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대의 자랑스러운 전통, 외국어 연극제

사진 설명 시작. 임호준 교수의 얼굴이 나온 흑백 사진이다. 사진 설명 끝.

임호준 (서어서문학과 교수)

  서울대학교 서어서문학과 학과장으로 스페인 현대문학, 영상, 영화이론, 라틴아메리카 영화를 연구한다. <현대 스페인 희곡선>을 썼다.

  필자는 스페인에서 유학을 마치고 1999년 여름에 귀국해서 2학기부터 서울대학교에서 강의를 시작했다. 그해 9월 인문대 원어 연극제가 있었고, 그때는 단순히 한 관객으로 관람하게 됐다. 비록 서툰 발음과 연기였지만 대학 저학년 학생들이 대단치 않은 어학 실력으로 원어 연극을 올린다는 게 대견스러웠다. 게다가 배우, 스태프, 무대 만들기 등에 많은 인력이 투입되기 때문에 거의 학과 학생의 반 이상이 연극에 참여하는 셈이라, 학과의 행사로서 이보다 더 좋은 이벤트는 없는 듯했다. 그래서 그 후로 매년 학생들과 함께 작품을 선정하고 번역도 해주고 학과 차원에서 도와주는 일을 맡게 되었다. 그리고 그 후로 23년의 세월이 흘렀으니 어느덧 인문대 원어 연극제의 산증인이 된 셈이다.

  그 동안의 변모를 보자면, 초기엔 문화관 중강당 혹은 학생회관 강당 한쪽에 임시 무대를 설치해 공연했었다. 2000년대 초에 두레 문예관이 개관했지만 교내의 모든 공연이 집중되는 바람에 외국어 연극제가 9월 내내 쓰기가 어려웠고, 추첨을 해 반 이상의 학과 공연이 학생회관 임시 무대에서 진행됐다. 층계식 객석을 만들어야 했기에 교내에 있는 긴 벤치를 옮겨와 그걸 쌓아서 객석을 만들었다. 배우 대기실 등이 있을 리 만무했고 무대 만드는 구조물도 엉성해 조악한 무대가 될 수밖에 없었다. 공연은 성황을 이뤘지만 학부모님들도 많이 보러 오시는 마당에 이런 공간 밖에 보여드리지 못해 안타까웠다.

  그러다 인문대 소극장이 완공돼 훨씬 쾌적한 공간에서 공연할 수 있게 됐다. 다만 객석 규모가 너무 작다 보니 마지막 회 공연엔 표가 없어 많은 사람들이 들어가지 못하는 일이 생기게 됐다. 건물 지하실 한 쪽에 만들다 보니 규모를 크게 할 수 없었던 것 같은데, 보고 싶은 학생들이 자리가 없어 관람을 못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예전엔 이틀 동안 4회 공연을 했었는데 몇 년 전부터 3회로 공연 횟수를 줄였다. 공연하는 학생들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이렇게 한 것 같지만 이왕 열심히 연습한 것이고, 공연을 보려고 하는 관객들도 충분하다면 예전처럼 4회 공연을 고려해 봤으면 좋겠다.

  어느 해나 공연을 맡은 학생들은 헌신적으로 연극에 열정을 보여 왔다. 연극이 처음인 학생들이 대부분인 상황에서 원어로 된 작품을 무대에 올린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여름방학 내내 모두가 합심해 땀 흘려서 가을에 멋진 무대를 마련할 수 있었다. 외연제의 위기가 왔던 것은 역시 지난 코로나 기간이었다. 2년 동안 쉬다 보니 막상 신입생들이 들어왔을 때 스태프를 맡아 공연을 이어줄 선배들은 이미 고학년이 돼 있어 무대와 스태프 구성이 쉽지 않았다. 코로나 기간 동안 학교에 오지 않고 집에서 화상 수업만을 들은 학생들은 학생 활동에 익숙하지 않아, 전통적으로 해 오던 여러 학생 활동들이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전통의 전수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최근 몇 년 동안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다행히 올해 외연제는 인문대의 모든 어문학과가 참여하여 성황을 이룬 듯하고, 이로써 예전의 전통이 완전히 복원된 것 같아 정말 다행스럽다.

  돌이켜 보면 인생에서 대학 시절만큼 자유로웠던 시간이 없었던 듯하고, 대학 시절의 경험과 추억은 인생의 자양분이 된다. 졸업해 사회생활을 하는 제자들이 우연한 일로 학교에 오게 되면 대학 캠퍼스가 너무 좋아서 대학 시절이 그립다고 말을 하곤 한다. 특히 외연제에서 무대에 서 본 경험은 특별한 듯하다. 연극을 한 졸업생들은 외연제 추억을 못 잊는다. 올해 서어서문학과 연극엔 40대가 된 졸업생 몇 명이 학생 연극을 관람하러 와서 후배들을 격려해주고 뒤풀이 자리까지 와서 후배들과 정담을 나눴다. 인문대 어문학과의 자랑스러운 전통으로 자리 잡은 외국어 연극제가 교수들의 전폭적인 후원과 학생들의 뜨거운 관심으로 앞으로도 발전적으로 지속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댓글 댓글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

Previous Post

한국 사회에서 결혼, 임신, 출산한다는 것

Next Post

미안! 난 연극이 너무 좋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