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작품 내 인종차별적 묘사로 비판을 받은 웹툰 《참교육》의 국내 장기 휴재와 북미 서비스 중단이 결정됐다. 《참교육》 125화는 다문화 가정이 늘어난 한국 사회에서 외려 소수자가 된 한국 학생들이 학급에서 인종차별을 당한 후 이를 복수한다는 설정을 바탕으로, 아프리카계 혼혈 남학생을 학교폭력 가해자로, 한국인 학생들을 피해자로 묘사하며 특정 인종을 희화화했고, 흑인과 동양인에 대한 인종차별적 표현을 사용했다. 인종에 대한 편협한 이해가 웹툰에 그대로 반영됐다는 점에 거센 비판이 일었고, 작가들은 ‘무지와 좁은 시야로 인해 인종차별적이고 유해한 표현을 부주의하게 사용해 상처를 드렸다’며 사과했다.
바야흐로 미디어 콘텐츠의 시대, 화려한 ‘K-콘텐츠’의 부흥 속 《참교육》이 간과한 것은 무엇인가. 콘텐츠에서 숙고 없이 손쉽게 묘사되는 이들은 누구인가. 소수자들은 미디어에서 얼마나 자주, 어떤 방식으로 등장하고 있는가. 미디어 콘텐츠 속 소수자의 모습을 돌아봤다.
납작해지는 소수자
다년간 문화예술과 법에 관한 연구를 이어온 백세희 변호사는 『납작하고 투명한 사람들』(2022)에서 미디어가 소수자를 묘사하는 방식을 설명할 때 ‘납작하다’라는 형용사를 사용했다. 미디어가 입체적인 소수자 개개인을 마치 납작한 평면처럼 그림으로써 동일한 성향을 보이는 단일한 집단으로 재현한다는 의미다. 백 변호사는 “어떤 대상을 특정한 속성으로 환원해 열광하면서도 그 기준을 벗어난 모습을 용인하지 못하는 것은 혐오의 전형”이라며 그간 한국의 여러 미디어 콘텐츠에서 천편일률적으로 연출된 소수자의 재현을 비판했다.
대표적으로 영화 《청년경찰》(2017)은 중국동포가 다수 거주하는 지역을 범죄의 소굴처럼 묘사해 비판받았다. 해당 지역 주민들과 중국동포들은 영화 제작사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고, 2020년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제작사에 ‘중국동포에 사과하라’고 권고했다. 같은 해 개봉한 영화 《범죄도시》(2017)에는 중국동포 조직폭력배들을 경찰이 일망타진하는 장면이 나왔다. 중국동포에 대한 단편적인 재현은 ‘중국동포의 범죄율이 높다’는 차별적 인식에 기인한다. 그러나 지난해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이 발간한 「한국의 범죄현상과 형사정책」 보고서에 따르면, 인구 10만 명당 검거 인원을 뜻하는 검거인원지수는 2020년 기준 중국인이 1,653명으로 내국인이 2,815명인 것에 비해 낮은 수준이었다.
이름을 가진 여성이 두 명 이상 나올 것, 이들이 서로 대화할 것, 대화의 주제는 남성과 관련되지 않을 것. 영화의 성평등 수준을 측정하기 위해 주로 사용되는 ‘벡델 테스트’의 기준 세 가지다. 그리 까다로운 기준은 아니기에 많은 영화들이 벡델 테스트를 통과할 수 있을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대부분의 상업 영화는 여성 인물을 남성 인물 옆의 부수적인 존재로만 등장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진흥위원회(영진위)가 발간한 「2022년 한국영화산업 성인지 결산」에 따르면 2022년 흥행 순위 30위까지의 한국 영화 중 벡델 테스트를 통과한 작품은 단 10편이었다. 흥행 30위 영화 벡델 테스트 통과율은 2018년부터 2020년까지 상승하다가 2021년에 크게 하락한 후 2년 연속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영진위는 이 같은 하락세의 원인으로 흥행 30위 내 한국 영화에 여성 감독과 여성 주연의 작품 수가 크게 줄어든 사실을 짚었다.

지난해 큰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2022)의 주인공은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천재 변호사 우영우였다. 미디어 콘텐츠 전면에 주도적 역할을 맡은 장애인이 등장했다는 점은 긍정적으로 평가됐으나, 장애를 재현한 방식의 문제도 함께 논의됐다. 우영우가 제도권 내에서 제 역할을 해내는 쓸모 있는 존재임을 증명한 변호사라는 점, 여전히 ‘자폐 천재’ 클리셰를 활용한 점, 드라마의 연출이 반복적으로 우영우를 ‘무해한 존재’로 그린 점 등이 한계로 지적된 것이다. 백세희 변호사는 “영화 《말아톤》, 《7번방의 선물》, 드라마 《사이코지만 괜찮아》 등에 나타나는 ‘순수하고 무해한 장애인’의 모습에서 벗어난 장애인들이 사회적 비난의 대상이 되는 현실에서 장애인을 귀엽게만 재현하고 소비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퀴어 정체성도 미디어에서 납작하게 재현되기 일쑤다. 퀴어 정체성은 콘텐츠에서 주로 극 진행을 위한 장치로써 소비되기 때문이다. 영화 《마녀(魔女) Part 2: The Other One》(2022)에서 외국인 요원 톰의 게이 정체성은 “너 남자 좋아하지?”라는 장난스러운 대사에서 유희적으로 드러날 뿐이었다. 같은 해 개봉한 영화 《늑대사냥》(2022)에서는 남성 간의 성애 장면이 등장하는데, 이는 주인공의 폭력성을 극대화하고 자극적인 장면을 연출하기 위한 장치에 불과했다.
트랜스젠더 외형의 전형적인 재현도 마찬가지다. 영화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2020)에는 트랜스 여성 유이가 비중 있게 등장한다. 그간 미디어 콘텐츠가 트랜스 여성을 단순 희화화의 대상으로 삼아왔기에 트랜스 여성이 주요 인물로 등장한 것 자체는 한 발짝 나아간 시도라 평할 수 있겠지만, 영화에서 유이의 캐릭터성은 특징적인 외형에 의해 규정된다. 유이는 극 중 총탄이 난무하는 상황에서 짙은 화장을 한 채로 망사 스타킹에 굽 높은 샌들을 신고 도망가는데, 이는 트랜스 여성이 ‘얼마나 잘 꾸몄는지’에 집중하는 편견 담긴 시선과 무관하지 않다.
투명해지는 소수자
현실의 고정관념이 미디어 콘텐츠에 그대로 반영되는 경우도 많지만, 애초에 현실이 미디어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는 문제도 살펴야 한다. 현실의 어떤 사람들은 미디어 속에 아예 등장하지 못하기도 한다. 김수아 교수(언론정보학과)는 “미디어 속 소수자의 재현은 우선 현실을 반영해야 하는데, 여성, 장애인, 성소수자는 여전히 실제에 비해 거의 재현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미디어에서 소수자가 재현되지 않고 비가시화되는 상황을 문제로 꼽은 것이다.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에서 발간한 「2022년 미디어 다양성 조사」에 따르면 여성, 노인, 장애인은 실제 비율에 비해 드라마에서 과소 재현되고 있다. 2022년 1월부터 6월까지 지상파, 종합편성채널, 〈tvN〉에서 편성된 모든 TV 드라마 속 인물을 분석한 결과 남성 등장인물은 57.2%였다. 같은 기간 넷플릭스에서 편성된 OTT 드라마 13편의 등장인물 성별 비율을 분석한 결과도 남성이 66.5%로, 여성 인물의 두 배 정도였다.

장애인이 재현되는 비율도 현저히 낮았는데, 현실의 장애인 비율은 전체 인구의 5.1%지만, TV 드라마와 OTT 드라마 모두에서 등장인물 중 장애인의 비율이 0.3%에 불과했다. 노인 또한 실제와 비교해 드라마에 적게 등장했다. TV 드라마와 OTT 드라마 모두에서 30~49세, 15~29세 집단은 실제보다 많이 재현됐지만, 노인은 적게 재현된 것이다.
백세희 변호사는 미디어가 소수자의 존재를 아예 재현하지 않거나 구태여 부각하지 않는 양상을 ‘투명하다’라는 형용사로 표현했다. 소수자가 미디어에 충분히 재현되지 못하고, 외려 미디어가 그들을 투명하게 지워버리는 현실을 문제시한 것이다. 이렇듯 미디어 콘텐츠에서 소수자는 손쉽게 납작해지거나 투명해진다.
미디어에서의 소수자 재현, 왜 중요한가
“Representation matters(재현이 중요하다).” 캐나다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김씨네 편의점》(2016~2021)으로 코미디 부문 남우주연상을 받은 폴 선형 리는 소수자가 미디어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볼 때 강력한 힘을 얻을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다양성을 포용하는 미디어 콘텐츠를 통해 주변화됐던 소수자가 전면에 서고, 목소리를 내며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미디어에서 소수자가 재현되고, 다양한 배경과 특징을 가진 인물이 콘텐츠에 등장하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사람들이 직접 경험할 수 있는 세계는 한정돼 있기에, 미디어는 사람들에게 경험해 보지 못한 다른 세계를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창으로 기능한다. 따라서 현실을 반영하고, 다양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은 미디어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다. 사람들은 미디어를 통해 현실을 인식하고 구성해 나가므로, 미디어에서 현실의 다양성이 제대로 구현되지 않는다면 타자에 대한 이해의 폭이 좁아질 수밖에 없다.
김수아 교수는 미디어가 “현실에 존재하는 사람들을 드러낼 책무가 있다”며 “편견을 가진 재현이나 정상성에 집착하는 캐릭터 재현이 반복될 경우 사람들의 인식 속에 다양성과 관련한 담론을 만들어 내기 어렵다”는 점을 짚었다. 동시에 김 교수는 “소수자성을 가진 인물이 특정 고정관념을 반영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하지만, 그렇기에 다양성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미디어 콘텐츠에서 소수자성을 가진 인물이 1-2명만 등장할 때 그 인물에게는 특징적인 요소가 부여될 수밖에 없는데, 이때 고정관념이 스며드는 것을 막기 위해서 다양성을 확보하는 것이 필수적이라는 뜻이다. 김 교수는 “인물의 특징이 소수자의 정체성으로 재현되기보다 그 사람 고유의 특성으로 보일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세종대 한송희 교수(문화산업경영 융합전공)는 “미디어 재현은 기본적으로 가시화의 문제”라고 설명했다. 재현의 과정에서 무엇을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 즉 어떤 대상을 가시화하는가를 결정할 때 재현하는 자는 재현되는 자와 자신 사이에 경계선을 긋는데, 이는 필연적으로 재현하는 자와 재현되는 자의 권력 차이로 연결된다. 한 교수는 “경계선을 긋는 일은 정치의 핵심”이라며 그런 재현의 정치성을 고려할 때, 미디어가 다양한 존재를 조명함으로써 “현실이 안온한 세계라는 환영을 깨부수고 은폐된 현실을 폭로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인종, 민족, 젠더, 섹슈얼리티, 장애 등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던 매끈한 세상에 “미디어가 이질적인 존재를 인위적으로 심어놓음으로써 균열을 일으킬 수 있다”는 설명이다.
미디어가 개인의 주체화 과정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도 기억해야 한다. 할리우드 미디어 속 트랜스젠더의 이미지 재현과 트랜스젠더의 실제 삶을 그린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디스클로저》(2020)에서 트랜스젠더 당사자들은 ‘나 같은 사람이 있나?’와 같은 생각이 들 때 미디어를 참고했다고 증언한다. 한송희 교수는 “미디어의 재현으로 인해 개인이 자기 긍정이나 자기혐오를 하게 될 가능성이 있다”고 짚으며 “미디어에 다양한 표본이 등장하면 개인은 그 표본들과 자신 사이의 거리를 조절해 가며 주체로 거듭난다”고 강조했다. 그렇기에 미디어 콘텐츠에 개인이 스스로를 동일시할 수 있는 대상이 재현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미디어에서의 다양성 재현은 비단 콘텐츠뿐만 아니라 뉴스 보도에서도 강조되고 있다. 소수자를 단순히 이슈를 만들어 내는 대상으로 보고 단편적인 보도를 일삼을 때, 소수자의 존재는 지워진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출근길 지하철 탑니다’ 시위 보도에서 시위를 하게 된 배경이나 시위 목표에 관한 내용은 삭제되고, 시위로 인해 야기되는 주류 집단의 불편만 강조된 사례가 대표적이다. 김수아 교수는 “소수자의 목소리가 보도에 충분히 반영되고 있는지가 핵심”이라며 “정해진 프레임에 맞는 말만 골라 보도하지 말고, 소수자가 전달하고자 하는 중심 메시지를 담아야 한다”고 밝혔다.
더 뚜렷하고 입체적인 재현을 위해
‘방송심의에 관한 규정’ 제29조는 방송이 지역, 세대, 계층, 인종, 종교 간 차별·편견·갈등을 조장하면 안 된다는 점을, 제31조는 방송이 인류 보편적 가치와 인류문화의 다양성을 존중해야 한다는 점을 명시하고 있다. 방송에서 차별을 금지하고 다양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규정은 분명 존재하지만, 그 실효성이 아직은 미약한 상황이다. 김수아 교수는 “해당 조항들이 제대로 구현되기 위해서는 미디어 재현에서 다양성 가치를 추구해야 한다는 사회적 담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지난 8월에는 〈EBS〉 어린이 프로그램 《딩동댕 유치원》에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캐릭터 ‘별이’가 등장했다. 《딩동댕 유치원》은 2022년 5월부터 다문화가정, 조손가정, 장애, 성 역할 변화 등을 반영한 다양한 캐릭터를 등장시켰는데, 연출을 맡은 이지현 PD는 ‘장애인과 다문화, 성평등 등을 대표하는 캐릭터들을 넣어 편견을 깨고 싶었다’는 입장을 밝혔다.

미디어 다양성의 필요를 이야기하는 것은 단순히 미디어에서 소수자가 재현되는 비율을 양적으로 맞추자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미디어 다양성에 대한 문제 제기는 필연적으로 편견이 가득한 우리 사회를 돌아보게 한다. 현재 미디어에서 그리는 세계가 현실의 전부가 아니라는 점을 드러내고, 다수가 당연하다고 여기며 바라보는 것이 사실 당연하지 않다는 점을 꼬집는 것이다. 미디어에서 다양성을 논할 때, 비로소 모두가 모두에게 뚜렷하고 입체적으로 보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