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저는 지금 부산에 와 있습니다. 서울에서 출발할 때만 해도 날씨가 쌀쌀했는데, 이곳은 서울보다 따뜻해서 아직 가을의 한가운데입니다. 어제는 비가 내렸는데 오늘은 하늘이 맑네요. 제가 부산에 온 것은 10월 4일부터 13일까지 열리는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를 즐기기 위해서입니다. 영화제가 중반을 넘어가고 있는 오늘도 영화의전당 앞은 영화를 만나러 온 사람들로 북적이네요.

돌아온 영화의 계절
사실 이번 부산국제영화제의 준비 과정은 순탄치 않았습니다. 올해 초 집행위원장과 운영위원장이 모두 공석이 되는 초유의 사태가 일어나면서 개최 여부조차 불투명하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습니다. 부산국제영화제는 혁신위원회(혁신위)를 꾸리며 영화제를 정상 개최하겠다고 선언했고, 결국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는 혁신위 체제로 열리게 됐습니다.
가을이 돌아오듯, 영화가 부산으로 돌아왔습니다. 영화를 만드는 이들, 영화를 사랑하는 이들에게 부산국제영화제는 마치 명절과도 같은 행사입니다. 한국에서 가장 규모가 큰 영화제이자, 수많은 영화들이 처음으로 국내에 소개되는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올해도 전국의 영화인들, 영화 애호가들, 평론가들과 기자들, 영화과 학생들이 부산에 모였습니다.

영화제에 간다는 것은 아직 개봉하지 않은 영화를 먼저 본다는 단순한 목적 이상의 의미를 가집니다. 영화제에 간다는 것은 같은 것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만나는 경험이기도 합니다. 영화를 보기 위해 새벽부터 노숙을 하고, 식사도 거르며 극장에서 극장으로 바쁘게 뛰어다니는 사람들은 영화제에서만 만날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영화제는 극장에서 영화를 함께 본다는 의미가 남아 있는 곳입니다. 사람들은 스크린 앞에서 같이 웃고, 같이 감동하고, 같이 지루해합니다. 그리고 크레딧이 모두 올라가면 언제나 박수를 칩니다. 영화를 만든 이들에게 경의를 표하는 영화제의 오랜 전통입니다.

올해의 영화들
영화제에서는 수많은 영화들이 상영되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주목받고, 많은 말이 오가는 영화들이 있습니다.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는 어떤 영화들이 화제가 됐을까요? 영화제 현장에서 전해드립니다.
가장 인기 있었던 영화,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

매년 그런 영화들이 있습니다. 아무도 표를 구하지 못하고, 예매에 성공한 사람들은 부러움의 대상이 되는 영화입니다. 올해 가장 빠르게 매진된 영화는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여덟 번째 장편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입니다. 동시대 가장 주목받는 감독 중 한 명이죠.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지금까지의 감독의 전작들과는 다른 분위기의 영화라고 하는데, 영화를 본 사람들은 모두 호평입니다. 개봉을 기다려야겠네요.
역시나 좋았던 영화, 《추락의 해부》

©《추락의 해부》 스틸컷
쥐스틴 트리에 감독의 《추락의 해부》는 영화제가 개막하기 전부터 많은 관심을 받았던 영화입니다. 올해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추락의 해부》는 남편의 의문사를 둘러싼 한 여성의 법정 영화로, 사건에 얽힌 가족의 비밀을 제목처럼 ‘해부’해 나갑니다. 복잡하지 않은 플롯을 가지고 있지만, 끝까지 긴장을 유지시키는 각본과 연출이 뛰어난 영화입니다. 칸에서 상을 받은 영화답게 관객에게 많은 질문을 던지는 영화이기도 합니다. 현장에서는 난해하지 않고 재미있다는 반응이 많았습니다.
의외로 좋았던 영화, 《찬란한 내일로》

©《찬란한 내일로》 스틸컷
《찬란한 내일로》는 다른 영화들에 비해 큰 기대를 받았던 영화는 아닙니다. 하지만 영화제에서 상영된 이후 입소문을 탄 영화 중 한 편입니다. 어느새 노인이 된 난니 모레티 감독의 자전적인 영화로, 나이가 든 영화감독이 새로운 시대와 충돌하면서 벌어지는 일들을 그리고 있습니다. 오늘날의 영화 산업에 대한 메타적인 유머가 특징이며, 극장에서는 끊임없이 웃음이 터져 나왔습니다. 동시에 영화와 지나간 시대에 대한 난니 모레티의 애정이 담겨 있는 감동적인 영화이기도 합니다.
화제의 영화, 《노란문: 세기말 시네필 다이어리》

©《노란문: 세기말 씨네필 다이어리》 스틸컷
《노란문: 세기말 시네필 다이어리》는 봉준호 감독이 활동했던 것으로 유명한 90년대 영화 동아리 ‘노란문’에 대한 다큐멘터리입니다. 봉준호 감독을 포함한 주요 회원들이 직접 출연해 노란문을 회상하는 형식으로, 지난해 《미싱 타는 여자들》로 호평을 받았던 이혁래 감독이 연출했습니다. 제작 과정에서 봉준호 감독에 대한 다큐멘터리로 잘못 알려지기도 했지만, 노란문이라는 단체에 초점을 두는 다큐멘터리입니다. 삶을 바칠 정도로 영화를 사랑했던 경험에 대해 다루다 보니, 영화제에 온 많은 관객들의 공감을 받았으며, 그런 만큼 관객과의 대화에서도 뜨거운 반응이 나왔습니다. 넷플릭스에서 제작한 《노란문: 세기말 씨네필 다이어리》는 개봉일을 아직 알 수 없는 다른 영화들과 달리 지금 바로 볼 수 있는 영화입니다.

영화제가 열리기 몇 주 전, 영화제 지원 예산이 크게 삭감됐다
영화제 기간 곳곳에서 ‘문화체육관광부는 지역영화 관련 사업을 원상 복구하라’라는 문구를 볼 수 있었습니다. 영화제가 열리기 몇 주 전, 영화진흥위원회가 영화제에 대한 지원을 대폭 삭감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기 때문입니다. 부산국제영화제는 전주국제영화제,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서울독립영화제 등 50여 개 국내 영화제들과 함께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올해도 준비 과정에서 어려움이 있었지만, 결국 축제는 막을 올렸고 우리는 다시 한번 영화를 보러 모였습니다. 앞으로도 영화의 축제는 계속될 수 있을까요. 내년에도 우리가 다시 만나기를 바라며, 이만 총총 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