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꿰매지 못한 상흔의 기억 위에서
장애 학생에게 굳게 닫힌 서울대의 문화공간 두드리기
185호

장애 학생에게 굳게 닫힌 서울대의 문화공간 두드리기

▲문화관의 전경

  2021년 제정된 문화기본법 제4조는 ‘모든 국민은 성별, 종교, 인종, 세대, 지역, 정치적 견해, 사회적 신분, 경제적 지위나 신체적 조건 등에 관계없이 문화 표현과 활동에서 차별을 받지 아니하고 자유롭게 문화를 창조하고 문화 활동에 참여하며 문화를 향유할 권리를 가진다’고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장애 학생의 경우 학내에서 제공되는 문화서비스에 접근할 권리가 충분히 보장되지 않으며, 이러한 문제가 잘 알려지지도 않은 상황이다. 서울대 내 다양한 문화시설을 찾아 모두가 안전하게 문화 활동을 즐길 수 있는 환경이 마련돼 있는지 살펴보고, 개선을 위한 시도들에 주목해봤다.

  2020년, 서울대를 인권친화적인 대학으로 만들고자 하는 이들의 노력이 모여 인권헌장이 제안됐지만 4년이 지난 지금도 인권헌장은 제정되지 못한 채 계류돼있다. 인권헌장(안) 발표 이후 서울대학교 인권헌장 학생추진위원회가 구성됐고 총학생회 차원의 관심과 제정 노력도 지속됐으나, 제정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학교 차원에서 학내 구성원의 다양성과 권리를 보장하는 인권헌장을 여전히 제정하지 않은 것이 현재의 실태다. 

  인권헌장 제정을 통한 인권 보장의 규범화와 발맞춰 학생들이 캠퍼스 내에서 생활하며 권리를 침해받지는 않는지, 일상생활과 맞닿은 지점 또한 세심히 고민할 때다. 특히 대학 내의 장애인권 보장에는 여전히 큰 과제가 남아있다. 지난 4월, 장애의 날을 맞아 캠퍼스 배리어프리를 주제로 열린 ‘On the Lounge: 총장과의 대화(총장과의 대화)’에서 장애 학생 권리에 대한 다양한 논의가 오갔다. 총장과의 대화에서는 주로 이동권과 수업권 보장을 위한 방안에 초점이 맞춰졌으며, 저상 셔틀버스 도입, 장애 학생 보조 시스템이 개선 등이 주요 의제로 등장했다.   그러나 총장과의 대화에서 장애 학생의 문화권은 다뤄지지 않았다. 대학에서 학생들은 강의를 수강하고 배움을 이어가는 것을 넘어 다양한 문화 활동에 참여하며 창의성을 키우고, 사회적 네트워크를 구축한다. 이렇듯 대학 내 문화시설의 접근성은 대학에서 생활하는 모두에게 중요한 요소다. 그럼에도 서울대의 문화공간은 누군가에겐 닫힌 공간으로 남아있다. 배리어프리한 문화공간, 어디에서 찾을 수 있으며 어떻게 만들어야 할까.

문화관에서 공연을 볼 수 있을까?

▲문화관의 전경

  서울대 문화관은 행정관 앞 잔디광장 오른편에 위치해 있다. 문화관은 관악캠퍼스 내 공연 공간 중 가장 먼저 설립된 곳이자, 가장 큰 공연장이기도 하다. 학과·동아리 등 다양한 학내 구성원이 문화관에서 클래식 공연, 음악대학 연주회와 같은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문화관의 대강당과 소강당은 각각 1,874명, 522명의 관객을 수용할 수 있다. 분장실, 의상실, 무대 작업실도 함께 마련돼있다. 

  하지만 배리어프리에 대한 지원은 전무하다. 문화관 내에 휠체어석에 대한 안내는 없으며, 좌석으로 향하는 통로는 모두 계단으로 이뤄져 있다. 계단의 폭도 몹시 좁아 휠체어를 들고 옮기는 것조차 불가능하다. 

▲계단으로 이뤄진 좌석의 모습

  배리어프리 서비스 담당 기관 역시 명확하지 않다. 문화관의 배리어프리 실태조사를 위해 시설지원과에 해당 내용을 문의했으나 문화관을 관리하는 문화예술원에 문의하라는 답변을 받았으며, 문화예술원에서는 다시 해당 정보를 얻기 위해서는 시설지원과에 문의하라는 답변만이 돌아왔다. 

축제를 즐길 수 있을까?
  풍산마당은 서울대 축제가 진행되는 야외 무대다. 특히 코로나19의 확산세가 꺾이며 축제의 규모가 다시금 커진 지난해부터는 축제에 참석한 연예인들이 풍산마당에서 공연을 진행하기도 했다. 수많은 학생들이 공연을 보기 위해 풍산마당으로 몰려들었지만, 과연 모든 학생들이 공연을 즐길 수 있었을까? 풍산마당 또한 배리어프리한 공간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풍산마당 무대의 모습

  풍산마당의 좌석은 계단으로 이뤄져 있으며 경사로 또한 존재하지 않는다. 계단의 앞쪽 부분, 즉 무대와 가장 가까운 쪽에 휠체어석을 제공하나, 규모가 큰 공연을 진행하기 위해 추가적인 무대 설비를 설치할 경우에는 해당 공간을 사용할 수 없다. 이렇듯 제대로 보장되지 않는 배리어프리존을 제외하고 휠체어를 타고 접근할 수 있는 좌석은 계단식 좌석 뒤, 가장 높고 먼 곳에 위치한 잔디밭이 전부다. 즉 계단에 앉을 수 있어야만 가까이서 공연을 즐길 수 있는 구조다. 이동에 불편을 겪는 학생은 원하는 자리에서 공연을 관람할 수 없다.

▲축제가 진행 중인 풍산마당의 모습. 무대 기준 왼쪽(사진에 표시한 원 부분)이 사전에 고지된 배리어프리존이다. ⓒ서울대학교 축제하는 사람들

  축제를 기획·진행하는 ‘서울대학교 축제하는 사람들’은 이번 축제에서 휠체어 등을 이용해야 하는 학생들에게도 편의를 제공하기 위해 배리어프리존을 제공하겠다고 공지했다. 그러나 실제 마련된 배리어프리존은 유명무실했다. 김재준(컴퓨터공학 22) 씨는 축제 당일 풍산마당에 가보니 배리어프리존이 사전에 고지한 것과 다른 장소에 준비돼있었고, 새롭게 마련된 곳은 기존 위치보다 훨씬 무대 바깥쪽에 위치해 있어 공연이 아예 보이지 않았다고 토로했다.

미술관에서 전시를 관람할 수 있을까?

▲미술관의 전경 ⓒ서울대학교 미술관
▲미술관 내의 휠체어 대여 공간의 모습

  미술관은 배리어프리를 위한 여러 편의를 제공하고 있다. 우선 점자블록으로 시각장애 관람자가 엘리베이터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도록 안내하고, 휠체어 상시 대여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다. 각 층의 관람실은 계단으로 연결돼 있으나 엘리베이터로도 층간 이동이 가능하다. 

▲계단에 설치된 작품들
▲작품에 대한 설명. 시각장애를 가진 학생은 전시를 감상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그러나 미흡한 부분도 존재한다. 먼저 전시된 작품에 대한 점자나 음성 해설이 제공되지 않았고, 벽에 붙은 작품 제목과 해설은 매우 작은 글씨로 쓰여있어 읽기 어려웠다. 또한 계단에도 작품들이 전시돼 있어 휠체어를 이용하거나 보행에 어려움을 겪는 관람객은 특정 작품을 감상할 수 없고, 아래층에서 계단을 거쳐 위층의 전시로 이어지는 서사적인 전시 경험을 체험할 수도 없었다.

파워플랜트, 자유로운 관람은?

▲파워플랜트의 전경

  파워플랜트는 서울대 내의 예술실험공간으로, 공연·전시·퍼포먼스 등 여러 실험적인 예술활동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곳이다. 가장 최근에는 5월 28일까지 ‘DIALOGUE 02: SYNAPSE’ 전시가 진행됐는데, 백승렬 작가의 음악과 야키히토 오쿠나카의 설치미술을 결합한 공감각적 체험을 제공했다. 

▲(위)휠체어로 진입이 불가능한 전시장. (아래)입구 경사로가 있으나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배리어프리가 보장되지 않아 보행장애 학생은 전시를 제대로 관람할 수 없었다. 취재 당시 진행된 전시의 경우 전시장 입구가 비닐로 둘러싸여 있어 고개를 숙이고 들어가야 했는데, 휠체어를 이용하는 학생은 전시장에 진입하는 것 자체가 어려운 모습이었다. 전시 설명 영상이 상영되는 장소로 이동할 수 있는 경사로가 설치돼 있었으나 경사로를 올라가도 여전히 계단이 남아있어 진입은 불가능했다. 이처럼 서울대의 문화공간은 여전히 배리어프리한 환경을 갖추지 못한 채 여러 행사가 진행되는 실정이다.

배리어프리, 서울대학교에서 실현되다

▲자막을 동시에 지원하는 영문극회 BDG 연극 ⓒ영문극회 BDG

  그러나 서울대 내에서 배리어프리를 적극적으로 달성하기 위해 노력한 사례도 있다. 가장 먼저 무대 예술 분야의 시도가 눈에 띈다. 영문극회 BDG는 서울대학교 배리어프리를 위한 공동행동과 협업해 배리어프리 공연을 진행했다. 먼저 BDG는 세미나를 열어 배리어프리한 연극의 정의와 구체적 실현 방안을 논의했다. 이를 바탕으로 배리어프리 연극을 구현하기 위해 ▲원어, 영어 및 한글 자막 표기 ▲배경음의 사용 여부와 그 분위기를 묘사한 자막 표기 ▲휠체어석 확보 ▲무대를 더 가까이 볼 수 있는 오페라글래스 비치 등의 서비스를 고안했다. 또한 언제든 편의를 요청할 수 있도록 배리어프리 지원을 위한 스태프를 상시 배치했으며, 음성과 자막을 모두 사용해 재난 및 위급상황 발생 시 안전한 대피를 위한 행동수칙을 안내했다.

▲릴루미노 큐레이터 투어 홍보 포스터 ⓒ서울대학교 미술관
▲「삶에서 건진 아름다움의 지분」 전시 전경. 이동이 불편한 사람이라면 관람이 어려웠을 계단 쪽의 전시물을 큰 타이포그래피로 대체해 릴루미노 글래스를 쓴 관람객들이 관람하고 있다. ⓒ서울대학교 미술관 제공

  전시에서도 새로운 시도를 확인할 수 있었다. 오진이 학예사가 기획한 미술관의 소장품전 「삶에서 건진 아름다움의 지분」은 전시 기획 과정에서 배리어프리를 적극적으로 고려했다. 야외 현수막에 전시 제목을 수어 일러스트로 병기했고, 전시관 내 구역별 설명에도 수어 화면해설을 추가했다. 전시장 내에는 저시력장애인을 위해 잔존시력을 활용해 사물의 인식률을 높일 수 있는 ‘릴루미노 글래스’를 비치해 원활한 감상을 도왔다. 계단을 오르며 전시를 감상하는 연속적 전시 경험에서 배제되는 감각을 줄이기 위해 전시 동선을 구상할 때 엘리베이터를 적극 활용했으며, 계단 위 벽면의 작품에 대한 접근성을 향상하기 위해 벽면 작품을 큰 타이포그래픽으로 처리 및 대체해 멀리서도 볼 수 있게 기획했다.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문화권을 보장하기 위한 학내 문화시설들의 지원이 미흡한 이유는 무엇일까. 문화관, 두레문예관, 풍산마당, 파워플랜트를 관장하는 기관인 문화예술원 이중식 원장(미학과)은 예산 부족 및 예술과 배리어프리의 공존의 어려움을 문제로 꼽았다. 예를 들어 파워플랜트는 주로 참여형 전시를 추구하나, 시각·청각·촉각이 결합된 복합 전시를 기획한 작가에게 배리어프리를 고려할 것을 요구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또한 배리어프리 서비스 제공을 위한 예산이 부족하다는 사실도 지적했다. 

▲학내 문화시설을 이용할 때 겪은 어려움을 설명하는 김재준 씨

  휠체어 사용자인 김재준 씨는 문화권 보장을 위한 과제가 무엇일지 묻는 질문에 장애인 학내 구성원의 문화권이 단기간에 완벽하게 보장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며, 그렇기에 장기적으로 배리어프리한 서울대를 만들기 위한 노력이 필요함을 강조했다. 구체적인 실천 과제로는 가장 먼저 학내 문화공간 및 학내 행사에 대한 배리어프리 여부 공지 의무화를 꼽았다. 현재는 어느 공간과 행사가 배리어프리한지 대한 안내가 미흡하고 문의처 또한 확인하기 어려운 상황이며, 이는 장애학생의 문화·예술 향유에 대한 의지를 꺾는다고 김 씨는 전했다.

  미술관과 파워플랜트 등의 문화예술 공간은 주기적으로 새로운 전시를 진행하기에 전시에 따라 배리어프리 서비스 제공 여부를 일일이 확인하기 어렵고, 각 기획전마다 매번 담당자를 찾아내서 문의해야만 정보를 알 수 있다. 김재준 씨는 학내 구성원의 추가적인 수고를 덜고, 전시 담당자들 또한 배리어프리에 관한 인식을 제고할 수 있도록 최소한 배리어프리가 어느 정도로 보장되지 않는지라도 안내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표했다.

▲음악대학 콘서트홀에 설치된 경사로의 모습. 작년에야 설치가 완료됐다.

  김재준 씨는 중요한 것은 한 개인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느냐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배리어프리와 관련한 의견이 담당자에게 공식적으로 전해지고, 다음 담당자에게도 전달되며 끊임없이 누적돼 발전해야 한다는 것이다. 서울대의 문화예술기구들은 상호 간 소통이 미흡하고, 내부 직원과 대표 담당자들의 변화에 따라 시설 보수에 대한 논의가 끊어지기 일쑤다. 김 씨는 몇 년 전 음악대학 콘서트홀에 공연을 관람하러 갔던 일을 예로 들었다. 김 씨는 콘서트홀에 계단이 아닌 경사로가 존재하는지 담당 부서에 문의했으나, 직접 가서 확인해야 한다는 담당자의 답변에 결국 도착하고 나서야 경사로가 없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고, 지나가는 행인에게 도움을 청해 겨우 공연을 관람할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김 씨는 “배리어프리가 보장된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장애인 학우들이 모르고 담당자조차 모른다면 의미가 크지 않다”며, “끊임없는 논의와 더불어 소통과 정보 전달, 나아가 정보의 축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공간 접근성에 관한 사전 고지의 부족과 배리어프리 여부에 답할 통합적 기관의 부재가 주요 문제로 지적되고 있는 상황, 학내 문화공간들은 이러한 문제를 인지하고 있을까. 문화예술원은 향후 작품 전시에서 특정 장애를 가진 학생의 경우 관람이 어려울 수 있다는 사실을 고지할 것이라 답했다. 오진이 학예사는 지난 전시를 진행하며 장애에 관한 많은 기관에 자문을 구할 때 기관들이 정례화와 업무 연속성의 중요성을 언급하면서 지속가능한 기록을 강조했다며 배리어프리 전시가 지역사회에 뿌리내릴 수 있도록 시간이 걸리더라도 계속 시도하고 노력해야 한다고 답했다. 오 학예사는 “배리어프리를 위한 새로운 시도가 모든 이들의 문화예술 감상에 있어서도 기존의 틀을 뛰어넘는 계기가 된다”며 배리어프리에 대한 고민이 문화권 보장의 첫걸음이라고 그 의의를 짚었다.

  서울대는 물론, 모든 교육기관이 장애학생의 문화권 보장을 위해 더 많은 관심과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모든 학생이 차별 없이 풍부한 문화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교육의 완성을 향한 길이다. 누구나, 언제 어디서든, 어떤 것에든 어려움 없이 문화행사에 참여할 수 있도록 포용적 환경이 실현되기를 기대한다.

댓글 댓글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

Previous Post

여전히 꿰매지 못한 상흔의 기억 위에서

Next Post

185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