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이 꿈꾸는 나라를 지금부터 만들어줘야 되지 않겠습니까, 여러분!” 2년 전 제20대 대통령 선거(대선) 당시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가 서울 광장 유세에서 한 발언이다. 매번 선거철이 되면 많은 정당과 후보들이 공약과 유세를 통해 청년의 이름을 부른다. “청년이 미래”라며 경제, 일자리, 주거 등 청년들이 짊어지고 있는 다양한 삶의 문제를 다루는 공약을 앞다퉈 내놓는다. 비단 공약만이 아니라 청년의 목소리를 직접 듣겠다며 청년 정치인들을 영입하기도 한다.
그러나 선거가 끝난 뒤, 청년들의 이름은 어느 순간 자취를 감춘다. 신문과 뉴스 기사의 정치면에는 청년의 이름이 아닌, 정파 간 알력 다툼과 상대 정당의 모 의원에 대한 고발, 서로 발의한 정책과 제도에 대한 비평만이 가득 찬다. 그곳에 청년의 이름은 없다.
선거에서 청년의 이름은 왜 계속 불려나오는 걸까. 청년이란 이름은 왜 사라진 걸까. 정치권에서 청년이 가지는 의미는 무엇이고, 앞으로는 어떤 의미를 가져야 하는 걸까. 이른바 청년 대선이라 불렸던 제20대 대선과 청년이 실종된 올해 제22대 국회의원 선거(총선)를 비교하며 정치권에서 청년의 이름이 가지는 위치를 살펴봤다.
청년을 부르짖던 제20대 대선, 청년이 사라진 제22대 총선
지난 제20대 대선은 여러 언론에서 ‘20·30세대의 선택이 승부를 갈랐다’고 평할 정도로 청년 유권자의 중요성이 부각된 선거였다. 여론 조사 결과 상위권을 차지한 세 후보를 중심으로 각종 청년 정책 공약들이 쏟아지고, 유튜브와 같은 미디어 플랫폼을 중심으로 청년들에게 익숙한 동영상 콘텐츠를 유세에 적극 활용하는 등 정치권이 청년 표심 확보를 위해 애쓰는 모습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특히 인터넷상에서 유행하는 콘텐츠를 지칭하는 밈(meme)을 활용한 ‘밈 유세’도 등장했다. 윤석열 후보의 개비스콘 광고 패러디 공약 영상과 이재명 후보의 탈모 공약 영상 등 정치권이 청년들을 중심으로 확산되는 밈을 활용하는 행보를 보인 부분은 청년들을 주시하며 그들의 수요를 맞추고자 했음을 입증한다.


(하)’개비스콘’ 광고를 패러디한 밈 유세 ©국민의힘TV 유튜브
그러나 불과 2년 뒤 진행된 이번 제22대 총선에서 정치권은 언제 그랬냐는 듯 청년에게서 시선을 거뒀다. 청년 정책 공약들은 몇 가지 주요 의제에만 집중된 채 다양성을 잃었고, 청년들에게 향하던 호소는 극도로 단순화돼 청년을 생각하는 것이 아닌, 심판 논리만을 강조하는 형태가 됐다. 신촌문화정치연구그룹 김선기 연구원은 “거대 양당의 상호 적대 자체가 다른 이슈들을 모두 잡아먹고 있는 형국”이라며 “이번 선거에서 양당은 자기 지지층 결집에 더 힘을 쏟고 있는 모양새”였다고 평가했다. 기존 지지층으로 분류되지 못한 청년층은 주요 고려 대상에서 제외된 것이다.

제20대 대선과 제22대 총선에서의 청년의 입지 차이가 명확하게 드러나는 부분은 청년 정책 공약의 다양성이다. 제20대 대선에서 후보들은 주거 문제부터 저출생 문제에 이르기까지 청년층의 관심이 집중된 폭넓은 의제에 대해 각기 차별점을 가진 공약들을 내세웠다. 예를 들어 경제·일자리 분야에서 후보들은 ▲국민의 경제적 기본권 보장을 내세운 전 국민 기본보편소득 추진 ▲일자리 창출에 초점을 맞춘 민간주도 일자리 창출로의 패러다임 전환 ▲노동권과 기본권 보장을 기반으로 한 개발형 국가 일자리 제공과 평생학습 계좌제 활성화 등 후보별로 다른 기조를 기반으로 다양한 공약을 냈다. 한 의제에 대해 여러 형태의 공약을 제시하면서 청년들의 삶을 고찰했다고 청년들에게 호소한 것이다.
반대로 제22대 총선의 청년 정책 공약들은 구색 맞추기에 가깝다는 평을 듣는다. 정당별로 제시한 공약들이 유사할 뿐만 아니라, 이전 총선에서 제시했지만 성사시키지 못했던 공약을 그대로 다시 가져온 경우도 있었다. 일례로 경제·일자리 분야에서는 ▲청년 민생 챙기기를 기조로 한 구직 활동 지원 강화 ▲청년의 행복한 삶을 기조로 한 채용 가이드라인 신설 공약 등이 제시됐다. 지난 대선과 비교해 보면, 같은 의제에 대해 기조의 차별성도, 공약의 구체성도 모두 떨어졌다. 김선기 연구원은 이번 총선에서 제시된 청년 정책 공약들에 대해 “새롭거나 영향력 있는 의제를 제시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평했다. 김 연구원은 “기존에 이미 있는 정책을 수정·부활시키거나 대상을 확대하겠다는 류의 공약이 많다”며 이번 총선에서 제시된 청년 정책 공약들은 청년의 삶을 고찰해 본 결과물이 아니라, 단순히 보여주기식 공약들이었다고 설명했다. “이런 공약들이 실현된다고 해도 청년의 삶이 크게 바뀔 것이라 기대하기는 어렵다”며 공약의 유효성에 대한 회의도 덧붙였다.
청년들을 향한 유세 역시 지난 대선 당시 더 나은 청년의 삶과 미래를 만들겠다는 약속을 내세웠던 것에서 정권 심판론으로 변모했다. 제20대 대선 당시 후보들은 “제3지대를 넓히는 것이 곧 나의 권리를 넓히는 것이고 20·30세대의 목소리를 더 키우는 것”이라고 강조하거나, “저는 청년들 먹여 살리기 위해 정치한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고 발언하는 등 선거 유세에서 청년들의 지지를 적극적으로 호소했다.
그러나 이번 총선에서는 청년층에 대한 호명은 사라진 채 상대 정권 심판론에 대한 발언만이 오갔다. 국민의힘 한동훈 전 비상대책위원장은 “미래세대는 조국과 이재명처럼 살지 않을 거라고 말씀해 주시길 바란다”고 말했고,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당대표는 “여러분이 맡긴 권력과 여러분이 낸 세금으로 개인의 이익을 챙기고, 오히려 국민들의 삶을 훼손시킨 그들에게 상응하는 책임을 물어주길 바란다”고 전했다. 상대 정권의 악함을 호소하며 그에 대립하는 자신을 지지해주길 바란다는 심판론이 주류를 이룬 것이다. 삶을 힘들게 만든 상대를 심판해주겠다는 말은 당장 삶의 문제들을 목전에 둔 청년들에게 와닿지 않는다. 이렇듯 청년층의 어려움을 전혀 가늠해 보지 않은 듯한 뭉툭한 공약들과 선거 유세는 정치권에서 청년을 등한시하고 있다는 것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2년이란 시간, 잊혀진 청년들의 삶
그렇다면 대선부터 총선까지 2년이란 시간 동안 무엇이 변했기에 이렇게까지 청년의 입지가 좁아졌을까. 혹시 청년의 삶이 제20대 대선 이후 추진된 정책들을 통해 상당 부분 나아졌다고 판단해 청년들에게서 시선을 거둔 것은 아닐까. 청년이란 이름이 사라지기까지, 그동안 청년의 삶은 어떻게 변해왔을까.
제20대 대선 이후 윤석열 대통령은 자신의 공약을 정책으로 실현하기 시작했다. 부동산·거주 관련 정책으로 내놓은 뉴:홈 정책은 2022년 10월 발표된 ‘청년·서민 주거안정을 위한 공공주택 50만 가구 공급계획’의 브랜드 정책으로, 2027년까지 나눔형·선택형·일반형 세 가지 유형으로 공공분양주택을 공급하는 것이 목표다. 청년도약계좌도 신설됐다. 청년이 내는 돈과 정부의 지원금을 합쳐 다달이 최대 70만 원씩 저축해 5년 후 5천만 원을 타갈 수 있도록 하는 정책금융상품이다. 보편적 문화복지 서비스와 문화 기본권을 보장하겠다는 공약은 문화예술 관련 법·제도를 신설하는 형태로 실현됐다. 저출생과 관련해서도 몇 가지 지원 정책을 신설했다.

언뜻 보면 공약들 대부분이 실현된 것으로 보이지만, 실제로 그 정책들이 유효했는지는 다른 이야기다. 윤석열 정부의 청년 정책들은 시행 전후로 많은 비판에 직면했다. 공약에서 약속했던 것보다 축소된 지원량, 너무 까다로운 수혜 자격 등 현실과 동떨어진 정책이라는 것이 비판의 골자였다. 이러한 정책들은 실제 청년들의 삶에 어떤 변화를 가져왔을까.
현실을 살아가고 있는 청년들은 대선 이후 삶의 변화를 체감하지 못하고 있었다. 휴학 후 자격증 취득을 준비하는 대학생 A씨는 “정부가 도대체 뭘 잘하고 있는지 모르겠다”며 한숨을 쉬었다. “취업 걱정도, 주택 걱정도 뭐 하나 제대로 해결된 게 없는 것 같다”고 말한 A씨는 매번 선거 때마다 이렇다며 “청년을 살리겠다고 하지만 선거가 끝나면 바뀌는 건 없다”고 쓴웃음을 지었다. 취업준비생 B씨는 “우리나라 정치의 결과물은 현실과 동떨어진 정책과 제도뿐”이라며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청년에게 도움이 되는 내용은 정말 가끔 뉴스에 뜨고, 대부분은 물가가 계속 오른다는 둥 나쁜 소식만 가득하다”며 오히려 삶이 무거워지고 있음을 체감한다고 말했다.
A씨와 B씨가 호소한 청년층의 낮은 정치적 효능감은 사회적으로 공감대가 형성된 문제다. 청년재단에서 올해 2월에 발표한 ‘청년정책·이슈 톺아보기 설문조사 결과’에 실린 청년 정책 수혜 경험 정량 조사 자료는 윤석열 정부의 청년 정책이 가진 문제점들을 여실히 보여준다.

만 18세에서 39세 사이의 청년 3천 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청년 정책 지원을 받지 못했다고 응답한 사람이 과반수였다. 또한 연령대별 조사 결과 24세~29세 사이 연령에서만 수혜를 받은 적 있다는 응답이 과반수로 나타났고, 그 외의 연령대에서는 모두 받은 적 없다는 응답이 과반수를 차지했다. 조사 결과는 윤석열 정부의 청년 정책이 보편적으로 적용되지 못할뿐더러 특정 연령대에 한정해서만 유효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청년 정책의 방향성에 대한 의문 역시 제기됐다. 청년 정책의 방향성과 현재 시행 중인 정책의 일치 정도를 10점 만점으로 물었을 때, 수혜를 받은 적이 있다고 답한 측의 평균 점수는 5.3점, 받은 적 없다고 답한 측의 평균 점수는 4.5점으로 나타났다. 받은 적이 있다고 답변한 이들마저 절반 조금 넘는 점수를 주며 현재 시행되고 있는 정책의 방향성이 그다지 바람직하지는 않다고 답한 것이다. 결국 청년 정책들이 많이 시행됐다고는 하지만 그 방향성도, 유효성도 청년들의 삶에 닿지 못했다고 볼 수 있다.
감탄고토, 청년이 아니라 살아있는 투표권
대선 이후에도 청년들은 여전히 해결되길 바랐던 문제들을 떠안고 살아가고, 새로운 문제들도 창궐하고 있다. 그렇다면 정치권은 왜 더이상 청년을 부르지 않을까. 정치에서 청년이란 이름은 어떤 의미일까.
제20대 대선에서 정치권이 청년을 애타게 불렀던 가장 큰 이유는 당시 청년층이 당락을 가를 캐스팅 보터(casting voter)로 지목됐기 때문이다. 한국갤럽조사연구소가 2022년 2월 28일부터 사흘간 진행한 ‘대선 후보 여론조사’에 따르면 40대 미만 유권자 중 지지하는 후보나 정당이 없는 무당층이 20대에서 31%, 30대에서 14%로 다른 세대에 비해 높게 나타났다. 제19대 대선 때 70%를 넘긴 20·30세대의 투표율을 고려했을 때, 이들의 표를 확보하는 것이 선거에서 큰 변수가 된 것이다.
성균관대 조원빈 교수(정치외교학과)는 또 다른 이유로 ‘이준석 효과’를 지목했다. 20·30세대의 표를 중요하게 여기며 그와 관련된 의제들을 꺼낸 이준석 전 국민의힘 당대표에 대응하고자 더불어민주당도 청년 중심의 정책 기조를 쫓아가게 됐다는 것이다. 부동층으로 이미 주목받고 있던 20대와 30대에게 초점을 맞춘 의제들이 등장하면서 청년층에 대한 주목도가 거듭 높아졌다는 분석이다.
제22대 총선에서도 20대에서 38%, 30대에서 29%로 부동층 비율이 높게 나타났다. 제20대 대선과 비슷한 상황인데도 이번에는 왜 청년들이 주목받지 못하는 걸까. 조원빈 교수는 대선과 총선의 구조적 차이와 정치적 효능감에 따른 관심도 차이를 핵심적인 원인으로 꼽았다.
총선과 대선은 기본적인 구조는 단순 다수제로 같지만, 투표율과 세대별 참여 비율에서 차이를 보인다. 조원빈 교수는 “대선 투표율은 70%가 넘지만, 총선은 높았다고 평가 받은 지난 제21대 총선이 66% 정도고 개중에서 20대의 투표율은 더 낮다”며 총선에서는 청년 유권자를 겨냥해도 실제로 표를 받을 가능성이 대선에 비해 낮게 점쳐진다는 점을 원인으로 지적했다. 또한 조 교수는 “대선은 전국을 대상으로 후보들이 경합하는데, 총선은 254개의 지역구로 나뉘기 때문에 20대 유권자의 중요성이 더 떨어진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대선과 총선의 구조적 차이가 청년 유권자의 중요성을 떨어뜨린다는 설명이다.
정치적 효능감의 박탈로 인한 관심 저하 또한 하나의 원인으로 꼽혔다. 조원빈 교수는 “20대 남성들이 지난 대선을 통해서 정치적 효능감이 높아졌었는데, 2년간 보여준 행보로 인해 자신들이 뽑아준 후보에 대한 평가가 긍정적일 수는 없게 됐다”고 설명했다. 조 교수는 앞선 상황이 총선에 미칠 영향에 대해 “이런 평가가 반영될 총선에서 유권자들이 정권에 대한 심판으로 갈지, 후회 내지는 무관심으로 갈지 알 수 없다”고 평했다. 총선에 대한 20·30세대의 관심도가 줄어들었을 가능성이 높아져 그들을 겨냥하는 정책 공약을 내놓을 필요가 상대적으로 적어졌다는 것이다.
지난 대선으로부터 학습 효과가 발생했다는 분석도 있다. 김선기 연구원은 “지난 대선에서 20대 남성을 공략하는 전략이 통했으나 20대 여성들의 역풍을 맞았다는 사실과 대선 이후 20대 남성층이 여당의 우군으로 남아주지 않았다는 사실을 정치권이 학습하면서 20·30세대가 매력적인 표밭으로 여겨지지 않았다고 볼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정치권에서 청년들의 지지를 얻기 힘들고, 붙잡은 이후에도 이를 유지하기 어렵다고 판단해 청년층의 표를 포기하고 비교적 견고한 기존 지지층에 더욱 집중하게 됐을 가능성을 제시한 것이다.
결국 이번 총선에서 정치권이 청년들을 등한시한 이유는 청년들의 투표권이 매력적으로 다가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상대적으로 관심과 투표율이 높아 청년들이 가진 한 표 한 표의 중요성이 크게 체감됐던 대선과는 달리, 투표율이 비교적 낮은 데다 관심도 줄어든 총선에서 청년의 투표권은 힘을 잃었다. 투표권이 힘을 잃자 정치권은 곧장 청년들에 대한 관심을 거뒀고, 이 과정에서 청년은 단지 하나의 투표권으로 여겨질 뿐이었다. 표를 얻기 위해서 청년 정책 공약을 남발하고, 막상 당선되고 난 이후에는 청년들의 삶이 정치권에서 언급되는 횟수가 현저히 줄었으며, 표의 중요성이 떨어지니 청년 정책 공약이 사라지는 현재 상황이 이를 입증한다.
청년 말을 들을 생각은 없는데 혁신 이미지는 얻고 싶어

선거에서 청년들이 살아있는 투표권이었다면, 정치 현장에서 청년들은 이미지 메이커로 여겨진다. 2023년 기준 대한민국의 국회의원 평균 연령은 만 58세로, 제21대 총선 기준 50세 이상 국회의원 비율이 83%에 육박한다. 일각에서는 나이 든 정치권은 이념의 낙후성과 현실과의 거리감이라는 치명적인 약점을 가진다고 비판한다. 이들이 점점 더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을 따라가지 못하니 현실을 제대로 담지 못한, 어설픈 정책들만 내놓는다는 지적도 피할 수 없다. 재생산 문제와 관련해 구조적 문제를 해결할 정책이 아닌, 결혼·임신 지원 정책만을 내놓는 것이 대표적이다.
정치권에서는 이러한 비판에 대한 대책으로 청년 정치인 영입을 택한다. ‘젊은 피 수혈’을 통해 기성정치가 인지하지 못했던 문제를 발굴해 의제로 설정하고, 청년의 삶을 더 가까이서 듣겠다고 호소한다. 대한민국의 주요 정당들은 2012년 이후 청년 할당이라는 이름으로 청년 정치 인재들을 영입하고, 당 내부에 청년위원회를 신설하는 등 청년 정치인들을 내세워왔다.
그러나 청년 정치인들은 정치인이라기보다는 정치권의 마스코트에 불과하다는 평이 지배적이다. 정치권에서 혁신적 이미지를 만드는 용도로만 이용되고, 실제 정치에서 청년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역할은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조원빈 교수는 “정말 청년들에게 초점을 맞추는 정당이 있을 수도 있지만, 한국의 주요 정당들은 개혁적인 이미지와 사회 전체적인 공감을 이끌어내기 위해서 청년을 내세우는 것 같다”며 청년들이 이미지 메이커로 소비되는 정치 현실을 지적했다. 더불어민주당 정은혜 전 의원은 작년 8월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성범죄자의 접근 금지 범위를 늘리는 ‘조두순 접근 금지법’, 육아휴직 기간을 현행 1년 이내에서 부모 모두 3년 이내로 연장하는 ‘라테파파법’ 등을 발의했으나 의원들에게 ‘젊은 정 의원이 열심히 해보세요’라는 말만 들으며 결국 입법에 이르지 못했다고 밝혔다. 청년 정치인들이 혁신 이미지만을 위해 이용되며 실제 정치에서 힘을 쓰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 드러난 것이다.
청년이 청년으로서 나타나는 정치를 위해
청년들은 선거 때는 하나의 투표권으로, 선거 이후 정치에서는 이미지 메이커로 여겨지고 있다. 진정으로 청년의 삶을 논하고, 청년이 정치하는 국민으로서 정치 현장에 존재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어떻게 변해야 할까.
전문가들은 입을 모아 청년들이 주체성을 확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호남대 설선미 교수(행정학과)는 “개인 또는 집단이 겪고 있는 고통과 욕구에 대해 불특정 다수가 장기간에 걸쳐 주목해야 한다”며 이 과정을 통해 청년들이 목소리의 지속성을 갖추고 끝내 의제화할 수 있는 힘을 길러야 한다고 말했다. 단순히 정당 측에서 내놓는 납작한 청년 의제들을 수용하는 입장이 아닌, 진짜 문제를 파악하고 그것을 논의에 올릴 수 있는 주체성을 갖춰야 한다는 것이다. 김선기 연구원 역시 “15~20년 전에 비해 청년들을 능동적 주체로 보는 시각이 많아졌고, 그걸 가능하게 하는 제도적 기회도 늘어나고 있다”며 “이를 바탕으로 앞으로는 현재의 정치 제도 자체를 해체해 원점에서부터 재설계하는 급진적인 활동이 청년의 이름으로 이뤄질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또한 “청년이라는 두루뭉술한 단어를 집단의 특성에 맞게 세분화·구체화할 필요가 있다”며 청년으로서의 정체성을 명확히 인지해야 그에 해당하는 실질적인 청년 정책을 고안할 수 있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청년들이 정치와 사회 문제에 관해 발언하는 것을 꺼리지 않아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김선기 연구원은 “다양한 기회가 있을 때 조금 더 목소리를 낼 필요가 있다”며 “현재는 중앙정부 및 지방정부에 청년기본법, 청년기본조례 등이 마련돼 있어 청년들의 의견을 청취하는 청년참여기구를 운영하는 것이 제도적으로 강제된 환경”임을 알렸다. 청년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환경들이 예상보다 잘 조성돼있다는 것이다. 이런 환경을 적극 활용해 청년들의 목소리가 점점 커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김 연구원은 주장했다.

사회 역시 변해야 한다. 조원빈 교수는 “한국 사회에서는 정치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 편 가르기 틀을 씌우는 경향이 있다”며 중립을 지킨다는 명목 아래 과도한 자기검열을 자행해 문제의 핵심을 논의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편 가르기 틀에 얽매이지 않고, 서로의 의견을 존중해 표현의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사회 분위기가 형성돼야 한다는 것이다. 정치에 대해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돼야 지금 필요한 의제와 정책이 무엇인지 논할 수 있고, 정치권에 청년들의 목소리가 닿을 수 있을 것이다.
1948년 대한민국 제헌 국회 출범 이후, 1987년 6월 민주항쟁까지 청년 운동의 형태로 정치권에서 활발하게 목소리를 내던 청년들은 외환 위기와 최초의 평화적 여야 정권교체가 있었던 1997년 이후로 서서히 정치로부터 멀어져갔다. 눈앞에 놓인 삶의 문제에 밀려 정치에 참여할 여력을 잃은 청년들은 정치 참여의 주체에서 객체로 전락했고, 객체로서는 변화시킬 수 없는 정치에 실망해 참여할 의지를 상실하는 악순환이 발생하고 있다.
정치권이 내놓는 정책들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며 내부에서 편을 나눠 싸우거나, 소모적인 논쟁에 지쳐 정치적 무력감에 빠지는 현상이 청년층 전체로 퍼져나가기 전에 다시금 관심을 가지고 목소리를 낼 때다. 필요할 때만 청년을 동원하는 오늘날 정치의 문제점이 명확하게 드러난 이번 총선을 전환의 기점으로 삼아 청년의 이름이 힘을 가질 수 있게 노력해야 한다. 다음 선거에서, 그리고 이후 어떤 미래에서든 청년의 삶이 이야기될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