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저널〉에서 활동하다 보면 때때로 회의감이 들기도 합니다. 끈질기게 부여잡고 목 놓아 외치는 것들이 잘 가닿지 않는다 느낄 때 그렇습니다. 소외된 이들을 조명하고 공론의 장을 열어젖혀 살기 좋은, 아니 살고 싶은 세상을 만들고 싶습니다. 그런데 마냥 뜻대로 되질 않습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온갖 재앙이, 온갖 참사가 쏟아지는 듯합니다.
한창 무덥던 방학의 어느 날, 186호를 준비하며 인터뷰를 위해 관악에서 멀리 안암까지 고려대를 찾아갔습니다. 기사가 다루는 문제 현상을 깊이 있게 이해하고 해결의 실마리를 얻어보려 교수님을 찾아뵀는데, 인터뷰를 진행할수록 어째 무기력해졌습니다. 얘기를 주고받을수록 문제의 해답이나 방향성은 이미 나와 있는 듯한데 세상은 당최 변할 조짐이 안 보여서 그랬습니다. 높은 해상도로 신랄하게 짚어주는 교수님의 언어에 도리어 비관하게 돼버렸습니다.
뻘뻘 땀 흘리며 먼 길 달려온 학부생 기자가 침울해하니 교수님께서 영 마음이 쓰이셨나 봅니다. 인터뷰 말미엔 투박하지만 단호한 어투로 위로인지 응원인지 혹은 둘 다인지 모르겠는 무언가를 건네주셨습니다. “무력해질 필요 없다고, 아니 무력해지면 안 된다”고. “작은 목소리들이 모여 어떤 의미 있는 움직임들을 만들어낸다”고. 그러니 부디 허무해지지 말고 끊임없이 발화해달라는 요청이었습니다.
교수님 말 한마디에 극적으로 태도가 달라지진 않았습니다. 다만 그날 저녁 인터뷰를 곱씹으며, 적어도 이번 186호에 대해서만큼은 감히 낙관해볼 원동력을 얻었습니다. 기사가 발간된다고 해서 세상이 눈에 띄게 변화할 거란 기대는 아닙니다. 세상에는 여전히 암울한 일투성이고 변화는 요원해 보이지만, 어김없이 누군가 해야 하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자신입니다. 애써 들여다보지 않으면 잘 보이지 않는 곳에 있을 누군가와 연대하고 공명하고 있다는 확신입니다.
〈서울대저널〉의 기사는 ‘나 아닌’ 극소수에게나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곳 아닌 저편의 목소리만을 대변하고 있지도 않습니다. 당신께서 모르는 사이 옆에서 고통받는 누군가의 현실이 이렇습니다. 그리고 그런 이들은 당신의 생각보다도 훨씬, 훨씬 많습니다. 이들의 존재를 여실히 자각하고 있기에 〈서울대저널〉의 기자와 PD들은 허무해지지 않으려 안간힘을 씁니다. 여러분도 부디 허무해지지 말아주시길요.