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에서는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을까? 학교에 입학하기 위해 다시 수능을 보는 학생들이 늘었고, 입학한 후 다시 반수를 준비하는 학생들은 더욱 늘었다. 좋은 학점을 받기 위한 경쟁은 치열해졌고, 법학전문대학원(법전원)이나 복수전공을 위한 경쟁은 더욱 치열해졌다. 이런 일들이 벌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런 현상의 한가운데에 있는 학생들은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너도 로스쿨 준비하냐”
현재 4학년에 재학 중인 지우(가명) 씨는 내년에 졸업과 함께 법전원에 지원할 계획이다. 지우 씨는 중학생 때부터 법조인의 꿈을 꾸는 학생이었다. 지우 씨는 한 판사의 책을 읽고 나서 법을 통해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어졌다고 말한다. 시간이 흘러 고등학교 3학년이 됐을 때도, 그는 법과 연관이 있어 보인다는 이유로 정치외교학부에 진학했다. 그런데 요즘 주변 사람들에게 법전원에 가겠다고 말하면 대부분 ‘너도 로스쿨 준비하냐’는 말을 듣는다. 최근 들어 비슷한 전공의 학부생들이 법전원을 지망하는 일이 그닥 특별하지 않은 매우 흔한 일인 것이다. 지우 씨는 “문과라서 그냥 로스쿨에 간다는 인식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법조인을 양성하는 법전원의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 자격증으로 인한 직업 안정성 보장, 높은 경제적 보상과 사회적 지위 등이 주로 이유로 꼽힌다. 서울대에서는 대부분의 인문사회계열 학과에서 인기가 많은 진로로 여겨지다 보니, ‘문과면 로스쿨에 간다’는 인식이 생길 정도다. 지우 씨는 “로스쿨을 희망하지 않던 친구들도 한 번쯤은 LEET(법학적성시험)을 준비해보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법전원 입시를 준비하는 학생들이 늘어나면서 학교의 풍경도 변화했다. 입시 과정에 학부 학점이 반영되면서 높은 학점을 받기 위한 경쟁이 치열해진 것이다. 학점을 올리기 위해 여러 번 재수강이나 ‘자체 드랍’*을 하는 학생들도 있고, 저학년 때부터 학점을 잘 받을 수 있다고 알려진 과목만 골라서 수강하기도 한다. 이러한 추세 속에서 GPA 환산식 개정이 학내의 뜨거운 의제로 부상하기도 했다. GPA란 평균 학점(Grade Point Average)을 가리키는 단어로, 대학원 입시나 취업 등에 사용되는 지표다. GPA는 4.3 만점인 학점을 100점을 기준으로 환산해서 사용하는데, 기존 환산식에 따르면 4.0점의 학점이 96점으로 환산되는 식이다. 환산식을 개정하자는 주장이 제기된 것은 이 환산식이 학점 4.0점을 97점으로 환산하는 연세대 등 다른 대학에 비해 불리해 법전원 입시에서 손해를 본다는 이유에서였다. GPA 환산식 개정은 지난해 치러진 제63대 총학생회 선거에서 주요 공약으로 등장했고, 결국 올해 개정이 이뤄졌다. 이제 학점 4.0점은 GPA 97점으로 환산된다.
*자체 드랍: 수강신청했던 강의를 취소할 수 있는 수강 취소(‘드랍’) 제도에 빗대, C 이하의 성적을 받아 강의를 재수강하기 위해 고의로 낮은 성적을 받는 행위를 의미하는 단어
“복수전공하는 전공들이 다 비슷하더라고요”
인문대학에 재학 중인 수현(가명) 씨는 얼마 전 복수전공으로 경영학과에 진입했다. 졸업 후 진로의 폭을 넓히기 위해서였다. 인문대학에서는 졸업을 위해 복수전공, 부전공, 심화전공 중 하나를 선택하는 다전공 이수가 필수다. 수현 씨는 주전공을 평생 직업으로 삼을 생각은 없었고, 심화전공 대신 정식 학위가 하나 더 인정되는 복수전공을 선택했다. 경영학과를 선택한 이유는 ‘무난한 걸 하는 게 좋지 않을까’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경영학과는 복수전공하는 학생들이 많아 관련 정보를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수현 씨는 “복수전공하는 전공들이 다 비슷한 것 같다”며 “보통 상경 계열이나 컴퓨터공학인 것 같다”고 말했다.

복수전공·부전공 등 다전공이 확대되면서, 많은 학생들이 전공하고자 하는 인기 학과들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인문사회계열에서는 경영학과, 경제학과, 소비자학과 등이 인기가 많고, 이공계열에서는 컴퓨터공학부, 통계학과 등이 인기가 많다. 주로 취업을 위해 다전공을 준비하는 경우가 많다 보니 실용적인 학문의 인기가 높은 것이다. 이러한 인기 학과들의 복수전공 진입 경쟁률 또한 높아졌다. 학생들은 원하는 전공에 진입하기 위한 정보를 열심히 공유하며 치밀하게 다전공을 준비하기도 하고, 다전공을 신청했지만 떨어져 여러 차례 다시 시도하는 학생들도 많다.
다전공이 확대되는 것 자체에는 문제가 없지만, 다전공을 준비하는 학생들이 특정 학과로 쏠리다 보니 다양한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흥미를 느끼는 전공을 선택하는 소수 사례를 제외하면, 졸업 후 진로를 위해 전공할 학과들이 마치 정답처럼 여겨지고 있는 것이다. 인기 학과의 전공 과목을 수강하기 어려워지기도 하고, 비인기 학과에서는 대학원에 진학하는 학생들이 줄어 고민이 크다.
“서울대에서 반수하는 친구들이 더 많았어요”
사범대학에 재학 중인 영우(가명) 씨는 다른 대학에서 생명과학을 전공하다가, 지난해 다시 수능을 보고 서울대에 입학했다. 대학을 다니면서 다시 대학 입시를 치르는 이른바 ‘반수’를 거친 것이다. 영우 씨는 처음 입학한 학과가 생각한 것과 달랐고, 예전부터 교사의 꿈을 가지고 있었기에 반수를 하게 됐다. 그런 영우 씨가 서울대에 와서 느낀 점 중 하나는 ‘서울대를 와도 만족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는 점이었다. 이전에 다니던 학교에서도 반수를 준비하는 학생들이 많긴 했지만, 서울대에서 반수를 준비하는 학생들이 훨씬 많았다. 영우 씨는 “올해 학과에서 20% 정도가 휴학을 하고 반수를 준비했다”며 의과대학을 목표로 반수를 준비하는 학생들이 많았다고 말했다.
반수, 즉 대학에 합격해 등록을 한 다음 다시 다른 대학 입시를 준비하는 학생들이 늘어나고 있다. 다른 대학에서 서울대를 목표로 반수를 준비하는 학생들도 많지만, 최근에는 서울대에서도 반수를 위해 휴학하는 학생들이 크게 증가했다. 서울대에 합격한 다음 반수를 준비하는 학생들은 주로 서울대 내에서 더 인기 있는 학과를 목표로 하거나, 의대·치대·한의대 등 의학 계열 학과에 진학하기 위해 반수를 선택한다.
반수를 위해 휴학하는 학생들이 급격하게 늘어나면서, 이 현상이 하나의 사회 문제로 여겨지는 추세다. 반수를 위해 1년을 다시 입시에 매달리게 되면 학생의 입장에서도, 대학과 국가의 입장에서도 손해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올해 신입생 중 1학기에 휴학한 학생은 225명으로,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다. 반수가 1학년에 휴학을 하는 주된 사유라는 점을 고려하면 서울대 합격 이후 반수를 선택하는 학생들이 매년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메디컬을 쓰면 합격 확률이 낮을 것 같아서”
올해 사회과학대학에 입학한 민재(가명) 씨가 고등학생 때 희망했던 진로는 의·약학 계열(메디컬)이었다. 시간이 흘러 수시 원서를 제출할 때도, 민재 씨는 서울대만 빼고 의·약학 계열 학과를 썼다. 서울대 사회과학 계열 학과에 지원한 이유는 “우리 고등학교에서 메디컬을 쓰면 합격 확률이 낮을 것 같아서”였다. 수시 전형으로 들어왔기에 엄밀하게는 교차지원이 아니지만 친구들은 민재 씨가 교차지원을 했다고 여긴다. 고등학생 때 준비했던 학과는 아니지만, 민재 씨는 “다른 친구들에 비하면 전공이랑 잘 맞는 편인 것 같다”고 말했다.
주로 이과에서 문과 계열 학과로 진학하는 교차지원도 늘어났다. 2015 개정 교육과정이 도입되면서 고등학교에서 문과와 이과의 명시적인 구분은 없어졌지만, 대학들이 학과에 따른 필수 선택과목을 지정하면서 입시에서 문과와 이과의 실질적인 구분은 여전히 남아 있다. 문·이과 통합 이후 고등학교를 다녔던 민재 씨는 “학교에서 애초에 문과 반과 이과 반을 나눴다”고 말했다. 문·이과 통합형 수능이 치러지면서 이과에서 문과로의 교차지원은 오히려 활발해졌다.
교차지원 자체는 통합교육의 취지에 부합하는 현상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교차지원을 선택하는 학생들이 주로 더 좋은 학교에 입학하기 위해 원하지 않는 학과에 지원하는 점은 문제가 된다. 학과에 만족하지 못하는 등의 어려움을 겪을 수 있기 때문이다. 입학한 학과에 잘 적응하는 사례도 있지만, 민재 씨는 “(교차지원으로 입학한 다른 학생이) 자신의 적성과 학과가 안 맞는다고 하더라”고 전했다.
지금까지 서울대의 다양한 풍경들을 살펴봤다. 이들이 이런 선택을 하게 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이런 현상들을 가장 가까이에서 경험하는 이들은 어떤 감정을 가지고 있을까? 서울대 학생들의 기대와 의도, 이야기와 고민을 이어서 들어봤다.
“다른 길이 좁게 느껴지기도 하고”
지우 씨는 많은 사람들이 법전원 입시를 준비하는 이유로 안정적인 고임금, 법조인이 갖는 사회적 위상도 작용한다고 생각하지만, 대부분의 인문사회계열 학생들이 한 번쯤 법전원을 고민하게 되는 데에는 인문사회계열의 불확실한 진로도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고 느낀다. 지우 씨는 “문과가 확실히 (취직의 길이) 이과에 비해서 좁게 느껴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사회는 전문직 선호 현상 자체에만 주목하지만, 중요한 것은 전문직이 되기 위한 시험을 준비하는 학생들이 느끼는 미래에 대한 불안이다. 대학을 졸업한 이후에도 장래에 대한 전망이 불확실하다는 생각이 퍼지면서 안정적인 직업으로 여겨지는 전문직의 인기가 높아진 것이다. 전반적인 고용률은 증가하고 있지만, 늘어난 일자리가 60세 이상·서비스직에 집중돼 있어 청년·대졸자 일자리는 오히려 줄어들고 있다. 서울대는 다른 대학에 비하면 사정이 나은 편이지만, 취업이 잘 되는 일부 학과를 제외하면 진로에 불확실성을 느끼는 건 마찬가지다.

“인문학 붐은 온다?”
인문대학에 재학 중인 재희(가명) 씨는 연합전공을 이수 중이다. 여름방학 도중 “인문학 전공 하나만 해서는 취업하기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기 때문이다. 재희 씨가 느끼기에 인문대학에서는 복수전공이 꼭 해야 하는 것으로 당연하게 여겨지는 분위기다. 친구들과 “인문학 붐은 온다”는 이야기를 농담처럼 나누지만, 졸업 후 전망이 나아지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한다. 재희 씨는 “인문학의 쓸모에 대해서 논하는 자리가 점점 없어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교수님들도 어느 정도 알고 계세요”
수현 씨 주변에도 진로를 위해 다른 학과를 복수전공하는 학생들이 많다. 수현 씨는 “안타까운 점이지만 요즘 인문학 분야로 나가려고 하는 학생들이 많지 않다”고 말했다. 인문학 분야 진로의 폭이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수현 씨는 인문대학의 구성원들이 이러한 인식을 공유하고 있다고 느낀다. 수현 씨에 따르면 인문대학 교수마저도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는 “대학원에 오라고 홍보하시는 교수님들도 있지만 로스쿨에 가든 취업을 하든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된다는 분들도 많다”고 말하며 인문학 전공을 살려 진로를 정해나가기 어려운 현실을 짚었다.
인문대학은 취업 문제를 가장 직접적으로 겪고 있는 단과대학이다. 한국고용정보원 강민정 연구원은 지난해 발표한 논문에서 성별과 전공이 실업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했다. 분석 결과 인문계열을 전공한 여성의 실업 가능성이 가장 높았다. 이는 전공과 무관한 직장에 취업하는 경우도 포함한 것으로, 인문계열 전공을 살려서 취업할 가능성은 더 낮아진다. 학과 사무실에서 근로장학생으로 일하는 수현 씨에 의하면 수현 씨의 학과에서 전공을 살려서 진로를 선택하는 학생들은 “한 학번에 한두 명 정도”다. 많은 수는 아니지만, 수현 씨는 “그래도 계속해서 이 분야로 나아가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자체가 의미있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당연히 걸어놔야 한다는 식으로 컨설팅을 해요”
영우 씨는 반수를 하는 것 자체를 부정적으로 보지는 않지만, 교사를 지망하는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눠 보면 반수를 해 서울대에 오고 싶어 교육에 관심이 없는데도 서울대 사범대학에 들어오는 학생들에 대한 부정적 시선은 존재한다고 전했다. 교사가 되기 위해 사범대학에 오고 싶어하는 학생들도 있을 텐데, 그런 학생들 대신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영우 씨는 “학생들의 잘못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한다. 재수종합학원의 입시 컨설팅 방식을 직접 경험해서 잘 알기 때문이다. 영우 씨는 “일단 당연히 ‘걸어놔야’** 하고, 그 기준은 무조건 학교 이름이라고 컨설팅을 한다”며 수험생의 입장에서는 입시 컨설턴트의 말을 따를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걸어놓기: 사교육계에서 사용되는 은어. 수능 성적이 만족스럽지 않을 때, 반수에 실패할 때를 대비해 우선 합격한 학교에 등록하는 행위를 의미한다.
재수와 반수를 유도하는 사교육계의 입시 컨설팅, 학벌주의에 기반한 ‘학교 간판’을 중시하는 입시 커뮤니티의 담론은 반수를 부추긴다. 사회적으로 대학이 갖는 의미가 막중하다 보니, 많은 수험생들은 입시 컨설턴트의 말에 흔들릴 수밖에 없다. 영우 씨는 반수를 해야 한다는 명제가 “(학원가에서) 자명한 사실로 여겨진다”고 전했다.
“처음에는 많은 편인 줄 알았는데”
생활과학대학에 재학 중인 서진(가명) 씨는 ‘성적에 맞춰서’ 학과를 결정한 사례다. 서울대 공학 계열 학과에 지원하기에는 “성적이 약간 모자라서” 현재 재학 중인 학과에 지원했다. 서진 씨가 다니는 학과에는 비슷하게 학과보다 대학을 기준으로 입학한 학생들이 많은 편이다. 서진 씨는 현재 학과에 흥미를 느껴 관련 진로로 진출할 생각이지만, 주변에는 학과와 맞지 않아 반수를 결정한 학생들이 많다. 서진 씨는 다니는 학과에 유독 반수생이 많은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최근에는 이런 현상이 “평균적인 것 같다”고 느낀다. 의대 선호 현상이 심화되면서 공학 계열 학과들에서도 반수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서진 씨는 “기계공학부나 컴퓨터공학부 친구들도 반수하는 경우가 많더라”고 전했다.
최근 증가하는 반수 유행을 주도하는 요인 중 하나는 의과대학의 높은 인기다. 기계공학부나 컴퓨터공학부는 지속적으로 인기가 많은 학과들에 속하지만, 그런 학과에서도 의대 진학을 위해 반수를 선택하는 학생들이 많은 것이다. 서진 씨는 “정시로 온 학생들은 자신의 수능 점수가 의대 합격 선인 점수와 얼마 차이가 나지 않으니까 반수를 많이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불투명한 미래를 향해
기자가 만난 인터뷰이들은 최근 서울대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상을 직접 겪고 있었다. 이들은 지금 여기 서울대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반수를 해 가며 서울대에 들어온 학생들은 또다시 다른 전공을 위해, 전문직과 의대를 위해 경쟁하고 있었다. 이 모든 것들은 어디서부터 시작됐을까?
물론 이들이 전체를 대표하지는 않는다. 이들은 각자 모두 다른 고민과 이유를 가지고 있었으며, 사회적으로 논의되는 전형에 들어맞기도 하고 벗어나 있기도 했다. 다만 공통점이 있었다. 이들 앞에 놓인 시대가 녹록치 않다는 것이다. 이들은 직업을 위해, 하고 싶은 일을 위해 다양한 수단을 사용하고 있었다. 이들은 흐릿한 거울에 끊임없이 스스로의 미래를 비춰보며 수정해야 했다. 인터뷰이들은 서울대가 “한국 최고”의 대학이라고 언급했지만, 서울대의 풍경이 밝지만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