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을 지우는 세상에 맞서

한국성폭력상담소장에게 반성폭력 운동에 관해 묻다

  대통령이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고, “여성가족부(여가부)를 폐지”해야 한다고 말한다. 한 여성은 머리가 짧다는 이유로 모르는 사람에게 가차 없이 폭행당했고, 다른 여성은 출근길에 강간 후 살해당했고, 손가락 모양을 꼬투리 잡아 여성 애니메이터를 퇴사 조치하겠다는 회사가 존재하며, 1996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 이래 회원국 중 성별 임금 격차 1위를 유지하고 있는 대한민국에서 말이다.

  그럼에도 성차별은 존재하지 않기에 정부종합계획 중 ‘공공부문 여성대표성 제고계획’ 명칭은 ‘성별 대표성 제고 계획’으로 바뀌었고, 교육과정에서는 성평등이라는 용어가 삭제됐으며, 2024년 여성폭력 방지 및 피해자 지원 예산은 예년과 비교해 120억 원이 삭감됐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2월 20일 김현숙 전 여가부 장관의 사표를 수리하고, 여가부를 차관 직무대행체제로 유지하며 “다음 국회에서 정부조직법을 고쳐 여가부를 폐지하고, 관련 업무는 각 부처로 재이관하도록 조치하겠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여성들이 임금 차별을 받고 일자리를 잃고 폭력에 노출되고 심지어는 목숨을 잃는 일을 외면하는, 끝내 여성을 지우는 세상에 맞서 끊임없이 목소리를 내는 이들이 있다. 이분법적 성별권력관계, 여성의 몸과 성을 규범화하는 통념, 차별과 혐오를 확대하는 사회문화에 맞서 평등하게 관계 맺고 나다운 모습으로 함께 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활동하는 한국성폭력상담소다. 한국성폭력상담소장 오매 활동가에게 반성폭력 운동에 관해 물었다.

사진 설명 시작. 한 사람이 환히 웃고 있다. 두 손은 모은 모습이다. 뒤의 배경에는 ‘불충분한 기록’, ‘몰락의 시간’이라는 텍스트가 보인다. 사진 설명 끝.

한국성폭력상담소장 오매 활동가

한국성폭력상담소에 대한 간단한 소개를 부탁드린다. 한국성폭력상담소는 무슨 일을 하는 공간인가.

  이름에서 느껴지듯이, 한국성폭력상담소는 성폭력 피해자를 지원하는 일을 하고 있다. 한국성폭력상담소는 여성운동 단체이기도, 사회운동 단체이기도, 그리고 시민단체이기도 하다. 성폭력 피해가 젠더 불평등하게 짜여 있는 사회 구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라는 사실을 세상에 알리고, 동료 시민들과 여러 변화를 만들기 위한 활동을 지속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성폭력상담소는 현재 사무국, 여성주의상담팀, 성문화운동팀, 회원홍보팀, 법률팀, 부설 성폭력피해자보호시설 열림터로 구성돼 있다. 내가 속한 사무국은 한국성폭력상담소 법인 운영 전반을 총괄하고 있다.

한국성폭력상담소에서 정의하는 성폭력은 어떤 개념인가. 흔히 혼용되는 성폭행, 성범죄 등과는 어떤 차이가 있는지도 궁금하다.

  성폭력이 ‘정조에 관한 죄’로 형법에 규정돼 있던 때가 있었다. ‘몹쓸 짓’, ‘흉한 일’, ‘가정파괴범’ 등이 당시 언론에서 성폭력 가해를 보도하던 용어였다. 성폭력을 ‘가부장의 재산’인 여성에 대한 성적 침범, 즉 가부장제에 대한 도전이라고만 생각했던 것이다.

  성폭력이라는 명명을 통해서야 비로소 인권을 지닌 한 사람에 대한 성적인 방식을 동원한 폭력의 문제라는 점이 명확해졌다. 이때 ‘성’이라는 단어는 섹슈얼한 폭력 그 자체와 젠더에 기반한 권력적인 폭력이라는 의미 모두를 가진다. 그럼으로써 성폭력이라는 개념이 성희롱, 성추행뿐 아니라 성차별적인 환경 조성, 온라인상의 성적 이미지 유포 협박 등의 행위까지 포괄할 수 있는 것이다. 유엔에서는 성폭력을 ‘Gender-based violence against women’이라 부르는데, 이는 여성할례, 전쟁성폭력, 여성운동 활동가에 대한 테러 등을 모두 포함하는 개념이다.

  한편 언론에서 흔히 사용하는 성폭행이라는 단어는 성기 삽입이 있는 피해였는지에 방점을 찍는 뉘앙스가 포함돼 있다. 성폭행은 성희롱, 성추행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것을 강조하며 사건의 경중에 위계를 매기는 인식이 기저에 있으리라 생각한다.

  성범죄는 형사법상 범죄에 해당하는 성폭력을 구획한 것으로, ‘사회적으로 합의된 처벌 가능한 행위’라는 의미가 부여된 용어로 보인다. 사소한 문제로 취급되던 성폭력에 국가가 개입해 처벌하고, 사회적인 대책을 마련하라는 목소리가 지난 30년간 있었기에 이러한 사회적인 의미가 형성된 것이지만, 어떻게 보면 성범죄라는 단어는 구획된 범위까지가 범죄임을 강조하기도 한다. 어떤 사건을 성범죄 사건이라고 명명하려는 경향은 성폭력 문제를 사법의 영역에서 해결할 문제라고 생각하는 인식을 반영하는 것 같다. 그런데 성폭력 사건이 범죄인지 아닌지의 경계에만 집중하다 보면, 근저에 있는 성차별적 구조의 문제를 인식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그렇다면 반성폭력 운동은 어떤 운동인가.

  성폭력은 결국 불평등한 젠더 체계의 산물이다. 우리 사회는 ‘강간 문화’를 조성함으로써 사람들이 성폭력 문제를 사소하고도 자연스러운 문제로 받아들이게 했고, 차별과 불평등을 재생산해 왔다. 이때 강간 문화는 성폭력은 남성의 ‘거센 성욕’에 의해 일어난 일이고, 이에 저항하는 것은 의미가 없으며, 여성은 알아서 처신해야 한다는 등의 신화를 뜻한다.

  이렇듯 성폭력을 만연히 일어나게 하는 성차별적인 문화에 총체적으로 반대하는 것이 반성폭력 운동이다. 이는 개별 피해자가 사건을 의미화하고 공론화하는 과정에서 당사자와 주변인이라는 이분법적 구분을 끊어내고, 광범위한 연대를 이어가고, 성차별적 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법과 정책과 제도를 바꾸고, 정치 구성을 감시하는 등의 모든 활동을 포괄한다.

  반성폭력 운동에는 자기 피해를 직접 이야기하는 사람이 반드시 존재한다. 그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눈, 그들이 세상에 표출하는 공공성을 향한 강한 요구나 변화를 만들겠다는 힘을 마주할 때 개인적으로 많이 배운다. 피해자 개인의 경험과 세계의 구조가 연결되고 그 경험이 여성주의의 관점에서 해석될 때 더 많은 사람들과 연대하는 것이 가능해진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것이 반성폭력 운동과 거시적인 이론이 강조되는 여타 사회운동이 다른 지점이다.

대학 공동체 내의 반성폭력 운동에 대해서도 묻고 싶다. 최근 몇 년간 총여학생회 폐지나 익명 커뮤니티에서의 여성혐오 발언들이 문제로 지적되고 있는데.

  대학 내부 상황을 잘 모르는 상황에서 말을 얹기가 조심스럽지만, 요새 대학생들이 살아가기에 너무 힘들어 보인다. 최소한의 생계, 특히 주거권이 충분히 보장되지 않는 경우가 많고, 취업난은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졸업 후 미래를 위한 계획을 세우는 것이 그리 설레지 않는 상황은 개인에게 과도한 압박감을 주기 마련이다. 이런 상황에서 신자유주의나 능력주의와 같이 ‘개인이 알아서 경쟁해서 살아남아라, 그렇지 않으면 도태될 것이다’라는 식의 논리가 승기를 얻고, 타인에 대한 비하나 혐오가 계속해서 재생산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자신이 살아가고 있는 사회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고, 사회 주류의 인식뿐 아니라 사회가 등한시하는 가치들에 대해 고민하고, 연대가 필요한 현장에 가보는 등의 활동이 한 사람의 삶에 있어 소중한 자양분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직접적인 보상이 따르지 않더라도 말이다. 물론 이런 활동을 꾸리고 여러 사회운동에 참여할 기회가 개인마다 다르게 주어지는 것 또한 사실이다. 권역을 넘은 연대의 경험이 더욱 소중해지는 시점이다.

페미니즘에 대한 백래시가 심해진 시대라고 느낀다. 윤석열 대통령은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며 여가부를 폐지하려는 시도를 반복하고 있고, 성평등 예산을 대폭 삭감하는 등의 퇴행적인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그 과정에서 여성을 대상으로 한 차별과 폭력의 문제는 계속 발생해 왔다. 총선을 앞두고 고민이 많을 것 같은데.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집권 이후로 미국 사회뿐 아니라 다른 나라들에서도 우익 포퓰리즘이 득세하고 있다. 대한민국도 예외는 아니다. 사회적 소수자가 기득권을 갖고 있고, 그 기득권을 무너뜨려 다수에게 나눠야 한다는 논리가 적극 동원되고 있다. 사회적 소수자가 취약한 위치에 있다는 것을 인정하기는커녕 오히려 특권을 누리고 있는 집단이라고 주장하며 화를 내는 것이다. 가령 여성들은 이미 많은 권력을 획득한 상태인데 법과 제도가 여성에게 더 많은 자원을 배분함으로써 다수의 남성이 피해를 보고 있다는 역차별 주장이 대표적이다. 보편 권리를 확대하기 위한 장애인 이동권 운동을 마치 ‘평범한 시민들’의 발목을 잡으면서 특권을 요구하는 것처럼 조명하는 일도 마찬가지다.

  이런 상황이 지속된다면 결국 사회적 소수자라는 개념이 사라지는 현상이 가속화될 것이다. 장애가 있거나, 청소년이거나, 노인이거나, 서울 외의 지역에서 살고 있거나, 한국어에 익숙지 않거나, 소득이 낮은 등 취약한 위치의 사람들을 허상의 권력이 배분된 집단으로 겨냥하고, 궁극적으로는 그들을 지탱할 사회적 장치를 치워 버리려고 하는 논리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경우 ‘개인의 능력에 따라 자원을 배분하는 것이 공평하다’는 식의 능력주의 담론까지 결합해 구조적 불평등을 시정하려는 법과 제도마저 없애는 것을 정당화하는 데에 힘을 싣고 있다.

  어째서 이러한 논리가 인터넷상의 혐오로 끝나지 않고 한국의 집권 정당과 대통령의 정책 기조에까지 스며들었을까. 이에 주목해야 한다. 사회적 소수자에게 환대 아닌 적대를 표출하는 혐오가 가득한 논리가 어떻게 일정한 세력을 형성해 정치적 지지층을 확보하는 것에까지 쓰였는지 그 전략의 연결고리를 직시할 필요가 있다. 마치 사회적 소수자에게 주어진 최소한의 제도를 폐지하면 모두가 공평해질 수 있는 것처럼 믿게 만든 담론의 흐름이 무엇인지 짚어내야 한다. 지금까지의 윤석열 정부를 만든 배경에 어떤 담론이 버티고 있는지 똑바로 봐야 한다는 뜻이다. 그렇기에 총선에서 단순히 특정한 당의 승리나 패배가 중요하다고 보고 있지는 않다. 이전과는 확연히 다른 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 정치체제가 구성되는 것이 너무나도 중요한 때라고 느낀다.

한국성폭력상담소는 성폭력 상담이나 피해자 지원 활동 외에도 여러 의제에 활발히 연대하고 있다. 의제 간 연대에 관해서 묻고 싶다.

  사실은 한국성폭력상담소라고 하는 이름에서 예상되는 활동을 처리하는 것만으로 시간이 다 간다. (웃음) 성폭력 피해자 상담, 상담 기록 및 집계, 성폭력상담원 교육, 다양한 사안들에 대한 의견 제출이나 자문 등.

  하지만 반성폭력 운동은 개별 성폭력 피해자를 지원하고, 사건 통계를 내는 것만으로 끝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근원적으로 봤을 때 성폭력을 바라보는 그릇된 관점의 문제를 해결해야 하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피해자다움’에 대한 통념, 이를 규정하는 정상성 규범을 깨는 일이 모두 포함된다. 연대해야 할 범위가 넓을 수밖에 없다.

  모두의 인권이 제대로 보장되지 않는 사회에서 약자들의 삶이 힘들어지는 것은 당연하다. 여성 시민을 포함해 사회적 소수자는 불평등의 중첩 속에서 더 취약한 위치로 밀려나기 때문이다. 그런 사회라면 성폭력 문제도 당연히 더 심각해질 것이다. 기후위기, 경제적 양극화의 심화, 일부에게 유리한 방식으로의 정치적 권력 재편 등 여러 사회적 문제가 전부 우리에게 중요하게 다가오는 이유다. 사회운동을 하는 단체로서 더욱 다양한 의제에 적극적으로 연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국성폭력상담소 활동가들도 여력이 되는대로 발길이 닿는 곳마다 연대하고 있지만, 더 자주 연대하지 못해 항상 아쉬움이 남는다.

작년 한국성폭력상담소의 슬로건은 ‘지워지지 않는 이들의 흔들림 없는 연대’였다. 지금 돌아봤을 때 2023년은 어떤 한해였는가. 기억에 남는 사건이 있다면.

  ‘지워지지 않는 이들의 흔들림 없는 연대’는 여성을 지우려는 시도에 굴하지 않고 연대하자는 뜻을 담은 슬로건이었다. 2022년부터 집권한 윤석열 대통령이 대선후보 때부터 여가부를 폐지하고 성폭력 무고죄를 강화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었고, 집권 후에는 적극적으로 구조적 성차별 문제를 지우려고 했기 때문이다. 여성을 기득권층으로 간주하며 삭제해 버리려고 하는 정치적인 선동을 온몸으로 막아내기 위해 노력했다. 그들이 지우려고 하는 것들 속에는 역사와 현장, 시민 주체로서의 여성이 살아있기 때문에.

  정부가 당장 없애려고 드니까 우선은 여성폭력 예산을 복구하고 여가부를 존치하라는 식으로 목소리를 냈는데, 사실 예산이나 여가부나 손봐야 할 부분이 많은 건 사실이다. 여성 대중조차 여가부를 싫어할 때 어떤 식으로 논의를 이어가야 하나 많이 고민하기도 했다. 우리도 현 정부가 입맛대로 바꾼 여가부를 유지하고자 한 것은 아니었으니까. (웃음)

  주안점으로 두고 활동한 의제로는 폭행 또는 협박을 전제로 두고 있는 강간죄 개정이 있다. 대중은 폭행이나 협박이 없더라도, 동의하지 않은 성관계는 성폭력이 될 수 있다고 인식하고 있지만, 현행 강간죄 규정은 폭행 또는 협박을 성폭력 범죄의 주요 성립 요건으로 명시하고 있다. 이로 인해 처벌되지 않는 성폭력 사건들이 많고, 피해자들은 신고조차 망설이게 된다. 강간죄 개정 운동은 강간죄 성립 기준에 시민 의식을 반영하자는 운동이었다.

  이외에도 여러 활동 목표가 있었으나, 작년은 무엇보다도 일차적으로 지켜내야 할 것들을 지키기 위해 활동했다는 느낌이 있다. 편의점 숏컷 여성 아르바이트생 폭행 사건이나 신림동 공원에서 발생한 여성 성폭력 살인사건 등과 같이 실시간으로 발생하는 여성혐오 사건들이 많아서, 그 사건들에 그때그때 대응하는 것이 어느새 우선순위를 차지해 버렸던 때가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신림동 성폭력 살인사건의 가해자가 범행 동기를 ‘여성을 강간하고 싶었다’고 밝힌 것이 잊히지 않는다. 여성을 동료 시민 주체로 보지 않고, 철저히 사물화했기에 강간의 대상으로 삼고 살해한 것이다. 피해자의 사망을 가족이나 친구들, 주변인들은 당연히 받아들일 수 없다. 한 사람을 잃는다는 것이, 그 사람이 세상에서 지워진다는 것이 너무나 무섭게 체감됐던 사건이다. 설명할 언어를 찾기 어려웠다. 

올해의 활동 방향은 어떻게 정했는지 듣고 싶다. 마침 3.8 세계 여성의 날도 다가오고 있는데, 2024년이 한국성폭력상담소에 어떤 한 해가 되길 바라나.

  막아내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상근활동가들은 윤석열 대통령이 여가부를 실질적으로 폐지하겠다는 의지를 밝혀도 그 의지가 한순간에 이뤄지지는 못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어떤 절차를 거쳐야만 여가부를 폐지할 수 있는지 알고 있고, 손쉽게 없애지는 못하도록 그에 대항하는 여러 액션을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작년을 거치며, ‘여가부 폐지’와 같은 정치적 선동을 언론으로만 접하는 시민들이 느끼는 좌절감은 더 종합적이고 크다는 사실을 새삼스레 깨달았다.

  그래서 올해는 더 많은 시민과 만나서 이야기하는 것을 큰 목표로 잡았다. 불안도, 좌절도, 분노도 함께할수록 더 구체적인 이야기가 생겨나고, 할 수 있는 활동도 다양해지기 때문이다. 2월만 해도 『페미니즘의 도전』을 저술한 여성학자 정희진 선생님의 특강, ‘대안 우파’의 등장을 주제로 한 페미니스트 정치 토크쇼가 기획돼 있고, 한국성폭력상담소 회원 소모임도 많이 조직됐다. 총선을 대비한 기획단 ‘페미니스트 콩깍지 프로젝트’도 시작했다. 총선을 앞둔 현재 시점에서는 정치 세력의 재구성을 이뤄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3.8 세계 여성의 날 당일에는 제39회 한국여성대회가 열리는데, 한국성폭력상담소에서는 부스 프로그램과 행진 참여를 기획하고 있다. 콩깍지 안에 콩들이 따로 또 같이 있듯이, 페미니스트 개개인이 함께하며 활동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자 한다.

사진 설명 시작. 정사각형의 홍보 포스터이다. 아래에는 ‘한국성폭력상담소’가 있다. 배경은 아래로 갈수록 연두색이 되는 그라데이션이 돼 있다. 중앙에는 콩깍지 일러스트가 포함돼 있는데, 콩깍지 안에 네 개의 콩알이 들어있다. 무지개 깃발을 들고 있는 콩알, 안경을 쓰고 있는 콩알, 빨간 띠를 둘러매고 있는 콩알,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 콩알이 있다. 콩깍지 위아래로 ‘페미니스트 콩깍지 프로젝트’가 큰 글씨로 써있고, 왼쪽 상단에는 ‘*2024 총선에 가만히 있을 수 없는!!’이라는 설명이 붙어 있다. 오른쪽 상단에는 ‘대모집’이 적혀 있다. 왼쪽 하단에 확성기를 들고 있는 콩알이 있고, 콩알 옆 말풍선에 ‘앞으로 2개월, 총선을 대응하는 우리만의 팟pod’이 써있다. 말풍선 옆에는 노란 콩알이 ‘FEMINIST’라고 흰 글씨로 적혀 있는 띠를 두르고 있다. 사진 설명 끝.

페미니스트 콩깍지 프로젝트 포스터 ⓒ한국성폭력상담소

조금 개인적인 질문으로 넘어가고자 하는데, 한국성폭력상담소에서 활동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있을까.

  학교에 다닐 때 반성폭력 자치규약 제정 활동을 하고 있었는데, 한국성폭력상담소에서 강연을 나왔다. 그 강연을 통해 활동가라는 존재를 처음 접했다. 활동가들이 자유롭고 단단하게 움직이는 시민 주체로 보였다. 자연스레 마음속에 활동가의 꿈이 생겨났고, 좋은 기회로 한국성폭력상담소에서 자원활동을 시작하게 됐다. 자원활동가로 다양한 활동에 함께하며 또 자연스레 상근활동가가 됐다. 나에게는 한국성폭력상담소가 첫 번째 직장이었던 셈이다.

활동가로서 보람을 느낄 때가 있다면.

  오랫동안 한국성폭력상담소의 활동을 지켜보시던 분들이 후원 회원으로 가입하실 때 가장 큰 보람을 느낀다. 후원금이 절실하다는 뜻은 아니고. (웃음)

  결국 현 정부가 없애려고 하는 것은 고유한 역사와 터전을 가진 사람들이 이 사회에서 서로 연결된 채로 큰 목소리를 내왔다는 사실 자체인 것 같다. 존재해 왔던 사람들의 연결망을 없애려고 하는 의지가 커 보인다.

  이런 시기에 한국성폭력상담소의 후원 회원이 되는 것은 한국성폭력상담소의 운영 전반을 알게 된다는 뜻이다. 누가 어디서 어떤 활동을 하고 있는지, 한국성폭력상담소의 5년 전은 어땠고 5년 후는 어떨지 등을 속속들이 알게 되는 것이다. 연결됨으로써 세상이 쉽게 없앨 수 없는 우리의 살림에 함께 가담하는 것이다. 활동가의 입장에서 정말 큰 힘이 된다.

반대로, 활동하면서 회의감이나 무력감을 느낄 때가 있다면. 

  아무래도 사람이 부족할 때 회의를 느끼는 것 같다. 사람이 부족하면 그 부족한 사람들끼리 많은 일을 해내야 하고, 당연히 일을 처리할 때 시간에 쫓기고, 다양한 의견을 나누지 못하게 된다. 그러면 어떤 사안에 대응해야 할 때 목소리의 알맹이가 허약하다는 느낌이 들 수밖에 없다. 결국 각자의 고민을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이 모이는 것이 중요하다. 여러 사람이 함께하는 것이 활동에 있어 정말 중요하다는 뜻이다.

  무력감도 비슷한 것 같다. 더 나은 판단을 하고 더 좋은 활동을 기획해서 더 강력한 목소리를 내야 했는데, 바쁘다는 이유로 그러지 못해서 스스로 안타까운 마음이 들 때 가장 힘들다. 이 일을 전업으로 하는 것의 책무는 어떤 문제가 사회적으로 발생했을 때 단호하게 목소리를 내고, 변화를 끌어내는 것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 타이밍을 놓쳤다는 생각이 들면 마음이 괴롭다.

그럼에도 활동을 지속할 수 있는 힘은 무엇인가.

  그래도 상근활동가로서 살아가는 일이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지치는 일은 아니다. 개인적으로는 힘이 나고, 보람을 느끼고, 매번 배우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새삼스럽긴 하지만, 활동을 지속하는 힘은 아무래도 사람들에게 고맙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 생긴다. 활동가가 전달한 정보나 한국성폭력상담소에서 마련한 활동이 다른 사람들에게 좋은 기회로 다가갔다면, 앞으로 소식을 더 많이 전하고, 의견도 더 많이 말하고, 목소리도 더 키우고, 자리를 더 많이 마련하고, 행진도 집회도 더 자주 열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마지막으로 남길 말이 있다면.

  학교 다닐 때 사회운동단체 활동가를 알게 된 것이 굉장히 흥미로웠다. 활력이 느껴지는 경험이자 새로운 세계였다고 해야 할까? 그래서 이 인터뷰가 누군가에게는 한국성폭력상담소든 어디든 사회운동단체에 한 번 찾아가보고, SNS나 홈페이지를 방문해보고, 소모임이나 행사가 있으면 참여해보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

사진 설명 시작. 책장의 사진이다. 위쪽 책장에는 한국여성학 발간호 여러 권, 2008 인권상담 사례집, 국가인권위원회 연간보고서 여러 권, 성희롱 진정 사건 백서 및 성희롱 시정 권고 사례집 여러 권, 여성연구 발간호 여러 권이 있다. 아래쪽 책장에는 여/성이론 발간호 여러 권, 인권보고서 여러 권, 남녀차별결정례집 여러 권이 있다. 사진 설명 끝.

한국성폭력상담소 1층에 비치된 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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