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회 동향
연구 생태계에 드리워진 R&D 예산 삭감안
181호

연구 생태계에 드리워진 R&D 예산 삭감안

R&D 예산 삭감안에 저항하는 학생사회의 목소리를 듣다

  “국가와 과학자들 사이의 신뢰관계가 깨진 거죠.” 정부 R&D 예산 삭감안에 대해 묻자, 이준호 기초과학연구원장은 이렇게 대답했다. 과학기술통신부(과기부)는 지난 8월 22일 ‘2024년도 주요 R&D 예산배분·조정안’과 ‘정부 R&D 제도 개선안’을 발표했다. 주요 R&D 예산 13.9% 삭감, 정부출연연구기관(정출연) 예산 10.8% 삭감 등 33년만에 정부 R&D 예산이 삭감됐다. 정부는 이러한 예산 삭감의 이유로 ‘나눠먹기식 R&D 청산’, ‘R&D다운 R&D 형성’을 내세웠다.

  R&D 예산 삭감 소식은 이공계를 필두로 한 연구계·학계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삭감안 발표 3일 후인 8월 25일, 전국공공연구노동조합(공공연구노조)와 전국과학기술노동조합(과기노조)가 정부를 향해 사과와 삭감안 철회를 요구하는 성명문을 발표했다. 그로부터 3일 후, 8월 28일에는 서울대학교와 한국과학기술원(KAIST)을 포함한 7개 대학 학생회가 공동 성명문을 발표했다. 9월 5일 출연(연)과학기술인협의회총연합회 등 9개 조직이 참여한 ‘국가 과학기술 바로 세우기 과학기술계 연대회의’가 출범했고, 18일에는 기초연구연합회의 주관 서명운동이 시작됐다. 지금도 계속해서 성명문과 면담 등 대응이 이뤄지고 있다. R&D 예산 삭감안이 대체 무엇이기에 이렇게 큰 반발이 일어난 것일까. R&D 예산 삭감안에 대한 서울대 내부의 목소리를 들어봤다.

정부 R&D 예산, 학문 연구의 기반

  Research & Development, R&D 예산은 연구개발을 위해 정부와 민간기업이 지원하는 자금이다. R&D 예산은 크게 민간기업에서 투자하는 기업 R&D 예산과 정부에서 투자하는 정부 R&D 예산으로 나뉜다.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이 작년 12월에 발간한 「2021년 우리나라와 주요국의 연구개발투자 현황」에 따르면 2016년부터 2021년에 이르기까지 정부 R&D 예산이 총 R&D 예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대를 유지하고 있다.

사진 설명 시작. 가로축은 2016년부터 2021년까지 각 년도를, 세로축은 차지 비중을 퍼센트로 나타낸 평면이다. 평면 위에는 두 개의 선형 그래프가 있다. 민간기업 R&D를 의미하는 그래프는 70%대를 유지하고, 정부 R&D를 의미하는 그래프는 23%내외를 유지하고 있다. 사진 설명 끝.
▲2022년 기준 우리나라 재원별 R&D 비중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 혁신정보분석센터

  기업 R&D 예산과 정부 R&D 예산은 각각 개발과 연구 담당으로 암묵적인 역할분담이 이뤄지고 있다. 기업 측의 목표는 이익 추구와 당면한 문제 해결로, 개발 부분에 치중해 예산이 지원된다. 자연스럽게 정부 R&D 예산은 민간에서 수행하기 어려운 양자, 원자력 등 첨단 기술 연구나 불확실성이 높은 초기 연구, 타 연구들의 기반이 되는 기초학문 연구를 담당한다. 지난 9월 25일 국무회의에서 윤석열 대통령도 “정부는 민간이 할 수 없는 원천·첨단기술 개발과 미래성장동력 창출을 위한 기술개발에 집중해야 한다”고 언급한 바 있다.

사진 설명 시작. ‘정부 R&D 중점투자분야’라는 제목을 가진 그림이다. 아래는 4분할돼 4개의 투자분야를 설명하고 있다. 각각 국가전략기술(4.7조), 국민체감 성과 창출, 기초연구 지원 및 인재 양성(3.2조원), 기업 및 지역 혁신과 민간 및 군인 협력이다. 사진 설명 끝.
▲2023년 정부 R&D 집중 투자 분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비어가는 연구실, 정체된 학문

  학부생을 포함한 연구계 관계자들은 정부 R&D 예산 삭감안에 대해 저마다 우려를 내비쳤다.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학생회와 자연과학대학 학생회측은 지난 9월에 시행한 의견 설문조사 결과 학부생들 공통으로 “연구 성과 저하와 미래 진로에 미칠 부정적인 영향을 걱정하는 의견이 많았다”고 전했다. 이도연 대학원총학생회장(보건대학원 박사과정)은 “인건비 삭감과 연구 성과 저하를 가장 우려하고 있다”고 밝혔으며, 이준호 기초과학연구원장 역시 “연구 생태계의 붕괴가 우려된다”고 전했다.

  정부 R&D 예산은 과제의 형태로 기획된 사업들에 편성돼 한국연구재단을 통해 이를 각 연구실들이 수주하면서 배분된다. 정부 R&D 예산이 삭감되면 신규 과제의 수가 줄어들고, 기존 연구는 단가를 낮추게 된다. 일례로 장기 연구와 불안정한 초기 연구가 상당수를 차지해 R&D 예산 삭감에 큰 타격을 입을 것으로 예상되는 기초 연구 분야는 약 1,600억 원의 예산과 2,700건 가량의 과제 감축이라는 칼바람을 맞았다. 

사진 설명 시작. 과기부와 교육부가 각각 2개의 막대그래프를 가지고 있다. 과기부는 각각 8,220과 6,678을 값으로 하고, 교육부는 각각 5,013과 3,777을 값으로 한다. 그래프의 제목은 ‘정부 기초연구 R&D 삭감-과제 수’이다. 사진 설명 끝.
▲기초과학분야 과제 변동 ⓒ송나윤

  연구실은 줄어든 과제를 수주받기 위해 더 많은 경쟁을 할 수밖에 없고, 그렇게 과제를 받더라도 감소된 예산 탓에 연구원과 장비 간 양자택일의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이준호 기초과학연구원장은 “학부생들과 대학원생들의 연구수당에 대한 우려는 인정할 수밖에 없다”며 현장의 이야기를 꺼냈다. “기존 대학 연구실의 과제 선정률은 20%대”라고 연구실의 가혹한 경쟁 사정을 밝힌 이 원장은 “기초연구비는 크게 인건비와 진행비로 나뉘는데, 진행비는 거의 고정 비용이기에 줄어든 예산에서 인건비를 늘리면 사람은 있는데 연구가 안 되고, 고정 비용을 유지하면 연구할 사람이 없는 상황이 된다”며 연구실이 빠질 딜레마를 우려했다.

사진 설명 시작. 파란 배경에 흰 손과 저울이 그려져 있다. 저울의 양 끝에는 각각 재료비, 인건비라 쓰여 있다. 그 위에 동전이 여러 개 올라가 있고, 하얀 손은 인건비라 적힌 쪽의 동전을 덜어내려는 듯 망설이고 있다. 사진 설명 끝.
▲인건비와 재료비 사이 딜레마에 빠진 연구계 ⓒ송나윤

  이준호 기초과학연구원장은 연구원이라는 직종의 미래도 타격을 받는다고 말했다. 이 원장은 “이번 예산안에서 소액 과제와 지역 대학 과제가 거의 사라졌다”며 “신임 교수나 비전임 교원들, 박사 후 연구원들은 소액 과제를 받아 연구를 지원받을 수 있어야 하는데, 소액 과제의 소멸은 연구 생태계를 붕괴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실제로 떠나라는 이야기를 하는 연구실들이 있고, ‘우리나라 사람들이 간다면 좋은 데 잘 갈 수 있다’, ‘돌아올 자리도 없을 것 같고 와도 마음고생 할 거 왜 돌아오겠냐’는 이야기도 들린다”며 연구인력의 유출과 과학자들의 신뢰 붕괴 역시 우려했다.

  이도연 대학원총학생회장은 “장비와 재료가 많이 필요한 분야의 경우 연구비 삭감은 곧 연구 중단을 의미한다”며 연구 중단은 곧 “대학원생의 연구 경험을 축적할 기회의 감소와 연구 성과의 감소”로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연구 현장에 있는 사람도, 현장에 위치할 미래를 꿈꾸는 사람도 자신들의 세계 자체가 무너질지도 모른다는 걱정을 안게 된 것이다.

학생사회는 침묵하지 않는다

  서울대학교 학생사회는 외부와 적극적으로 협력하며 대응에 나섰다. 대학원총학생회는 지난 10월 8일 대학원생노동조합과 서울대를 포함한 8개 대학원총학생회 간 간담회를 진행했다. 대학원총학생회 측은 간담회에서 제시된 의제인 ▲R&D 예산 삭감 재고 ▲R&D 예산 감축 되더라도 학생 인건비 보장 ▲학생연구원 정보의 투명한 공개 ▲국가연구개발사업의 교육기능 강화 정책 제안에 동의한다며 “후속 대응책을 논의 중”이라고 밝혔다.

  학부생 측에서는 지난 8월 28일 자연과학대학과 공과대학 학생회가 첫 대응으로 공동 성명문에 참여했고, 9월 15일에는 서울대학교 물리천문학부가 천문·우주항공 분야 유관 학과 과학기술 R&D 예산 삭감 대응 공동행동 설립에 동참했다. 그러나 이때까지는 단과대별 학생회 차원에서 대응이 이뤄졌을 뿐 학교 전체 차원의 대응은 없었다.

사진 설명 시작. 흰 배경에 글이 빼곡히 들어차 있다. 이것은 7개 대학이 공동으로 발표한 성명문으로, R&D 예산 삭감안에 대해 요구하는 바가 적혀 있다. 사진 설명 끝.
▲7개 대학 학생회 공동 성명문 ⓒ한국과학기술원(KAIST) 포함 7개 대학 학생회

  공동 성명문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총학생회의 결정이 논란이 되기도 했다. 총학생회장단이 외부에서 송신된 R&D 관련 연대 요청을 민주적 절차 없이 거부의사를 전달한 것이다. 자연과학대학과 공과대학 학생회는 총학생회장단이 정당한 논의 절차를 거치지 않고 대응했다며 9월 2일 성명문을 발표했다. 두 학생회는 성명문에서 총학생회의 독단적 결정을 비판하며 추후 유사 사안에 대한 합당한 논의 절차를 거칠 것을 요구했다. 이에 대해 총학생회장단은 9월 3일 입장문을 게재하고 당일 열린 40차 총운영회의에서 앞으로의 연대, 대응을 의결기구를 거쳐 논의하겠다고 약속했다. 

  이후 자연과학대 학생회장을 필두로 R&D 정책 그 자체에 대한 주도적 대응의 필요성을 인식한 총운영위원들에 의해 ‘정부 R&D 예산 삭감 대응을 위한 특별위원회’(R&D 특위) 설치안이 발의됐다. 9월 24일 43차 총운영회의에서 인준된 R&D 특위는 10월 4일부터 본격적으로 활동을 개시했다. 총학생회 산하에서 활동할 R&D 특위에 대해 오정민 특위위원장(지구환경과학 20)은 “효과적인 대응을 위해서는 단위를 키워야 한다”는 의견 합의에서 출범했음을 밝혔다. 아울러 “공동행동 등 ‘서울대학교’의 대표성이 필요한 자리가 있을 때 총학생회의 대표성을 빌려 사다리로 활용하고자 하는 생각이 있다”며 R&D 특위의 방향성을 제시했다. 

  오정민 특위위원장은 R&D 특위의 주 활동 계획으로 연합행동과 정치권과의 소통, 학내 홍보·소통을 언급했다. 오 특위위원장은 연합행동과 관련해 “10월 7일에 연세대학교, KAIST 총학생회장단과 면담을 진행했고, 국립대학교, 사립대학교, 과학기술 특성화 대학교들에게 참여 요청을 보내 둔 상태”라고 설명했다. 또한 “10월 18일에 연합행동과 관련된 첫 회의가 진행될 예정”이라며 정치권과의 소통과 관련해서는 “국회의원들과의 면담을 추진하고 있다”고 활동 현황을 알렸다.

  주로 외부 활동에 집중했던 초기 계획과는 달리, 오정민 특위위원장은 내부 홍보·소통 활동도 계획 중에 있다고 말했다. “총학생회 SNS를 사용한 카드 뉴스를 내보낼 것”이라는 계획을 밝힌 오 위원장은 “11월 정도에 관련 분야의 분들을 모셔 공청회를 열어보자는 이야기가 제시되고 있는 상황”이라며 쌍방향 소통 방안도 논의되고 있음을 알렸다. 오 위원장은 “학내에도 더 알려서 학내에서 여론이 더 조성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판단했다”며 내부 홍보·소통 활동을 계획한 이유를 밝혔다.

  지난 10월 25일, 총학생회가 R&D 예산 삭감을 규탄하는 성명문을 발표했다. 성명문은  R&D 예산 삭감안 결정에 있어 소통과 숙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음을 핵심적인 문제로 거론하며 ‘백지화한 뒤 원점에서 모두와 재검토’를 요구했다. 우선 현 정책의 무효화를 요구했다는 점은 기존 성명문들과 같으나, R&D 예산 삭감안이 가져올 결과들에 대한 우려를 강조한 기존 성명문들과는 달리 과정에 주목해 재검토를 거론한 점은 차이가 있다.

사진 설명 시작. 흰 배경에 글이 들어차 있다. 제목은 ‘우리의 목소리로 우리의 미래를 결정할 수 있도록’ 이다. 총학생회에서 발표한 성명문으로, R&D 예산 삭감안을 백지화하고 재논의해볼 것을 요구하고 있다. 사진 설명 끝.
▲10월 25일 올라온 총학생회 성명문 ⓒ서울대학교 총학생회

연구의 터전을 지키기 위해

  R&D 예산 삭감 사태에 대응하고 있는 모든 관계자들은 공통적으로 학생들의 관심을 요청했다. 오정민 특위위원장은 “R&D 이슈에 여전히 일부 학생들만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세대의 목소리가 되기 위해서는 모두가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 같다”고 입장을 밝혔다. 이준호 기초과학연구원장 역시 “결국 누구나의 문제일 수 밖에 없다”며 R&D 예산 삭감이 학계에 속해 있는 모두의 문제임을 강조했다. 

  정부 R&D 예산 삭감안에 대해 인문사회계열 학부생들과 대학원 진학에 뜻을 두지 않은 이공계열 학부생들이 큰 관심을 가지지 않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일지도 모른다. R&D 예산에서 인문사회계열이 차지하는 비중은 2%가 채 되지 않으며, R&D 예산의 사용처는 정출연, 대학 연구실 등에 한정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부 R&D 예산 삭감이 가져올 연구계의 붕괴는 곧 지식 생태계 전체의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 R&D 예산의 삭감으로 기초연구를 비롯한 학문 연구가 성과를 내지 못하고 중단된다면 당장은 큰 문제가 발생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학문 연구의 중단은 곧 연구자 수의 감소와 그 학문을 기반으로 하는 개발 분야의 원천 소멸로 이어진다. 이는 국가 전체의 지식 생태계와 발전의 붕괴를 낳고, 그 분야에 종사하던 모든 사람들의 위기로 확대될 것이다. R&D 예산 삭감이 분야와 관계없이 학계에 몸담은 모든 이들과 관련된 문제인 이유다.

  올해 12월에는 예산안이 확정된다. 지식 생태계 붕괴라는 태풍이 되기 전, R&D 예산 삭감을 막을 수 있는 가장 빠른 시점은 지금이다. 나를 위해 말해 줄 이들이 아무도 남지 않기 전에, 학계에 속한, 학생사회에 속한 모두가 관심을 가지고 목소리를 더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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