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성윤(사회복지 21)
지난해 학내에서 열린 이태원 참사 유가족 간담회를 기획하고 진행했습니다. 이태원 참사 1주기를 맞아 유가족에게 편지쓰기 행사에서도 기획·진행을 맡았습니다. 누구든 기댈 수 있도록 어깨를 내밀 용기가 있는 사람이고 싶습니다.
chosy1000@snu.ac.kr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월 30일, ‘10·29 이태원 참사 피해자 권리보장과 진상규명 및 재발방지를 위한 특별법안(특별법)’에 대한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했다. 2022년 10월 29일 이태원 참사 이후 해가 두 번 바뀌고 나서인 2024년 1월 9일 겨우 통과된 특별법에 대해 거부권이 행사되면서, 특별법은 사실상 폐기 수순에 들어가는 모양새다. 거부권이 행사된 법률을 같은 회기 내에 재의결하려면 국회 재적 의원 과반 출석 및 출석 의원 3분의 2 이상 찬성이 필요한데, 특별법을 완강히 반대하는 국민의힘이 국회 재적 의원의 3분의 1 이상을 차지하고 있어 국민의힘이 표결에 참여한다면 재의결이 난망한 상황이다.
특별법을 요구하기까지
2022년 10월 29일 이태원 해밀톤 호텔 앞 좁은 골목에서 수많은 생명을 앗아간 이태원 참사가 발생했다. 158명이 도심 한복판에서 압사를 당했다는 충격적인 사실에 대해 설명되지 않은 것은 너무나 많았다. 코로나 이후 처음 열리는 핼러윈 파티인 만큼 많은 인파가 밀집될 것이 예상됨에도 인파를 관리할 경찰을 충분히 배치하지 않고 사복경찰의 수를 늘린 이유, 참사 발생 이후 행정안전부 장관이 자신의 차량 기사가 올 때까지 현장에 출동하지 않고 기다린 이유, 참사 당일 저녁 6시 34분부터 ‘압사’라는 단어가 언급된 신고가 11건 이어졌음에도 경찰의 출동은 단 한 차례 이뤄졌고 그 출동에서조차도 현장을 통제하지 않은 이유, 경찰이 소방의 15차례 공동대응 요청에 무응답으로 일관한 이유, 세월호 참사 이후 1조 5천억 원을 들인 재난통신망이 단 195초만 사용되고 사용 기록이 삭제된 이유, 희생자와 부상자를 가족이 직접 인계하려는 것을 경찰이 막았다는 의혹, 희생자들의 시신이 전국으로 흩어진 이유 등 참사 당시와 참사 이후의 대처에 대해 설명되지 않은 것 투성이었다.
참사 이후 진행된 경찰 수사와 국정조사는 참사에 대한 진실을 밝히는 데 제 역할을 다했을까? 참사 직후부터 74일간 진행된 경찰 특별수사본부(특수본)의 수사는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과 윤희근 경찰청장을 불송치, 오세훈 서울시장을 수사대상에서 제외한 채 진행됐다. 특수본은 참사의 직접적인 원인으로 밀집된 인파로 인한 ‘군중 유체화’를 꼽았다.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특별위원회가 55일간 진행한 국정조사는 위증과 자료 제출 거부로 점철됐다. ‘자료 제출 미흡을 비롯한 정부 당국의 비협조, 짧은 조사 기간 등 애초 한계를 뛰어넘는 성과를 내지는 못했다’는 문구가 국정조사 결과보고서에 남게 됐다. 결과보고서를 채택한 야3당은 명확한 책임 규명을 위해 유족과 생존자가 참여하는 독립적인 조사 기구 설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유엔 자유권위원회까지 나서 “10.29 이태원참사에 대한 전면적이고 독립적인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며 ‘독립적인 진상조사 기구 설립’을 권고할 정도였다. 이러한 독립적 조사 기구의 설치가 규정돼 있는 법이 바로 특별법이었다.
특별법을 거부하는 정부
정부는 특별법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하며 여러 가지 근거를 들었다. 먼저, 특별법에 따르면 조사위원회가 영장 없이 동행명령을 하고, 자료 제출 요구 거부를 사유로 압수·수색 영장 청구 의뢰를 할 수 있어 ‘헌법 가치를 훼손하고 국민 기본권을 침해할 우려’가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러한 권한은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나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의 활동에 이미 주어진 바 있고, 이들의 활동 시기에 위헌성이 문제된 적은 없었다.
둘째로, 정부는 특별법에 따르면 조사위원회가 다수 일방에 의해 구성될 수 있어 ‘조사위원회의 공정성, 중립성이 결여될 우려’가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특별조사위원 11인 중 여당과 야당이 각 4인을 추천하고, 국회의장이 관련 단체 등과 협의해 3인을 추천하도록 돼 있어 조사위원회가 편향적일 것임을 우려할 근거가 없다. 아울러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와 달리 이태원 특별조사위원회에는 유가족에게 직접 추천권이 없다. 이는 편향성에 대한 여당의 우려를 유가족이 수용한 것이었다.
셋째로, 정부는 조사위원회의 활동이 사법부의 역할인 책임소재 규명, 행정부의 역할인 재난 전 과정의 조사를 담당하게 돼 ‘사법부와 행정부의 권한을 침해할 우려’가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정부는 행정부가 제 역할을 제대로 수행했다면 독립적 조사 기구의 설치가 애초에 필요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 또한 조사위원회는 조사 기구지 사법적 판결을 하는 기관이 아니므로, 사법부의 역할을 침해한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참사를 부정하는 정부
정부는 이외에도 ‘충분한 진상조사와 재발 방지 대책을 수립했다’, ‘피해자 지원에 최선을 다했다’, ‘참사 피해자 지원 종합대책을 유가족과 협의해 범정부적으로 수립하고 추진하겠다’, ‘진상규명과 피해자 지원을 구분할 수 없다’며 특별법 거부의 근거를 들고 있다.
정부가 불충분했던 경찰 조사와 국정조사를 ‘충분한 진상조사’라고 부르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정부가 이태원 참사에 대한 진상규명을 얼른 ‘끝내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정부는 참사 직후 유가족과 소통 없이 일방적으로 국가애도기간을 선포하고 영정과 위패 없는 분향소를 차렸다. 대통령과 국무위원들은 분향소를 기습적으로 조문한 뒤, 참사에 대해 충분히 추모했다고 말한다. 유가족 대다수는 뉴스를 보고 분향소의 설치를 알게 됐을 정도로 정부는 유가족의 의사를 반영하기는커녕, 유가족을 소외시킨 채 참사를 다뤘다. 또한 정부는 참사 직후 일방적으로 지원 대책을 발표하고 위로금과 장례비 액수부터 공개하며 유가족이 경제적 보상을 요구한다는 식의 부정적인 여론을 형성해 유가족을 고립시키려고 했다. 대통령은 유가족에게 공식적인 사과는 물론이고, 한 번의 만남도 갖지 않았다. 참사 1주기 추모대회에 초청받았음에도 추모대회를 ‘정치집회’로 규정하며 불참을 통보하기도 했다. 이태원 참사를 참사가 아니라 서둘러 처리해야 할 골칫덩어리 정도로 바라봤기에 가능한 조치들이었다.
누구에게도 특별법을 거부할 권리는 없다
특별법은 국회에 발의된 지 265일 만에 본회의에서 통과됐다. 야3당은 유가족의 뜻대로 2023년 연내 제정을 목표로 움직였으나, 특별법은 해를 넘겨 2024년 1월에 통과됐다. 특별법의 본회의 통과가 계속해서 늦춰진 것은 특별법을 여야 합의로 처리하고자 했기 때문이었다. 다시 말해, 특별법을 논의하는 데 여당에게 주어진 시간은 265일이나 있었다. 매우 긴 시간 동안 논의에 성의 있게 참석하지 않은 여당은 “충분한 합의가 없었다”며 2023년 7월 패스트트랙 지정 표결, 2024년 1월 본회의 표결에서 모두 집단퇴장했다. 여당이 특별법을 외면하는 동안 유가족들은 특별법 제정을 위해 ‘진실버스’를 타고 전국을 돌아다니고, ‘159km 행진’을 하고, 단식을 하고, 삼보일배를 하고, 삭발, 오체투지, 15,900배까지 하며 내놓을 수 있는 것을 모두 내놓았다. 국회에서도 특별법을 여야 합의로 통과시키기 위해 끝까지 협의를 계속했고, 여당이 지적한 부분을 수정하며 여야의 의사를 반영하고, 여야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자 국회의장은 중재안까지 제출하며 여당의 동참을 촉구했다. 그러나 대통령은 이러한 특별법에 대해 너무 쉽게 거부권을 행사했다.
우리는 특별법이 거부된 상황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우리의 어떤 노력이 유가족에게 필요할까? 누구에게나 그렇겠지만 사랑하는 이의 죽음은 제3자의 무엇으로도 위로될 수 없다. 우리의 노력이 유가족에게 위로가 되길 바라지만, 우리가 유가족의 일상을 참사 전으로 돌릴 수는 없다. 이미 참사는 벌어졌고 유가족은 계속해서 유가족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에 무력감을 느낀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잊어서는 안 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계속해서 유가족의 곁에 있는 것, 그리고 유가족의 곁을 함께할 동료들을 모으는 것이다. 유가족의 곁에서 함께 외쳐야 한다. 대통령의 쉬운 결정으로 특별법은 가볍게 거부됐지만, 우리는 어려운 마음으로 무겁게 외쳐야 한다. “누구에게도 특별법을 거부할 권리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