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해 서울대는 열여섯 번째 단과대학으로 첨단융합학부를 신설하고 학부 정원을 218명 증원했다. 서울대가 새로운 단과대학을 설립한 것은 2009년 자유전공학부 이후 15년 만이다. 지난 2월 29일 첨단융합학부 초대 입학식에 이례적으로 유홍림 총장이 직접 참석해 “첨단융합학부의 첫 발걸음을 축하한다”는 축사를 남기는 등 본부가 첨단융합학부에 거는 기대는 커 보인다.
하지만 첨단융합학부가 약 1년이라는 짧은 시간 만에 급하게 설립된 탓에, 일부 구성원은 불안감을 표하기도 했다. 설립 목표나 필요성 등 교육 관련 문제부터 공간과 교원 확보 등 현실적인 사안까지, 본부는 여러 의문점에 대해 구성원들의 의견을 최대한 반영해 문제를 고쳐나가겠다고 말해왔다.
그렇다면 첨단융합학부의 첫 학기가 끝나가는 지금, 첨단융합학부의 상황은 어떨까. 첨단융합학부의 목표와 설립 과정을 돌아보고, 앞으로 첨단융합학부가 나아갈 길을 살펴봤다.
‘첨단’ 인재 양성을 위한 ‘융합’ 교육

본부는 첨단융합학부를 설립한 이유로 ‘첨단 미래 산업을 이끌어갈 차세대 리더 양성을 위한 융합 교육’의 필요성을 제시한다. 4차산업혁명과 디지털 대전환 시대가 도래함에 따라, 과학기술 전문성과 초학제적 융합 소양, 그리고 소통·협업 능력을 갖춘 인재가 필요해졌다는 것이다. 첨단융합학부 이연 교무부학부장은 “서울대의 기존 단과대학은 각 분야에 대해 국내 최고의 교육 역량을 가지고 있다”며 “각 단과대학의 전문가들이 함께 교육 역량을 결집시켜 혁신적인 학습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기존 단과대학의 증원이 아닌 새로운 학부의 신설을 추진했다”고 밝혔다. 첨단융합학부의 전공 또한 첨단 산업 수요가 많으며 융합 인재가 필요하다고 평가받는 ▲디지털헬스케어 ▲융합데이터과학 ▲지속가능기술 ▲차세대지능형반도체 ▲혁신신약 다섯 가지로 구성됐다.
첨단융합학부 학생들은 입학 전에 전공을 선택하지 않고, 3학기 동안 공통 교과목을 들으며 본인의 관심사를 찾아 전공을 선택한다. 이연 교무부학부장은 “학생들의 전공 선택이 잘못된 정보에 기인하지 않도록 각 전공에 대해 최대한 많은 정보를 제공하기 위함”이라고 설명했다. 이를 위해 첨단융합학부는 전공필수 강의로 ‘첨단융합전공과 나의 미래 1: 탐색’, ‘첨단융합전공과 나의 미래 2: 체험’, ‘첨단융합전공과 나의 미래 3: 개척’ 교과목을 3학기에 걸쳐 제공한다. 특히 각 전공에서 다루는 내용을 체험하는 교과목인 ‘첨단융합전공과 나의 미래 2: 체험’은 전공별로 총 다섯 개가 개설되는데, 전공을 선택하기 전 두 개 이상을 반드시 수강해야 한다. 전공 신청 전 전공설계상담교원과 3회 이상 상담하는 것도 의무화돼 있다.
전공 선택의 경우, 전공별 정원을 제한하기보다는 학생의 자유로운 선택을 최대한 보장하겠다는 입장이다. ‘서울대학교 첨단융합학부 전공선택 지침’에는 학생이 전공을 신청할 때 2순위까지의 희망 전공을 기재해야 하고, ▲지원 동기 ▲각 전공에서 정한 권장 교양 교과목체계의 이수 여부 ▲희망 전공 소속 교원과의 면담 결과 ▲전공설계상담교원 의견까지 총 네 가지 요소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신청자의 전공을 확정한다고 명시돼 있다. 하지만 이연 교무부학부장은 “학생들의 자유로운 전공 선택이 전적으로 보장돼 있다”며 실질적으로 학생들의 전공 선택을 제한하지는 않겠다는 방향성을 밝혔다.
이외에도 첨단융합학부는 ▲첨단융합기술창업트랙 ▲첨단융합창의연구트랙 ▲첨단융합정책리더십트랙의 3가지 교과인증과정을 도입했다. 학생들은 이 중 1개 이상을 선택해, 자신의 전공을 이용해 어떤 진로로 나아갈지 구체적으로 설계할 수 있다. 첨단융합기술창업트랙은 창업 및 산업계, 첨단융합창의연구트랙은 연구개발, 첨단융합정책리더십트랙은 정부 및 공공기관 진출에 초점을 두고 인턴십과 프로젝트 등의 기회를 제공한다. 이처럼 졸업생이 연구직 외에도 다양한 진로로 진출할 것을 기대하기에, 인턴 근무 내용이나 창업, 특허 출원 및 등록에 기여한 내용을 담은 보고서 등을 제출하면 졸업논문 제출을 면제받을 수도 있다.
새로운 학부가 만들어진 과정

수도권 대학 정원이 엄격히 관리됨에도 불구하고 본부가 정원을 늘려 첨단융합학부를 설립할 수 있던 것은 정부의 첨단학과 증원 기조 덕분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2022년 6월 국무회의에서 교육부에 “첨단산업을 이끌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발상을 전환하라”고 주문했다. 이에 따라 교육부는 같은 해 12월 각 대학에 첨단분야 학과의 정원을 확대하겠다고 알리며 증원 신청을 지시했고, 본부는 작년 1월 공과대학 소속의 시스템반도체전공을 신설해 학부 신입생 정원을 57명 늘리는 안을 교육부에 제출했다. 그러나 3월 3일 교육부는 본부의 안을 반려하며 기존 교육과정에서 벗어난 완전히 새로운 융합 교육과정을 만들 것을 요구했고, 이에 따라 첨단융합학부 신설에 대한 논의가 처음 시작됐다.
첨단융합학부 신설안은 빠르게 만들어져 2023년 3월 24일 교육부에 제출됐다. 처음 신설안은 첨단융합학부 산하에 6개 전공을 신설하고 학부 신입생 정원을 330명 증원하는 방안이었으나, 교육부의 검토 끝에 4월 28일 스마트융합시스템전공이 빠지고 학부 신입생 정원도 218명으로 줄어든 신설안이 확정됐다. 당시 첨단분야 정원 확대에 따른 수도권 입학정원 총증원량이 817명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서울대의 증원은 정부 정책을 고려해도 이례적으로 큰 규모였다.
신설안이 확정되자, 본부는 5월 15일 ‘첨단융합학부 설립추진단’을 발족해 첨단융합학부의 운영 방향을 제시하고 설립에 필요한 공간을 확보하는 등의 역할을 맡겼다. 이후 7월 1일에는 ‘첨단융합학부 설립준비단’이 발족해 입시 운영과 교원 채용 등 실무를 담당했다. 설립준비단장으로 임명된 송준호 교수(건설환경공학부)는 이후 첨단융합학부의 학부장까지 맡게 됐다.
이렇게 첨단융합학부가 빠르게 준비되는 동안, 구성원들과의 의견 교류는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정부의 정책 기조에 따라 급하게 입학정원을 확대하는 것에만 집중하다 보니, 구성원의 의견을 들을 겨를은 없었던 것이다. 학부생을 비롯한 일반 구성원들은 이미 신설안이 교육부에 제출된 후인 작년 3월 28일에야 〈중앙일보〉의 보도를 통해 첨단융합학부 신설 소식을 접할 수 있었다. 총학생회조차 교육부에 신설안을 송부하기 하루 전 신설 소식을 일방적으로 통보받았고, 이 때문에 학생들의 의견은 신설안에 전혀 반영되지 못했다. 당시 제63대 총학생회 ‘정오’는 ‘첨단융합학부 신설 결정은 그 논의 과정 전반에서 학생을 배제한 반쪽짜리 결정이었다’고 비판하는 성명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학생사회에서 본부의 소통 부재에 대한 불만이 커져가자, 본부는 뒤늦게 학생들과 소통하겠다며 총학생회장과 단과대 학생회장 등 학생사회 대표자들과 몇 차례 간담회를 진행했다.
첨단융합학부에 제기된 의문들
첨단융합학부 신설안이 공개된 당시, 부실한 설립 준비와 학내 인프라 부족에 대한 우려가 가장 먼저 제기됐다. 당시 총학생회 정오는 ‘당장 내년부터 200명 규모의 단과대학이 신설됨에도 불구하고 어떠한 로드맵이나 계획도 보이지 않는다’며 ‘내년에 입학할 신입생이 제대로 된 교육을 받을 수 있을지에 대한 강력한 우려를 표한다’는 입장문을 내놨다. 당시 공과대학 학생회 ‘드림’ 또한 카드뉴스를 제작해, 충분한 준비 없이 첨단융합학부를 신설하면 공과대학의 공간을 공유하게 되므로 공과대학 학생들이 이용할 수 있는 인프라가 축소될 것이며, 전공과목을 공과대학과 공유할 경우에는 수업의 정원 초과 문제가 발생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본부는 8월 1일 ‘첨단융합학부 학내 공청회’를 열어 학내 구성원에게 첨단융합학부의 교육과정을 설명했지만, 교육과정의 합리성과 현실성에 대해서도 우려가 쏟아졌다. 자연과학대학 유재준 학장(물리천문학부)은 공청회에서 “학문 간의 경계를 허물고자 하는 첨단융합학부의 설립 취지에 걸맞지 않게 각 전공이 뚜렷하게 구분돼 있다”고 지적했다. 전공이 특정 첨단산업의 인재 양성에만 치우쳐 있어, 시대의 흐름에 따라 현재 설계된 5개 전공도 언젠가는 필요성이 떨어질 것이라는 의견도 있었다. 이연 교무부학부장은 이러한 우려에 대해 “각 전공은 시대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필요한 분야에서 선정했다”며 “추후 융합교육이 필요한 새로운 분야가 제안된다면 그에 맞춰 교육 시스템을 개혁할 것”이라고 답했다.
약학대학 이상국 학장(제약학과)은 간담회에서 “학생들이 다섯 개의 전공 중에서 자유롭게 전공을 선택할 경우, 일부 전공으로의 쏠림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첨단융합학부는 학생들의 전공 선택에 제한을 두지 않고 있어, 일부 인기 전공으로 학생들이 쏠릴 확률이 높다. 실제로 김경민(첨단융합 24) 씨는 “올해 융합데이터과학전공과 지능형반도체전공에 학생들이 몰리는 추세”라며 “전공 쏠림이 강하게 나타날 수 있다”고 평했다. 다만 김 씨는 “송준호 학부장 등 학부 관계자들은 학생들이 적게 진입하는 전공에도 동일하게 지원할 것을 약속했다”며 “학생들이 입는 피해는 거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공마다 권장 교양 교과목이 크게 다르기 때문에, 학생들이 각 전공을 충분히 체험한 후 전공을 선택할 수 있을지도 확실치 않다. 특히 ▲‘수학 1·2’ ▲‘미적분학 1·2’ ▲‘물리학 1·2’ ▲‘화학 1·2’ ▲‘생물학 1·2’의 경우 권장 이수 학기가 각각 1·2학기로 정해져 있어 교양 선택의 폭이 더욱 제한된다. 첨단융합학부는 전공 진입 시 권장 교양 교과목을 수강하지 않은 학생이더라도 전공 진입을 제한하지 않겠다고 밝혔지만, 저학년 때 권장 교양 교과목을 이수하지 못한다면 향후 전공 수업을 수강할 때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
앞으로의 첨단융합학부

또 다른 문제로 지적되던 공간 부족의 경우 자유전공학부와 약학대학 연구실, IBS 기초과학연구원 등이 사용하던 18동과 19동의 일부 공간을 확보해 강의실, 실험실, 학생 생활공간, 교수연구실, 행정실 등으로 전환하면서 일단 급한 불은 끈 상태다. 18동 1층은 리모델링을 통해 첨단융합학부 학생들이 휴식하고 교류할 수 있는 라운지로 조성됐다. 교원 문제에 대해서는 현재 첨단융합학부 소속 교수 6명, 타 단과대와 50%씩 교육 업무를 나누는 협약겸무교수 5명, 교내 타 기관에서 함께 근무하는 일반겸무교수 10명과 전공상담교수 2명을 확보한 상태다. 교양 교과목의 경우에도 올해 1학기 ‘수학 1’ 교과목의 분반을 작년에 비해 두 개 더 개설해 정원을 100명 늘리는 등 확충해나가고 있다.
하지만 앞으로 몇 년간은 첨단융합학부 재학생 수가 계속 늘어날 예정이기 때문에, 학내 인프라를 추가로 확보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내년 2학기부터는 첨단융합학부의 전공 수업이 본격적으로 개설될 예정이기에, 공간과 교원 확보의 필요성은 더욱 커진다. 이연 교무부학부장은 “계속해서 학교 내의 여러 부처와 협력해 공간을 추가 확보할 예정”이라고 답했다. 또한 교원 문제에 대해서는 “이번 학기에도 6명의 첨단융합학부 신임교수를 채용하기 위한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며 “천 명에 이르는 학생들을 가르치는 데 충분한 수의 교원을 확보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첨단융합학부 측은 1기 학생들이 새로운 단과대에서 겪는 불편함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도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밝혔다. 첨단융합학부 설립준비단은 지난 12월부터 ‘첨단융합학부 신입생을 환영하고 학교생활 적응을 도와줄 선배님을 찾는다’며 ‘첨단융합학부 서포터즈(서포터즈)’를 모집했다. 올해 첨단융합학부 신입생에게는 선배가 없기 때문에, 다른 단과대의 학생들을 모아 선배 역할을 맡게 한 것이다. 1기 서포터즈로는 소속 단과대와 학부생·대학원생을 불문하고 총 100명의 학생이 선발됐다. 서포터즈는 새내기배움터, 신입생환영회, MT, 단과대 축제 등 다양한 행사를 준비하고, 동아리를 개설하거나 밥약을 주최하는 등 사실상 첨단융합학부 새내기들의 선배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서포터즈로 활동하고 있는 송예진(음악학과 석사과정) 씨는 “본부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서포터즈가 잘 운영되고 있으나, 사소한 부분에서 오는 이질감으로 인한 불편은 어쩔 수 없이 존재한다”고 전했다. 송 씨는 “서포터즈와 학생들은 활동 공간이 서로 다르고, 같이 듣는 수업도 없기 때문에 선후배 간의 자연스러운 만남이 이뤄지기 어렵다”고 말했다.
앞으로 첨단융합학부를 대표할 학생자치회도 서포터즈의 도움을 받아 준비되고 있다. 서포터즈 측은 지난 5월 22일 기준 “자치기구팀에서 1대 첨단융합학부 학생회 선거를 진행하기 위해 임시선거시행세칙을 만든 상태”로, “서포터즈와 학생들을 대상으로 선거관리위원회를 모집하려고 하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서포터즈는 “첨단융합학부 학생자치회가 구성되면, 학생자치회가 전체학생대표자회의대회 등에서 첨단융합학부 학생들의 의견을 대표하며 앞으로의 방향성을 그려나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첨단융합학부를 준비하며 설립 초기부터 제기된 문제와 논란은 첨단융합학부가 성장하며 해결해나가야 할 과제로 남아 있다. 첨단융합학부가 서울대에 성공적으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본부가 계속해서 구성원들과 소통하며 남아 있는 문제들을 풀어나가야 한다. 설립 과정에서 지적됐던 아쉬운 부분들을 반성하고, 학생들과의 대화를 통해 첨단융합학부를 더 나은 공간으로 만들어나갈 때, 첨단융합학부가 그렸던 비전 또한 완성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