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강한 지 이틀 차에 방학 내내 고민하던 휴학을 결심했습니다. 글쓰기를 시키는 수업이 하나 있었는데, 그 수업을 듣기 싫다고 악악대다 반쯤은 홧김에 결심한 일이었습니다. 졸업 필수 요건인 ‘사회과학 글쓰기’ 강의를 들을 땐 매주 있던 과제 마감 기한을 넘기는 게 예사였고, 동료 평가는 언제나 피하고 싶었습니다. 벌써 2년째 활동하고 있는 사회학회에서는 문집에 실을 글을 완성하는 것을 차일피일 미루다가 마지막으로 원고를 제출한 사람이 됐죠.
길게 늘여 썼지만 아무리 봐도 전 글쓰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아닌 것 같습니다. 글쓰기에 영 정을 주지 못해 의도적으로 거리를 뒀습니다. 쓴 글을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는 것도 그리 내켜 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사람이 〈서울대저널〉에서 퇴고를 거친 기사를 주기적으로 쓰다니 여러모로 신기할 따름이라, 제가 〈서울대저널〉에서 활동하고 싶다고 결심한 이유는 무엇이었는지 다시 생각해 봤습니다.
결론은 홧김이었습니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홧김은 ‘가슴속에서 타오르는 열의 운김’이기도, ‘화가 나는 기회나 계기’이기도 합니다. 두 정의 모두 제가 〈서울대저널〉에 들어온 이유를 설명해주는 것 같습니다. 갈수록 기가 막히게 돌아가는 세상에 화를 내다가 뇌리에 박힌 장면들을 잊고 싶지 않았습니다. 박혀버린 상태로 두기만 하면 한참을 응어리져 있다가 언젠가 문제의식도 뭣도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만 같았습니다. 주위를 둘러보면 끊임없이 기억하고 말할 일투성이라, 지금 여기서 기억돼야만 하는 면면을 마주하고 끝내 글로 남기고 싶었습니다.
제 홧김의 결과가 이번 182호의 ‘기억은 권력이다’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지난 10월 26일 헌법재판소 앞의 장면이 가슴속에 박혀 있기 때문입니다. 명백한 성소수자 차별 조항인 군형법상 추행죄는 네 번씩이나 합헌으로 판단됐고, 조항의 폐지를 위해 싸우던 사람들은 기자회견에서 개탄을 금치 못했습니다. 20년간 문제시됐던 조항이, 6년 전에는 실제로 군대 내 성소수자를 색출해내는 데 사용된 조항이, 그럼으로써 사실상 성소수자의 존재를 옥죄는 조항이 어째서 합헌인지 헌법재판소에 되묻고 싶었습니다. 헌법재판소가 기억하는 군형법상 추행죄의 역사는 무엇인지 따지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기억은 권력이다’를 잇게 됐습니다. 〈서울대저널〉이 ‘기억은 권력이다’ 코너를 쓰는 것은 2년 만입니다. 쓰이고 말해지며 결국 우리에게 남겨지는 기억은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을 놓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4개월 전 수습기자 지원서에는 〈서울대저널〉이라는 공간에서 함께 치열하게 고민하며 우리 사회의 소외된 존재들을 비추고 싶다고 적었더군요. 지금은 기억을 말하는 글쓰기의 힘을 믿는다고 적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