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언론, 중심을 잡기 위해선

권력과 자본에 얽힌 공영방송, 언론 장악의 시발점
▲방통위, 〈KBS〉, 〈MBC〉, 〈EBS〉의 지배구조도 ⓒ송나윤

  사람들은 언론을 통해 세상에 대한 시각을 형성하고 넓힌다. 그렇기에 사람들에게 정보를 전달하고 여론을 형성하는 언론에게는 무엇보다도 공정한 목소리가 요구된다. 여기에는 정치권력을 감시하고 사실을 알릴 언론의 공적 책임도 포함된다. 헌법 제21조는 민주주의 사회의 기본권으로서 언론의 자유를 명시하고, 언론에 대한 검열을 금지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언론 자유가 권력에 의해 이리저리 휘청이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현재 언론은 정치권력과 자본으로부터 독립해 진실을 알리는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고 있는가? 만약 아니라면, 언론이 자유롭게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환경은 마련돼 있는가? 여러 질문들에 답하기 위해서 먼저 한국의 언론 구조를 살펴봤다.

모두를 위한 방송, 공영방송

  공영방송이 뭘까? 흔히들 공영방송은 모두를 위한 방송이라고 한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공영방송은 ‘이윤 추구를 직접적인 목적으로 하지 않고 공공의 이익을 도모하는 방송’으로, ‘상업 광고를 하지 않으며 시청료를 주요 재원으로 삼는다’는 것이 특징이다. 이는 국가가 방송국을 직접 소유해 국가 예산으로 운영하는 국영방송이나 민간에서 상업적 광고를 통해 운용하는 민영방송과는 차이가 있다. 국영방송은 정부의 목소리를 전달하는 것이 목적이고, 민영방송은 영리를 목적으로 하기에 특정 가치에 치중할 가능성이 높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공영방송이 정권이나 영리에 치우치지 않고 공익에 기여하며, 사회적 약자를 고려하고 모두에게 사실을 전달할 것을 기대한다. 다시 말해 공영방송은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독립해 공정하게 보도할 책임과 자유가 더욱 중시된다. 사영이 아닌 공영의 정체성을 갖고 공적 책무를 수행할 것을 요구받는 것이다.

  그러나 현행 방송법 어디에도 공영방송이 명료하게 정의돼 있지 않다. 공영방송이라는 명칭 자체는 공직선거법과 정당법에 등장하지만 지칭어로 존재할 뿐이며, 방송법에는 등장조차 하지 않는다. 더불어 무엇이 공영방송인지 법적 기준이 제시된 곳도 없다. 이러한 법적 정의의 부재는 공영방송을 구분하는 기준을 모호하게 하고, 동시에 공영방송의 공적 책임과 그 준수 여부를 누가, 어떻게 감독해야 하는지도 불명확하게 만든다.

  대표적인 공영방송인 〈한국방송공사〉(〈KBS〉)는 방송법상 국가기간방송으로 정의돼 있다. 방송법 제44조는 〈KBS〉가 방송의 공정성과 공익성을 실현해야 한다고 명시한다. 이에 따라 〈KBS〉는 공적 책임을 부여받고, 재원의 일부를 방송 수신료로 충당한다. 〈한국교육방송공사〉(〈EBS〉) 또한 한국교육방송공사법에 따라 유사하게 규정돼 있다.

  〈문화방송〉(〈MBC〉)도 공영방송으로 묶이나, 상황에 따라 분류가 달라지기도 한다. 〈MBC〉는 상법상 주식회사지만 공익법인인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가 70%의 지분을 가지고 있기에 공적 책임을 부여받고 있다. 이를 이유로 헌법재판소는 〈MBC〉의 공영방송 광고업무 지정 관련 헌법소원에서 〈MBC〉를 공영방송이라 지칭했지만, 공영방송의 개념을 명확히 제시하지는 않았다. 〈MBC〉는 광고를 통해 재원을 마련한다는 점에서 수신료라는 공적 재원을 기반으로 하는 공영방송 〈KBS〉와는 구분된다.

  공영방송을 규제하는 기관인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는 방송의 공익성, 공공성 보장과 진흥을 위해 방송사업자 등으로부터 방송통신발전기금을 걷고 있다. 이때 방통위는 공영방송을 대상으로 해당 기금의 징수를 일정 부분 감면해주는데, 〈MBC〉는 감면 대상에서 제외하고 있어 〈MBC〉가 부당함을 주장하고 있다. 공정성과 공익성 실현이라는 공적 책임을 부여받고는 있으나, 공적 재원으로 운영되진 않는 〈MBC〉의 모호한 지위는 방통위 내부에서 2019년부터 문제로 제기됐으나 관련 논의는 아직 제자리걸음이다.

권력으로부터 독립하지 못한 공영방송의 지배구조

  국가는 공영방송이 방송의 공공성과 공익성을 제대로 보장하고 있는지 감독해야 한다. 국민에 의해 권한을 위임받은 정부가 공영방송을 관리할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공영방송국의 이사회는 방통위의 추천에 따라 대통령이 임명함으로써 구성된다. 방송법에 따르면 〈KBS〉 이사회는 이사장을 포함한 이사 11인으로 구성되는데, 이사는 방통위의 추천을 통해, 사장과 감사는 이사회의 제청을 통해 최종적으로 대통령이 임명한다. 〈EBS〉의 이사회는 이사 9인으로 구성되며, 이사와 사장, 감사까지 전부 방통위에서 임명한다. 〈MBC〉의 경우 방문진이 관리감독기구로서 존재해 국가의 관리 감독을 매개한다. 이사장을 포함해 이사 9인으로 구성되는 방문진의 이사회는 방통위가 임명한다. 〈MBC〉의 사장은 주식회사의 특성상 방문진 이사 과반수가 추천한 사람이 주주총회의 승인을 거쳐 임명된다.

▲방통위, 〈KBS〉, 〈MBC〉, 〈EBS〉의 지배구조도 ⓒ송나윤

  하지만 이러한 공공지배 구조로 인해 공영방송이 정권에 따라 이리저리 영향을 받기도 한다. 정권교체 이후 공영방송 이사회가 재편되는 것이 대표적이다. 이명박 정부를 시작으로 문재인 정부, 윤석열 정부까지 정권을 잡은 뒤 전임 공영방송 사장을 교체했다. 비공식적인 관행인 여당과 야당의 이사회 추천 비율도 여야 교체와 더불어 다시금 활용된다. 통상 〈KBS〉 이사회의 경우 7인은 여당, 4인은 야당의 추천 인사로 꾸려지며, 〈MBC〉의 경우 여당 6인, 야당 3인으로 이뤄진다.

  한편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이후, 방통위는 작년 〈KBS〉 남영진 이사장과 〈EBS〉 정미정 이사를 해임했다. 이사회 재편 직후 〈KBS〉 이사회는 〈KBS〉 김의철 사장의 해임안을 상정했고, 이것이 가결되면서 지난 11월 〈KBS〉 박민 사장이 취임했다. 박 사장이 취임하자마자 〈KBS〉의 여러 프로그램이 갑작스럽게 폐지되거나 진행자가 교체됐다. 방통위는 방문진 권태진 이사장의 해임을 시도하기도 했으나, 해임 처분의 집행 정지를 신청한 것이 법원에 의해 인용되며 권 이사장은 복귀했다. 또한 지난 3월부터 방통위는 〈EBS〉 유시춘 이사장을 해임하기 위한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

  〈KBS〉 대외정책실 탁재택 박사는 저서 『미디어 권력 이동』(2022)에서 방송통신의 규제기구로서 방통위는 ‘방송의 공공성, 공익성과 독립성에 기초해 한국 사회의 공공복리에 기여해야 하는 기구’라며 ‘방통위 운영의 기본 원칙은 탈정치성’임을 강조했다. 하지만 현재 공영방송국의 이사를 추천하는 방통위의 위원 구성은 정치적 중립성을 담보하기 어려운 구조다. 방통위는 총 5명으로 구성되는데, 위원장을 포함한 2인은 대통령에 의해 지명되고, 남은 3인 중 1인은 여당, 2인은 야당에 의해 추천된다. 정당 당원으로 활동하거나 선거를 통해 공직에서 복무를 마친 시점으로부터 3년 이내일 경우 등을 이사의 결격사유로 정해놨으나, 이것이 정치적 중립성을 보장한다고 볼 수는 없다. 회사의 대표를 선임하는 이사회 구성이 애초에 정치권력에 의해 이뤄진다는 점에서 정치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언론의 정치적 독립성 확보에 관해서 문제 제기만 계속될 뿐 실질적인 지배구조 개선은 미진한 상황이다. 이사의 수를 늘리고 사장 추천권을 확대하는 등 공영방송의 정치적 독립을 위한 방안이 여러 번 제안됐으나, 제도화로 이어지진 않았다. 지난해 11월에는 공영방송 이사회 구조와 이사 추천 권한, 사장 선출 방식의 변화를 골자로 하는 방송 3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통과됐으나 윤석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고 본회의가 부결되면서 폐기됐다. 방송법 개정 추진이 무산된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16년에는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 공영방송 이사회 정원을 13명으로 증원하는 방송 4법 개정을 추진한 바 있으나, 2017년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된 후 개정안에 의문을 표해 제안 논의는 끝내 중단됐다. 이전에는 야당으로서 방송법 개정을 적극적으로 추진했더라도, 정권이 바뀌어 집권당이 되면 해당 법안에 반대 의견을 던지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방송사의 구조를 변화시켜 보려는 크고 작은 시도가 완전히 무용한 것은 아니다. 독일의 공영방송을 감독하는 기구인 방송평의회는 각 공영방송마다 사회의 다양한 분야를 포괄해 의사회를 구성하고 있다. 〈라디오브레멘〉이 32명으로 가장 작은 의사회를 꾸리고 있으며, 많게는 〈남서독일방송〉 의사회의 경우로 75명으로 구성된다. 우리나라에서도 2017년 〈MBC〉가 제22대 최승호 사장부터 사장 선임 과정에 시민평가단을 도입해 시민 참여의 길을 열기도 했다.

  하지만 현재 방통위가 총 5인의 구성조차 확정하지 못했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된다. 작년부터 방통위는 대통령이 지명한 위원장과 부위원장 2인만으로 운영되고 있는데, 따라서 작년 공영방송의 이사진 해임은 단 2명의 결정으로 진행됐다. 서울고등법원은 방통위 2인의 결정으로 내려진 방문진 권태선 이사장의 해임 처분 집행 정지 신청과 더불어, 권 이사장의 후임으로 임명된 방문진 김성근 보궐이사의 임명 처분 집행 정지 신청을 인용했다. 방통위는 절차상 문제가 없었다며 김 이사의 임명 집행 정지 신청에 항고했다. 이에 법원은 방통위 2인 체제의 심의 의결이 방송의 자유와 국민의 권익을 보호할 방통위의 입법 목적을 해친다며 우려를 표했다.

  방통위의 공정성 문제는 필연적으로 방통위가 구성하는 공영방송국의 지배구조에도 영향을 미친다. 방통위가 공영방송 이사회 구성을 결정하는 현재의 구조가 지속되는 한, 공영방송은 정치적으로 독립하지 못하고, 권력에 영향을 받지 않고 자유로운 목소리를 내기도 어렵다. 전문가들은 현재의 공영방송이 겉보기엔 국가가 방송국을 간접적으로 소유하는 형태지만, 실질적으로는 국가가 방송국을 직접 소유하는 국영방송의 형태에 가까워질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한다. 지배구조의 개선이 없다면 언론은 계속 중심을 잃은 채 정치권력에 의해 흔들릴 것이다.

자본으로부터의 독립, 공적 재원의 확보

  공영방송이 공적 재원으로 운영된다는 점은 현재의 논의에서 가장 중요한 지점 중 하나다. 그 중심에는 수신료 문제가 있다. 한국에서는 실제 시청 여부와 무관하게 텔레비전 수상기를 소지한 가구에 특별 부담금인 수신료를 부과하고 있다. 수신료는 공익을 우선하고 모두가 누릴 수 있는 방송을 만들기 위한 독립적인 재원으로서 유지되고 있다. 공공미디어연구소 김동준 소장은 「공영방송의 공적 재원, 축소 아닌 공고화 필요」(2023)에서 ‘수신료는 경제적 추동으로부터 조직의 독립성을 지키면서 저널리즘 원칙을 지켜나가는 근간이 될 수 있다’며 ‘정치 및 자본 권력으로부터 독립해 공영방송의 공익성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수신료만한 재원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국의 공영방송은 기본 재원에서 공적 재원이 차지하는 비율이 낮은 편이다. 유럽방송연합(EBU)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EBU 지역의 공공서비스미디어의 재원은 2022년 기준 공적 자금의 비율이 75.9%이고, 그중 수신료가 50.8%의 비중을 차지했다. 또한, 독일은 2023년 기준 수신료가 공영방송 전체 수입의 약 85%를 차지하고, 공영방송 〈ARD〉의 경우는 광고 시간을 제한함으로써 상업화를 경계해 광고 수입은 약 6%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EBU 공공서비스미디어의 재원 구조 ⓒ송나윤

  공영방송의 기본 재원에서 공적 재원인 수신료가 차지하는 비율은 2020년 기준 일본의 〈NHK〉가 약 97%, 프랑스의 〈FT〉는 약 82%다. 반면 〈KBS〉의 경우 같은 해 기준 47.3%로 비교적 작다. 〈EBS〉의 경우 단 6.2%에 불과하다. 현재 수신료를 전기요금과 분리해 징수하는 방송법 시행령 개정안이 시행됐지만, 관계 기관 간 협의 미비로 실제 적용은 유야무야 미뤄지는 상황이다. 분리 징수가 본격적으로 시행되면 통합 징수 시 약 99%에 달했던 수신료 납부율이 하락할 것이며, 수신료가 절반 혹은 그 이하로 감소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공영방송이 가용할 수 있는 재원이 현재보다 더 줄어드는 것은 필연적인 결과다.

▲〈KBS〉, 〈EBS〉와 해외 공영방송국의 재원 구조 비교 ⓒ송나윤

  공영방송의 재원 독립성이 제대로 보장되지 않는다면 공정성과 공익성을 추구하는 공영방송의 공적 기능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 줄어든 수신료를 대신하기 위해 광고 수익과 같은 상업적 재원을 늘리게 되면 방송 편성의 상업성이 강화되고, 공영방송사는 경제 상황에 따라 안정적인 수익을 보장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EBU는 수신료를 비롯한 공적 기금 조달의 원칙으로 독립성, 안정성과 적절성, 공정성과 정당성, 투명성과 책임성 등을 내세우고 있다. 

  미디어 환경의 변화에 따라 각국은 수신료 징수 방식의 변화를 꾀하고 있다. 수신료를 폐지한 국가라도 공공서비스미디어의 재원은 공적 자금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핀란드와 스웨덴 등의 북유럽 국가는 수신료를 조세화하는 방식으로 안정적인 재원 기반을 마련했다. 이들은 정권의 개입을 차단하기 위해 정부 예산과 조세화된 기금을 구분하고 독립적으로 관리한다.

  EBU에 따르면 공공서비스미디어의 기금과 언론의 자유는 유의한 상관관계가 있다. 풍부한 기금이 더 나은 언론 수행을 만들고, 더불어 언론 자유 지수도 높인다는 설명이다. 광고 수익에 대한 재정 의존도가 높아진다면 시청률 경쟁으로 인해 공익성이 높은 프로그램의 편성이 축소될 가능성이 높다. 수신료와 관련한 논의가 공영방송국의 상업화에 대한 우려로 이어지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공영방송이 공적 책임을 수행할 수 있으려면 경제적 독립성과 정치적 중립성을 유지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공영방송이 자본에 휘둘리지 않고 안정적으로 운영되기 위해선 공적 재원을 공고히 할 필요가 있다.

공영방송의 민영화 가능성

  수신료 분리 징수는 국회의 입법 절차를 거치지 않고 국무회의와 대통령의 재가를 거친 시행령 개정으로 이뤄졌다. 충분한 숙의 없는 졸속한 결정에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방통위 3인 체제 내 2인 찬성으로 가결된 방송법 시행령안은 통상 40일 이상인 입법 예고 기간을 10일로 단축하고 국무회의를 통과해 공포 즉시 시행됐지만, 업무 이관 문제를 둘러싼 혼란으로 아파트 등 공동주택의 분리 징수 시행은 유예되고 있다. 한국전력공사(한전)와 〈KBS〉는 올해 연말까지로 위수탁 계약을 맺었으나 방송법 시행령안에 따라 이제 한전의 전기요금 고지서를 통해서는 수신료를 징수하지 못한다. 이에 수신료를 전기요금과 분리해 징수해야 하는 〈KBS〉는 업무 계획의 통보와 철회를 반복하면서 방송법 시행령안에 따른 이행을 유예하고 있다.

  문제는 공적 재원 확보에 대한 아무런 대안 없이 수신료 분리 징수를 급작스럽게 시행했다는 것이다. 수신료를 대신할 공적 재원의 확보 방안을 마련하지 않고서야 당장에는 광고 수입을 늘려 재원을 확보할 수밖에 없다. 영국의 경우 보수당에 의해 공영방송 〈BBC〉의 수신료 폐지 논의가 시작됐는데, 대안 마련을 위해 5년이라는 논의 시간을 확보했다.

  수신료 분리 징수가 공영방송 민영화의 첫 단계일까? 이동관 전 방통위원장은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자유로운 정보 소통을 위해 공영방송은 최소화’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또한 수신료 관련 시행령안 통과 후 공영방송 민영화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필요하다면 있을 수 있는 방안 중 하나’라고 답했다. 이 전 방통위원장이 지난해 12월 국회 탄핵 의결을 앞두고 자진 사퇴한 이후 방통위는 여전히 대통령이 직접 지명한 2인으로 구성돼 있다. 방통위와 공영방송 이사회의 구성이 모두 여대야소의 형태를 띠면서 민영화가 현실화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이보다 앞서 준공영방송은 이미 민영화의 길목에서 위태롭다. 〈연합뉴스〉는 국가기간방송인 〈KBS〉처럼 뉴스통신진흥법에 따라 국가기간뉴스통신사로 지정돼 있다. 〈연합뉴스〉는 국제 뉴스 분야에서 공적 기능을 수행할 것을 약속하고 정부로부터 매년 지원금을 받고 있기에 준공영언론으로 여겨진다. 이러한 〈연합뉴스〉가 1대 주주로 있는 〈연합뉴스TV〉의 2대 주주는 학교법인인 을지학원인데, 작년 11월 을지학원이 지분을 모아 〈연합뉴스TV〉의 1대 주주가 되고자 했다. 방통위는 을지학원이 방송의 공적 책임을 안정적으로 수행하기 어렵고, 방송 사업 수익을 학교 법인 수익으로 전용할 우려가 있다는 이유를 들어 이를 승인하지 않았다.

  반면 〈YTN〉에 대한 조치는 달랐다. 〈YTN〉은 공기업이 30%의 지분을 가지고 있지만 방송 업무는 하지 않기에 보도전문채널로서 준공영언론으로 여겨져 왔다. 지난 2월, 방통위 2인 체제는 공기업이 보유한 〈YTN〉 지분을 민간기업인 유진그룹에 매각하는 것을 승인했다. 준공영언론의 민영화 조치가 사실상 이뤄진 것이다. 공기업의 지분이 전부 민간기업으로 넘어가면서 〈YTN〉은 권력을 감시하고 비판하는 공적 책무로부터 멀어지게 됐다. 유진그룹이 1대 주주가 된 〈YTN〉은 이명박 정부 시절 언론탄압을 주도했다고 여겨지는 김백 전 총괄상무를 사장으로 선임했고, 김 사장은 선임 직후 보도국장을 교체했다. 이는 〈KBS〉 박민 사장의 행보와 유사한데, 박 사장은 취임 직후 편성본부장, 보도본부장, 제작본부장을 포함한 주요 인사를 교체한 바 있다.

  공영방송사가 더 이상 공영이 아니게 되면 방송의 상업주의가 더욱 심화돼 자본에 편향적인 보도를 할 가능성도 높아진다. 프랑스의 공영방송사였던 〈TF1〉은 민영화 직후 종합오락채널화 경향이 두드러졌다. 이전에 주로 방송했던 시사 정보 및 교양 다큐멘터리보다 가벼운 흥미 위주의 다큐멘터리 편성이 늘어난 것이다. 또한 〈TF1〉이 상업적으로 성공하면서 〈TF2〉, 〈TF3〉 등 다른 공영방송에도 혼란을 초래했고, 공영방송이 광고 경쟁에 나서며 프로그램의 질적 수준이 하락하는 등 상업 방송에 지배당하는 시장 구도가 생겨났다. 이처럼 공영방송 하나의 민영화만으로도 자본이 언론에 미치는 힘은 막대해질 수 있다. 민영화의 가능성을 경계해야 하는 이유다.

  언론이 언론다울 자유는 어디에 있는가. 정권이 바뀔 때마다 공영방송의 이사회와 경영진에는 피바람이 분다. 정부와 여당, 방통위, 공영방송 이사회, 사장으로 이어지는 지배구조는 언론이 정치적 이해관계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게 만든다. 모두에게 사실을 알리기 위해, 다양한 의견을 전하기 위해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독립해 자유로운 목소리를 내는 언론의 존재는 필수적이다. 이러한 언론을 지키기 위해선 정치권과 학계, 언론계, 시민사회까지 공영방송의 이해관계자로 얽힌 모두가 진정한 언론의 역할과 그것을 가능케 하는 구조에 대해 성찰할 필요가 있다. 공영방송이 치우치지 않고 중심을 단단히 잡은 채 공적 기능을 수행할 수 있도록 지배구조의 개선과 재원 구조의 안정을 향해 나아가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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