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10주기 특집호를 기획하자는 의견이 나왔을 때 ‘당연히 다뤄야 한다’는 생각에 덥석 커버장을 맡았다. 그 ‘당연하다’는 감각을 펼치는 데 애먹으며 종종 길을 잃었다. 기자라는 이름을 달고 명함을 불쑥 내밀며 당신의 기억을 나눠달라고 염치없이도 굴었다.
너무도 자주 부끄러워졌다. 팽목항도 가본 적 없는 사람이, 팽목항을 찾아갔을 때 느꼈던 참담함을 나누는 이의 애석한 목소리를 들었다. 노란 리본을 항상 달고 다니진 않았던 사람이, 노란 팔찌와 보라 팔찌를 차고 있는 이의 단단한 다짐을 들었다. 구조를 기다리던 희생자들을 떠올리며 인터뷰 중 눈물을 훔치던 이 앞에서는 한동안 머릿속이 멍해졌다. 진정으로 애도하고 추모하는 시간이 내게는 있었나 싶었다.
김포에서 제주로, 제주에서 진도로 가는 항공편과 배편을 급히 뒤지기도 했다. 몸이 따라주지 않아 고집은 잠시 접어뒀다. 그러곤 카메라를 들고 부랴부랴 4.16기억교실을 찾아갔다. 쉬이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얼굴들과 그들의 흔적들과 그들이 꾸려가던 세상이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카메라를 들었다 놓기를 반복했다.
주어지지 않은 애도와 추모를 뒤로한 채 도저히 예전같이 살 수는 없는 이들의 마음을 감히 헤아리고 함께 슬퍼했다. 원고를 쓰면서는 자주 덜컹거리며 멈춰 섰다. 활자가 여느 때보다 무거웠고, 어떨 때는 살아 숨 쉬는 것처럼 느껴졌다. 활자(活字)의 ‘활’ 자가 ‘살 활’이라는 한자인 이유는, 누군가에 의해 남겨진 글이 또 다른 누군가와 만나 생명력을 품고 살아있을 수 있다는 데 있으리라고 믿는다.
기억을 남기고 더 넓은 세상과 기꺼이 나누고자 한 사람들 없이 이번 호는 없다. 이 세상을 살아가던, 살아가는, 그리고 살아갈 존재를 결국 아주 깊이 사랑하게 된 사람들 없이 기자가 할 말은 없다. 책임을 느끼며 고백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