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3일부터 22일까지 14동 105호 가람이병기홀에서 『젠더, 섹슈얼리티, 장애: 경계의 몸』 전시가 진행됐다. 젠더뮤지엄코리아가 주최한 본 전시는 교양 강의 ‘성과 사랑의 역사’의 연계 전시이기도 하다.

전시를 기획한 기계형 교수(서양사학과)는 “차별이란 구조적으로 연결된 것”이라며 “섹슈얼리티, 젠더와 장애는 비슷한 차별의 방식, 서사와 원리를 공유한다”고 성과 장애를 연결 짓게 된 배경을 설명했다. 기 교수의 설명대로 전시의 주제는 사회적 지위, 미, 신체의 자유, 재생산권 등 여성주의와 장애학의 여러 공통지점을 교차한다. 전시장에는 사용된 이미지를 오려 붙여 콜라주를 완성하는 참여 코너와 장애인 예술가 김재호, 임경식, 이정옥의 작품 전시도 함께 마련돼 있었다.






『젠더, 섹슈얼리티, 장애: 경계의 몸』은 예술품, 책, 문서 등 다양한 사료를 활용해 고대로부터 현대까지 성과 장애의 역사를 추적한다.

▲ 고대 이집트, 그리스, 로마의 사료
고대의 장애인들은 격리되는 대신 신, 관리, 노예 등 다양한 모습으로 공동체 속에서 존재했다. 고대 이집트의 관료 세넵은 왜소증을 가진 하반신 마비 장애인으로 비장애인 여성과 혼인해 세 자녀를 낳았다.
고대 그리스 신 헤파이스토스는 장애인 신이다. 그는 영웅들의 무기를 만들어내는 재능 넘치는 신이지만, 동시에 아내 아프로디테를 사로잡지 못해 장애인과 성불구, 무성성을 연결하는 도식의 원류로 해석되기도 한다.
중세의 장애는 종교와 도덕의 영역이었다. 중세 공동체는 장애인을 예수가 받은 신체적 고통의 상징이자 구휼의 대상으로서 보호했다. 한편 종교와 도덕은 사회적 불만과 의심을 가라앉히기 위해 여성들을 정신장애인이나 마녀로 몰기도 했다. 마녀는 흔히 추하고 늙은 여성으로 묘사됐으며, 성불구의 원인으로 지목되기도 했다.

▲ 『The Book of Margery Kempe』를 들고 설명하는 기계형 교수. 독특하게 신비주의적 체험을 증언하던 마저리 켐프는 이단 재판에 회부됐다.
성불구는 중세의 가장 중요한 장애였다. 공동체의 생식이 달린 문제로서 성불구는 혼인 무효 사유로 인정되기도 했다.

▲ 중세 유럽의 사료. 시각장애인을 치료하는 윌리엄 성인(좌), 그라티아누스 교회법령 삽화의 일부(우). 여성이 남편의 성불구를 사유로 혼인 무효를 청구하고 있다.

근대 도시에서 장애인은 격리의 대상이 됐다. 도시 인구가 밀집하며 장애인의 지위는 사회의 질서를 어지럽히는 부랑자로 격하됐다. 근대 국가는 구빈법 등의 조치로 장애인을 수용소로 격리했다. 기계형 교수는 “이성, 개인화, 개성의 시대가 곧 장애인에겐 격리의 시작이었던 것”이라 표현했다.

근대의 과학·의학적 몸 이데올로기는 추한 몸, 신기한 몸을 규정했다. 근대의 몸 이데올로기는 특히 여성과 장애인의 몸에 추함과 병적 상태의 잣대를 들이밀었다. 이 이데올로기는 자본주의와 결탁해 비대증, 다모증 보유자, 장애인 등 ‘정상적’이지 않은 몸을 구경거리로 삼는 프릭쇼를 탄생시켰다. 프릭쇼는 20세기까지 이어졌고, 수많은 장애인이 상품으로 납치됐다.


자본주의와 열등함을 만든 몸 이데올로기는 당대 작품 속에도 반영돼 있다. 샬론 브론테의 소설 『제인 에어』의 인물 ‘버사’는 남편 로체스터의 집에 숨겨져 있는 정신장애인이자 ‘크레올’이다. 현대 문학 비평에서 버사는 당시 영국의 비백인, 혼혈을 장애로 바라보는 인종주의 코드와 재산을 탈취하려 남편에 의해 정신장애인으로 몰린 여성들을 상징하는 인물로 재해석된다.

우생학의 등장은 장애인의 재생산권을 박탈했다. 1923년 미국에서는 강간 피해를 당한 여성 캐리 벅이 그녀와 어머니가 정신장애인이란 이유로 강제 불임시술을 당했다. 미국 연방대법원은 ‘삼대가 정신장애인이라면 출산 금지 사유로 충분하다’고 판결했다. 벅과 같이 1970년대 중반까지 미국에서 강제 불임시술을 받은 이들은 6만 5천 명에 달한다.
장애인의 의사와 관계없는 생식능력 제거는 지금까지도 빈번하게 발생하는 일이다. 2007년 미국, 애슐리 X는 부모의 의사에 따라 성장판, 자궁, 유방 제거 수술을 받았다. 애슐리의 부모는 ‘애슐리가 더 성장할 시 외출과 보살핌을 받기 어렵고, 성폭력 위험에 노출되기 쉽다’는 것을 수술의 이유로 들었다. 장애를 비롯해 ‘열등한’ 특성을 지닌 인간이 생식과 재생산을 해선 안 된다는 관념은 현대에도 뿌리 깊이 남아 있다. 기계형 교수는 “유전자 조작, 대리모 등 발전하는 의료기술 속에서 자기 몸의 주인이 되지 못하는 수많은 애슐리 X의 탄생을 두려워해야 한다”고 말했다.
현대의 여성과 장애인들은 이데올로기에 저항하는 몸이 됐다. 사진작가 신디 셔먼은 여성의 몸은 ‘아름답고 신비해야 한다’는 관념에 저항한다. 그녀는 자신의 얼굴을 일그러뜨리거나, 화상 등의 분장으로 조작해 자신의 몸의 주인은 자신이라는 의식을 표현한다.

장애인은 무성적 존재, 성불구자로 규정되곤 한다. 하반신 마비를 지닌 여성 엘렌 스톨은 장애인도 성의 주체임을 표현하고자 플레이보이에 자신의 누드사진을 보내 수록할 것을 요구했다.

성별, 인종, 미추, 장애, 질병. 역사의 흐름 속에서 인간의 몸은 여러 갈래로 구획됐다. 경계지어진 몸들은 ‘몸’을 이유로 부정당해온 성, 사랑과 권리를 외친다. 그 몸으로 태어난 자만이 느낄 수밖에 없는 감각과 내면의 생각들에 대해서도 말한다. 불명확할 수밖에 없는 경계 위에서, 몸들은 계속해서 역사에 말을 남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