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 기억과 외침을 한데 담아

 자꾸만 닫혀가는 시민의 공간에 발붙이기 위해
▲서울광장 전경 ⓒ서울광장 홈페이지

  올해로 조성 20주년을 맞은 서울광장에서는 20년간 여러 행사와 집회가 열려왔다. 그중 코로나19 유행 시기를 제외하고 2015년부터 매년 서울광장에서 행사를 진행해 온 서울퀴어문화축제는 작년부터 2년째 서울광장 사용이 불허됐다. 광장에 만들어진 기억공간들은 혐오세력과 권력에 의해 밀려날 위기에 처해있다. 광장은 문화생활의 공간이기도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자신의 존재를 내보이고 의견을 내는 장이기도 하다. 이러한 광장은 정말 모두에게 열려 있나. 광장은 결국 어떤 곳이어야 하나.

광장, 모일 수 있는 자리

  많은 사람이 모일 수 있게 거리에 만들어 놓은 넓은 빈터. 광장의 사전적 의미다. 광장은 건물들이 빽빽한 도심 속 몇 안 되는 빈 곳이다. 이 빈 곳은 시민들로 종종 채워진다. 사람들은 잠깐의 휴식, 나들이, 행사 참여 등 저마다의 이유로 광장에서 시간을 보낸다. 광장에선 특정 목적을 위한 모임이 진행되기도 한다. 어떤 사람들은 광장에 모여 목소리를 낸다. 그렇기에 광장은 물리적인 공간뿐 아니라 여러 사람이 뜻을 같이해 만날 수 있는 자리를 비유적으로 이르기도 한다. 이는 공론장으로서 광장의 역할을 보여준다. 광장에 대한 논의가 집회에 대한 논의와도 맞닿는 이유다.

  모일 자유는 헌법으로 보장되는 국민의 기본권이다. 헌법 제21조는 ‘모든 국민은 집회·결사의 자유를 가지며, 집회·결사에 대한 허가는 인정되지 않는다’고 명시한다. 집회를 열기 위해 누군가에게 허가를 구할 필요가 없다는 의미다. 헌법재판소(헌재)는 2009년 ‘집회에 대한 허가제는 집회에 대한 검열제나 마찬가지’라는 판단을 내놨다. 이에 따라 ‘집회·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은 적법한 집회·시위를 최대한 보호하고자 허가제가 아닌 신고제로 운영한다고 규정한다. 주최자가 집회 일시와 장소, 참여 인원 등을 관할 경찰서에 신고하면 일부 장소를 제외하고 집회·시위를 열 수 있다. 집회 신고를 하지 않았어도 불법 시위라 단정하긴 어렵다. 헌재는 2012년 ‘신고는 행정관청에 집회에 관한 구체적인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공공질서의 유지에 협력하도록 하는 데에 그 의의가 있는 것이지 집회의 허가를 구하는 신청으로 변질돼서는 안 된다’고 판시했다. 미신고를 이유로 개최가 허용되지 않은 집회·시위라고 단정할 수 없다는 뜻이다.

  집회·결사의 자유는 소수자들에게 특히 중요하다. 사회적 권력의 열세에 있고 이야기를 전달할 매체가 부족한 소수자들은 때로 어떤 사건의 존재나 자신의 요구를 알리기 위해 거리로 나서야만 하기 때문이다. 헌재는 2003년 ‘집회의 자유는 언론매체에 접근할 수 없는 소수집단에 권익과 주장을 옹호하기 위한 적절한 수단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소수의 보호를 위해 중요한 기본권’이라고 밝혔다. 누락되고 간과되는 소수자의 목소리를 정치과정에 반영하기 위한 수단 중 하나가 집회인 것이다.

▲서울광장 전경 ⓒ서울광장 홈페이지

  집회나 시위를 열기 위해선 많은 사람이 모일 공간이 필요한데, 이때 주로 광장이 개최 장소로 선정된다. 이때 광장이나 공공청사 인근, 공원 등 지자체가 소유한 행정재산에서 집회를 개최하려면 집시법에 따른 신고와 별개로 지자체에 장소 사용 허가를 받아야 한다. 서울의 경우 광화문광장과 청계광장이 허가제로 운영되고 있다. 광장 조성 취지인 ‘시민의 건전한 여가선용과 문화활동’에 위반되는지를 판단해 사용을 허가하는 방식이다. 다만 서울광장은 신고제로 운영되는데, 서울광장 누리집에서 일정 현황을 확인한 후 신청서를 써서 담당자에게 이메일로 보내면 수리되는 방식이다. 과거에는 서울광장도 광화문이나 청계광장과 같이 허가제로 운영됐다. 그러나 2010년, 건전한 여가선용과 문화활동이라 명시됐던 광장의 사용 목적에 집회를 추가하고, 시민위원회를 설치해 장소 사용 불수리 시 위원회의 의견을 수렴하는 것을 골자로 한 ‘서울광장 조례개정’ 주민청구안이 시의회에서 통과되면서 서울광장 사용은 허가제에서 신고제로 전환됐다. 이로써 ‘공익적 행사 및 집회와 시위의 진행’이 광장 사용 목적에 새로 포함됐다.

  허가제의 취지는 광장 사용을 통제하는 것보다, 일정을 적절히 조정하고 시민들이 조성 목적에 맞게 광장을 사용하게 하려는 데에 있다. 서울광장 조례개정 운동을 주도했던 참여연대 이재근 협동사무처장은 〈한겨레21〉과의 인터뷰에서 ‘광장이 공유재산법상 행정재산이라고 해도 단순히 지자체나 지자체장의 소유인 것은 아니다’라며 광장의 공공성을 강조했다.

불허 아래 닫힌 광장

  하지만 최근 계속되는 광장 사용 불허 통지에 광장의 공공성이 의심받고 있다. 정치적 목적의 행사가 될 낌새가 보여 광장 사용을 허락할 수 없다거나 다른 행사와의 중복을 피해야 한다는 이유 앞에서 집회들은 갈 곳을 잃고 있다.

  허가제로 운영되는 광화문광장은 재작년 재개장 당시 집회·시위 성격의 행사는 모두 불허하겠다는 운영 기조 때문에 논란이 됐다. 2009년 처음 개장한 광화문광장은 편의시설 부족, 역사 공간 미흡, 보행 접근성 개선 필요 등을 이유로 1년 9개월의 재구조화 공사 끝에 2022년 8월 재개장했다. 서울시는 재개장 전 ‘집회·시위 목적의 행사는 최대한 사전에 걸러내 허가를 내주지 않을 예정’이라며 ‘문화제도 정치적 행사로 변질될 우려가 있다고 판단되면 허가하지 않을 계획’이라 밝혀 위헌 논란이 일었다.

  이에 18개 시민단체는 2022년 10월 

‘광화문광장 집회의 권리 쟁취 공동행동(공동행동)’을 구성하고 집회 금지 조치를 규탄하는 활동을 벌였다. 10월 13일, 공동행동은 관할 경찰서에 집회를 신고하는 동시에 서울시에도 광화문광장 사용을 신청했다. 경찰서 신고는 수리됐으나 서울시에의 신청은 목적 부적합을 사유로 반려됐다. 그럼에도 오세훈 서울시장 규탄 집회는 진행됐다. 공동행동은 “서울시의 반려 행위는 계속 비판받아 온 집회에 대한 허가제를 실시하는 것으로 헌법과 법률에 반하는 조치”라고 역설했다.

  이어지는 지적에 서울시는 법률 자문을 받았고, 그 결과 집회·시위 목적의 사용을 원칙적으로 불허하는 것은 집회의 자유를 침해할 소지가 있다는 결론이 나왔다. 이에 서울시는 행사 성격이 모호하거나 규모가 일정 수준 이상인 행사는 모두 전문가 5명으로 구성된 자문단을 구성해 허가 여부를 판단하기로 했다. 또한 집회·시위 목적이라는 이유에서 사용이 원칙적으로 불허되는 것은 아니며, 일반 시민의 광장 이용 권리도 종합적으로 고려해 허가를 결정할 것이라고 입장을 번복했다. 하지만 이후에도 서울시는 이태원 참사 100일 추모대회를 목적으로 한 광장 사용 신청에 일정 중복을 이유로 불가 통보를 내리면서 유가족과 시민들의 반발을 샀다.

  신고제로 운영되는 서울광장도 사용이 어려운 것은 매한가지다. 관련 조례에 따르면 서울광장은 사용 신고가 있는 경우 수리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사용일이 중복될 경우 신고 순위에 따르거나 열린광장운영시민위원회(시민위)의 의견을 들어 수리를 결정한다.

▲서울광장 사용 불허를 규탄하는 민주노총 기자회견 ⓒ〈뉴시스〉

  우선순위에 따른 불수리통보는 때로 과도하다는 지적을 받는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은 총파업대회 등

을 위해 작년 7월 두 차례 서울광장에 사용 신고를 했으나 같은 날 신고된 잔디 유지관리 작업을 사유로 불수리 통보를 받았다. 서울시 조례는 신고가 중복됐을 때 ‘공익을 목적으로 국가나 지자체가 주관하는 행사를 우선 수리할 수 있다’고 규정하는데, 잔디 작업도 이에 해당한다고 본 것이다. 서울광장 사용 불허 규탄 기자회견에서 민주노총은 “서울시가 헌법상 보장된 집회·시위의 자유를 억압한다”고 주장했다. 이후 민주노총은 서울시장을 상대로 서울광장 사용 신고 불수리처분 취소 소송을 제기했고, 재판부는 서울시의 재량권 일탈 및 남용을 인정했다.

  같은 규정을 근거로 올해 서울퀴어문화축제도 서울광장 사용이 불허됐다. 서울시 행사인 ‘책 읽는 서울광장’ 행사와 중복된다는 이유에서다. 책 읽는 서울광장 행사는 4월 18일부터 11월 10일까지 매주 목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열린다. 서울퀴어문화축제는 2015년 이래로 코로나19 유행 시기를 제외하고 매년 서울광장에서 축제를 열어왔다. 서울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회 양선우 위원장은 “광장에서 관내 행사만 계속 열리도록 시스템이 운영되고 있다”며 답답함을 토로했다. 

  서울퀴어문화축제를 위한 서울광장 사용이 불수리된 것이 올해가 처음은 아니다. 2015년에 처음 서울광장에서 서울퀴어문화축제가 열린 후 반대 여론이 일자 서울시는 2016년부터 매년 시민위에 결정권을 넘겼다. ‘광장의 조성 목적에 위배되거나 다른 법령 등에 따라 이용이 제한되는 경우’ 시민위의 의견을 들어 불수리할 수 있다는 예외 조항을 적용하거나, 혐오세력이 맞불집회를 위해 중복되는 장소에 사용 신고를 하는 상황을 고려해 시민위의 심의를 거치게 한 것이다. 작년 서울퀴어문화축제는 기독교 단체가 주최하는 ‘청소년·청년 회복콘서트’와 동시 신청해 같은 순위로 등록됐는데, 청소년 행사를 우선하는 조례에 따라 시민위는 기독교 단체 측의 손을 들어줬다. 재작년에는 행사 기간을 축소하고 신체 과다노출과 유해 음란물 판매·전시를 하지 않는 조건으로 광장 사용 신청에 대한 조건부 승인을 받기도 했다.

  서울시가 운영하는 다른 공공 공간에서도 사용 거부가 이어졌다. 올해 서울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회는 토론회와 강연회를 열기 위해 서울의 여러 공공기관에 대관을 요청했으나 거부당했다. 서울역사박물관의 공문에 따르면 ‘사회적 갈등 유발이 우려되는 행사로 박물관 운영 및 관람에 지장을 초래’한다는 게 불승인의 이유였다. 양선우 위원장은 “서울시 공익활동지원센터, 시민청,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접수를 거부당했는데 하나같이 사회적 갈등을 유발하거나 정치적인 행사라는 모호하고 주관적인 사유”를 들었다며 “혐오세력에게 얘기할 메시지를 퀴어에게 던지는 듯한, 핑계를 대는 느낌”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사회적 갈등을 유발하는 것은 행사를 주최하는 성소수자들이 아니라 혐오세력이라는 입장이다. 또한 이러한 배경에는 “공공 영역에 성소수자를 전혀 시민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한국 사회”가 존재한다며 우리 사회의 차별적 인식을 지적했다. 양 위원장은 서울퀴어문화축제 이외의 다른 성소수자 행사들도 같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퀴어들이 함께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느낌”이라고 덧붙였다.

부딪히고 좁아지는 광장

  행정적으로 승인에 문제가 없더라도 공간을 사용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갈등이 발생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장소를 선점해 다른 집회를 막으려는 시도, 이른바 ‘알박기 집회’는 장소 갈등의 대표적 사례다. 현행 집시법상 같은 날 중복되는 2개 이상의 신고가 있는 경우 나중에 접수된 집회 또는 시위는 금지할 수 있다. 시간이나 장소를 나눠 개최하도록 권유할 경찰의 의무가 있지만, 이는 권유에 불과하기에 선순위 집회자가 권유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조율이 어렵다. 사실상 허가가 선착순으로 이뤄지는 것이다. 이 때문에 집회 신고는 누가 더 빨리 경찰서에 신고 서류를 제출하는지가 관건이다.

  1992년 이래 30년 넘게 열린 수요시위도 반대 단체의 알박기 집회로 갈 곳을 잃었다. 수요시위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진상규명, 피해자에 대한 공식 사죄와 배상을 요구하는 정기 시위다. 2020년부터 수요시위는 반대 집회 측이 낸 집회 신고에 밀려 애초의 시위 장소였던 주한일본대사관 앞이 아닌 인근 장소에서 열리고 있다. 장소를 선점한 단체들은 실제로는 신고한 장소에서 집회를 열지 않거나 혐오를 표출하는 맞불집회를 벌였다. 이에 수요시위를 주관하는 정의기억연대는 2022년 1월 반대 집회 제재 및 장소 사용에 우선순위를 요구하며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에 진정을 제기했다. 인권위는 긴급구제 조치가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수요시위 방해 집단에 대한 경찰의 적극적 개입을 권고했으나 상황은 바뀌지 않았다.

  관련 진정도 결국 기각됐다. 작년 9월, 인권위는 ‘서로 상충하는 집회들 중 특정 집회를 국가가 우선적으로 보호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고, 특정 집회에 반대하는 집회를 사전에 억제하는 조치를 취하는 것도 허용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정의기억연대의 진정을 최종 기각한다고 밝혔다. 과거 인권위의 권고 의견과 배치되는 판단을 내린 것이다. 이에 정의기억연대는 ‘타인의 인격을 짓밟으며 혐오를 표출하는 명백한 방해 행위를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보장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어불성설’이라며 ‘인권위가 반인권적 결정을 내렸다’고 비판했다.

  
양선우 위원장도 작년 서울퀴어문화축제 장소 확보 과정에서 같은 어려움을 겪었다. 양 위원장은 “반대 집회 측은 24시간 사람이 바뀌면서 경찰서에서 밤을 새우고 있었다”며 집회 신고를 위해 서울퀴어문화축제 측 또한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해 신고 며칠 전부터 교대로 경찰서에서 밤을 새웠다”고 말했다. 서울퀴어문화축제는 매년 혐오세력이 적극적으로 개최를 반대하며 맞불집회를 여는 대표적 행사다. 양 위원장은 맞불집회에 대해 “정치적 논리가 작동한다고 생각”한다며 “보수 개신교인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키워드 중 하나가 동성애 반대 프레임”이라고 주장했다. 양 위원장은 “축제를 막으려는 맞불집회를 통해 어떤 성과를 보이는 것이 그들에게도 하나의 큰 연례행사일 것”이라고 말했다.

▲2023년 서울 을지로 일대에서 진행된 제24회 서울퀴어문화축제 참가자에게 종교인들이 동성애 반대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연합뉴스〉

  집회를 막기 위해 장소를 선점하려는 시도는 어떤 의미를 가질까. 도시정치와 정치지리학을 연구하는 신혜란 교수(지리학과)는 “점유하는 공간을 만들려는 쪽과 막으려는 쪽 모두 일시적일지라도 공간을 점유하는 것에 정체성을 담거나 공간 점유를 곧 몸의 확장이라고 여기는 등 많은 의미를 두기 때문”이라고 갈등의 이유를 설명한다. 사람들이 자신의 존재감과 정체성을 공간에 투영해 가치를 부여하고 공간의 의미를 변화시킨다는 것이다. 신 교수는 논문 「기억의 영토화: 세월호 기억공간 형성과정을 사례로」(2016)에서 ‘기억의 영토화’가 공간을 점유하고 공간 안을 물리적으로 구성하며 담론을 생산해 특정 기억의 공간적 경계를 만들고 재구성하는 활동을 뜻한다고 개념화했다. 신 교수는 “기억의 영토화 개념에서 중요한 점은 영토화된 후 그 경계가 허물어지는 탈영토화와 다시 새로운 경계가 생기는 재영토화가 끊임없이 나타난다는 것”이라고 설명하며 “공간 점유를 반대해 맞불집회를 열거나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것은 오히려 그 공간의 화제성을 키워주는 일”이라고 평가했다.

함께하는 광장의 가능성

  여러 어려움에도 사람들은 끊임없이 광장에 자리를 잡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자 한다. 이런 시도는 사회적으로 어떤 의미를 가질까.

▲세월호 기억공간 한편에 서울시의회에 공간 존치를 요구하는 피켓이 놓여 있다.

  공적 공간은 기억 공유의 공간으로서 기능한다. 특히 사회적으로 반향이 큰 사건이 일어났을 때 사회나 국가의 책임을 묻기 위해 광장이나 청사 앞에는 기억을 위한 공간이 만들어지곤 했다. 세월호 기억공간 또한 세월호 참사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묻고자 안산이나 제주와 같은 상징적인 장소뿐 아니라 서울에도 만들어졌다. 현재 서울시의회 앞에 위치한 세월호 기억공간은 세월호 참사 약 3개월 뒤 유가족들이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광화문광장에 천막을 설치한 것에서 시작됐다. 유족들은 천막 설치 후 단식농성 및 촛불집회를 이어갔으나, 광화문광장 이용이 장기화되자 보수단체를 중심으로 이를 문제시하는 담론이 형성됐다. 이후 광화문광장 공사로 기억공간은 서울시의회 앞마당으로 옮겨갔지만, 서울시의회 또한 지속적으로 철거를 요청하고 있다. 시민단체 4.16연대는 세월호 기억공간 지키기 1인시위를 이어가며 서울시의회에 기억공간 존치를 약속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서울광장 앞에 세워진 이태원 참사 희생자 분향소의 상황도 마찬가지다. 유가족 측은 지난해 2월 이곳에 분향소를 설치했다. 서울시는 이를 불법 점유로 규정하고 책 읽는 서울광장 행사를 위해 분향소 철거를 요구해 왔으나 유가족 측은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지난 2일 ‘10·29 이태원참사 피해자 권리보장과 진상규명 및 재발방지를 위한 특별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분향소 이전 논의가 시작될 가능성이 생겼다고는 하지만, 적절한 대상지를 찾는 것이 걸림돌이 될 것으로 보인다. 

  참사에 대한 기억공간은 진상규명 등을 위해 목소리를 내는 목적도 있지만 시민들이 기억을 공유하고 성찰하는 기능도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신혜란 교수는 한국 사회가 역사의 흐름 속에서 “기억공간을 소중히 여기는 것이 우리 사회가 거쳐왔던 비극을 알고 되풀이되지 않도록 성찰할 힘을 준다는 것을 배웠다”며 “기억은 과거에 관한 것이지만 기억공간은 현재의 행위 주체가 미래에 메시지를 보내는 것과 연관된다”고 설명했다. 한국교통대 성기문 교수(건축학과) 역시 〈머니S〉와의 인터뷰에서 ‘공동체가 해체되는 현대사회에서 광장이란 공간은 세대 간의 집단적 기억과 공동의 가치를 공유하는 역할을 한다’고 분석했다. 광장은 소수자가 자신의 존재를 내보이는 자리로 역할하기도 한다. 양선우 위원장은 “서울광장 대신 어디서 서울퀴어문화축제를 할지 고민했을 때 1순위로 고려한 것은 도심”이라며 “사람이 많은 도심에서 가시화 운동을 한다는 것에 초점을 둬 장소를 선정한다”고 밝혔다. 양 위원장은 “자신을 드러내는 개인적인 공간도 중요하지만, 공적으로 인정받고 시민으로서 자신의 권리를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간이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특히 양 위원장은 여전히 다양한 성소수자의 삶이 가시화되고 있지 않은 점을 지적하며 “안전한 공동체 형성을 넘어 공공 공간을 점유하고 문화를 양성해 퀴어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양선우 위원장은 서울퀴어문화축제를 ‘퀴어 명절’에 비유하며 “서로를 확인할 수 있어 안전하다고 느끼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온라인 공간이 아무리 발전하더라도 대면으로 모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일상에서 자신을 숨기고 살아가는 성소수자들이 축제를 통해 직접 서로를 감각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연대와 교류의 장으로서의 광장의 의미를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다.

  개인의 목소리를 전할 매체는 많아졌지만, 그만큼 진정한 연결도 늘어났다고 보기는 어렵다. 여전히 누군가는 자신의 목소리를 퍼트리려 거리로, 광장으로 나와야 한다. 그래서 광장은 기억하고 공유하고 투쟁하는 공간이 된다. 그 힘은 실재하는 공간이 있을 때 더욱 커진다. 신혜란 교수는 광장이 실질적으로는 모두에게 똑같이 접근 가능하지 않다는 한계를 지적하며 “그렇기에 같은 시간에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것이 힘을 가진다”고 설명했다. 또한 신 교수는 기억 공유의 효과는 “사람의 몸이나 그와 연결된 물질의 존재, 그리고 그 물질이 고정된 장소에 안정적으로 있는지에 따라 다르다”고 덧붙였다. 물질성과 장소성이 기억을 떠올리고 상상하는 일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의미다.

  광장은 민주화의 공간으로, 문화의 공간으로, 일상의 공간으로 기능해 왔다. 그러나 이 중 어느 하나로만 볼 수 없는 공간이 광장이기도 하다. 다양한 사람들이 자신의 존재를 내보이고 가치를 공유하는, 무궁무진한 가능성의 거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이러한 가능성은 좁아지고 있다. 모두가 지치지 않고 발붙여 서 있을 수 있는 공간을 위해, 모두의 광장에 대한 더 많은 논의와 주목이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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