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성소수자를 처벌합니다

 성소수자 차별 조항, 군형법상 추행죄의 위헌성을 파헤치다

  올해 2월 21일, 서울고등법원은 동성 부부의 배우자 건강보험 피부양 자격을 인정했다. ‘이성 관계인 사실혼 배우자 집단에 대해서만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하고, 동성 관계인 동성 결합 상대방 집단에 대해서는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성적 지향을 이유로 한 차별’에 해당한다고 본 것이다. 이는 한국에서 처음으로 법원이 동성 부부의 법적 지위를 인정한 사례다.

  2019년에는 대만이 아시아 최초로 동성결혼 합법안을 가결했고, 2022년에는 싱가포르가 동성 간의 성관계를 금지하는 형법 조항을 폐지했다. 태국은 일정 연령 이상이 되면 성별과 관계없이 혼인신고를 할 수 있는 결혼평등법을 올해 12월 의회에 상정할 것이라 밝혔다.

  이런 흐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한국에는 성소수자를 차별하고 심지어는 처벌하는 시대착오적인 공간이 있다. 바로 군대다. 군 사회의 질서를 규율하는 법률인 군형법에는 성소수자를 차별하는 조항인 군형법 제92조의6이 존재한다. 이 조항은 군인 또는 군인에 준하는 자에 대해 항문성교나 그 밖의 추행을 한 사람은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고 규정하는데, 사실상 남성 동성애자 군인을 색출해 그를 처벌하는 데 쓰여왔다. 군대의 기강을 바로 세운다는 명목하에 성소수자 차별적인 처사가 반복된 것이다.

  국내외 인권단체 및 관련 기관들은 성소수자의 인권을 침해하는 해당 조항의 폐지를 수차례 권고했다. 그러나 지난 10월 26일, 헌법재판소(헌재)는 기어코 해당 조항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렸다. 군형법 제92조의6, 군형법상 추행죄는 그간 어떤 방식으로 성소수자 군인에게 폭력을 가했을까. 군형법 제92조의6을 정말로 합헌이라 할 수 있을까. 군형법상 추행죄가 얽힌 사건들의 역사와 그 위헌성을 파헤쳐봤다.

‘동성애자라는 죄’로 색출되다

  2017년, 육군 중앙수사단이 동성애자 군인을 색출해 군형법 제92조의6 위반으로 형사 처벌하도록 지시한 ‘육군 성소수자 색출 사건’이 있었다. 수사단은 아웃팅 협박, 함정수사 등의 방식을 동원해 총 23명의 성소수자 군인을 색출했고, 9명을 기소, 11명을 기소유예, 3명을 불기소 처분했다.

  수사 과정은 명백히 인권 침해적이었다. 군인권센터가 2017년 4월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육군 중앙수사단은 수사 대상 군인에게 다른 동성애자 군인을 지목하게 했고, 게이 데이팅 애플리케이션에 접속해 군인으로 추정되는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보낼 것을 교사했다. 아무런 물적 증거 없이 동성애자 군인을 임의로 식별해 수사 대상을 정하는 것으로 수사가 시작됐고, 그렇게 시작된 수사 과정에서는 추행죄의 구성요건과는 무관한 사적인 성 경험, 성정체성 인지 시점을 캐묻는 등의 성희롱성 질문들이 쏟아졌다.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가 2019년 발간한 「침묵 속의 복무 – 한국 군대의 LGBTI」 보고서에 따르면, 2017년 성소수자 색출 사건 조사 대상에 포함돼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던 전역 장교 김여준(가명) 씨는 육군 중앙수사단에 의해 아웃팅을 당하고, 충분한 방어권을 행사하지 못한 채 핸드폰 디지털 포렌식을 당하는 등 사생활권을 침해받았다. 특히 수사관들은 김 씨가 군인인 전 애인과 어떤 체위로 성관계를 가졌는지, 어디에 사정했는지 따위를 물으며 모욕적인 언사를 일삼았다.

사진 설명 시작. 육군 성소수자 군인 색출 사건 A대위 석방 촉구 촛불 문화제 ‘나도 잡아가라!’의 포스터다. 포스터 제목과 일시, 장소, 주최 소개글이 오른쪽에 위치해 있다. 소개글 뒤에 수갑 모양의 이미지가 있다. 포스터 제목 아래 일시 ‘2017. 4. 21 (금) 19:30’, 장소 ‘용산 국방부 민원실 앞’, 주최 ‘군인권센터’, 주관 ‘무지개방패단’이 적혀 있다. 포스터 왼쪽에는 무지개 모양으로 입이 가려진 군복을 입은 사람 모습 일부가 있다. 사진 설명 끝.
▲2017년 육군 성소수자 색출 사건을 규탄하고 수사 과정에서 구속된 A 대위의 석방을 촉구하는 집회의 포스터 사진 ©군인권센터

  육군 성소수자 색출 사건으로 입건돼 수사를 받고, 군검찰이 기소유예 처분한 인원 11명 중 7명은 군인권센터의 지원으로 헌재에 기소유예 처분 취소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지난 10월 26일, 헌재는 기소유예 조치가 청구인의 평등권과 행복추구권을 침해했다는 이유에서 기소유예 처분 취소 신청 7건을 모두 인용했다. 사건이 발생한 지 6년 만이었다.

  색출 사건 당시 기소된 인원은 9명이었다. 이들 중 4명은 1심 보통군사법원에서 유죄를 선고받았으나, 개인 사정으로 항소를 포기했고, 1명은 기소 단계에서 만기 전역하며 관할이 민간으로 이전돼 서울북부지방법원에서 1심과 2심 모두 ‘합의된 성관계는 처벌할 수 없다’는 취지의 무죄 선고를 받았다. 나머지 4명은 현역 간부로, 이들은 1심 보통군사법원과 2심 고등군사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지만, 작년 4월 3심인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원심판결을 무죄 취지로 파기 환송하며 항소심에서 4명 모두 무죄 판결을 확정받았다.

  대법원은 ‘(군인이) 사적 공간에서 자발적 합의에 따른 성행위를 한 경우를 처벌하는 것은 합리적인 이유 없이 군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성적 자기결정권을 과도하게 제한하는 것’이라고 판단했다. 군대의 군기를 직접적, 구체적으로 침해한 경우가 아니고서야 해당 조항을 적용할 수 없다고 본 것이다. 이는 현행 규정의 적용 범위를 제한해 해석함으로써 당사자들을 구제한 판결이었다.

  관련 보도자료에서 대법원은 육군 중앙수사단이 동성애자 군인들에 대한 정보를 부적절한 방법으로 취득해 자의적으로 수사 대상을 확대한 사실이 문제임을 명확히 했다. 진술거부권을 고지하지 않은 채 자백을 받고 핸드폰을 임의로 수거하는 등의 위법한 수사가 이뤄진 사실을 대법원도 인정한 것이다.

  한편 2019년, 육군 성소수자 색출 사건 당시 입건됐던 군인 중 2명이 각각 장기 복무 선발에서 탈락하고 진급 과정에서 불이익을 받아, 결국 두 사람 모두 강제 전역할 처지에 놓였다는 〈한겨레〉의 후속 보도가 있었다. 공식적인 이유가 밝혀지진 않았으나, 군인권센터와 당사자들은 색출 사건에 연루됐던 것이 직접적인 이유였을 것으로 추측한다. 다른 평가 요소에서는 좋은 점수를 받았고, 평소 군대 내 신임도 두터웠기 때문이다.

  이뿐만 아니라 2018년 말 해군에서는 군형법 제92조의6 위반 혐의로 해군 군사경찰과 군검찰에 의해 3명의 해군이 수사받은 일이 있었다. 해군 병영 상담관이 성소수자 군인과 상담한 내용을 상부에 유출한 결과 해군 3명이 입건돼 수사받은 사건이었다. 3명 중 기소된 사람은 없었으나, 기소유예 처분을 받은 간부 1명이 헌재에 기소유예 처분 취소 헌법소원을 제기했고, 헌재는 지난 10월 26일 기소유예 처분 취소 신청을 인용했다. 2017년 사건과 마찬가지로, 기소유예 조치가 청구인의 평등권과 행복추구권을 침해했다고 본 것이다.

  군인권센터에 따르면, 2020년에는 한 부사관이 선임인 부사관으로부터 동성 간 성폭력 피해를 당한 사건이 발생했다. 이때 군검찰은 가해자의 말을 일부 수용하며 피해자가 ‘합의하에 동성 간 성관계’를 한 사실이 있다고 몰았고, 오히려 피해자를 군형법상 추행죄 조항으로 입건, 수사한 뒤 기소유예 처분했다. 군인권센터는 이와 같은 사례들을 통해 ‘군형법 제92조의6이 얼마나 다양한 방법으로 성소수자 군인들을 괴롭힐 수 있는지’ 확인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2019년 국제앰네스티 질의에 대한 국방부 답변에 따르면 군형법 제92조의6으로 인한 연도별 기소 인원은 2009년과 2010년에 각각 2명이었던 데 비해 2017년에는 28명에 달했다. 국제앰네스티는 2017년 기소된 군인의 수가 이례적으로 증가한 지표로부터 그즈음 수사에 관한 군 당국의 의도적 결정이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다시 말해 군형법 제92조의6을 실제로 집행할지의 여부가 시기별 군 인사에 따라 자의적으로 결정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강태경 연구위원은 “모욕적인 심문과 위법한 증거 수집, 각종 인권침해가 일어났던 색출 작전이 당시 지휘관의 구체적인 지시에 의해 이뤄졌다”며 “이 조항이 선택적으로 집행돼왔다는 점을 잘 보여준다”고 비판했다.

사진 설명 시작. ‘군형법 제92조의6으로 인한 기소 인원(~2018.6)’을 나타낸 꺾은선그래프다. 우측 하단에 ‘단위: 명’, ‘출처: 「침묵 속의 복무 - 한국 군대의 LGBTI」, 국제앰네스티, 2019’가 적혀 있다. 꺾은선그래프는 2009년부터 2018년 6월까지의 인원을 표시하고 있다. 수치는 다음과 같다. 2009년 2명, 2010년 2명, 2011년 13명, 2012년 14명, 2013년 3명, 2014년 4명, 2015년 6명, 2016년 8명, 2017년 28명, 2018년 6월 10명. 2017년이 눈에 띄게 솟아있다. 사진 설명 끝.
▲연도별 군형법 제92조의6으로 인한 기소 인원(~2018.6)

  군인권센터는 “2017년 이전까지 군형법 제92조의6은 실제로 적용되더라도 수사단계에서 기소유예 처분으로 마무리되는 경우가 대다수”였지만, 2017년의 색출 사건을 통해 “군형법상 추행죄가 존재하고, 누군가 이 법을 악용할 가능성이 다분하다는 점을 여실히 보여줬다”고 지적했다. 군인권센터는 또한 “수십 명의 성소수자들이 이 법을 근거로 인권을 침해당하며 수사를 받았고, 형사 처벌될 위험에 놓였기 때문에 법률을 아예 폐지하지 않고서는 언제든 이러한 일이 반복될 수 있다는 교훈을 남긴 사건”이라고 강조했다.

숙고 없는 제정, 혐오의 칼이 되다

  일련의 사건들의 근거가 된 군형법 제92조의6은 대체 어떤 조항이고, 어떤 제·개정 과정을 거쳤을까. 군형법 제92조의6은 ‘제1조제1항부터 제3항까지에 규정된 사람에 대해 항문성교나 그 밖의 추행을 한 사람은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때 제1조제1항부터 제3항까지에 규정된 사람은 군인 또는 군인에 준하는 자로, 현역에 복무하는 장교, 준사관, 부사관 및 병사 혹은 예비역, 군무원, 군적을 가진 군의 학교의 학생과 사관후보생 등을 포함한다.

사진 설명 시작. ‘군형법상 추행죄의 역사’를 제목으로 하는 인포그래픽이다. 제목이 중앙 상단에 큰 녹색 글씨로 써있고, 아래부터 왼쪽에 년도, 오른쪽에 내용이 적혀 있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1962년에 ‘군형법 제정, 화살표, 계간 기타 추행을 한 자는 1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2002년에 ‘헌법재판소, 1차 합헌 결정 (합헌 7, 위헌 2)’, 2009년에 ’15장에 ‘강간과 추행의 죄’가 신설되며 조항이 제92조의5로 옮겨짐., 화살표, 계간이나 그 밖의 추행을 한 자는 2년 이하의 징역에 ㅓ한다’, 2011년에 ‘헌법재판소, 2차 합헌 결정 (합헌 5, 한정위헌 1, 위헌 3)’, 2013년에 ‘유사강간 처벌 규정이 신설되며 조항이 제92조의6으로 옮겨짐., 화살표, 제1조제1항부터 제3항까지에 규정된 사람에 대하여 항문성교나 그 밖의 추행을 한 자는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2016년에 ‘헌법재판소, 3차 합헌 결정 (합헌 5, 위헌 4)’, 2017년에 ‘2월 | 인천지방법원, 위헌법률심판 제청, 4월 | 육군 성소수자 색출 사건’, 2019년에 ‘해군 성소수자 색출 사건’, 2020년에 ‘수원지방법원, 위헌법률심판 제청’, 2022년에 ‘대법원, 군형법상 추행죄 사건 무죄취지 파기환송’, 2023년에 ‘헌법재판소, 4차 합헌 결정 (합헌 5, 위헌 4)’. 사진 설명 끝.
▲군형법상 추행죄의 역사

  1962년 제정된 군형법은 제정 당시 제95조를 ‘계간 기타 추행을 한 자는 1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고 규정했다. 대법원 자료에 따르면 이는 미국 전시법의 ‘소도미(sodomy)’를 ‘계간(鷄姦)’으로 번역해 처벌하던 국방경비법 규정을 그대로 이어받은 것이다. 당시 입법취지는 군대 내 남성 동성애 성행위 자체를 범죄로 규정하는 것이었다.

  이후 2009년 군형법 개정 때 강간 등의 규정이 제15장 ‘강간과 추행의 죄’에 신설되며 추행 조항은 제92조의5로 옮겨졌고, 그 내용은 ‘계간이나 그 밖의 추행’으로, 법정형은 1년 이하의 징역에서 2년 이하의 징역으로 바뀌었다. 2013년 개정에서는 군형법에 유사강간을 처벌하는 규정이 신설됐는데, 이에 따라 추행 조항이 제92조의6으로 옮겨졌다. 이때 ‘계간이나’라는 표현이 ‘제1조제1항부터 제3항까지에 규정된 사람에 대해 항문성교나’로 바뀌었는데, 개정 취지 자체는 행위의 대상을 명시적으로 규정해 군인 간 성적 행위에만 적용되는 조항임을 명확히 하고 동성 간 성행위를 비하하는 계간이라는 용어를 대체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군대 내 성소수자 색출 사건에서 목도한 것은 국가가 군형법을 근거로 언제든지 성소수자를 죄인 취급할 수 있다는 현실이었다.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 ‘다양성을 향한 지속가능한 움직임, 다움’에서 성소수자 인권 운동을 지속해 온 사회학 연구자 정성조 활동가는 “19세기와 20세기에 걸쳐 서구 사회에서 소도미법이 했던 역할을 군형법상 추행죄가 하고 있다”고 짚었다. 정 활동가는 군형법상 추행죄가 “동성애를 야만적인 것으로 보던 구시대적 발상을 바탕으로, 이를 처벌하는 것이 합당하다는 그릇된 인식을 반영”한 조항이라고 꼬집었다.

  정성조 활동가는 “미군정하에 미 전시법 소도미 조항을 번역해 들여올 때 법이 무엇을 어떻게 규정하는지, 법이 왜 필요한지 제대로 논의되지 못한” 상황이었음을 추가로 설명했다. 군형법 제정 시에 개별 조항이 미칠 영향을 충분히 숙고하지 않았고, 그 결과 명시적으로 동성애를 처벌하는 조항이 생겼다는 것이다. 정 활동가는 군형법상 추행죄가 “우리 사회의 전통과는 아무 관련이 없음에도 성소수자 군인을 차별하는 제도로 비교적 최근에 되살아났다”며 “이후 군대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에 동성애 혐오를 정당화하는 근거로 확산됐다”고 비판했다.

  강태경 연구위원은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군형법상 추행죄 판결에 대한 연구에서 항문성교를 유사강간과 구별해 별개의 범죄로 규정하고 있는 점을 문제시했다. 이전과 비교했을 때 항문성교가 성별을 명시하지 않은 중립적인 용어로 변경된 것이라는 설명이 있지만, 남성 군인 간 성적 행위에만 해당 조항이 적용돼 온 것이 현실이다. 일반적으로 항문성교는 남성 동성애자의 성적 행위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강 연구위원은 한국 법령에서 항문성교라는 문구를 사용하는 것은 군형법이 유일하다며 ‘한국 군대의 동성애 혐오 분위기와 동성애를 관리의 대상으로 규정한 것이 성소수자 군인들이 스스로를 비가시화하도록 압박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유엔 인권 기구들은 한국 정부에 군대 내 동성 간의 합의에 의한 성적 행위를 범죄화하는 군형법상 추행죄를 폐지할 것을 반복적으로 촉구했다. 2015년 유엔 자유권위원회, 2017년 유엔 고문방지위원회, 2017년 유엔 사회권위원회, 2017년 제3차 유엔 국가별 정례인권검토까지 무려 네 차례 이상의 폐지 권고가 있었다.

  그럼에도 한국 정부는 지금까지 군 기강 확보 등 모호한 목적을 앞세우고, 관련 판단은 모두 헌재에 미루며 군대 내 성소수자 인권침해를 외면해왔다. 군형법과 관련해 제기된 다수의 위헌법률심판과 헌법소원심판 청구는 병합돼 한동안 계류 상태에 있었다. 결국 지난 10월 26일, 재판관 5대 4 의견으로 합헌 결정이 내려지며 2023년에도 군형법상 추행죄의 효력은 유지됐다.

군형법상 추행죄는 위헌이다

  10월 26일 선고에서 헌재는 총 14건의 군형법상 추행죄 관련 사건을 다뤘다. 14건 중 2건은 성소수자 군인 색출 사건과 무관하게 인천지방법원, 수원지방법원이 직권으로 위헌법률심판제청을 한 경우였고, 3건은 2017년 색출 사건 당시 기소됐으나 대법원에 의해 무죄 선고를 받은 당사자 4명이 소송 진행 중에 제기했던 위헌법률심사형 헌법소원이었다. 8건은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던 육군, 해군 성소수자 색출 사건 당사자들이 제기한 기소유예 처분 취소 헌법소원, 마지막 1건은 2020년 동성 간 성추행 피해자임에도 추행죄로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던 사건 당사자가 제기한 기소유예 처분 취소 헌법소원이었다.

  기소유예 처분 취소 헌법소원의 경우 청구인의 평등권과 행복추구권을 침해했다는 이유에서 전부 인용됐고, 2017년 색출 사건 당사자가 제기한 위헌법률심사형 헌법소원은 재판의 전제성이 인정되지 않아 각하됐다. 재판의 전제성이 인정되지 않았다는 것은 해당 사건의 무죄 판결이 확정돼, 조항의 위헌 여부에 따라 당사자들이 다른 내용의 재판을 받는 경우가 아니었다는 의미다. 이번 헌재의 군형법상 추행죄 합헌 판단은 각급 법원이 제청한 위헌법률심판에 대한 결론이었다.

사진 설명 시작. ‘군형법상 추행죄 관련 선고 기록 (2023)’을 제목으로 하는 인포그래픽이다. 왼쪽 하단 초록색 원 안에 연노랑색 글씨로 ‘헌법재판소는 2023년 10월 26일, 군형법 92조의6 관련 사건 총 14건을 일괄 선고했다’가 적혀 있다. 오른쪽에는 원과 연결된 직사각형 네 개가 있는데, 각각 사건을 설명한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 번째 직사각형에는 ‘2건’, ‘법원 직권으로 제청된 위헌법률심판’이 적혀 있고 오른쪽에 화살표로 사건 설명이 연결돼 있다. 내용은 ‘2017년 인천지방법원 & 2020년 수원지방법원이 위헌법률심판* 제청, 화살표, 헌법재판소, 합헌 판단’이다. 두 번째 직사각형에는 ‘3건’, ‘색출 사건으로 기소된 당사자들이 제기한 위헌심사형 헌법소원’이 적혀 있고 오른쪽에 화살표로 사건 설명이 연결돼 있다. 내용은 ‘2017년 색출 사건 당시 기소된 사건 당사자들이 1심과 2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아 위헌심사형 헌법소원** 제기, 화살표, 헌법재판소, 청구 각하 (왜냐하면 3심 대법원의 무죄 확정 판결으로 재판의 전제성*** 인정 안 됨)’이다. 세 번째 직사각형에는 ‘8건’, ‘색출 사건으로 기소유예 처분을 받은 당사자들이 제기한 기소유예 처분 취소 헌법소원’이 적혀 있고 오른쪽에 화살표로 사건 설명이 연결돼 있다. 내용은 ‘2017년 육군, 2018년 해군 성소수자 색출 사건 당시 기소유예 처분을 받은 사건 당사자들이 기소유예 처분 취소 헌법소원 제기, 화살표, 헌법재판소, 청구 인용 (왜냐하면 평등권, 행복추구권 침해)’이다. 네 번째 직사각형에는 ‘1건’, ‘동성 간 성추행 피해자가 제기한 기소유예 처분 취소 헌법소원’이 적혀 있고 오른쪽에 화살표로 사건 설명이 연결돼 있다. 내용은 ‘2020년 동성 간 성추행 피해자임에도 기소유예 처분을 받은 사건 피해자가 기소유예 처분 취소 헌법소원 제기, 화살표, 헌법재판소, 청구 인용 (왜냐하면 평등권, 행복추구권 침해)’이다. 오른쪽 상단에는 각주 설명이 있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위헌법률심판: 법원에서 재판할 때 적용할 법률이 헌법에 위반되는지가 문제되는 경우, 법원의 제청으로 해당 법률이 헌법에 위반되는지 판단하는 재판’, ‘**위헌심사형 헌법소원: 재판의 당사자가 법원에 위헌법률심판 제청을 요청했지만 법원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은 경우, 당사자의 청구에 따라 법률이 헌법에 위반되는지 판단하는 재판’, ‘***재판의 전제성: 사건이 법원에 계속 중이고, 법률이 재판에 적용되며, 그 법률의 위헌 여부에 따라 해당 법원이 다른 내용의 재판을 하게 되는 경우에 인정됨’. 사진 설명 끝.
▲군형법상 추행죄 관련 헌재 선고 기록(2023)

  군형법상 추행죄에 대해 헌재가 합헌 결정을 내린 건 이번이 네 번째다. 위헌법률심판에서는 헌법재판관 6명 이상이 해당 법률을 위헌이라고 판단해야 위헌으로 인정돼 즉시 효력을 잃는데, 2002년에는 2인, 2011년에는 3인, 2016년에 이어 2023년에도 4인만이 위헌의견을 제출해 네 차례 모두 합헌으로 결정됐다.

  헌재나 군 당국이 군형법상 추행죄를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데에는 ‘군기-전투력-국가 안보’로 이어지는 질서를 옹호하며 그 질서를 통제하고자 하는 논리가 스며있고, 기저에는 한국의 분단 상황과 국가 안보를 배타적으로 강조하며 남성만의 징병제를 강조하는 군사주의 논의가 있다. 이러한 군대의 의도는 정상성에 집착하는 이성애·남성 중심적인 통제로 이어진다. 실제로 2016년 헌재는 군형법상 추행죄를 합헌으로 판단하며 ‘동성애자 군인이 이성애자 군인에 비해 차별취급을 받게 돼도 군의 특수성과 전투력 보존을 위한 제한으로 차별취급의 합리적 이유가 인정된다’고 설명한 바 있다.

  2023년 합헌 판단의 근거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헌재는 다수 의견으로 ‘혈기 왕성한 젊은 남성 의무복무자’들이 모여 생활하는 군대 내에서는 ‘동성 군인 사이에 성적 행위가 발생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며 ‘이런 행위를 방치할 경우 군대의 전투력 보존에 직접적인 위해가 발생할 우려가 크다’고 적었다. 그뿐만 아니라 ‘동료 군인의 성적 행위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우려까지 부담하게 하는 것은 군인 상호 간의 신뢰를 저하’하고 궁극적으로 ‘군대 전체의 사기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판단했다.

  헌재는 또한 앞서 언급된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군형법상 추행죄 판결에서 ‘사적 공간에서 자발적 의사 합치에 따라 이뤄지는 경우’에는 해당 조항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해석됐으므로 앞으로도 조항을 적용하는 것에 문제가 없다고 봤다. 대법원이 시간·장소·합의 여부 등 구체적인 상황에 따라 조항이 적용되지 않는 경우를 적시하는 판결을 남겼기 때문에 군형법상 추행죄의 적용 범위가 충분히 축소됐다는 것이다. 이러한 논리는 군형법상 추행죄가 단순히 군인 간 항문성교가 이뤄졌다고 해서 그들을 곧바로 처벌하는 데에 쓰이는 것이 아니라, 공익을 해칠 우려가 있을 때 적용된다는 주장으로 이어진다. 이에 따라 헌재의 다수 의견은 군형법상 추행죄가 군기나 전투력, 국가안보와 같이 보호하고자 하는 공익에 비춰봤을 때 개인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정도가 크지 않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의 전향적 판단을 앞세워 헌재가 안이한 결정을 내렸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정성조 활동가는 “이번 판결의 다수 의견은 지난 세 차례의 합헌 판결을 사실상 반복한 것에 불과”하다며 “군대 내 동성애의 존재가 국가의 안보를 위협할 수 있다는 근거 없는 주장의 반복”이라고 말했다. 강태경 연구위원은 “동성 군인 간 합의된 성관계가 국군의 전투력과 군인 상호 간의 신뢰를 저하한다고 평가한 다수 의견은 성소수자에 대한 비합리적인 편견과 차별적 의식을 드러낸다”고 지적했다.

  군인권센터는 헌재의 합헌 결정 이튿날 성명문을 발표해 헌재가 ‘법은 위헌이 아니라면서 그 법으로 이뤄진 처분(기소유예)은 평등권, 행복추구권 침해로 인정한 셈’이라며 ‘헌재는 모순적 결정으로 대법원 판결 뒤에 숨어 책임을 방기했다’고 규탄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군형법상 추행죄 판결이 ‘합의한 동성 간 성관계를 처벌해 온 법 적용의 역사를 부정하고 사실상 조문을 사문화’시켰음에도, 헌재가 부당한 수사와 재판에 시달린 성소수자 군인들을 외면하고 퇴행적 결정을 내렸다는 뜻이다.

  작년 4월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군형법상 추행죄 판결이 ‘합의에 의한 동성 간 성행위가 더 이상 그 자체로 처벌 여부를 따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선언한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었지만, 이와 별개로 군형법상 추행죄 조항의 위헌성은 전혀 해소되지 않은 채 남아 있다. 그럼에도 헌재가 대법원의 제한적인 해석을 근거 삼아 합헌 결정을 내린 것은 분명 무책임한 일이다.

  강태경 연구위원은 “대법원의 축소해석으로 해당 사건의 당사자들은 구제됐지만, 군형법 제92조의6의 위헌성이 사라진 것은 아니”라고 평가했다. 특히 강 연구위원은 “특정한 형태의 성관계를 형사처벌하는 조항은 과잉금지원칙에 위배되고, 이 조항이 남성 군인 간에만 적용되면 평등원칙에도 위배된다”고 지적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2022년 군형법상 추행죄 관련 위헌소원 등에 대해 헌재에 제출한 의견서에서 군형법상 추행죄가 ‘외관상 객관적·중립적 기준을 사용했으나 이 기준이 특정한 인적 속성을 지닌 차별 피해집단(동성애자)에 대해 전형적으로 불이익한 결과를 초래한다’며 ‘성적 지향을 이유로 한 불리한 대우에 해당한다’고 명시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제시한 통계에 따르면 실제로 2016년부터 2021년 6월까지 이성 간 성적 행위로 인해 군형법상 추행죄 위반으로 처벌받은 경우는 단 한 건도 없었다. 또한, 형법상 공연음란죄(제245조)와 군형법상 군무이탈죄(제30조), 근무태만죄(제35조) 등이 이미 존재하고, 징계처분 등 ‘기본권을 덜 제한하면서도 군기를 확립하는 다른 수단이 있는데도 상호 합의하에 이뤄지는 군인 간 항문성교 등을 여전히 범죄화하는 점’도 군형법상 추행죄에 남아 있는 위헌성이라 볼 수 있다.

  2017년 발간된 「제3차 국가별 정례인권검토(UPR) 한국 정부 보고서」는 군형법상 추행죄가 성적 지향을 이유로 형사처벌을 규정한 것이 아닌, 군이라는 공동생활의 특수성을 감안해 군 기강 확립을 목적으로 규정된 것이라 해명한다. 그러나 해당 조항의 실효성과 관련해, 군대 내 남성 동성애 성행위가 군대의 전투력을 저하한다는 어떤 증거도 찾을 수 없다. 충남대 도중진 교수(국가안보융합학부)는 연구 「군형법상 추행죄에 관한 소고」에서 ‘1992년 동성애자 군복무 차별을 금지한 캐나다 군의 사례분석 결과 차별금지 조치가 군 전력, 군 대비 태세, 단결력, 군 기강 등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평가가 있고, 1993년 군복무에 있어 동성애자 차별을 금지한 이스라엘 군대의 상황에 대한 연구 결과 1993년 이전과 이후의 전투력에 차이가 없음을 분석한 자료가 있다’고 밝혔다.

  또한, 군형법상 추행죄 조항의 실제 적용 사례를 보면 부대의 기강이나 전투력 보존의 위해를 판단하기보다는 동성 간 성행위 자체를 문제 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2009년 레바논 파병부대에서 남녀 장교가 부대 내 작전시설에서 성관계를 가졌고 다른 장소에서도 다섯 차례에 걸쳐 과도한 신체접촉을 했는데도 형사처벌이 아닌 징계로 처리된 반면, 공연성이나 강제성이 없었던 동성 병사 간 합의에 의한 성적 접촉은 추행죄로 유죄가 선고된 사례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군형법상 추행죄는 성소수자 군인을 위험한 존재로 낙인찍으면서, 정작 이들이 혐오적인 시선으로 인해 군대 내에서 실제로 겪는 폭력을 은폐하기에 더욱 문제가 된다. 해당 조항이 효력을 유지함으로써 실제 군복무를 하는 성소수자 군인이 받는 피해는 명백하다. 정성조 활동가는 “성소수자 군인들은 자신의 성정체성이 드러날까 노심초사하며, 실제로 아웃팅을 당하면 괴롭힘에 시달리기 일쑤”라고 전했다.

  올해 7월 전역한 23세 A씨는 군형법상 추행죄 조항이 “성소수자 군인들을 구성원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폭력적인 문장으로 느껴진다”고 말하며 “합의된 성관계가 얼마든지 가능한 성교의 한 형태일 뿐인 항문성교와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강제추행을 동일 선상에 놓는 것 자체가 이해되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한국이 남성 징병제를 실시하고 있어 청년기 남성들은 의무적으로 군복무를 해야 하는 환경이고, 직업 군인들에게 군대는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공간임을 함께 고려할 때 군형법상 추행죄의 위헌성은 결코 가벼이 볼 수 없다.

혐오로 점철된 논리에 더는 갇힐 수 없다

  헌재의 다수 의견은 군형법상 추행죄를 합헌으로 판단하며 허무한 논리만을 펼쳤다. 동성 간 성행위를 ‘장기간의 폐쇄적인 단체생활을 하면 발현되는 그 무엇’으로 보고, 이를 막기 위해서는 행정 징계로는 충분치 않고 형사처벌만이 정답이며, 반드시 처벌해야만 군대가 전투력과 기강을 유지하고 끝내 존속할 수 있다는 논리다.

  하지만 이러한 헌재의 과도한 우려는 허상에 불과하다. 헌재 및 군 당국의 우려는 동성애자의 존재 때문이 아니라 동성애에 대한 왜곡된 시선 때문에 발생하기 때문이다. 정성조 활동가는 “군형법상 추행죄가 동성애를 범죄, 성적 문란함, 무질서로 연결하는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이것이 국가 안보에 대한 심대한 위협인 것처럼 그린다”며 이런 법이 존재함으로써 “동성애가 국가와 민족을 위협한다는 담론이 형성된다”고 짚었다.

  이렇듯 다수 의견의 논리는 동성애 혐오에 기반한 논리적 비약에 가까웠지만, 같은 선고에서 군형법상 추행죄의 문제점을 짚어낸 위헌의견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위헌의견에는 ‘군기라는 추상적인 공익을 추구한다는 명목으로 자발적인 성적 행위를 형사처벌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개인의 내밀한 성적 지향에 심대한 제약을 가한다’는 판단하에 ‘동성 간의 성적 행위가 선량한 성적 도덕관념에 반하는 행위라는 종래의 평가를 이 시대 보편타당한 규범으로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내용이 담겼다.

사진 설명 시작. 헌법재판소 사진이다. 무궁화의 외형 안에 ‘헌법’이라고 적힌 문양이 제일 위에 있고, 아래에 헌법재판관 세 명이 앉아서 선고하고 있는 모습이다. 우측 하단에는 ‘YONHAP NEWS’ 워터마크 로고가 있다. 사진 설명 끝.
▲군형법상 추행죄 관련 선고 중인 헌재 ©〈연합뉴스〉

  물론 군대 내 성폭력이 실재하는 문제인 것은 사실이고, 동성 군인 간 성폭력도 흔히 일어나는 문제다. 국제앰네스티는 군대에서 게이 또는 게이로 여겨지는 남성에 대한 성폭력이 발생하는 점을 짚으며 ‘충분히 남자답지 않은’ 것에 대한 처벌로써 위계적인 폭력의 문제가 반복된다고 지적했다. 국가인권위원회의 의뢰로 2003년에서 2004년 사이 약 1년간 이뤄진 한 연구에 따르면, 군대 내 남성 간 성폭력은 ‘남성성의 경쟁 속에서 진정한 남자를 만들고자 하는 군대라는 공간에서 수단으로 쉽게 동원’된다. 즉 계급별 위계질서를 유지하려는 수단으로 남성 간 성폭력이 이용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군대 내 성폭력을 논할 때 진정으로 살펴야 할 것은 성소수자의 존재 자체나 그들의 성적 행위가 아닌,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 군대문화와 위계적인 권력관계다. 정성조 활동가는 “군대와 같이 위계적이고 폐쇄적인 조직 속에서 발생하는 동성 간 성폭력은 동성애적 욕망의 문제가 아니라 마초적인 남성성과 권력의 문제라는 점은 이미 많은 연구를 통해 확인”됐다고 언급했다. 또한 정 활동가는 “왜 성소수자 군인은 그 존재만으로도 이들을 ‘차별 대우해도 마땅한 합리적 이유’가 성립한다고 여겨지는지, 그런 성적 욕망은 과연 누구의 시선인지 반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추지현 교수(사회학과)는 연구 「‘강간’과 ‘계간’ 사이: 군형법상 “강간과 추행의 죄”의 법담론」에서 ‘성폭력과 동성애를 둘러싼 법담론은 모두 이성애·남성중심적인 편향을 드러내고 있다’고 지적한다. 군형법상 강간과 추행의 죄 조항은 성폭력을 위계적 권력관계나 군대문화가 아닌 ‘불충분한 성욕 해소와 ‘비정상적인’ 성적 지향에 의한 문제로 간주’하는 담론을 내포한다는 설명이다. 또한 그 이면에는 ‘이성애·남성중심적인 섹슈얼리티의 통제를 통해 남성 간의 연대와 질서를 유지하고자 하는 군대의 의도가 놓여있다’고 추 교수는 강조한다.

  A씨는 “개별 군인의 정체성이 군의 창설 목적을 위협하는 요소가 될 수 없다”고 말했다. 군대 내에서 성소수자를 불합리하게 차별하는 데에 군대 전투력과 국가 안보 논의를 끌고 오는 것은 지나친 비약이라는 지적이다. 또한 A씨는 “인력은 줄고, 부사관 지원자가 없어 민간인 신분인 행정군무원들에게 가스총을 채워 위병소 경계근무를 세우고 있는 실정”에서 “국가를 지키고 싶어 군에 온 이들의 개인적인 정체성을 문제 삼는 것이 맞느냐”고 한탄했다. 군인권센터는 “군대의 특수성을 앞세워 구성원의 다양한 특성을 소거하고, 무시하고, 심지어 처벌하는 방식으로는 군대 조직이 정상적으로 유지되기 어려울 것”이라 전망했다.

  강태경 연구위원은 군형법 제92조의6과 같은 차별적 규정이 “동성 간 성적 교섭을 범죄로 규정하지 않는 형법과 성적 지향을 이유로 한 차별을 금지하는 국가인권위원회법 등으로 구성된 대한민국 법체계의 일관성을 해친다”고 역설했다. 이 조항을 법체계에서 삭제하는 것이야말로 “인간존엄성과 차별 금지를 규정한 헌법 정신을 실현하는 것”이라고 강 연구위원은 강조했다.

  군형법 제92조의6 폐지만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겠지만, 조항의 폐지에서부터 군대 내 성소수자 인권 보호를 위한 논의를 시작할 수 있다는 것만은 명백해 보인다. 차별로 얼룩진 군형법상 추행죄의 역사를 똑똑히 기억하며, 혐오로 점철된 논리를 벗어나 다층적인 논의를 이어나갈 차례다.

댓글 댓글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

Previous Post

우리 사회는 당 충전 중

Next Post

세상을 마주하고 세상에 부딪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