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는 잘 들어. 1988년에 경제신문 기자가 허벅지에 칼 두 방이 찔렸다.” 지난 3월 대통령실 황상무 전 시민사회수석이 출입 기자들에게 한 말이다. 〈중앙경제신문〉 故 오홍근 기자가 군사 정권을 비판하는 칼럼을 써 정보사령부 군인들에게 당했던, 이른바 ‘회칼 테러’ 얘기다. 언론이 권력을 비판했단 이유로 생명에 위협을 느껴야 했던 사건이 40여 년 만에 재소환됐다. 테러의 사전적 정의는 ‘정치적인 목적을 위해 조직적·집단적으로 행하는 폭력 행위’다. 물리적 위협만이 폭력이고 테러는 아닐진대 오늘날 정치권력이 한국 언론계에 가하는 제재와 탄압을 테러에 준한다 하면 비약일까. 언론 탄압의 구조와 양상을 짚어봤다.
정성을 다하는 권력의 방송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는 ‘방송통신위원회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방통위법)’에 따라 위원장 1인, 부위원장 1인을 포함한 5인의 상임위원으로 구성된다. 위원장을 포함한 2인은 대통령이 지명하고 3인은 국회의 추천을 받는데, 여당이 1인, 야당이 2인을 추천한다. 대통령 및 여당 추천 인사와 야당 추천 인사의 비율이 3대 2로 정부 권력이 수적 우세를 점한다. 방통위에서 논의되는 대부분의 사안은 다수결에 따라 의결되는데, 대체로 위원들의 여야 출신 비율에 따라 결과가 갈린다.
정치적 성향의 수적 우열이 곧바로 의결 결과로 이어지는 건 공영방송의 이사회도 마찬가지다. 〈KBS〉의 사장은 방통위가 추천한 이사회에서 제청해 대통령이 임명한다. 이사회는 11명으로 구성된다. 방통위는 지난해 7월 야권 추천인이었던 윤석년 전 이사를 해임했다. 연이어 8월엔 남영진 전 이사장을 해임하고 여권 추천 황근 이사와 서기석 이사장을 임명했다. 이로써 여야의 비율이 4대 7에서 6대 5로 재편됐다. 이후 여권 출신 6명만의 찬성으로 지난해 9월 김의철 전 사장이 해임됐고, 11월 박민 사장이 취임했다. 〈미디어오늘〉 윤유경 기자는 “방통위, 〈KBS〉 이사회 모두 논의에서 여야 추천 위원들 중 수가 많은 쪽이 일방적으로 결론을 정하고 있다”며 “언론계 현장을 취재하다 보면 곧잘 무력감에 휩싸인다”고 말했다.
박민 사장 취임 이후 〈KBS〉 내부에선 많은 변화가 일었다. 지상파 최초 평일 뉴스의 여성 메인 앵커라는 상징성을 지니던 《뉴스 9》의 이소정 앵커는 일방적인 통보로 하루 만에 하차했다. 시사 프로그램 《더 라이브》도 박민 사장 취임 일주일 만에 폐지됐다. 지난해 11월 한국갤럽이 실시한 ‘한국인이 좋아하는 방송영상프로그램’ 조사에서 4위를 차지하기도 했던 프로그램이다. 단순한 방영 시간 조정도 사전 협의를 거치는데, 프로그램의 폐지가 제작진과의 논의 없이 일방적으로 결정된 것이다. 〈KBS〉 편성규약은 물론, ‘프로그램 개편 전 제작진과 협의하고 프로그램 긴급 편성 시에는 교섭대표 노조에 통보’하도록 명시된 노사 단체협약 위반 소지도 있다.

최근엔 세월호 참사 10주기 다큐멘터리를 두고 논란이 일었다. 〈KBS〉 이인건 PD는 지난해 12월부터 4월 18일 방영을 목표로 다큐멘터리를 제작해 왔다. 세월호 참사를 겪은 생존자들이 지난 10년간 어떻게 살아왔는지 조명하고 앞으로의 삶을 응원하는 취지였다. 그러나 올해 2월 박민 사장이 임명한 이제원 제작1본부장은 제22대 국회의원 선거(총선)에 영향을 줄 수 있으니 방영 시기를 6월로 미루라고 지시했다. 민주언론시민연합(민언련) 김봄빛나래 활동가는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고 국민 안전을 위한 정부의 역할을 되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앗아간 사태”라며 “총선 일주일 후에나 방영될 다큐멘터리가 어떻게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건지 납득할 수 없다”고 말했다. 결국 세월호 참사 10주기 다큐멘터리는 제작이 중단됐다.

방송통신‘제재’위원회, 선거방송‘제재’위원회
방통위와 함께 언론계 전반을 감독해 영향을 끼치는 기구로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도 있다. 방심위는 방송법 제32조에 의거해 방송이 공정성과 공공성을 유지하는지, 공적 책임을 준수하는지 여부를 심의하는 민간 독립기구다. 9인의 위원으로 구성되며 대통령, 국회의장, 국회 소관 상임위원회가 각각 3인을 추천하고 대통령이 위촉한다.
방심위는 독립기구를 표방하지만, 구조상 방통위의 영향력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한계를 지닌다. 〈KBS〉 대외정책실 탁재택 박사는 저서 『미디어 권력 이동』(2022)에서 ‘민간 독립기구를 표방하는 방심위가 심의 결과를 보고하면 이에 대해 대통령 직속 기구인 방통위가 최종 규제권한을 행사하는 구조’를 지적한다. 탁 박사는 방심위가 ‘자체적으로 행정 처분을 내릴 수 있는 구속력과 권한이 없다’며 ‘방통위에 행정 처분을 요청해야 하는 구조’에 비판이 제기된다고 서술했다.
최근엔 방심위의 제재 수위와 정당성을 두고도 논란이 거세다. 대표 사례로 〈MBC〉의 ‘바이든-날리면’ 보도가 꼽힌다. 재작년 9월 〈MBC〉는 윤석열 대통령이 미국 순방 과정에서 한 발언을 보도하며 ‘(미국) 국회에서 이 XX들이 승인 안 해주면 바이든은 쪽팔려서 어떡하나’라는 자막을 달았다. 대통령실은 ‘바이든’이 아니라 ‘날리면’이라고 말한 것이며 미국 의회가 아닌 우리나라 국회를 말한 것이라 해명했고, 외교부는 〈MBC〉에 정정보도를 청구했다. 지난 1월 서울서부지방법원은 〈MBC〉 보도의 근거 자료를 신뢰하기 힘들다며 정정보도를 하라고 선고했다. 〈MBC〉는 곧바로 항소했고 아직 재판이 진행 중이다.
문제는 방심위가 아직 항소심이 진행 중인 사안임에도 불구하고 법적 제재를 의결했다는 점이다. 방심위 류희림 위원장은 지난 4월 15일 〈MBC〉에 과징금 3,000만 원을 부과했다. 과징금은 방심위가 내릴 수 있는 법정 제재 중 가장 높은 수위의 처분이다. 류 위원장이 부임하기 전까지 역대 방심위에서 과징금 부과가 의결된 사례는 단 한 차례뿐이었다. 성공회대 김서중 교수(미디어콘텐츠융합자율학부)는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방심위는 방심위 제재와 법원의 최종 확정 결과가 다르면 언론사의 피해를 보상할 방안이 마땅치 않아 관행적으로 판결 확정 때까지 심의를 미뤄왔다’며 이번 사건에 대해 ‘방심위가 언론의 자유를 보장하기보다 보도 대상인 대통령, 외교부를 보호하는 방향의 제재를 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제재의 정당성과 별개로 근본적인 문제는 방심위 본연의 업무가 제대로 수행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방심위의 기능은 보도 프로그램의 정치적 공정성 심의에만 그치지 않는다. 방심위는 방송심의소위원회 이외에도 다양한 사안에 대응하기 위해 5인 이내의 소위원회를 여럿 두고 있는데, 대표적으로 광고심의소위원회, 통신심의소위원회, 디지털성범죄심의소위원회가 있다. 윤유경 기자는 “방심위는 방송의 과도한 간접 광고 여부, 폭력성, 문제적인 언어 사용 등 다양한 심의를 진행한다”며 “정치 심의 문제에 방심위 업무가 과도하게 집중돼 시민들의 시청권을 지키고 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심의들이 뒷전으로 밀리”는 상황을 지적했다.
제22대 총선을 기해 방심위에 설치된 선거방송심의위원회
(선방심위)의 제재를 두고도 언론계 안팎이 시끄럽다. 선방심위는 총선·대선 등 선거가 있을 때 예비후보자등록신청개시일 전날부터 선거일 후 30일까지 방심위에 설치되는 위원회다. 제22대 총선 선방심위는 지난해 12월 11일부터 오는 5월 10일까지 운영된다. 선방심위의 위원은 총 9명으로, 국회 교섭단체 정당이 각 1명,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1명, 방송사·방송학계·대한변호사협회·언론인단체·시민단체가 나머지를 추천한다.
2024년 4월 기준, 운영 종료를 한 달 남겨뒀음에도 제22대 총선 선방심위는 법정 제재를 총 18건 의결했다. 역대 선방심위 중 최다 수치다. 처분의 수위와 횟수도 이례적이지만 제재 사유도 논란이다. 선거와 직접적으로 관련되지 않은 사안까지도 모두 회의 안건이 됐고, 실제 제재로 이어지는 경우도 허다하다. 지난 2월 〈SBS〉 프로그램 《편상욱의 뉴스브리핑》은 선방심위에 의해 행정지도 처분을 받았다. 출연자가 ‘대통령 배우자 김건희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진상규명을 위한 특검법’을 ‘김건희 특검’으로 줄여 불렀단 이유에서였다. 영부인을 이름 석 자만으로 부르는 게 적절치 않단 지적이었다.

정당성이 납득되지 않은 채 이뤄지는 심의와 제재는 결국 언론계 전반을 위축시킨다. 이후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선 출연자가 김건희 씨를 지칭하며 여사 호칭을 빼고 발언하자 진행자가 선방심위의 제재를 의식한 듯 발언을 정정해주기도 했다. 김봄빛나래 활동가는 “법안명에 여사란 단어는 존재하지도 않지만 붙여야 하는 이 상황이 방심위와 선방심위의 행태를 극명하게 나타내는 사례”라며 “편파심의가 언론의 입을 막으면 결국 피해는 국민에게 돌아온다”고 우려를 표했다.
가짜뉴스를 근절한다는 핑계
언론계 전반을 향한 심의와 제재는 가짜뉴스를 척결한다는 명목으로 정당화되기도 한다. 방통위는 지난해 9월 가짜뉴스 근절 추진방안을 발표했다. 방심위에 가짜뉴스 신고 창구를 마련해 민원 접수 순서와 상관없이 신속하게 심의하고 후속 구제 조치까지 한 번에 실시하는 방안, 이른바 패스트트랙의 활성화가 골자를 이룬다.
하지만 가짜뉴스라는 용어의 정의가 모호해 허위 보도뿐 아니라 정권 비판 보도까지도 제재하는 근거로 사용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지난해 10월 언론개혁시민연대와 전국언론노동조합이 개최한 토론회에서 한국외대 김민정 교수(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는 가짜뉴스라는 용어가 “실수로 제공된 잘못된 정보, 고의성을 띤 허위정보, 정치 선전 등 다양한 의미로 사용된다”며 “유럽 등은 2018년부터 정부 공식문서에서 가짜뉴스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기로 했다”고 발언했다.
용어의 다의성과 모호성이 악의적으로 이용되는 행태도 문제다. SNU 팩트체크센터(팩트체크센터) 정은령 센터장은 “이번 정부는 노골적으로 허위조작 정보라는 말 대신 가짜뉴스라는 말만을 쓰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민정 교수는 토론회에서 가짜뉴스 용어 사용에 대해 “언론사가 허위 사실을 유포하는 것처럼 매도해 언론 신뢰도를 낮추려는 정치권력의 불순한 의도가 담겨있다”고 꼬집었다.
가짜뉴스를 제재한다는 명목으로 네이버와 카카오 등 포털에 압력이 가해지기도 한다. 포털 의존도가 높은 한국 언론계의 특성상 제휴 언론사에 대한 실질적인 제재를 위해 포털은 자주 선제적인 압박의 대상이 된다.
방통위는 가짜뉴스 근절 추진방안 발표 후 후속 조치로 네이버, 카카오, 구글, 메타 등 포털 기업들과 함께 가짜뉴스 대응 민관협의체를 구성했다. 방심위에 가짜뉴스 신고가 접수돼 심의가 이뤄지는 보도에 대해선 별도의 문구를 붙이기로 결정했다. 이후 실제로 지난해 10월 네이버와 카카오는 방심위로부터 자율규제 협조 공문을 받았고, 심의가 이뤄진 3일간 〈뉴스타파〉의 기사에 신속심의 중이라는 표시를 했다. 이러한 조치는 아직 제재가 의결되지 않은 기사임에도 읽는 이로 하여금 문제적인 기사로 생각하게 하는 효과를 불러일으킨다는 비판이 나온다. 방심위 윤성옥 위원은 〈시사IN〉과의 인터뷰에서 ‘가짜뉴스 센터에서 접수하는 순간 그 보도나 게시글은 가짜뉴스로 낙인찍힐 가능성이 크다’며 우려를 표했다.

포털에 대한 정권 압박은 다른 사례에서도 드러난다. 네이버는 지난해 9월부터 팩트체크센터와 제휴해 네이버 뉴스홈에 게시해오던 팩트체크 서비스를 중단하기로 했다. 팩트체크센터와 한국언론학회를 통한 팩트체크 언론사 재정 지원도 끊었다. 팩트체크센터는 서울대학교 언론정보연구소 산하에서 31개 언론사들과 제휴를 맺고 공적 사안에 대한 사실 검증 결과를 알리는 역할을 해왔다. 정은령 센터장은 〈미디어오늘〉과의 인터뷰에서 재정 지원을 끊은 배경에 대해 네이버가 ‘지원을 계속 한다면 어디까지 피해를 봐야 할지 두렵다’고 했다며 정권의 압박을 시사했다. 정 센터장은 “권력을 감시하는 속성상 팩트체크는 정치적으로 공격을 당할 수밖에 없다”며 네이버에게도 재정 지원이 부담일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한국 언론의 디지털화는 포털에의 예속의 역사”라며 “언론 생태계에 대해 포털이 사회적인 책임을 져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언론사의 각자도생, 그 너머를 도모하기
정권의 성향과 별개로 언론 탄압은 지속적으로 반복돼왔다. 이명박 정부 당시 국정원은 공영방송을 장악하기 위해 인적 쇄신, 반노조 대책 등 여러 유형의 대책 문건을 생산했다. 문재인 정부 땐 언론사가 허위·조작 보도를 했을 때 5배까지 징벌적 손해배상 의무를 부과하자는 내용이 담긴 법률의 제정이 추진되기도 했다. 윤유경 기자는 “언론이 정치권력에 휘둘리고 있다”고 진단했다.
언론사를 향한 직접적인 제재는 물론 포털을 경유한 간접적인 압박도 빈번한 것이 현 상황이다. 개별 언론사는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할까. 또 취할 수 있을까. 정은령 센터장은 현재의 한국 언론계에 진영화, 더 나아가 자사 이기주의가 팽배하다며 이를 경계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정 센터장은 “한국 언론계는 특정 언론사의 직원이라는 인식을 넘어 언론인이라는 전문직 공동체의 일원이라는 소속감이 굉장히 희박한 것 같다”며 이로 인해 정부의 행동이 개별 언론사가 아니라 언론 전체를 탄압하는 것이라는 인식 자체가 미비하다고 짚었다.
재작년 11월 대통령실은 동남아 순방을 앞두고 전용기에 〈MBC〉 취재진의 탑승을 불허한다고 통보한 바 있다. ‘바이든-날리면 보도’ 등 〈MBC〉가 왜곡되고 편파적인 보도를 일삼는다는 이유에서였다. 이에 〈한겨레〉와 〈경향신문〉은 언론을 통제하는 부당한 결정이라고 비판하며 자발적으로 전용기 탑승을 거부했다. 정은령 센터장은 이를 두고 “만약 보수 언론까지도 전용기에 타지 않겠다고 동참했다면 행위의 무게감이 달라졌을 것”이라며 “현재의 한국 언론계는 이를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며 이는 곧 언론계 자체의 손해로 이어진다”고 진단했다.
정은령 센터장은 본인을 “원론주의자”라고 소개한다. 정 센터장은 언론을 공공재로서 보호해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와 여론이 만들어지려면 언론이 “진실에 부단히 가닿으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결국 저널리즘의 본질은 사실 검증에 있고 이를 충실히 수행하는 수밖에는 없다는 것이다. 김봄빛나래 활동가는 “시민과 언론이 함께 언론 탄압에 저항하는 게 뻔하지만 정답”이라고 말한다. 시민의 알 권리는 언론의 자유와 궤를 같이 하기에, 중요한 건 언론계 바깥에서도 관심을 기울이고 연대하려는 마음이라는 것이다.
언론계를 향한 노골적이고 이례적인 탄압 앞에서 원론에 충실하기도, 진부한 해법을 따르기에도 버거운 시대다. 언론 탄압의 역사는 유구하지만, 이는 동시에 그 종식을 위한 투쟁도 꾸준히 이뤄져 왔음을 방증한다. 그리고 그 장면들엔 분명 각자의 자리에서 목소리를 내는 시민 개개인과 언론인들이 있었을 것이다. 그걸 기억하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