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실에서. 코너 이름과는 다르게 편집실에 진득하게 앉아 써본 기억은 없습니다. 이리저리 치이며 마감 작업들을 하다가, 더 이상 다른 사람의 글을 읽을 힘이 없을 때 겨우 빈 파일을 열어 써나가기 시작하는 글이었습니다. 대부분 새벽 2시 반쯤, 집 한구석에서.

  이번 186호 ‘편집실에서’는 광주에서 서울로 오는 기차 안에서 쓰고 있습니다. 차창 밖에 지는 노을 덕에 기차 내부가 온통 주황빛으로 물들었습니다. 장소가 바뀌니 생각해 뒀던 방향에서 글이 자꾸만 엇나갑니다. 더 부드럽고, 감상에 젖은 글이 나올 듯합니다. 장소가 마음을 흔듭니다. 공간이 다른 생각을 갖게 만듭니다.

  〈서울대저널〉을 하면서는 줄곧 공간이 주는 힘을 느껴 왔습니다. 소중해진 곳이 많습니다. 제가 태어나지도, 자라지도 않은 광주에 이렇게 애정을 가지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연희동 어딘가에 위치한 한 희곡 전문 서점은 활자에 오롯이 집중하고 싶을 때 찾는 아지트로 삼았습니다. 무대를 더욱 사랑하게 됐고, 전시에 흥미를 붙였습니다. 시답잖은 얘기부터 세상 돌아가는 심각한 얘기까지 함께 나누다가 다음 호 기사 주제를 얻어가기도 했던 저널의 단골 회식 장소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무엇보다도 학생회관 618호. 기자들이 각자가 가진 세상을, 다녔던 장소를, 경험한 공간을 함께 나눌 수 있는 곳이라 좋았습니다. 안전한 공간, 환대의 공간이었습니다. 나의 부족함을 끌어안고, 타인의 사려 깊음을 칭찬하며 서로 애틋하게 안아줄 수 있는, 그런 618호.

  이번 186호를 만드는 이들도 부단히 어딘가를 찾았습니다. 자리를 잡고 써낸 글들을 소중히 받아봅니다. 나락의 절벽 앞에서, 제주 강정 마을에서, 대전의 한 무대에서, 변화하는 서울대에서, 관악구의 노인들 사이에서, 충북 옥천에서, 여성 팬이 가득한 야구장에서, 8월의 찌는듯한 더위 아래서 써낸 글들을.

  각기 다른 공간이 지면에 담깁니다. 각기 다른 곳에 시선을 둔 이들이 애써 가져온 이야기가, 지면이라는 2차원의 공간에 담깁니다. 이렇게 보니 〈서울대저널〉을 펴내는 일은 공간과 공간의 마주침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공간들을 잘 연결해야겠다는 책임감을 상기합니다. 독자가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사회 곳곳으로 순간이동 할 수 있도록, 어떻게든 현장을 마주할 수 있도록.

  새로운 호를 만들 때마다 ‘잘 만들고 있는지’ 하는 고민만 이어집니다. 지난주엔 기자 두 명과 함께 오세혁 극작가가 쓴 연극 「보도지침」을 봤습니다. 정부가 언론 통제를 위해 특정한 사건을, 특정 방식으로 보도하도록 내린 보도지침을 폭로한 실제 사건을 기반으로 창작한 작품입니다. 언론에 대해, 말에 대해 자꾸만 생각하게 됐습니다. 작품과 감상자를 분리한 감상을 추구해 왔지만, 이번만은 그러기가 참 어려웠습니다. 극에서 잡지 〈월간독백〉의 편집장 정배가 내뱉는 대사가 공연 내내 마음을 짓눌렀습니다. 그래서 186호를 만들 땐 고민들 사이에서 방황하는 시간이 무척이나 길었습니다.

정배 월간독백의 발행 부수는 8천 부밖에 안 됩니다. 그 8천 부가 얼마나 힘이 있겠습니까. (중략) 월간독백은 힘이 없습니다. 그저 혼잣말에 불과할 수도 있죠.
돈결 힘이 없는데 왜 계속 발행하나요. 구속을 감수하면서까지.
정배 말까지 안 하면 죽을 것 같아서요.

  〈서울대저널〉은 8천 부에 훨씬 못 미치는 만큼을 발행합니다. 그런 〈서울대저널〉은 얼마큼의 힘을 가질까요. ‘누가 읽어주나’하는 못된 생각이 들었다가도 이내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던 건 잘 읽고 있다는 누군가의 한마디, 그리고 계속 말하고 싶은 마음이었던 것 같습니다. 사회부 기자 주혁의 법정 최후 진술은 더 아팠습니다.

주혁 어제를 추억하는 신문은 버려지고, 내일을 꾸며내는 신문은 펼쳐지지 못합니다. (중략) 계속해서 오늘의 역사를 감당하는 것. 오늘의 무게를 질문하는 것.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언론입니다.

  분명 연극을 보고 있는데 법정 방청석에 앉아 있는 것 같았고, 지면에 적힌 활자를 읽는 듯한 느낌도 들었습니다. 여러 공간이 떠오릅니다. 입사 최종 면접을 보는데, 내 옆에 앉은 지원자가 면접관의 질문에 너무도 완벽한 대답을, 내가 하고 싶었던 바로 그 대답을 하는 것만 같은 착각이 들었습니다. 나는 아직 무엇인지 감조차 잡지 못한 ‘진짜 기자’의 자질을 주혁은 이미 갖추고 있는 듯했습니다. 그걸 너무도 단단한 말들로 전하고 있었습니다.

  극장을 나서면서는 기자가 되는 일을 고민했습니다. 기자가 너무 되고 싶지만, 동시에 되기 싫기도 합니다. 내가 상상했던 ‘기자’에 영원히 닿을 수 없을까봐, 수많은 주혁이들에게 밀려날까봐, 지레 겁을 먹고 내 자리를 내어줄까봐 두렵기 때문입니다. 생각해 보면 〈서울대저널〉에서도 수많은 주혁이들과 함께했습니다. 부러워했고 닮고 싶었고 질투가 났고 그래서 사랑했던 사람들. 그 사람들과 채운 학생회관 618호는 두렵지 않았습니다. 이들 덕에 언제나 갈팡질팡하던 제 마음의 추를 ‘그래도 기자를 해야겠다’는 쪽으로 끝없이 밀어내고 또 밀어낸 2년 반이었습니다.

  끝이라고 말하기 싫어 자주 질척댔습니다. 부족함을 핑계 삼아, 책임감을 방패 삼아 참 오래도 자리를 지켰습니다. 이제는 마음을 먹었지만 아쉬움은 여전합니다. 그래서 더더욱 남기는 것 없이 모조리 챙겨 학생회관 618호를 나서려 합니다. 〈서울대저널〉이라는 이름을 달고 발자국을 찍었던 모든 장소를 끌어안고서. 제 글을 담아주는 지면이 있어서, 함께 말하고 또 생각을 나눠주는 저널러들이 있어서 분에 넘치게 행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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