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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 우리가 여기에 있다” 4년 만에 다시 울려 퍼진 ‘미친 존재들’의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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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 우리가 여기에 있다” 4년 만에 다시 울려 퍼진 ‘미친 존재들’의 목소리

종각역 일대에서 2024 매드 프라이드 서울 ‘다들 미치는 세상 아닌가요?’ 열려
▲병상과 '마르코 까발로'를 앞세워 행진하는 참가자들
▲병상과 ‘마르코 까발로’를 앞세워 행진하는 참가자들

  세계 조현병의 날을 기념해 지난 24일 종각역 일대에서 2024 매드 프라이드 서울 ‘다들 미치는 세상 아닌가요?’가 열렸다. 1993년 캐나다에서 시작돼 세계 각지로 확산된 매드 프라이드는 정신질환 및 정신장애 당사자들이 주도해 정신질환에 대한 차별과 낙인에 저항하며 자신들의 매드 정체성을 긍정하려는 시도다. 송파정신장애동료지원센터의 주관으로 15개 기관이 협력해 기획된 이번 매드 프라이드는 지난 2019년 이후 4년 만에 광장에서 부활했다. 행사는 크게 침대 밀기(BED PUSH), 거리 행진, 3분 발언 등으로 구성됐다. 

  행사 기획에 참여한 한국정신장애인연합회 이한결 전략기획본부장은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배제하고 억압하던 정신질환 및 정신장애를 경험하시는 분들이 더 이상 병원에 수용되지 않고 지역사회에서 자유롭게 살고 싶다고 목소리 낼 수 있도록 행사를 기획했다”고 밝혔다. 이 본부장은 화학적 억제, 지역사회와의 격리를 토대로 한 전통적 정신의학적 관점에서 벗어나 지역사회에서 누구나 개인의 선호와 의지에 따라 복지 서비스를 지원받을 수 있어야 함을 강조했다. 

▲현수막을 들고 행진하는 행사 참가자들

  관악중앙몸짓패 골패의 축하 공연으로 시작한 행사는 “우리는 미쳤다”, “자유가 치료다” 등의 구호를 외치며 거리 행진을 진행했다. 환자복을 입은 이들이 보라색 풍선을 가득 단 병상을 밀며 행진을 이끌었다. 매드 프라이드의 핵심인 침대 밀기와 거리 행진은 시설로의 격리와 사회에 만연하는 차별과 혐오를 뿌리치고 지역사회에서 자유로운 삶을 살겠다는 정신장애인의 의지를 보여준다. 행진에 함께한 파란색 말 ‘마르코 까발로’는 1973년 정신장애인들이 정신병원 폐쇄 운동을 시작하며 만들어 현재까지 정신장애인 해방의 상징을 뜻한다.

  자신을 정신장애인 당사자라고 밝힌 김응재 씨는 “많은 차별과 낙인의 대상인 정신장애를 가지고 사회에서 살아갈 때 어려움이 많은데 여기서 자랑스럽게 내 정체성을 얘기해서 기쁘다”며, “모든 사람은 힘든 시기가 있기에 누구나 어려울 때는 도움을 받고 도움을 줄 수 있도록 차별하지도, 억압하지도, 낙인찍지도 말고 함께 살아가는 동료로 우리를 인식해 주면 좋겠다”는 소망을 밝혔다. 이한결 전략기획본부장 역시 “개개인의 다양성을 우리 사회가 너무 병리화하고 의료화해서 위험한 사람, 배제해야 하는 사람, 병원에서 치료받아야 하는 사람으로 치부하고 있다”며 “정신장애를 경험하는 사람들 역시 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인지하고 장애인 권리 협약에 따라 우리에게 주어진 권리가 잘 지켜졌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밝혔다.

▲행사명이 적힌 깃발을 들고 행진하는 참가자들

  서울시의회 앞에서 출발해 종각역 일대를 한 바퀴 돌고 다시 출발 지점으로 돌아온 2024 매드 프라이드 서울은 “미친 우리가 여기에 있다”라는 구호를 외치며 행사를 마무리했다. 2022년 발표된 ‘UN 탈시설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시설 수용은 선택의 영역이 아닌 명백한 인권 침해다. 국가는 장애를 가진 이가 탈시설 후 지역사회에서도 잘 살 수 있도록 장애인의 욕구와 선호에 기반한 자립생활 정책을 마련하고자 애써야 한다. 미쳤다는 것은 자긍심이 될 수 있을까. 미쳤다는 이유만으로 시설에 수용되지 않고 지역사회에서 필요한 서비스를 받으며 함께 살아갈 수 있을까. 반드시 그래야 한다고, 나의 존재는 결코 정신질환을 이유로 지워져도 되는 것이 아니라고 외치는 굳세고 오랜 목소리가 광장에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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