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함없는 세상에서 변함없이 자리하기

  지난해 5월, 지금으로부터 딱 1년 전 발행됐던 178호 커버스토리는 대한민국의 노동 현실을 다뤘습니다. ‘할 말을 잃은 자리에서’라는 장하엽 전 편집장의 말로 시작된 178호 ‘편집실에서’의 첫 문단을 저는 가끔 떠올립니다.

  “가당치도 않은 날들의 연속에 할 말을 잃습니다. 가장 말을 많이 해야 할 언론이 말할 기력을 잃게 만든다니, 최악입니다.”

  1년이 지났는데 제자리만 맴도는 기분입니다. 아니, 사실은 끝이 보이지 않는 나선형 계단을 등 떠밀려 내려가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그저 걸어가고 있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빛이 보이지 않을 만큼 아득히 걸어 내려온 느낌입니다. 자주 분노와 억울함이 튀어나오는 요즘, 그 감정들을 온전히 담은 이번 호를 준비하면서 저는 ‘할 말을 잃은 자리에서’를 여러 번 읽었습니다. 적확한 표현으로 핵심을 짚는 글이 무력한 저보다 더 세상을 향한 곧은 소리를 하고 있어 위로받기도, 슬퍼지기도 했습니다.

  변함없는 세상이 무섭습니다. 1년 전에도 “가당치도 않은 날들”이라고 표현했는데, 그런 날들이 아직도 이어지고 있다는 게, 앞으로 더 이어질 게 뻔하다는 게 짙은 고통처럼 느껴집니다.

  그렇지만 생각하는 힘을, 소리치는 입을, 바삐 움직이는 펜을 멈추지는 않았습니다. 변함없는 세상에 맞서 변함없이 뜻을 함께하는 이들과 편집실에 모여 같이 분노했습니다. 무력함에 빠져 있을 시간도 없다는 듯 더 자주 움직이고 화냈습니다. 자꾸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질 때면 “184호가 더 두꺼워지겠다”는 우스갯소리로 서로를 북돋웠습니다. 각자가 포착한 문제들을 글로 풀어내며, 함께 글 쓸 의욕을 채우며, 단어와 문장들을 고르며 또 한 권을 만들었습니다.

  고통을 호소하고 문제를 지적하는 이들에게 마이크를 건네지는 못할망정 입을 막고 끌어내는, 종래에는 말할 의지를 상실하게 만드는 세상은 아니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제22대 국회에도 청년의 자리는 없고, 언론이란 스피커는 점점 힘이 약해지다가 가끔 선택적으로 멈추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가당치도 않은 날들”이 우리의 미래가 아니도록 굳게 자리를 지키겠습니다. 여기저기에 남은 외침들을, 어딘가에 남겨진 어려움들을 모아 기록하겠습니다.

  또 1년이 지난 어느 날, 이 글은 어떻게 읽힐지 궁금합니다. 제가 ‘할 말을 잃은 자리에서’를 읽으며 느꼈던 감정과는 다르길 간절히 바라봅니다. 상식적인 날들이 이어지기를, 그런 날들에도 우리는 언제나 말하고 기록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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