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5호에서는 두 편의 영화, 한 편의 책, 한 편의 뮤지컬을 소개합니다. 

영화 《키메라》
알리체 로르바케르, 2024

홍인표 기자 han0727@snu.ac.kr

  주인공 ‘아르투’는 한때 고고학자를 꿈꿨던 도굴꾼이다. 그는 고대 유적에 가까워지면 현기증을 느끼는 ‘키메라 상태’라는 능력으로 옛 무덤의 자리를 찾아낸다.  아르투는 이 능력으로 친구들인 ‘톰바롤리’ 무리와 함께 고대 에트루리아 무덤들을 도굴하고, 부장품을 암거래하며 돈을 번다.

  어느 날, 이들은 지하 신전에서 여신상을 발견한다. 아르투는 그 아름다움을 단번에 알아봤지만, 다른 이들은 신상의 교환 가치만을 따진다. 물욕 앞에 고대의 신상이 해체되고 능욕될 때, 아르투는 무언가 잘못됐다고 느낀다.

  아르투는 사별한 약혼자와의 추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유적을 파헤치며 살아왔다. 과거 속에서 살았고 과거 덕에 살았다. ‘키메라’는 상이한 유전 형질이 공존하는 생명체다. 아르투는 과거와 현재의 유전자로 이뤄진 키메라였던 것이다. 그러나 정작 그는 한 번도 과거를 그 자체로 소중하게 바라보지 않았다. 영화는 태양을 피해 지하로 도망쳤던 한 마리의 키메라가, 지하에서 어떻게 다시 자신만의 태양과 재회하는지를 좇는다.

영화 《스탠바이, 웬디》
벤 르윈, 2018

윤성은 기자 yseliz0419@snu.ac.kr

  시설에 사는 자폐인 웬디는 스타트렉을 무척 사랑하는 소녀다. 시설의 센터장을 누구보다 좋아했지만, 시설에 더 살고 싶지는 않다. 결혼해 조카를 낳게 된 언니가 자신과 같이 살지 못한다고 말하는 이유를 이해하지 못한다. 웬디는 자신이 시설을 나가 언니와 같이 살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어서, 돈을 벌고 싶어서 스타트렉 시나리오 공모전에 도전한다. 

  하지만 아뿔싸, 우편 접수일을 넘겨버렸다. 어쩔 수 없다. 직접 제출하는 수밖에. 웬디는 시설이 위치한 마켓가 횡단보도 이상은 절대로 건너서는 안 된다는 약속을 깨고 LA로 향한다. 마켓가 밖으로는 한 번도 나서본 적이 없던 웬디의 인생 첫 여행이다. 웬디는 가는 길에 돈도 뜯기고, 강아지도 잃어버리고, 시나리오도 절반을 날려 먹지만, 시나리오는 그 자리에서 다시 손으로 쓰면 그만이다. 웬디의 시나리오에는 이런 대사가 있다. “함장님, 합리적인 결론은 단 하나, 전진입니다.” 웬디는 그걸 몇 번이고 되뇌다가, 이내 다시 출발한다.

『버섯 농장』
성혜령, 창비, 2024.

이다빈 기자 qlsekdl11@snu.ac.kr

  영원을 맹신하던 관계의 환상이 깨졌을 때, ‘너’ 혹은 ‘나’ 혹은 ‘우리’는 질문한다. 고작 ‘나’의 마음과 ‘너’의 마음만으로 우린 도대체 뭘 믿을 수 있었던 거지?

  기다림 끝에 나온 성혜령의 첫 소설집은 차분히 잔인하고, 조용히 가속한다. 기억을 반추하는 인물들의 시선은 하나같이 서늘하고, 관계를 만지는 손길은 거침없이 무심하다. 둘 중 하나, 혹은 둘 다의 마음이 어긋난 순간부터 균열이 생긴 관계는 너무도 손쉽게 박살 나지만, 관계의 끝을 확인하고 떠나는 둘의 뒤통수는 매섭도록 무정하다.

  그러나 인물들이 떠나고 버려진 관계의 흔적 앞에서 독자는 오래도록 머무르게 될 것이다. 빙산 아래 숨겨진 파국의 답을 찾아보기 위해서, 영원마저 믿게 만들던 옛 마음의 흔적을 훔쳐보기 위해서. 혹은, 인물들과 발맞춰 달리는 동안 느꼈던 고요한 흥분이 뒤늦게 올라오는 걸 막을 수 없어서.

뮤지컬 「전설의 리틀 농구단」
동덕여대 코튼홀,
2022.07.05.~08.28.

정유림 기자 jul2001@snu.ac.kr 

“우리 그랬잖아. 농구 한 판이면 땡!”

  의지할 곳 없이 살아가던 고등학생 수현은 학교를 떠도는 귀신 승우, 지훈, 다인을 만나게 된다. 이들의 소원을 들어주려다 얼떨결에 농구단에 들어가게 된 수현이 의욕 없는 농구단 코치 종우, 같은 반 친구 상태와 농구 훈련을 시작하게 되면서 모두의 마음에 위로가 찾아온다.

  여름마다 아이스크림을 들고 바다를 찾는 다인의 아빠. 아이스크림이 다 녹아내려도 한참을, 이미 15년 전 아들을 삼켜버린 바다에서 아들을 기다리는 그와 수현과 상태는 작게나마 애도를 함께한다. 세 명의 친구들은 수현 옆을 떠돌며 어린 시절 모습 그대로 활기찬 웃음을 잃지 않는다. 떨어져도 괜찮다고, 다시 뛰어오르면 된다고 끊임없이 용기를 북돋아준다. 함께 한다면 두려울 게 없다는, 함께 뛰는 순간이 좋다는 그 마음.

  15년 전 친구를 잃고 홀로 살아남아, 혼자 어둠 속에 있다고 생각했던 종우는 자신 옆에 승우와 지훈, 다인이 계속 있었음을 깨닫고 다시 몸을 일으킨다.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아도 그저 몸을 부딪치며 함께 땀을 흘리는 순간이 전부였음을. 항상 그리워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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