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같이 노래하자, 다시 또 부단히

이예지(음악학 박사과정)
존엄, 애도, 환대의 문제에 관심이 있다. 그 각각에 대해 음악이 뭐라도 할 수 있을지 반신반의하며 음악학도가 됐다. 세월호 추모음악을 연구한다.

  2014년 4월을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천 개의 바람이 되어》라는 노래도 기억할 것이다. 성악가 임형주가 세월호 참사 추모곡으로 헌정한 이 노래는 참사를 다루는 여러 방송과 다큐멘터리에 삽입되며 세월호의 상징이 됐다. 노랫말은 떠난 자가 남은 자에게 건네는 위로 또는 작별을 내용으로 한다. “나는 천 개의 바람, 천 개의 바람이 되었죠. 저 넓은 하늘 위를 자유롭게 날고 있죠.”로 대표되는 애틋한 노랫말은 세월호를 목격한 많은 이들을 눈물 짓게 했다.

  이 노래는 음악적으로 꽤 아름답다. 차근한 템포 속 점진적으로 고조되는 반주, 자주 쉬어가며 길게 펼쳐지는 노래 선율은 분명 마음을 건드리는 호소력이 있다. 하지만 누군가에겐 그 아름다움이 문제가 됐다. 눈앞에 닥친 상황이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멀었기 때문이다. 세월호에서 사랑하는 존재를 잃고 안산에서 팽목으로, 또 청와대로 나아가며 삶을 건 절규를 단행하던 유가족들에게는 더더욱 그랬다. 감미롭게 정제된 노래는 이들의 울음소리와 닮아 있지도, 그 눈물을 닦아주지도 않았다. 음악의 서정은 오히려 세월호에 관한 책임과 과제들을 은밀히 덮는 듯했다. 진실 규명 없이는 온전한 애도도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사랑하는 이를 “따사로운 빛”으로, “반짝이는 눈”으로, 또 “종달새”로 보내주라는 노래의 다독임은 무용할뿐더러 야속했을 것이다.

  《천 개의 바람이 되어》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재난과 참사 옆에 쓰인 ‘노래’라는 단어는 그 자체로 다분히 위화감을 준다. 이는 감정정치에 대한 경각심과 연관돼 있다. 정확히는, 사회적 참사가 불러온 감정을 개인적 치료의 대상으로 삼으며 정치적 비참여를 부추긴다는 의미의 감정정치다. 세월호 이후 희생자와 유가족을 비극의 주인공으로 평면화했던 언론의 재현 방식, 슬퍼하되 ‘정치화’(엄밀하게는 ‘정쟁화’라고 해야 할 것이다)하지는 말자고 독려했던 정치권의 수사들이 대표적 감정정치의 사례다. 음악의 정서적 포섭력은 이런 감정정치 기조와 쉽게 결탁했다. 참사 직후 세월호를 다룬 공영방송에서는 《천 개의 바람이 되어》나 그에 준하는 서정적 음악들이 의례처럼 쓰였고, 여기서 노래되는 사적 슬픔은 우리를 사적 공간에서 흐느끼게 했다. 그 공간에는 세월호가 쏘아올린 한국 사회의 구조적 병폐 같은 정치적 쟁점이 들어오기 어려웠다. 거기에 갇히지 않으려면, 즉 슬퍼하다가 바보가 되지 않으려면 눈물샘을 자극하는 노래를 일단은 보류해야 했다.

  그러나 세월호 이후 노래가 단지 감정정치의 수단이기만 했을까? 10년 동안 세월호 참사를 추모한다는 취지로 발표된 노래는 (내가 연구를 위해 수집한 것만 해도) 160곡이 넘는다. 전문성과 장르와 매체를 막론하고 수많은 ‘세월호 노래’들이 쏟아져 나왔고, 암시적으로 세월호 애도의 메타포를 드러낸 사례까지 하면 더 많을 것이다. 더 의미심장한 것은 참사 이후 시간이 흘러도 새로운 추모노래가 꾸준히 만들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노래를 통해 세월호의 슬픔을 호출하는 작업이 이어달리기처럼 지속돼 왔다. 이 끈질김을 감정정치로 호도된 결과라고 치부해버려도 될까.

  우선 슬픔을 감정정치의 오명에서 복권시킬 필요가 있다. 수잔 손택이 9.11 테러 이후 연설에서 남긴 “다 같이 슬퍼하자. 그러나 다 같이 바보가 되지는 말자”는 말은 감정정치에 대한 문제의식을 요약한 경구로 회자되는데, 이 문장에는 ‘다 같이 슬퍼하는 것’과 ‘바보가 되지 않는 것’이 양립 가능하다는 전제도 함축돼 있다. 물론 감정정치는 사태를 파악할 혜안을 둔화시킬 공산이 크다. 하지만 이것이 문제적인 것은 슬픔이 발휘할 수 있는 모종의 정치적 힘을 박탈하기 때문이지 슬픔이 판단력을 가로막아서가 아니다. 오히려 슬픔 자체는 사유와 성찰의 동력으로 승화될 수 있다. 타인의 아픔을 함께 아파한다는 것은 곧 유대관계의 증거로서 정치 공동체의 기틀이 된다고 주디스 버틀러는 썼다. 이 통찰에 기대 생각한다면, 참사 후 10년이 지난 지금도 수많은 이들이 세월호를 지켜볼 때의 슬픔을 잊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야말로 ‘세월호 이후의 변화’를 내다볼 수 있는 중대한 단서다.

  세월호 노래는 바로 이런 맥락에서 새로운 의미를 얻는다. 노래, 그리고 노래가 재생시키는 슬픔은 세월호를 둘러싼 공동체적 기억 운동에 활용될 수 있다. 기억을 간직하기 위해선 시간에 맞서야 하는데, 되풀이해서 부를 수 있다는 노래의 특성이 시간에 대항하는 데 최적의 조건이기 때문이다. 세월호 노래는 다시 불리는 순간마다 2014년 4월 16일에 우리가 보고 느끼고 깨달은 것을 지금-여기로 소환해 애도의 공동체를 갱신할 것이다. 이 노래들이 불리고 청취되는 현장은 참사의 아픔을 피하지 않고 함께 직면하기로 약속한 연대의 장과 다름없다. 가수 김윤아가 버스킹 공연에서 《강》을 노래할 때도 그랬고, 단원고 4.16기억교실 1층 로비에서 민중가수 윤민석이 쓴 《이름을 불러주세요》가 흘러나올 때도 그랬으며, 유가족과 시민들로 구성된 416합창단이 추모행사에서 BTS의 《봄날》을 공연할 때 역시 마찬가지였다. 노래가 노래되는 몇 분 남짓은 그렇게라도 슬픔에 머무름으로써 참사가 남긴 화두를 꼭 붙들겠다는 의지를 재확인하는 시간이다. 그러니까 ‘세월호 노래’라는 말을 거끌거리게 읽었던 나의 인상은 이제 수정돼야 하겠다.

  여기까지 길게 써놓고도 아직 잘 모르겠다. 노래에 정말로 어떤 쓸모나 의미가 있는 건지, 아니면 그저 내가 노래를 옹호하고 싶은 건지. 이 모든 이야기가 구차하게 느껴져 잠시 망연해진다. 사실 세월호에 대해 말하거나 쓰려면 어김없이 이런 순간을 마주한다. 다만 나는 세월호 노래를 짓고 부르는 누군가의 결단과 실천을 주의 깊게 바라보고 싶다. 애도하는 노래를 다시금 만들어내는 이들의 부단함은 세월호 이후 한국 사회를 이루는 하나의 상(狀)이다. 이는 참사에 대한 문화적 애도의 가능성을 점점 선명히 드러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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