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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벌주의는 사라지지 않는다
장애인과 수능, 그리고 대학

학벌주의는 사라지지 않는다

오늘날 학벌주의, 어떻게 흘러와 어디로 가고 있나

  지난해 한 유튜브 채널에 ‘대학이 행복을 보장하지 않는 시대’라는 제목의 영상이 올라왔다. 유명 학원 강사는 영상에서 “대학에 가도 취직이 안 되고, 서울대에 가더라도 고군분투해 자기계발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학력과 학벌이 가지는 힘이 점차 떨어지고 있다며 “대학이 모든 걸 보장하는 시대는 진짜 끝난 것이 사실”이라고도 덧붙였다.

  현대의 학벌주의는 수평적 학력주의로 정의된다. 이는 동일한 최종 학력을 가진 집단 내에서 출신 학교를 최우선시하는 사회현상이다. 2022년 기준 대학 진학률이 73%에 육박하는 한국 사회에서 학벌주의는 ‘어느 대학 출신인가?’라는 질문으로 대표되며 노동 시장 등 사회 여러 분야에서 강한 영향을 미쳐 왔다. 

  지금 사회는 학벌주의가 힘을 잃고 있다고 말하는 분위기다. 어느 학교 출신인지가 더는 중요하다고 볼 수 없고, 어느 학과를 나왔는지, 어떤 ‘스펙’을 가지고 전문 자격을 갖췄는지가 더 중요해졌다는 것이다. 서울대에서의 반수 현상과 특정 학과에 몰리는 전과 신청, 국가고시 응시자 비율의 지속적 증가와 같은 상황도 이런 주장에 힘을 실어주는 것처럼 보인다.

  학벌주의는 정말로 우리 사회에서 힘을 잃어가고 있을까. 이 학벌주의는 언제부터, 어떻게 한국 사회에 자리 잡았고 어떤 형태로 변화하고 있을까. 학벌주의의 역사와 현황을 살펴보고, 이에 저항하는 목소리를 들어봤다. 

학벌, 권력이 되다

  이정규 전 캐나다 센트럴칼리지 학장은 저서 『한국사회의 학력·학벌주의: 근원과 발달』(2003)에서 독립 이후 대한민국에서는 1961년 이전, 1961년부터 1987년 군사정부 시기, 1988년 이후의 세 시기에 걸쳐 학벌주의가 강화됐다고 설명한다. 독립 초기에는 국가 재건을 위해 고위 관료 자리를 지식인들이 차지하면서 학력자본을 가지는 것이 곧 권력으로 인식됐다. 자연히 국민들의 학력자본 획득에 대한 열망은 커져만 갔다. 산업화가 추진되지 못한 상태에서 학력자본은 서민층의 사회 지위 상승을 위한 유력한 길이었다. 

  학력자본 취득을 위한 경쟁이 심화되면서, 군사정부 시기였던 1965년에는 고등교육 인력 수급을 위해 대학정원제가 실시됐고 학력자본의 위상은 더욱 높아졌다. 1988년 이후로는 산업화와 자본주의 사회화의 결과로 전문직, 기술직 등을 중심으로 구성된 신중간계층이 확대된 것이 고학력화를 야기했다. 제한된 자리를 놓고 벌어지는 학력경쟁이 심화되면서 발생한 고학력 간 계층화 현상은 학벌 경쟁을 초래해, 대학 졸업자 안에서도 어떤 대학 출신인지 위계를 나누는 현대의 학벌주의를 정립했다.

학벌의 위상을 해체하려는 노력, 얼마나 성공했나

  대한민국에서 학벌이라는 용어는 출신 학교, 특히 대학을 중심으로 무리를 형성한다는 개념으로 꽤 오래전부터 일상적으로 사용돼왔다. 그러나 ‘학벌주의’라는 용어가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시점은 학벌의 폐해가 누적되던 1990년대 후반이다. 『한국의 학벌, 또 하나의 카스트인가』(2001)의 저자로 학벌주의에 대해 오랜 시간 연구해온 국민대학교 김동훈 교수(법학과)는 학벌주의라는 말이 시민사회를 중심으로 한 교육운동 차원에서 사용된 말이라며 “대학 간판을 절대시하며 좋은 대학에의 입학이 교육의 중요 목표가 되는 문화지체적 현상을 비판하기 위해 사용됐다”고 설명했다. 

  용어의 등장과 함께 학벌주의 문제가 수면 위로 올라온 이후, 90년대부터 학벌주의를 타파하기 위한 노력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김동훈 교수는 “90년대 후반 시민운동 차원에서 시작된 학벌주의 타파 운동의 초기에는 정부에서도 그것이 시대의 흐름에 맞다고 판단해 호의적으로 대했다”며 정부까지도 운동에 함께 나섰다고 설명했다. 다만 김 교수는 “초기의 막연한 구호나 인식개혁 위주의 학벌주의 타파 운동은 그리 오래 가지 못한 것 같다”며 초창기의 운동을 다소 회의적으로 평가했다.

  김동훈 교수는 이어 “학벌주의에 대한 인식 개혁 등을 제도적으로 반영하려는 시도가 다방면으로 나타났다”며 제도적 학벌주의 타파 운동을 소개했다. 대학 입시에 관해서는 미국의 입학사정관제 도입, 취직과 관련해서는 블라인드 제도와 인턴제의 도입을 그 일환으로 언급한 김 교수는 이러한 시도들에 대해 “만족할 만하진 않지만 지난 20여년간 의식과 제도 면에서 그런대로 개선이 있었다고 생각한다”고 평했다. 다만 문화적 차원에서 꾸준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학벌주의를 타파하기 위한 노력들이 효력이 없었다고 볼 수는 없지만, 여전히 사회에서 학벌주의를 뿌리 뽑지는 못했다는 것이다.

  비교적 성공적인 사례로 평가받는 블라인드 채용 정책의 결과는 마치 노동 시장에서 학벌주의가 비교적 약화됐음을 보여주는 것 같지만, 여전히 학벌주의가 남아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2017년 8월 시작된 블라인드 채용은 입사지원서와 면접 등을 포함한 채용과정에서 편견이 개입돼 불합리한 차별을 야기할 수 있는 출신지, 가족관계, 학력, 외모와 같은 항목을 요구하지 않고 직무능력만을 평가하는 정책이다. 요구받지 않는 항목에는 출신 학교로 대표되는 학벌도 포함된다. 직무능력을 최우선시함으로써 능력에 기반한 공정한 경쟁구조를 구축하고 최선의 효율성을 얻겠다는 의도다. 

  블라인드 채용이 공공직무를 넘어서 민간기업까지 확대 적용되기 시작하면서, 채용 문화에서 뿌리내리고 있던 학벌주의가 일부 약화된 것은 사실이다. 2018년 한양대학교 산학협력단에서 발표한 「편견없는 채용·블라인드 채용 실태조사 및 성과분석 최종보고서」에 따르면 블라인드 채용 시행 이후 채용된 이들 중 서울대·연세대·고려대 출신이 약 5% 감소했고, 비수도권 대학 출신자의 비율은 4.7% 증가했다. 단순히 숫자만으로 학벌주의의 약화를 증명할 수는 없겠지만, 기업의 입장 변화에 관한 조사 결과도 있었다. 2018년 5월 취업 및 채용 관련 플랫폼 사람인에서 기업 362곳을 대상으로 채용시 학벌 평가에 관해 물은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 기업의 56.9%가 ‘좋은 학벌이 채용 평가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답했다.

  그러나 블라인드 채용도 인식 개혁을 이뤄내지는 못했다. 2019년 사람인에서 성인남녀 2,751명을 대상으로 ‘성공을 위해 좋은 학벌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지’ 물은 설문조사에서는 55.8%의 인원이 ‘필요하다’고 답하며 사회적 인식에서 학벌주의가 아직 건재함을 보였다. 2019년부터 꾸준히 증가하며 2023년 31%를 넘겨 최고치를 달성한 ‘N수생’ 비율도 학벌주의가 사회적으로 아직 견고함을 입증하는 지표다. 더 높은 학교로 이전하고자 하는 학생들의 비율이 증가한다는 사실은 사회에서 학벌이 가지는 권위를 결코 무시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여전히 많음을 보여준다. 

돈은 못 벌어주지만, 사회인의 필수 조건

  ‘대학이 밥 먹여주냐?’라는 질문으로 대표되는, 이제 자본 앞에서 학벌 또한 힘을 쓰지 못하는 사회가 됐다는 진단도 등장했다. 이와 함께 학벌주의가 무너지고 있다고 보는 관점도 힘을 얻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관점은 학벌주의가 경제적 안정성 차원에서 쇠퇴하고 있는 것에만 집중한 것으로, 여전히 사회·문화적 차원에서는 학벌주의가 건재하다는 사실을 짚지 못하고 있다. 사회도, 사회에 속한 개인도 타인을 판단할 때 타인이 속해 있거나 졸업한 학교가 가지는 사회적 지위를 그에게 투영하기 때문이다. 자연스럽게 사회에서 사람을 만날 때 학벌이 그의 인상이나 평가에 큰 영향을 주기도 한다. 학벌주의가 경제적 차원에서 무너지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학벌주의가 붕괴 중이라 보는 것은 착각일 수 있다는 것이다. 적어도 사회·문화적 차원에서 학벌주의는 여전히 건재하다.

사진 설명 시작.파란색 배경에 약 10명의 사람들이 정면을 바라보며 서 있고, 얼굴에는 학사모가 그려진 종이가 붙어 있다. 학사모 그림 위에는 무작위로 1,2,3이라는 숫자가 써 있거나 학사모에 X가 쳐져 있기도 하다. 사진 설명 끝.
▲출신 학교로 대표되는 사람들 ⓒ송나윤

  전문직 선호 현상은 학벌주의 붕괴설의 강력한 근거로 제시되곤 한다. 그러나 실상은 의약학 계열로 대표되는 전문직 양성 학교가 기존의 학벌 서열에서 최상위에 새롭게 위치하게 된 것뿐이라는 분석이 이어진다. 경제적 안정성을 보장하는 전문직에 대한 선호가 강해지면서 관련 학과가 기존의 학벌 서열을 누르고 최상단에 새로운 층위를 형성한 것이다. 기존의 학벌 서열이 경제적 권위를 가져다주는 구조가 쇠퇴하고, 전문직 양성 학교가 그 위세를 떨치게 된 것은 시장 원리와 직접적으로 연관된다. 1988년 이후 학력 인플레이션의 발생으로 고학벌, 고학력자의 공급이 급속도로 증가하면서 학벌이라는 재화가 가진 가치가 점점 떨어지고, 여기에 경제 불황이 겹치며 경쟁이 극심해져 학벌이 더는 경제적 안정성을 보장해주지 못하게 된 것이다.

  학벌주의가 붕괴한 것이라는 주장은 여전히 공허하다. 2011년 결성돼 지금까지 학력·학벌차별에 저항하고 있는 시민단체 ‘투명가방끈’의 연혜원 활동가는 더 이상 학벌주의가 의미 없다는 주장에 대해 “학벌이 힘을 잃은 것이 아니라 학벌이 이제 경쟁에 진입할 수 있는 기본적인 조건이 됐다는 의미”라고 짚으며 “학벌만으로 우위를 점할 수 없어져 학벌이 힘을 잃은 것처럼 보이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연 활동가는 “이 사회는 능력을 정상으로 규정하며 비정상을 적극적으로 배제하는 사회”이며 “한국 사회가 말하는 정상에는 이름을 알 만한 대학을 졸업하는 것이 포함된다”고 짚었다. 좋은 대학의 졸업 여부가 정상성의 기준이 된 현실을 지적하는 것이다. 

  또한 대한민국의 학벌주의는 대학교를 나눴던 것에서 시작해 점점 다른 분야로 확장되고, 또 세분화되고 있다. 같은 대학교 안에서도 학과에 따라 순위를 매기고, 대학교 이전에 고등학교 간에도 순위를 매겨 고교 서열화 현상으로 대표되는 고교 학벌주의로 이어졌다. 특수목적고등학교(특목고) 및 자율형 사립고등학교(자사고)와 일반 고등학교, 일반 고등학교 중에서도 대학 진학률이 높은 고등학교와 낮은 고등학교 간의 위계질서가 생긴 것이다. 

사진 설명 시작. 연갈색 배경에 흰색 피라미드형 구조물이 서 있다. 마트료시카 형태로 구조물이 열리면서 안에는 또 다른 피라미드형 구조물이 나타나고 있다. 사진 설명 끝.
▲대학 학벌주의 안에는 고교 학벌주의가 있다. ⓒ송나윤

  고등학교 입시를 준비하며 외국어고등학교에 입학지원서를 넣은 중학교 3학년생 A씨는 “학생들 사이에서 ‘꼴통고’라 불리는 곳들이 있어 그런 학교에 배정받으면 전학을 갈 거라 말하는 친구들이 많다”며 특목고에 지원한 이유로 “생활기록부를 잘 받아서 좋은 대학에 갈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이라는 점을 들었다. 중학생 자녀를 둔 학부모 B씨는 “좋은 고등학교에 지원서를 넣으려면 일단 그 학교가 있는 학군에 가야 한다”며 이를 위해 “이사도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고등학교 간 대학 입시에 유리한 정도에 따른 서열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이다. B씨는 또한 “혹여나 재수를 하게 된다고 하더라도, 좋은 고등학교 출신이면 재수학원에 들어갈 때도 유리하다”고 덧붙였다.

내 머릿속 학벌주의 틀 깨부수기

  학벌주의 사회를 변화시키고자 힘쓰는 움직임은 계속되고 있다. 투명가방끈은 지난 2011년부터 매년 대학입시거부선언을 발표하고 있다. 대학입시거부선언은 입시경쟁교육과 대학을 거부하겠다는 공개적인 불복종선언이자 권리선언이다.

사진 설명 시작. 약 7명의 사람이 옆으로 늘어서 서 있다. 사람들은 손에
▲2020 대학입시거부선언 ⓒ투명가방끈

  연혜원 활동가는 “학벌주의는 학벌을 취득하지 못한 개인들뿐만 아니라 학벌을 취득한 개인들에게도 인권을 존중받기 힘들게 만든다”며 학벌주의가 모두의 문제임을 지적했다. 연 활동가는 “학벌주의로 인한 사회 전체의 구조적 모순을 적극적으로 드러내기 위해 투명가방끈이 존재하는 것이기도 하다”고 전했다.

  그렇다면 이런 큰 차원의 움직임에 더해, 개인이 자신의 무의식 속 학벌주의를 부수기 위해 할 수 있는 노력에는 무엇이 있을까. 연혜원 활동가는 개개인의 노력으로 “학벌이 아닌 방식으로 자신을 설명할 수 있는 연습, 학벌이 아닌 자신의 욕망을 발견하고 수용할 수 있는 연습”을 제시했다. 연 활동가는 “학벌이 없으면 생존할 수 없다는 공포에 수긍하지 않고, 자신의 존재가 존엄하다는 것을 충분히 알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학벌주의는 오랜 시간 우리 사회에 뿌리내려 단단히 입지를 다져왔다. 대학을 졸업하는 것이 정상으로 여겨지는 사회, 대학과 학과에 따라 사회적 지위가 달라지는 것이 자연스러운 사회에서는 의식적으로 자각하지 않는 한 개개인이 학벌주의를 내면화하게 된다. 조금씩 이를 움직여보고, 바꿔내려는 시도에 주목하며 모두가 이름 앞에 붙는 무언가가 아닌 온전한 자신으로 존재할 수 있는 사회로 나아갈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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