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정치. 정치권에서, 그리고 기성 언론에서 많이 다뤄온 뻔한 주제입니다. 너무나도 여러 번 말해왔기에, 기자의 색깔을 덧입히기 어려운 주제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청년 정치가 무엇이냐는 물음에 하나의 답만을 내놓기는 어렵습니다. 이번 커버를 구성하는 세 기사에서도 모두 청년 정치를 이야기했지만, 기사에서 청년 정치가 가지는 의미는 각각 달랐습니다. 첫 번째 기사에서 청년 정치는 정치권에서 청년을 이용하기 위해 쓰인 도구였습니다. 두 번째 기사에서 청년 정치는 우리가 성장하며 경험해 온 정치에 그 뿌리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기사에서 청년 정치란 다양한 청년의 삶을 이야기하고 미래를 바라보는 지속가능한 정치였습니다.
청년 정치뿐만 아니라, 사실 청년이 무엇인지조차도 애매합니다. 청년기본법에서는 청년을 19세 이상 34세 이하인 사람이라 정의합니다. 반면, 대형 정당에서는 45세 이하인 당원을 청년 당원이라 일컫습니다. 이번 제2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청년기본법의 청년 기준을 39세로 올려 더 많은 사람이 청년 정책의 혜택을 받을 수 있게 하겠다는 공약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신체적 나이만으로 청년 세대와 청년이 아닌 세대를 나눌 수 있을까 의문이 들지만, 그렇다고 이보다 더 명확한 기준을 만들기도 어렵습니다.
이토록 청년과 청년 정치라는 표현이 애매모호한데도 우리가 청년 정치를 계속해서 말하는 이유는, 결국 우리가 지금의 정치에 만족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처음 청년 정치를 외치던 세대가 이제 기성세대로 성장했지만, 청년 정치는 함께 성장하지 못했습니다. 이러한 아쉬움은 다시 우리가 다음 세대를 이해하고 포용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으로 이어집니다. 지금의 청년이 기성세대로 성장한다면, 다음 세대가 정치할 환경이 나아질까요? 우리 정치가 국민의 삶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을까요?
저희가 이번 커버에서 진정으로 말하고자 했던 것은, 단순히 청년들의 정치가 필요하다는 것이 아니라 세대가 이어지며 반복돼 온 정치 구조의 악순환을 깨야 한다는 것입니다. 청년 정치는 지속가능한 정치를 위한 수단이자, 필수적인 조건입니다.
가끔은 청년 정치라는 말이 청년에게 현재의 정치 체제를 개혁하라는 너무나도 큰 짐을 안기는 것 같아 불편하기도 합니다. 자신의 미래를 그려가기도 벅찬 청년이, 기득권이 지배하고 있는 정치를 바꾸기는 너무나도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청년 세대가 아니면 아무도 할 수 없는 일이기에, 다른 세대에게 떠넘길 수는 없습니다.
이번 커버 기사를 쓰는 도중 제22대 국회의원 선거가 끝났습니다. 청년의 기준을 20·30 세대로 정했을 때, 이번 총선에서 국회의원으로 당선된 청년은 총 열네 명뿐입니다. 이번에도 청년 세대는 정치권에서 자리를 잡는 데 실패한 듯 보입니다. 그럼에도 열네 명의 청년들이, 누구보다 어렵고 불투명한 길을 걸어왔으면서도 결국 성과를 이뤄냈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싶습니다. 그들이 차지한 국회의 의석 하나하나가 청년층의 희망이자, 오늘날의 정치를 바꾸는 균열의 시작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