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생활은 자유와 도전의 상징으로 여겨지지만, 새로운 환경과 불확실성에 노출돼 정신건강 문제에 취약한 시기이기도 하다. 서울대를 포함한 대부분의 대학은 정신적 위기로부터 학생을 보호하기 위해 자체적으로 상담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대학교 상담센터는 심리적 어려움을 겪는 학생들이 상담사와 대화하며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돕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지만, 대학교 상담센터 또한 위기에 처해 있다. 대학생 정신건강과 대학교 상담센터에 대해 알아봤다.
대학생 정신건강은 괜찮을까

▲대학생 정신건강 실태조사 결과 ⓒ송나윤
‘전국대학교학생상담센터협의회(전상협)’에서 발간한 「2021 전국 대학생 정신건강 실태조사」에 따르면, 대학생 열명 중 세 명은 우울 증상을 겪고 있다. 불안 증상을 겪는 학생은 전체의 13.7%, 스트레스 증상을 겪는 학생은 전체의 62.8%였다. 종합적으로 볼 때 극단적 선택을 할 가능성이 높아 자살 고위험군으로 분류된 학생은 전체의 18.1%에 달한다.
서울대의 상황도 비슷하다. 서울대학교 보건진료소에서 발간한 「2021학년도 서울대학교 학생건강검진 보고서」에 따르면, 서울대 학생 중 우울 증상 검사에서 ‘관심 요망군’과 ‘질병 가능군’으로 분류된 학생은 총 22.1%였으며, 자살을 생각해 본 적이 있거나 계획·시도한 경험이 있는 학생은 전체의 12.6%였다. 학생들이 꼽은 우울 증상의 원인은 취직, 학업, 인간관계 등 대부분 대학 생활과 관련이 있는 문제였으며, 박사, 석사, 학사 순으로 학교를 오래 다니고 학습 부담이 큰 학생일수록 정신건강 문제에 더욱 취약한 모습을 보였다.
김상회 전상협 전 회장은 「2021 전국 대학생 정신건강 실태조사」를 발간하며 대학 생활에는 ‘시기적으로 급격히 자율성이 요구되고, 경제 여건과 맞물려 취업에 관한 고민도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김 전 회장은 ‘생애의 중요 전환기를 거치는 대학생에게 심리·정서적인 어려움은 극대화될 수 있다’고 덧붙이며 대학생 정신건강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대학교 상담센터가 필요해

▲개인 상담이 진행되는 상담실 ⓒ서울대학교 자연과학대학 학생상담센터 자:우리
정신적 위기에 처한 학생들이 가장 먼저 찾아갈 수 있는 곳은 상담센터다. 서울대학교 대학생활문화원(대생원) 안인숙 전문위원은 “상담은 마음 깊은 곳의 이야기를 말로 꺼내는 작업”이라고 설명했다. 안 전문위원은 “위로가 필요한 측면을 위로하고, 고통스러운 기억을 재구성하며 마음의 구조를 바꿀 수 있다”며 학생들이 정신적 위기로부터 벗어나고자 할 때 상담센터를 적극적으로 찾을 것을 권했다.
하지만 대학생들이 학교 밖에서 심리상담을 받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한 심리상담 중개 플랫폼에 따르면, 사설 상담 기관에서 대면 상담을 받기 위해서는 1회에 약 5만 원에서 15만 원이 든다. 한 번의 상담을 위해 기꺼이 지불하기에 학생들에겐 부담이 큰 액수다. 이에 안인숙 전문위원은 “자살을 시도하는 사람들은 돈을 내면서까지 적극적으로 상담을 받으려고 하지 않는다”며, “무료인 대학교 상담센터에는 사설 상담센터에 비해 자살 고위험자들이 많이 방문한다”고 전했다.
비싼 가격만 문제인 것도 아니다. 학생들이 실제로 상담을 받기 전에는 상담사의 능력을 판단하기 어려우며, 상담을 받은 후에 상담의 효과를 정확히 인지하기도 어렵기에, 사설 상담업계에는 검증되지 않은 상담사가 다수 존재한다. 실제로 심리상담사 자격증을 발급한다고 광고하는 모 업체는 ‘출석률과 관계없이 60점 이상이면 합격’이라며 8만 원에 자격증을 제공하고 있었다. 이렇게 ‘초단기’로 자격증을 취득한 상담사가 높은 질의 상담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기는 어려우며, 이러한 상담사 양성 과정이 정상적이라고 볼 수도 없다.
이렇게 신뢰성 없는 심리상담사 자격증이 난무하는 탓에 내담자는 상담 과정에서 범죄에 노출되기도 한다. 작년 5월 〈국민일보〉의 보도에 따르면, 성폭력 피해 트라우마를 극복하려 상담센터를 찾은 한 내담자가 상담사에게 추행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정신적 위기를 겪을 때 찾아가는 상담센터의 특성상, 내담자는 상담자의 악의에 더욱 취약하다.
불확실성이 높은 사설 상담센터와 다르게 대학교 상담센터에서는 검증된 상담사들에게 전문성 있는 상담을 받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실제로 서울대에서 운영하는 대생원에는 검증된 학회에서 인증받고 훈련을 거친 상담사들이 근무하고 있다. 또한 안인숙 전문위원은 “대학생들이 겪는 심리적 문제의 원인, 즉 대학교 생활에 대해서 외부 상담사들은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며 대학교 상담센터의 전문성이 학생들에게 더 큰 도움을 줄 수 있음을 강조했다.
상담 받으려면 “한 달 기다려야”

▲서울대의 상담유관기관 및 단과대 상담실 ⓒ서울대학교 대학생활문화원
서울대도 대학교 상담센터의 필요성을 인식해 학내 곳곳에서 상담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중앙 기관으로 대생원이 있고, 대부분의 단과대학에도 독립적인 심리상담 기관이 소속돼 있다. 대생원 측 자료에 따르면, 작년 한 해 학생들이 대생원 상담센터를 이용한 횟수는 총 12,496건이다. 대생원 외의 교내 상담기구를 합치면 모두 26,482건에 달한다.
상담을 받은 학생들은 대부분 상담 내용에 만족했다고 말한다. 인문대학이 운영하는 상담센터인 학생생활문화원에서 상담을 받은 졸업생 A씨는 “외부에서 상담을 받기에는 비용이 많이 든다”며 “학교를 떠난 지금 대학교 상담센터의 존재가 더 체감된다”고 전했다. 또한 대생원에서 상담을 받은 B씨는 “상담사에 대한 요구사항이 대체로 반영됐고, 퀴어 등 내담자의 다양한 정체성을 존중하는 상담을 기대하고 요청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학생들은 상담 내용에는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으나, 상담 신청을 해도 상담을 받기까지 너무 오래 걸린다는 불만도 함께 토로했다. A씨는 “처음에는 대생원에서 상담을 받으려고 했는데, 상담사와 연결되기까지 몇 개월 정도 걸린다는 답변을 들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대생원에서 상담을 받으려면 접수부터 실제 상담을 받기까지 세 달 가량의 시간이 걸린다.
긴 상담 대기 시간은 서울대에서만 일어나는 문제가 아니다. 2018년 〈이대학보〉는 이화여대에서 ‘상담을 위해 학생들이 대기해야 하는 시간이 최소 3개월 이상’이라고 보도했다. 작년 10월 〈인하프레스〉는 인하대 ‘상담센터 홈페이지는 상담 대기 기간을 2주에서 한 달로 안내했지만, 그 이상의 기간을 기다리는 학생들도 많았다’고 보도했다. 국민의힘 조해진 의원실이 교육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1년 하반기 기준 수도권 소재 대학 중 절반가량의 상담센터에서는 학생들이 상담을 받기 위해 2주 이상 기다려야 했다.
상담 지연이 발생한다는 것은 학생들이 상담센터를 적극적으로 찾고 있다는 신호이기도 하지만, 문제 상황에 대한 신속한 대응이 중요한 상담의 특성을 고려하면 반드시 해결돼야 하는 문제다. B씨는 “당시 겪고 있던 문제가 시의성도 있고 당장의 심리적 어려움이 큰 문제였는데, 가장 도움이 필요한 시기에 빠르게 상담 프로그램을 이용할 수 없었다는 것이 다소 막막하고 힘들게 느껴졌다”고 전했다.
대학교 상담센터에 더 많은 지원을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은 대학교 상담센터에 대한 지원이 부족하다는 점에 있다. 초·중·고교의 경우에는 학교 상담 시스템이 정부 주도로 구축·운영된다. 반면 대학교 상담센터의 경우 학교 자율에 맡겨진 임의 기구에 불과하며 예산 집행도 대학의 자율적 영역이다. 따라서 대부분의 대학교 심리상담센터는 재정난과 인력난에 시달리고 있다. 전상협에서 발간한 「2023 전국대학교 학생상담 관련기관 실태조사」에 따르면 대학교 상담센터 예산에서 1년 동안 인건비로 지출하는 비용은 평균 9,432만 원, 운영비는 평균 8,670만 원이다. 예산 사정이 넉넉하지 않다 보니 충분한 인력을 고용하기 어려워, 일주일 내내 근무하는 유급직원인 전일제 상담사가 4명 이하인 대학교 상담센터도 79.1%에 달했다.
대생원의 경우에는 13명의 전일제 상담사와, 21명의 시간제 상담사가 근무하고 있다. 서울대의 총 학생 수는 학부생과 대학원생을 합쳐 대략 4만 3,000명이므로, 상담사 1명당 학생 1,800명 정도를 담당하고 있는 것이다. 대생원 측 자료에 따르면, 서울대와 비슷한 구성원 수를 가진 해외 유명 대학은 보통 40명 이상의 상담사를 고용하고 있으며, 그중 비교적 상담 시스템이 잘 갖춰진 대학의 경우 상담사 1명당 학생 수는 400명 정도다.
상담사 한 명이 담당하는 학생 수를 줄여 상담의 질을 높이기 위해선 현재 서울대에서 근무하고 있는 상담사를 2배에서 4배 정도 증원해야 하지만, 부족한 예산이 발목을 잡는다. 안인숙 전문위원은 “대학교 상담센터는 연구 실적과 같은 가시적인 성과를 내기 쉽지 않아 각종 지원을 받기 어렵다”며 “검증된 상담사를 추가로 고용하고 상담 사업을 진행하기 위해서는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재원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결국 상담센터 운영을 대학 본부에만 떠넘기기보다는, 정부에서 적극적으로 대학교 상담센터 운영을 지원할 필요가 있다. 전상협은 「2021 전국 대학생 정신건강 실태조사」에서 ‘현재 각 대학이 자체로 운영하는 대학 상담 시스템이 대학생의 정신건강을 효과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수준이 되도록 재정 지원에 대한 대학 당국의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또한 전상협은 ‘대학인증평가나 대학기본역량진단평가와 같은 각종 대학 평가 지표에 학생상담 영역의 평가 점수를 대폭 상향’할 것을 요구했다. 대학 상담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한 상담사들의 노력 덕분에 지금까지 수많은 대학생이 상담센터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학생들이 계속 상담센터를 찾을 수 있도록, 그리고 상담센터가 더 많은 학생을 도울 수 있도록 이제는 모두가 관심을 가질 차례다.
* 서울대인을 위한 24시간 상담전화 스누콜은 자살위험과 같은 응급상황에 대한 현장출동이나 전화를 통한 위기상담 및 신속한 면접상담, 심리상담 관련 문의에 대한 One-stop service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언제든지 02)880-8080로 전화하시면 대학생활문화원의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