명시됐다. 법적대리인의 동의라는 절차는 부모에게 임신 사실을 전하는 것에 부담을 느끼는 청소년들의 임신 중지 시점을 늦추는 요인으로 작용해 건강상의 위험을 야기했다. 또 청소년 여성이 낙태 수술을 할 수 있게 해주겠다며 돈을 요구하는 범죄에 더욱 취약하게 만들기도했다. 청소년인권단체들은 2020 개정입법예고안이 발표된 이후 공동 논평을 발표해 ‘임신중지권은 누구의 허락도 필요로 하지 않는 시민 개인의 기본권이며, 청소년의 권리가 법정대리인에게 종속돼 있는 현실이 청소년을 인권의 사각지대로 내몰았다’고 비판했다.
전문가들은 청소년의 재생산권을 보장하기 위해 성교육의 변화가 필수적이라고 입을 모은다. 유네스코의 성교육 가이드라인은 ‘성교육을 통해 청소년들이 자신의 삶에서 책임 있는 선택을 할 수 있는 지식과 기술을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인권과 섹슈얼리티 개념을 반영한 성교육을 강조한다. 그러나 한국 정부가 청소년에게 제공하는 성교육은 청소년의 성적 행위를 금기시하는 인식 탓에 그 내용이 형식적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재생산 건강 유지 안전한 성적 실천 원치 않는 임신 예방 등의 내용을 담은 실질적인 교육은 진행되지 않는다는 비판을 받는다.
청소년을 보호한다는 명목하에 청소년의 성과 재생산 권리를 외면하는 사회는 오히려 청소년의 인권을 위험에 내몰고 있다. 탓해야 할 것은 청소년의 성적 실천이 아니라 사회의 무책임이다.
누군가에게 아이를 낳아 기르기로, 혹은 아이를 낳지 않기로 결정하는 것은 다른 이들보다 더 어려운 일일 수 있다. 그럼에도 그런 어려움을 감당하기로 결정한 이들은 때때로 무책임하다는 사회의 시선에 시달려야만 한다. 그러나 무엇이 이들의 결정을 힘들게 하는지를 찬찬히 들여다보면, 그 책임은 개인의 것이 아니라 사회의 것임이 분명해진다. 그러므로 변화해야 하는 것도 개인이 아니라 사회다.
재생산권은 단순히 재생산에 관한 개인의 의사결정에 강제가 없다고 해서 보장되는 권리가 아니다. 양육비가 없어 아이를 낳지 않기로 한 사람, 낙태 수단이 없어 원치 않는 출산을 하기로 한 사람, 존재 가치를 인정받기 위해 아이를 낳기로 한 사람, 학업이나 경력을 포기하지 않기 위해 아이를 낳지 않기로 한 사람. 이 많은 결정에서 개인의 자율성이 충분히 지켜졌다고 말할 수 있을까. 재생산에 대한 개인의 의사결정은 그 사람이 위치한 사회적 환경과 무관하게 이뤄지지 않는다.
그래서 재생산권의 보장은 사회 정의의 문제다. 재생산이라는 장 위에는 수많은 권리들이 교차하고 있다. 모두의 재생산권 보장을 위해 필요한 것은 누구나 재생산에 관한 자기결정을 충실히 할 수 있는 정의로운 사회에 대한 고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